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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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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의 목소리를 허하라

등록 2007-09-21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마붑 알엄 이주노동자 영화제 집행위원장… “우리를 보는 시선이 불편하다”</font>

▣ 글 박수진 기자jin21@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마붑 알엄(31)은 제2회 이주노동자 영화제 집행위원장이다. 그는 “한국 사회가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불쌍하다’ 아니면 ‘웃기다’ 둘로 갈라져서 불편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직접 우리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련한 것이 이주노동자 영화제다.” 영화제는 8월31일부터 9월2일까지 서울 필름포럼에서 열렸고, 10월28일까지 매주 일요일마다 의정부, 용인, 인천, 여수, 김해 등 지방을 순회한다. 출품된 작품 대다수는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찍은 것이다. 1999년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으로 온 마붑이 바라본 한국 사회는 “단일민족에 대한 프라이드가 너무 강한 모노톤(단일색)의 사회”였다고 한다.

가 불편하다

<font color="#216B9C">이주노동자를 다루는 한국 언론의 시각이 불편하다고 말했다.</font>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건 2003년 명동성당에서 시위할 때의 일이다. 그때 나는 ‘노동3권을 보장하라’고 당당히 주장했다. ‘제발 저를 일하게 해주세요’라고 불쌍하게 말하지 않았다. 누구나 인간답게 일할 권리가 있는 게 아닌가. 그 권리를 위해 운동을 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 거의 모든 언론이 우리를 ‘갈 데 없어서 명동성당에 쪼그려 자고 있는 불쌍한 외국인’으로 다뤘다.

한국방송 도 불편하다. 물론, 재밌는 오락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여기 나와서 하는 얘기들은 한국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외치며 ‘발박자’를 두드리기에 좋은 이야기들이다. 미녀들의 이야기 속에서 강제추방, 고용허가제, 국제결혼같이 한국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지 않는 어두운 얘기들은 지워진다.

<font color="#216B9C">한국이 어떤 사회라고 생각하나.</font>

=한국에서 9년째 살았다. 한국 사람들은 자기 문화밖에 모르는 것 같다. 그리고 미국, 일본 같은 잘사는 나라의 문화만 좋아한다. 자기보다 잘사는 나라에는 잘 해주고 자기보다 못사는 나라에는 잘 못해준다. 세상에는 굉장히 다양한 문화가 있다. 그걸 즐기지 못하는 한국 문화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것 같다.

<font color="#216B9C">한국인과 결혼한 것으로 알고 있다.</font>

=아내와는 2002년 처음 만났다. 아내는 여성·환경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다. 아내가 영어를 잘해서 의사소통이 잘됐다. 데이트는 주로 행사 진행을 같이 하면서 했다. 데이트 할 때도 그렇고 결혼한 지금도 둘이 손 잡고 다니거나 내가 아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걸어가면 사람들이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본다. 나는 그럴수록 더 한다. 왜냐면 한국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자꾸 봐야 나 같은 커플들이 앞으로 마음고생을 덜할 테니까.

<font color="#216B9C">귀화할 생각은.</font>

=있는데, 아직 잘 모르겠다. 내가 가장 많이 들었고 지금도 거의 매일 듣는 질문이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다. 이후에도 다른 질문이 이어지면 되는데 그 질문만 하고 끝이다. 이 나라 사람들이 참 상상력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귀화해서 까만 피부의 내가 ‘한국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할 것 같아 고민된다. 그리고 틀림없이 왜 귀화했는지를 끝없이 설명해야 할 것이다.

세계화에 대한 서로 다른 잣대

<font color="#216B9C">한국에 바라는 점은.</font>

=‘세계화’에 대한 두 개의 서로 다른 잣대가 바뀌어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 기업이 외국으로 가서 외국의 싼 노동력을 이용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 반대로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싼값을 받으며 노동력을 제공하는 데 대해서는 일자리를 뺏는 것이라며 부정적으로 인식하거나 무시한다. 국제 결혼을 통해 농촌으로 가는 이주 여성뿐만 아니라 농촌에서 일하는 이주 남성도 많아지고 있다. 농촌이 비어가는 현상은 한국의 문제인데, 이주노동자들이 이런 문제를 함께 나누고 있다. 그런 점을 인정했으면 좋겠다.

다문화 채널도 생겨야 한다. 이주노동자를 때리는 사장, 국제 결혼을 통해 얻은 아내를 때리는 남편이 단지 나쁜 사람이어서 그런 건 아니다. 모르거나 익숙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 정도다. 그러면 방송도 2% 정도는 우리의 얘기를 담아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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