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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의 계절, 노동계의 선택은

등록 2007-09-07 00:00 수정 2020-05-03 04:25

‘정치적 구심’은 민노당, 그러나 ‘비판적 지지론’ ‘정책연대’ 등 엇갈리기도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올해 대선을 둘러싼 노동계의 정치적 동향을 보면 적잖이 동요했던 과거에 비하면 꽤 안정적인 편이다. 의회 9석을 가진 민주노동당이라는 ‘정치적 구심’이 분명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비판적 지지론’의 망령(?)이 재등장할 것인지를 둘러싼 우려가 약간 고개를 들고 있기는 하다.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울산 북구청장을 지냈던 이상범(현대차노조 2대 위원장)씨가 8월28일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손학규 예비후보 지지를 선언해 파장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 전 청장은 조규대 전 울산광역시의회 의원(전 현대중공업노조 부위원장), 사영운 전 현대그룹해고자협의회 의장(전 현대엔진노조 사무국장)과 함께 “이명박은 반노동자 후보, 손학규만이 이명박을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씨의 행동은 민주노동당의 주요 거점인 울산에서 터진 ‘반란’이라는 점에서 사뭇 관심을 끈다.

이들은 “안타깝지만 현재의 대선 구도하에서는 민주노동당의 힘으로 한나라당 집권을 막을 힘이 없다”며 “(내 행보가) 현장 노동자들의 손학규 지지 합류를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2002년에도 대선을 앞두고 9월12일, 민주노총 내부에서 김영대(전 민주노총 부위원장)씨를 비롯한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 몇몇이 ‘개혁과 통합을 위한 노동연대’ 모임을 결성하고 민주당 노무현 후보 지지를 선언해 파문이 일었던 적이 있다. 당시 이들은 “조직적·물적 토대가 취약한 노동운동 세력이 선거 연합을 해야 한다”며 “노동자를 정치에서 소외시키지 않으려면 정치 참여가 필요하고,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민주노동당 탈당 이유를 설명했다.

“안타깝지만 민노당이 이길 힘 없으니…”

이번에 이상범씨가 “(나의 행동이) 노동계의 대선 방침 논쟁의 작은 불씨가 되길 바란다”고 했지만, 민주노동당 쪽은 “역사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자질구레한 일들 중 하나”(권영길 예비후보)라며 의미를 깎아내렸다. 집단적 (탈당)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사소한 바람”에 그칠 것이란 얘기다. 조승수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장은 “지금 민주노동당 안에서 비판적 지지를 공공연하게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2002년 대선 때 논란이 일긴 했지만, 2004년 원내 진출 이후 당이 분명한 정치세력으로 자리잡았고, 회의적인 분위기도 거의 없다. 이상범씨 문제는 당 내부의 경향이 아니라 단순히 개인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심상정 예비후보 쪽도 “개인적 욕심으로 줄서기하고 권력의 양지만을 좇는 철새들 가운데 당을 떠날 사람은 이미 다 갔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이 진보 진영 단결의 구심으로 정립된 상황인 만큼 당을 배신하고 범여권 후보 지지파로 돌아설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란 얘기다.

(범)노동계 진영에서 그동안 정치세력화를 도모해온 세력은 민주노총, 한국노총, 한국사회당, ‘노동자의 힘’ 등을 꼽을 수 있다. 물론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일관된 정치 방침으로 지켜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이 올해 한때 “민주노총 조합원이 민주노동당 후보 선출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민중참여 경선제’를 요구하면서 이것이 수용되지 않으면 민주노총 독자 후보를 낼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내비친 바 있으나, 당에 대한 위협 카드 수준일 뿐이었다. 2002년 대선 때만 해도 “노동조합운동은 대중조직이고 다양한 정치적 지향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있다. 조합원의 정치적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었으나, 이제는 정치적 야심을 지닌 인물을 빼고는 ‘민주노동당 중심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이의를 다는 민주노총 간부는 거의 없다.

한국노총의 올해 대선 정치 방침은 이른바 ‘정책연대’다. 더 정확히 말하면 ‘특정 후보와의 정책연대’인데, 일각에서는 “사실상 보수세력 혹은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와 손을 잡는 대가로 향후 총선에서 일정 지분을 보장받는 등 실리를 챙기겠다는 ‘승자편승 전략’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지난 3월, 한국노총은 사상 처음으로 대선 관련 제1차 조합원(총 조합원 87만 명) 총투표를 실시해 76.2%의 찬성으로 정책연대 방침을 확정했다. 조합원이 특정 후보를 직접 선택하는 제2차 조합원 총투표는 11월1∼10일까지 자동응답시스템(ARS) 방식으로 실시된다.

