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조직이기보다 ‘NGO’였던 버마학생민주전선의 재정비, 탄 케 JSA 의장 인터뷰
▣ 버마-타이 국경=글·사진 정문태 아시아네트워크 팀장
anetwork@loxinfo.co.th
모두들 살이 찌고 배가 나왔다. 국경 전선을 달리던 시절의 앳된 모습들은 사라지고 어느덧 중년 티가 났다. 전선의 소강상태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렇게 바꿔버리는 모양이다. 나는 이걸 시간의 흐름이니 무슨 세월의 변화라고 보기가 싫다. 혁명의 고착화가 부른 필연적인 낭패라는 뜻이다. 한동안 그이들 보기가 불편해서 잘 찾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가 이번 9월 시위가 터지고 오랜만에 국경을 찾았다. 그이들은 전사로서, 나는 기자로서 6~7년 함께 전선을 달렸다. 그 반가운 얼굴들은 저마다 총 대신 새로 찾은 ‘혁명법’을 연마하고 있었다. 그건 이른바 ‘정치’라고 부르는 소재였다. 다음은 탄 케에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의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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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위에 대한 감상은 어떤가?
“솔직히 말하자면, 충격이다.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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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규모가 그랬고, 군인들 유혈진압이 그랬고.”
규모야 그렇다 치더라도 유혈진압이야 전통 아니었나?
“그게 직접 승려들을 향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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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학생민주전선이 이번에 한 역할은 뭔가?
“내부 지하조직을 통해 시위대를 조직하는 데 일조했다.”
이미 일은 터졌고, 앞으로 버마학생민주전선은 어떻게 할 건가?
“무장투쟁과 정치투쟁을 병행하는 거다. 어떻게든 이번 시위 불씨를 계속 살려가는 게 목표다.”
그 추상적인 전략은?
“언론이나 국제사회가 너무 모른다. 우리 무장투쟁을 비난하더니 내부에서 시위가 터지자 이제 와서는 국경은 대체 뭘 하고 있느냐고 우릴 또 나무라니.”
억울한 면이 있다. 그렇다고 버마학생민주전선이 제대로 굴러왔다는 뜻은 아니다. 당신을 나무라는 게 아니라, 전 지도부를 말하는 거다. 정치투쟁이라고, 나는 그이들 모습 보면서 투쟁이라고 여겨본 적이 없다. 비정부단체(NGO)잖아? 혁명과 시민단체 활동은 다른 거 아닌가?
“아픈 말이다. 그래서 다시 조직을 정비하고 있는 중이다.”
뭘 어떻게 정비한다고? 왜, 이번 시위가 터지고 나니까 버마학생민주전선으로 인자들이 몰려들기라도 하는가? 돈줄도 왕창 늘어나고?
“왕창 수준은 아니지만, 젊은이들 문의가 많아졌다. 심지어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버마 노동자도 무장투쟁에 참여하겠다고 연락이 오고, 일부에서는 어떻게 기부금을 낼 수 있는지도 물어오고.”
문제는 그것보다 한때 버마학생민주전선에 참여했던 그 2천여 명을 다시 끌어들이는 거다. 다들 (주로 지도부) 외국에서 잘살고들 있잖아. 그이들 자극해서 돈도 마련하고 조직도 키워야 혁명도 할 수 있고. 버마학생민주전선 현 사무총장 서니는 ‘배신’이라고까지 했다.
(심각해져서 한동안 말문을 닫았다.) “지금이 그 기회라고 여겨 내부에서 준비하고 있다.”

전력 지원 체제 가동 중
내 말을 애정으로 여기면 된다.
“사실은 우리가 샌드위치 된 상황이다. 대놓고 내부로 들어가서 공세를 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부 밀선 조직을 공개적으로 활용할 수도 없고…. 그러면 국가평화발전위원회(SPDC)는 ‘얼씨구’라며 현재 공개된 조직인 ‘8888세대 학생’들까지 모조리 버마학생민주전선에 포함시켜 테러리스트로 몰아버릴 테니 참 어려운 상황이다.”
어려울 거 없다. 조직을 정비하고 ‘싸우는 공작’(깃발)을 국경에 휘날리기만 해도 된다. 나머지는 누가 뭐래도 다 역사다. 버마학생민주전선 무장 수준으로 내부에 들어간다는 것도 현실성이 없고, 밀선 수준으로 봉기를 일으키기도 불가능하다. 어쨌든 이번 시위가 계속될 것으로 보나?
“희망이라기보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번이 우리 세대에게는 마지막이다. 그래서 우리도 전력 지원 체제를 가동 중이다.”
버마학생민주전선, 1988년 8월 ‘랑군의 봄’을 이끌었던 그 청년. 학생들이 유혈진압을 피해 국경으로 빠져나와 생존을 위해- 혁명이라는 거창한 이름보다는- 무장투쟁에 돌입한 뒤, 1990년대 중반까지 소수민족해방군과 함께 어엿한 민주혁명군 주력으로 성장한 이들이다. 그러나 각 소수민족 해방군들이 버마 군사정부와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하나둘 떨어져나갔고, 특히 1995년 카렌민족해방군의 본부였던 매너플라우 함락으로 버마학생민주전선도 시들어갔다. 이어 1997년 버마학생민주전선 비상총회에서 정치투쟁 노선 강화를 의결하면서 무장투쟁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지도부에 반발한 수많은 학생군들이 전선을 떠나기 시작했다. 결국 2000년 제6차 회의에서 중앙위원을 비롯한 모든 지도부가 퇴진하면서 파란만장했던 버마학생민주전선의 한 세대를 마감했다. 현재 버마학생민주전선은 제2세대 격인 후배들이 물려받아 버마-타이 국경을 가르는 살윈강 기슭의 웨지에 협소한 해방구를 만들고 200여 명의 학생군들이 어렵사리 깃발을 부여잡고 있다.
그렇더라도 분명한 건 하나 있다. 역사가 그이들을 기록할 것이라는 점이다. 비록 아웅산 수치로 상징되는 ‘비폭력 평화운동’이 그이들을 버릴지라도, 버마 정치가 그이들을 버릴지라도, 세계 시민사회가 그이들을 버릴지라도.
조직원 25%, 세계 유례없는 희생
1988년 버마학생민주전선 깃발을 올린 이래 학생군은 전사자 304명에다 200여 명의 중상자를 내면서 반군사독재 무장투쟁을 벌여왔다. 1990년 중반 최대 병력이 2천여 명이었던 걸 감안하면, 전체의 25%가 넘는 조직원들이 희생당한 버마학생민주전선의 투쟁은 단일 조직으로서는 세계 게릴라 전사에서도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큰 손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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