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력·바이오가스로 발전하는 목장, 생활화 교육하는 학교… 에너지를 바꿔 삶을 바꾸다
재생에너지 현장을 가다 ② 일본
▣ 구즈마키=글·사진 이유진 녹색연합 에너지·기후변화 팀장
도쿄에서 신칸센을 타고 북쪽으로 3시간, 다시 차로 40분을 가면 인구 8천 명의 작은 마을 이와테현 구즈마키에 도착한다. 강원도 산골과 풍경이 비슷한 이 마을은 86%가 산림으로 덮여 있다. 1만500여 마리의 소를 키우는 낙농이 주산업인데, 교통도 불편하고 골프장이나 스키장 하나 없는데도 매년 5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도대체 비결이 뭘까?
축분이 목초지에 뿌려지기까지
바로 일본 최고의 와인과 우유, 재생 가능 에너지 생산시설이다. 먹을거리와 에너지를 자급해 순환경제 모델을 이루고, 잘 가꾼 산림과 목장, 풍차가 어우러져 관광자원이 된다. 특히 일본의 지자체와 학교, 해외에서 재생 가능 에너지 활용 사례를 배우기 위해 많이 방문한다. 2900가구가 사는 마을에서 1만7200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해낸다. 구즈마키의 에너지 생산능력은 2만2489kW인데, 이 가운데 대부분인 2만2200kW는 15개의 풍력발전기를 통해 생산해낸다. 원래 바람이 좋은데다 낙농 마을이라 산악도로가 건설돼 있어서 풍력발전소를 건설하는 데 경제적이다.
구즈마키 중학교는 50kW 태양광 발전시설로 학교 전력의 25%를 충당한다. 공공 목장에서는 축분을 이용해 37kW의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운영하고 있다. 800두 정도가 있는 이 목장에서 나오는 분뇨량은 하루 13t인데, 분뇨 처리 방법으로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활용하고 있다. 2t 정도의 고형분은 퇴비화 시설로 볏짚과 섞어 판매하고, 액체인(오줌) 11t과 음식물 쓰레기 1t을 섞어 메탄으로 발효한 뒤, 열병합발전으로 플랜트 자체의 열과 전기로 사용한다. 이렇게 하고도 남은 찌꺼기인 액비는 목초지에 비료로 살포한다. 발효가 끝나 냄새도 안 난다. 축산 분뇨도 처리하고 퇴비를 판매해 수익을 얻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공공 목장에 고용된 인원은 모두 170여 명인데, 그중 70여 명이 도시로 나갔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들이다.
풍부한 산림자원을 이산화탄소 흡수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마을이 독자적으로 산림에 투자했다. 나무를 베어내고 재조림하고, 간벌목은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마을에서 베어낸 나무로 집을 지으면 50만엔을 보조하고, 장작 스토브를 이용하면 스토브 구입 비용의 3분의 1을 지원한다. 간벌목을 이용한 120kW 목질계 바이오 가스 발전시설도 갖췄다. 25년 전부터 목재를 압축해 연료·발전용으로 쓰는 펠릿을 만드는 공장이 있었고, 펠릿 보일러를 보급하는 사업도 하고 있다. 이처럼 구즈마키 마을은 지역의 자연자원을 활용해 풍력·태양광·바이오매스 등 다양한 재생 가능 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다.