한국노총 ‘특정 후보와의 정책연대’

‘정책연대 승리’를 대선 투쟁 노선으로 내건 한국노총은 “이번 대선에서 한국노총이 주요 정치세력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경쟁 상대인 민주노총을 조직적·물질적 기반으로 삼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대도약과 달리, 한국노총은 독자 정치세력화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여건에 놓여 있다. 한국노총은 2002년 대선 때 “권영길 후보를 노동계 단일 후보로 밀자”는 안팎의 일부 주장을 물리치고 독자적인 민주사회당을 출범시키고, 2004년 총선에서는 녹색사민당을 통해 정치세력화를 시도한 바 있다. 그러나 녹색사민당이 참패하면서 실험은 무위로 끝났고, 결국 올해 대선에서는 독자적인 정치노선 대신 정책연대를 표방하고 나선 것이다.

한국노총의 정책연대는 주장을 달리하는 2개 이상의 세력 또는 집단이 특정 정책의 실현을 도모하기 위해 상호 간의 협의하에 제휴나 행동 통일을 결정하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독자적인 대선 정책과 공약을 만든 뒤 이를 정당별 대선 후보의 공약과 비교·분석해 조합원들의 뜻을 묻는 방식으로 지지 후보를 선택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노동·주택·교육·조세·복지·환경정책 등의 영역에서 한국노총의 대선정책 요구집을 만들고, 이를 후보별 대선 공약과 비교·평가한 지표를 개발해 모든 조합원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한국노총의 정책연대는 거대한 조직이 전체 조합원 투표를 통해 특정 대선 후보를 지지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정치 사상 초유의 사건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이번 정책연대는 조합원들이 직접 참여한다는 점에서 최소 50만 표 이상의 노동자 투표 블록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조합원들이 직접 특정 후보를 위한 득표 활동에 나서도록 독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책연대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 후보로부터 나중에 ‘팽’당할 우려 때문일까? 그는 또 “한국노총에서 표가 꽤 많이 나왔다는 얘기가 나와야 우리도 그쪽에 확실하게 요구할 수 있을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국노총의 이런 대선 방침이 정해질 당시 민주노동당에 가입한 한국노총 조합원들은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대의와 원칙을 저버리면 그 책임을 면할 길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동당에 가입한 한국노총 조합원은 1500명가량으로 알려진다. 한국노총이 공식적으로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를 배제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사실상 가장 유력한 정책연대 파트너로 점쳐지는 곳은 한나라당이다. 한국노총의 산별연맹 및 지역본부 전·현직 간부들은 이미 한나라당에 상당수가 참여해왔고, 조합원을 한나라당 당원으로 모집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한나라당 “정책연대에 기대 걸어”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은 이번 대선에서 노동계의 표를 잡기 위해 지난 3월 당 노동위원회를 출범시켰는데, 여기에 한국노총 간부 출신 여럿이 들어갔다. 비판이 제기되자 지금은 모두 당적을 사퇴한 상태다. 정책연대라는 외피만 썼을 뿐 한나라당을 지지하기 위한 통과 절차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나라당 노동위원회 중앙당 관계자는 “노동위원회를 한국노총과의 교감을 위한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며 “정책연대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1998년 총선 당시 ‘청년진보당’이란 이름으로 출범했던 한국사회당(대표 금민)은 ‘사회적 공화주의’를 표방하면서 금민 대표를 대선 독자 후보로 이미 선출했다. 한국사회당 최광은 대변인은 “사회적 공화주의는 노동계급과 민중권력을 넘어 국민 주권과 국민 공통성 회복이 주요 내용”이라며 “민주노동당과 한국사회당 대표가 만나 진보대연합 구상을 몇 차례 논의했으나 큰 진전은 없었고, 대선 전에 합의점이 도출될 수도 있겠지만 그러려면 많은 논의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노동자의 힘’은 변혁적 좌파 진영의 정치세력화를 내걸고 대선 국면에 적극 개입한다는 방침을 정했으나, 아직까지 이에 동의하는 세력들과 좌파 연합을 구성하지도 못했고 독자 좌파 후보를 내세우지도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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