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1인당 기부금 127만원?

등록 2007-07-20 00:00 수정 2020-05-03 04:25

전산 시스템 미비로 가짜 영수증 다반사, 외부감사 의무 대상서 제외된 건 깨끗해서일까

▣ 글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현재 광주교도소에는 지역 사찰의 주지 4명이 수감돼 있다. 가짜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해줘 21억원에 이르는 세금을 포탈한 혐의(조세범처벌법 위반)로 7월2일 구속 기소된 이들이다. 광주지방검찰청 조사에서 이들 주지는 기아자동차·금호타이어 등의 2500여 직원들로부터 돈을 받고 무려 136억원어치의 가짜 기부금 영수증을 끊어준 것으로 드러났다.

광주교도소에 수감된 주지 4명

현행 상속·증여세법은 비영리법인 중 종교·예술·교육·자선단체 등을 공익법인으로 정의하고, 개인이 이들 법인에 기부금을 낼 경우 연간 소득금액의 10%까지 소득공제 혜택을 주고 있다. 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 사회복지시설이나 사립학교 기부금에 대해서는 전액 소득 공제해준다. 정부는 종교단체 등 공익법인에 적용되는 회계기준을 두어 가짜 기부금 영수증으로 받은 공제 혜택에 대해선 10%의 가산세를 덧붙여 토해내도록 하고 있지만, 기부금 규모를 확인할 전산 시스템 미비 탓에 가짜 영수증 발급은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2005년 기준 기부금 공제 규모는 근로소득자 3조6천억원, 종합소득자 7400억원으로 개인의 기부공제액은 4조3400억원으로 집계돼 있다. 1인당 127만원(!) 수준인 셈이다. 공익법인에 한해 1인당 127만원을 기부한다는 수치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구속 기소된 광주 지역 사찰 주지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거짓일 개연성이 높다.

7월13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국제회의실에서 한국조세연구원 주최로 열린 ‘기부문화 활성화 및 공익법인의 투명성 제고 방안’ 정책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선 손원익 선임 연구위원은 “거짓으로 발급된 영수증을 통한 부당·과당 공제 사례가 많이 생겨나고 있는 것은 기부금을 받는 단체에 자료 제출이나 공개 의무를 지우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것”으로 진단했다.

손 위원은 “기부 인프라가 미흡해 금융상품을 이용한 기부 등 다양한 형태의 기부가 활성화하지 못하고 있다”며 “인프라 구축과 세제 지원 확대, 기부금 관리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투명성 제고 방안으로 손 위원은 기부금 영수증을 사실과 다르게 발급하거나 기부자별 발급 내역을 작성·보관하지 않은 경우 각각 2%, 0.2%(현행 1%, 0.1%)의 가산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기부금 수령 단체는 2009년 귀속 소득분부터 연간 50만원(현행 100만원) 이상 기부한 사람의 영수증 발급 내역을 5년간 보관하도록 했다.

이는 조세연구원과 재정경제부가 공동으로 마련한 방안으로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8월 중 최종안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학교법인’도 함께 제외

손 위원의 제안에는 이 밖에 수익의 전액 또는 일정 비율 이상을 공익 목적에 기부하는 펀드에서 발생하는 배당소득에 대해서는 비과세하고, 기부금의 소득공제 한도를 현행 10%에서 15% 또는 20%로 올리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기부금의 투명성을 높이는 대신 세제 지원은 더 부여해 기부 문화를 촉진하자는 목적이다.

토론회 전부터 관심을 끌었던 김진수 선임 연구위원의 ‘공익법인의 투명성 제고 및 활성화를 위한 정책과제’ 발제에선 일정 규모 이상의 공익법인에 대해선 외부감사를 의무화하는 방안 등을 제시하면서도 ‘종교법인’은 일단 제외한다고 밝혔다. 종교단체를 통한 가짜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받는 행태는 그리 심각하지 않다고 본 것일까? 종교계의 항의를 지레 걱정한 정부의 뜻을 반영한 것일까? 외부감사 의무화 대상에서 ‘학교법인’을 제외한다는 내용도 의구심을 더한 대목이다. 종교·학교 법인이 다른 비영리 단체보다 더 깨끗하다는 것일까, 건드리기 무서울 정도로 역시 힘이 세다는 걸 보여준 걸까? 성직자 납세나 종교단체 기부금 흐름의 투명화 모두 아직은 저 멀리 있는 과제인 듯하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