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는 한마디도 소홀히 않는 카피라이터들… 순간을 포착하는 능력에 달려 있어
요즘 선풍적 인기를 모으는 카피는 대부분 제품과 서비스의 주소비층 속으로 파고들어가 찾아낸 것이다. 더이상 카피는 카피라이터의 머리 속에서 나오는 멋있고 좋은 말이 아니다. 책상 앞에서 골머리를 싸매는 대신 타깃들이 있는 현장으로 뛰어가는 게 카피라이터로서 훨씬 현명한 일이다.

‘이제 짓는 카피가 아니라 줍는 카피다.’ 요즘 카피라이터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다. 제품과 서비스의 주소비층 속으로 파고들어가 찾아낸 카피가 ‘뜬다’는 얘기다. 더이상 카피는 카피라이터의 머리 속에서 나오는 멋있고 좋은 말이 아니다. 책상 앞에서 골머리를 싸매는 대신 타깃들이 있는 현장으로 뛰어가는 게 카피라이터로서 훨씬 현명한 일이다. “내가 니거야?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한줄의 카피로 젊은층을 사로잡은 광고대행사 코래드의 윤미희 카피라이터. 6년차 카피라이터인 그도 이 엄청난 히트작을 회의중에 ‘주웠다’.
누가 그 말을 카피로 사용했는가
처음 정해진 제품컨셉은 ‘움직이는 인터넷’. 광고제작팀은 이 컨셉을 구체화하기 위해 난상토론에 들어갔다. 며칠에 걸친 토론 끝에 소재는 남녀간의 연애로 정해졌다. 그 다음 과정은 열명 남짓의 구성원들이 각자 연애경험 이야기하기. 끊임없이 회의는 이어졌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던 중 담당PD가 부부싸움한 이야기를 꺼냈다. 얼마 전 부부싸움을 하다가 부인이 “내가 니거야?”라며 집을 뛰쳐나갔다는 얘기였다. 윤미희 카피라이터가 그 말을 재빠르게 포착했다. 그렇게 해서 “내가 니거야?”라는 말은 전파를 타게 됐다. 카피는 무심결에 말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걸 주워서 카피로 쓴 사람의 것이다.
이런 당돌한 카피를 쓴 윤미희 카피라이터는 의외로 차분하고 논리정연한 성격이다. 윤미희 카피라이터는 “몇년 전에 이런 카피가 나왔으면 분명히 욕먹었을 것”이라며 “직접 만나든, 잡지책을 뒤지든 10대들의 감성을 이해하려고 최대한 노력한 결과”라고 히트카피의 비결을 밝힌다.
한솔엠닷컴 틴틴 러브레터 광고카피 “너 400번 보낼 수 있어? 넌 여자 마음을 몰라”를 쓴 사람은 광고대행사 오리콤의 김준희 카피라이터다. 그는 이미 지난해 ‘묻지마, 다쳐.’라는 무수한 패러디를 낳은 카피를 쓴 적이 있다. 이달 중순 새로 방영된 광고의 “400번 날렸다. 그녀가 넘어졌다”는 카피도 벌써부터 히트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미 광고계에서는 소문난 카피라이터. 누구보다 생활어를 끌어쓰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을 듣는다. 김준희 카피라이터는 “항상 새로운 틀을 찾다보니 좋은 카피도 나오는 듯하다”고 말했다.
‘2% 부족할 때’ 광고로 ‘물’ 선풍을 몰고 온 대홍기획 박광식 카피라이터는 거친 대사를 과감히 카피에 도입했다. ‘날 물로 보지마!’ ‘난 노는 물이 달라!’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이런 카피는 비속어로 광고심의에 걸렸을 것이다. 제작팀은 심의를 피해가기 위해 모델이 제품을 들고 “날 물로 보지마!”를 말하게 했다. 혹시 문제가 된다면, 심의위원에게 이 카피의 ‘나’는 모델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제품을 지칭하는 표현이라고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카피는 심의를 무사히 통과했다. 광고에서 동시녹음은 드문 경우에 속한다. 아무래도 동시녹음은 전달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탓이다. 하지만 ‘2% 부족할 때’ 광고는 줄곧 동시녹음을 해오고 있다. 생생한 현장감을 살리기 위한 시도다.
현장을 중심에 두어야 뜨는 카피 나와
지극히 포스트모던한 ‘TTL’ 광고와 촌스러운 리얼리티가 넘치는 한국통신프리텔NA 광고를 한 사람이 만들었다면? 전혀 예측 못할 일이지만 사실이다. 그 주인공은 박명천 감독. 서른한살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광고계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광고천재답게 박 감독은 카피에도 일가견이 있다. “아버지 나는 누구예요?”로 시작되는 NA 광고카피는 그의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박 감독이 아니더라도 카피는 꼭 카피라이터만 쓰는 게 아니다. 광고제작팀의 디자이너나 PD가 키워드를 뽑아내는 경우도 많고, 심지어 광고전략을 담당하는 AE나 광고주가 쓴 카피가 뜬 예도 없지 않다. “언제든지 새우깡. 어디서나 즐겨요∼”로 시작되는 새우깡 CM송. 고전이 된 이 CM송 카피는 농심광고주가 직접 썼다. 단순하고 예스런 카피가 쌓여 오히려 차별화에 성공한 파스퇴르 광고 카피는 파스퇴르유업 최명재 회장이 전담했다고 한다.
신윤동욱 기자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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