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말에나 법령 정비… 비종교적 거부·현역 근무자·예비역 제외한 ‘추진 방안’ 보완돼야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시기상조’인가, ‘만시지탄’인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해 ‘장고’를 거듭해온 정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국방부는 지난 9월18일 ‘병역이행 관련 소수자의 사회복무제 편입 추진 방안’(이하 추진 방안)을 내놨다. 지난 2001년 12월 ‘불살생’이란 신념에 따라 총 들기를 거부한 평화주의자 오태양씨의 병역거부 선언 이후부터만 따져도 무려 5년10개월여나 걸린 게다. 그 사이에도 한 해 평균 700~800명의 젊은이가 양심의 명령에 따라 신병훈련소 대신 재판정과 감옥으로 향했다.
2배 복무 기간에 합숙 근무
“현재 종교적 사유 등에 의한 병역거부자가 매년 750여 명이 발생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징역 등 형사처벌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해 사회 각계에선 ‘이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합리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에 국방부는 ‘전과자를 양산하는 현 제도는 어떤 방법으로든 개선돼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성을 감안해, 병역제도 개선에 따른 ‘사회복무제도 도입’과 연계해 형사처벌 이외의 합리적인 대안 마련을 추진하기로 했다.”
권두환 국방부 인사기획관은 의 서면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추진 방안’을 내놓게 된 배경을 이렇게 밝혔다. 불과 두 달여 전 사회복무제 추진 계획을 확정 발표할 때만 해도 국방부는 “시기상조”란 말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게 대체복무를 허용해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주장을 쉽게 비껴갔다. 정책 방향이 급선회한 이유는 뭘까? 권 기획관의 설명이다.
“그간 국방부는 병역자원으로 활용이 불가한 가운데 전과자를 양산하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지난 2월 발표한 사회복무제도를 7월10일 도입 추진 계획으로 확정 발표하게 됐다. 그 직후 한 언론사의 조사 결과, 종교적 사유 등에 의한 병역거부자들에게도 사회복무를 허용하자는 찬성 여론이 50%를 넘는 등 여건 변화가 있었다. 현장답사와 체험 등을 통해 적절한 복무 분야를 발굴하면서 전향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게 됐다.”
국방부가 밝힌 ‘추진 방안’의 뼈대는 이렇다. 첫째, 이미 도입이 확정된 사회복무제도 범주에 포함해 추진한다. 둘째, 병역거부자의 업무는 다른 사회복무자보다 ‘난이도’가 높은 분야로 한다. 셋째, 현역 2배 수준의 복무 기간에 합숙 근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넷째, 객관적이고 엄정한 심사제도를 운영하고 제도 악용을 막기 위해 복무 관리를 철저히 한다. 국방부는 ‘추진 방안’이 “확정된 정책안이 아니라, 향후 다양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기초 자료”라고 조심스러워했지만, 지난 5년여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해 노력해온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는 이를 즉각 환영하고 나섰다.
“만 5년 반이 넘도록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인권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왔다. 처음 이 문제를 꺼내든 이래 4천여 명이 추가로 감옥에 가야 했다. 지금까지 양심에 따라 총 들기를 거부했다 수감된 이들만 모두 1만3천여 명에 이르며, 지금 현재도 830여 명의 젊은이가 갇혀 있다.” 한홍구 연대회의 집행위원장(성공회대 교수)은 ‘추진 방안’ 발표 이튿날인 9월19일 오전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마침내 해결의 실마리를 도출해낸 정부의 결단을 크게 환영한다”며 “전세계에 수감된 병역거부자 900여 명 가운데 830여 명이 한국인인 낯 뜨거운 현실을 극복하고,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란 위상에 걸맞도록 조속한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방부가 내놓은 ‘추진 방안’은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이미 수감된 ‘병역이행 관련 소수자’와 현재 입영 대기 중이거나 재판에 계류 중인 이들에 대한 경과 조치가 없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 쪽은 “법적 안정성을 고려할 때 구체적인 사항에 대한 입법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특별한 조치를 마련하기는 어렵다”고만 밝혔다. 하지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처벌하지 않기로 정책 방향을 정한 마당이다. 연대회의 쪽은 “법안이 마련되는 동안 구속·재판 중에 있는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며, 이미 형을 살고 있는 이들에겐 형 집행 정지와 같은 전향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며 “또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 등 국제사회가 권고한 대로 형을 마친 이들에 대한 사면·복권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둘째, 국방부가 현역 및 예비군 복무 중인 병역거부자를 사회복무제 편입 대상에서 제외할 것임을 분명히 한 대목이다. “현역이나 예비군으로 복무 중인 병역거부자를 적용 대상에 포함할 경우 군 기강의 와해가 우려됨은 물론, 이미 집총근무 경험자로서 그 진정성을 신뢰하기 곤란하다”는 게 정부 논리다. 하지만 이미 지난 2003년 현역 이등병 신분으로 이라크 파병에 반대해 병역거부를 선언해 실형을 살았던 강철민씨 사례가 있다. 또 예비군 훈련을 거부해 수천만원씩 벌금을 낸 이들도 부지기수다. 이들의 ‘진정성’을 깡그리 무시한다면, 국방부가 말하는 ‘소수자 인권 보호’는 의미가 반감할 것이란 게 시민·사회단체의 공통된 지적이다.
법안 마련되는 동안 대책 필요
지나치게 긴 대체복무 기간에 대한 논란도 있다. 국방부는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는 본인이 희망한 것이라는 점, 타 사회복무자와의 형평성 유지, 국민정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병역 기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현역병의 2배 수준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유엔인권위원회 등 국제기구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병의 1.5배를 넘는 것은 ‘징벌적 조치’로 간주해 금기시하고 있다.
