미군 주둔 지역마다 기지 문제에 앞장서서 목소리 내는 일본 지자체들
▣ 글·사진 구중서 군산미군기지피해상담소 상담실장
“기지섭외과에서는 밤낮 가리지 않고 기지에서 발생하는 소음, 사건, 환경 문제에 관해 직원들의 근무 시간 외에 시민들의 정보를 접수합니다. 전용 전화로 기지 피해 110번(Tel 893-4400)을 2002년 5월15일부터 설치했습니다. 사소한 것이라도 괜찮습니다. 시민 여러분의 많은 이용을 바랍니다.”(오키나와현 기노완 시청 홈페이지)
한국에 ‘범죄신고는 112’가 있다면 일본의 범죄신고는 110번이다. 도움이 필요할 때 110번을 누르면 언제 어디서나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이 제도를 기노완 시청은 미군기지 피해 신고로 응용해 24시간 상담 전화를 운영하고 있다. 2002년 32건에 불과했던 접수가 2006년에는 147건에 이르고 있다.
기지 현황·피해 사례 보고서 자체 발행
“시청에 하루 200건의 전화가 온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말이 200건이지 기지섭외과뿐만 아니라 시청 모든 직원이 일을 놓고 전화만 받아야 합니다.” 항공모함 탑재기 훈련이 있는 날이면 민원이 급증한다는 가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 기지섭외과 사사노 과장의 말이다. 사가미하라시에는 미 해군 비행장인 아쓰기 기지를 비롯해 4개의 미군기지가 있다. 기지섭외과에는 5명의 직원이 있지만 폭주하는 민원으로 늘 일손이 달린다.
미 국방성이 발행한 기지보고서를 보면 일본에는 130개의 미군시설과 4만8793명의 미군이 있다(2006년 9월 기준). 한국의 공동조사단이 찾은 가나가와현, 야마구치현, 오키나와현 등 주요 미군 주둔 지역의 현청과 시청은 저마다 기지섭외과 또는 기지대책과 등을 두고 미군기지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었다.
이 지자체들을 방문하면 브리핑에 나선 공무원들은 우선 군사지도 뺨치는 위성지도를 펼쳐 보인다. 그리고 자체 제작한 미군기지 안내보고서와 정책자료집을 내놓는다. 가나가와현 야마토시는 68쪽 분량의 (2007년 7월)를 발행했고, 오키나와현과 사가미하라시에도 각각 (738쪽), (165쪽)라는 방대한 내용의 책자가 있다. 기지의 명칭, 소속, 토지소유자 현황, 군인 수, 지도, 운용 전투기와 헬기의 종류, 소음 고등선, 피해 사례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는 자료들을 지자체가 발행한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일본의 지자체 상당수는 중앙정부의 태도와 관계없이 미군기지 철수를 외치기도 하고, 시장이 소속 정당인 집권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기노완시 기지정책부 야마우치 시게오(56) 부장은 “시민들의 질의에 대해 시가 모른다거나 방침이 없어서 답변을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그것은 공무원의 자세가 아니다. 우리가 직접 조사를 하고 원인을 분석해 시의 방침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지자체의 활동을 촉진하는 데에는 공무원노조도 한몫을 한다. 사가미하라시 공무원노조 산하 지방자치연구소는 꾸준히 미군기지 감시활동을 벌인다. 히바나 다쓰미(58·사가미하라시 납세과) 사무국장은 “시에서 미처 다 하지 못하는 미군기지 문제에 대한 감시활동과 시민 홍보는 우리의 중요한 업무”라며 “기지가 있어서 시가 발전하지 못하는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지자체의 활동은 지방의회와 시민들의 목소리 없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가미하라시는 미군기지가 도시 발전에 저해된다는 주민들의 공감대 속에 1971년 주민자치회·시·시의회가 망라된 ‘미군기지반환촉진시민협의회’를 구성했고, 현재 시의원 52명 모두 이 협의회에 참가하고 있다.
시의원들 요구에 연말 비행연습 중단
의원들은 목소리만 큰 게 아니다. 현황 파악과 해결을 위한 활동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아쓰기 기지 소음에 반대하는 폭음방지기성동맹 서기장을 맡고 있는 오나미 슈지(61) 야마토시 시의원은 미군 전투기 수리 회사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반대활동에 나섰다고 말했다. “항공모함이 요코스카 항구에 정박하면 탑재기가 훈련을 시작하는데, 1년에 4만1천 번 이착륙을 합니다. 항공모함이 이라크 나간 뒤에도 일본 자위대와 미 해군의 전투기들이 일대에서 1년에 2만7천 번 이착륙을 합니다. 시청의 소음측정망을 통해 우리는 이런 엄청난 사실들을 알고 있고, 당연히 이를 시민들에게 알립니다.” 야마토시에는 시민과 시청 공무원 등 23명으로 구성된 아쓰기 기지대책협의회가 있고, 시의회 기지대책위원회에는 29명의 시의원 중 12명이 소속돼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1년에 1회 이상 일본 방위성과 외무성, 주일 미대사관 등을 방문해 기지 반환과 비행연습 중단을 요구한다. 이런 활동의 성과로 연말 비행연습을 중지시키기도 했다.
시의회와 시청의 활동을 촉진하는 가장 큰 힘은 시민들의 참여다. 1960년 폭음이 없는 일상, 조용한 하늘을 되찾기 위해 만든 ‘아쓰기 기지 폭음방지기성동맹’은 야마토, 아야세, 에비나, 자마, 사가미하라, 후지사와, 마치다 등 7개 도시에 걸쳐 3천여 세대가 가입한 주민운동 단체다. 올 12월 4차 소음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이 단체는 6140명(2138세대)의 원고인단을 꾸렸고, 주민들의 의사 수렴과 민주적 결정을 위해 원고인 총회, 대의원 대회 등을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2004년 9월 오키나와 국제대학에 추락한 헬기 사고에 항의하며 열린 기노완 시민대회에는 3만 명의 시민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이것이 기노완시를 움직이는 바닥의 힘인 것이다. 이하 요우이치(55) 기노완 시장은 1년에 160건에 달하는 시민들의 민원 메일을 직접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시장인 내가 지금 투쟁하는 것은 미군기지로 인해 고통받았던 오키나와 사람들의 아픔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일본 정부는 기지보조금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습니다. 기노완시의 기지보조금은 5억엔(약 40억원)이었는데, 시 예산의 2%입니다. 우리는 기지보조금을 신청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한 푼도 받지 않습니다. 자주적으로 시 행정을 추진하기 위해서입니다.”
시청에 걸려오는 전화 200통의 의미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지방정부와 의회가 활발하게 활동하지만, 미군과 협상할 수 있는 파트너는 일본 정부다. 지역 미군사령관을 만나 협의를 하고 싶어도 모든 창구는 정부를 통해야만 한다. 안보와 동맹을 이유로 지역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중앙정부의 모습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주민들의 하소연을 듣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공무원과 의원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일본의 풀뿌리 운동은 한국의 부러움을 살 만하다. 하루 200통 이상 시청에 항의 전화를 하는 이들이 누구인가 하는 물음이 방문 기간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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