때 묻지 않은 자연경관과 청정함을 자랑하는 구즈마키 마을도 줄어드는 인구와 낙농업 쇠퇴로 한 차례 홍역을 겪었다. 마을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산업 폐기물 처분장 건설이 제시됐다. 16년간 계속된 분쟁은 마을 촌장 선거에서 처분장을 반대하는 후보가 당선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폐기물 처분장 건설을 추진했던 업체와 주민, 지자체가 모여 협상을 한 결과 주민들이 처분장 건설부지로 팔았던 64ha의 땅값을 돌려주고 다시 매입했다. 업체가 사무실을 지었던 1ha는 구즈마키 마을이 3600만엔을 주고 매입했다. 오랫동안 구즈마키에 있는 목장들을 제3섹터(지방자치단체와 민간 부문이 공동으로 출자하는 사업체) 방식으로 운영하면서 마을 주민들과 지자체가 쌓아온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폐기물 처분장 건설 논란을 매듭지은 구즈마키는 1999년 3월 ‘구즈마키 신에너지 선언’을 채택하고, 3개월 뒤 소데야마 고원에 풍력발전기 3기를 가동하면서 선언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구즈마키 마을을 일본의 대표적인 청정에너지 마을로 탈바꿈시킨 주역인 나카무라 데쓰오 마을회장은 지난 8월28일 임기를 마쳤다. 무엇보다 사업 추진을 위한 예산 확보 과정이 궁금했다. 그는 “구즈마키정에 에너지와 관련해 투자된 금액이 총 57억엔이고, 마을 주민들이 투자한 금액은 전체의 0.8%로 4593만엔”이라며 “마을에 기본 부채가 있고 정부 교부금은 줄어드는 상태였기 때문에 마을에 재생 가능 에너지 시설을 도입하는 데 마을 예산을 들이지 않는 방법을 강구했다”고 답했다. 그는 “재임 기간 식량·고용·환경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목표로 에너지와 먹을거리가 순환하는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폐버스는 도서관, 페트병은 온수기
구즈마키에는 재생 가능 에너지 시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재생 가능 에너지를 생활화하는 교육을 하는 ‘숲과 바람의 학교’가 있다. 이 학교 요시나리 노부오 대표는 7년 전 11가구밖에 살지 않는 해발 700m가 넘는 외딴 산골의 폐교를 활용해 자연과 재생 가능 에너지를 체험하는 학교를 만들었다. 최종 목표는 학교가 중심이 돼 자급자족이 가능한 마을을 실현하는 것이다. 요시나리 대표는 딸과 여행 중 덴마크에서 재생 가능 에너지를 접하면서 “먹는 것과 쓰는 것, 특히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전쟁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에 감명을 받아 도쿄 생활을 정리하고 구즈마키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 학교의 원칙은 첫째가 ‘버리기에 아깝다’, 둘째는 ‘고맙습니다’, 셋째는 ‘당신 덕분입니다’라는 말”이라며 “어려운 말로 하면 ‘지속 가능하다’라는 뜻과 통한다”고 말했다. 이곳의 교육은 특별한 게 없다. 그저 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다. 폐버스를 이용한 간이 도서관은 태양광과 소형 풍력으로 밤에 불을 밝히고, 페트병을 재활용해 태양열 온수기를 만든다. 오줌으로 메탄가스를 만들어 간단한 음식을 할 때 사용하는데, 과연 불이 붙을까 의심이 들었지만 실제로 열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정도의 화력이었다.
교육 내용 중에 ‘우리가 만든 전력으로만 생활하는 날’이 있다. 교육생들은 전기 생산부터 배선까지 스스로 고민해 해결해야 하는데, 생산한 전기를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지를 생각하고 결정한다. 하루 종일 자전거 페달을 밟아서 전기를 생산하거나, 마을 냇가에 수차를 돌려서 전기를 축전기에 모은다. 저녁에는 하루 동안 만들어놓은 전기로 다 같이 모여 영화를 보는데, 언제 영화가 끝날지 알 수 없어 조마조마해하면서 결국은 우리가 너무나 쉽게 써버리는 에너지의 가치를 깨닫게 된단다.
조마조마하며 영화를 보다 보면…
구즈마키 마을은 주민들과 지방자치단체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지자체가 나서서 열심히 재생 가능 에너지를 확산한 사례이다. 열정적인 공무원들이 변화를 선도한 것이다. 구즈마키가 보여주는 희망은 작은 마을 단위의 에너지 자립이 ‘가능하다’라는 점이다. 구즈마키 마을 공공 목장에 설치된 풍력과 ‘바람과 숲의 학교’에서 하는 재생 가능 에너지 교육이 잘 결합한다면, 이 마을은 정말 ‘에너지원을 바꿔 주민들의 삶이 바뀌는’ 더 큰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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