대체복무 적용 대상 역시 여전히 모호하다. 국방부는 9월18일 발표에서, ‘종교적 사유 등에 의한 입대 전 병역거부자’로 적용 대상을 규정했다. 종교적 사유 외에 신념·사상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는 어떨까? 권 기획관은 “종교적 사유에 의한 거부자로 한정할 경우 형평성 논란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른바 ‘비종교적 사유에 의한 병역거부자’를 대체복무에서 배제하겠다는 얘긴 아닌 셈이다. 하지만 그는 “종교단체 증빙자료와 같은 객관적 판단 근거가 모호하고, 제도의 악용으로 현역 복무 기피 분위기가 확산될 우려가 있다”며 “향후 공론화 과정을 통해 신중히 검토할 예정이지만, 외국 사례로 대만 등 일부 국가에서는 비종교적 사유에 의한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입법 과정이 순탄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우리나라가 이사국으로 참여하고 있는 유엔인권위원회가 규정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의 하나다. 세계인권선언 제18조,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8조 등에서도 “모든 사람은 양심에 따라 병역거부를 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추진 방안’을 내놓으면서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적 합의를 전제로 ‘사회복무제도 안에서 하나의 복무 분야’로서 대체복무를 허용하겠다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병역거부권이 보편적 인권의 하나로 우리 사회에서 자리를 잡기는 이렇게 어렵다.
권리 인정 아닌 ‘하나의 복무 분야’
또 다른 ‘함정’은 더 현실적이다. 국방부는 ‘추진 방안’의 입법화 계획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사회복무제도 도입과 연계해 적용 대상자와 심사제도, 복무 분야·기간·형태와 복무 관리, 그리고 복무 만료 후 의무 부과와 벌칙 등을 전반적으로 병역법에 반영할 것이다. 군사훈련 면제 및 예비군 편성 제외 등과 같이 병역 이행 관련 소수자에게만 적용할 내용이 추가되는 형태가 될 것이다. 필요시 복무 분야와 관리·감독과 관련해 사회복지 관계법령 등을 개정할 예정이다. 법령 정비는 2008년 말까지 완료할 목표를 세우고 추진 중이므로 입법안을 2007년 정기국회에 제출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
결국 노무현 정부 아래서, 17대 국회의 손으로 ‘추진 방안’의 입법화가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정권이 바뀌고 국회 구성이 달라지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 허용이란 국방부의 ‘추진 방안’은 표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먼데, 오랜 숙제를 해를 넘겨가며 방치했던 무관심이 끝까지 발목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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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진 기자csj@hani.co.kr
“올가을 정기국회에서 이를 위한 법령 개정안을 내놓기는 어렵다.” 국방부가 ‘병역이행 관련 소수자의 사회복무제 편입 추진 방안’을 내놓은 시점이 절묘하다. 오는 12월 대선과 내년 봄 총선을 앞두고 있는 터라, 제도가 계획대로 2009년 시행에 들어갈 수 있을지는 결국 차기 정부와 국회에 달린 셈이다. 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그리고 대통합민주신당 경선 주자인 손학규·이해찬·정동영 예비후보와 ‘장외’에서 뛰고 있는 문국현 예비후보에게 대체복무제 도입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민주당 조순형 예비후보는 “답변을 하지 않겠다”고 전해왔다. 다음은 후보별 답변을 정리한 것이다.
△이명박 후보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통해서 신중하게 추진돼야 한다. 종교적 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해야 하지만, 제도 도입에 대해선 국민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국방의 의무를 기피하는 수단이 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며, 대체복무 기간은 현역에 비해 길게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현재 열악한 환경에서 병역 의무를 다하고 있는 현역 군인들의 근무환경과 처우 개선도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 대체복무제 문제를 정치적 논쟁으로 비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권영길 후보
환영한다. 종교적 병역거부자뿐 아니라 정치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에게도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확대돼야 한다. 현역 복무 기간의 2배에 해당하는 36개월의 대체복무 기간 설정은 ‘평등을 실현한다는 명목으로, 또 다른 불평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기존 거부자에 대한 최소한의 조치로 전과 기록을 말소하고, 현재 수형생활을 하고 있는 병역거부자에 대한 석방과 사면 조치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제도 시행은 빠를수록 좋다.
△손학규 예비후보
국민의 기본적 의무인 병역의 가치는 확고하게 존중돼야 하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벌 부과는 가혹한 측면이 있다. 국가인원위원회에서도 대체복무제도의 도입을 권고한 바 있다. 국방부의 결정은 대안 모색의 노력 끝에 나온 결과라 생각된다. 찬성한다. 사회적 합의를 충분히 이끌어내고 병역 기피 등 부작용에 대해 철저한 준비를 갖춘 이후에 실시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해찬 예비후보
소수자(약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라는 차원에서 환영한다. 다만 우리 사회가 병역 형평성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음을 감안해, 병역 기피의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병역의 사회적 형평성과 사회적 소수자 보호라는 두 가지 가치를 조화시킬 방안에 대해 공론 조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동영 예비후보
집총 거부 등은 평화를 이룩한 국가에서는 훌륭한 신념이 될 수 있지만, 한국은 현실적으로 개병제가 필요하다. 특정 신념은 인정하는 다문화 사회를 지향하되, 대체복무가 병역 기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엄격한 판정과 긴 대체복무를 통해 공정성을 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신중하게 결정할 사안이다.
△문국현 예비후보
기본적으로는 환영한다. 종교적 양심과 함께 애국적 양심을 지킬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국방 의무가 과거보다 더 자발적 의지에 따라 이루어짐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국방력 강화에 오히려 더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적 논의 과정은 충분했는지, 병역 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는 없는지를 한 번 더 살핀 뒤에 대체복무를 입법화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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