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분야로 포문 연 이명박-박근혜 정책 싸움… 두 후보의 경제 참모와 경제 정책들 비교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역시 중요한 건 ‘먹고사는 문제’라는 인식에서였을까? 아니면 ‘몸 풀기 딱 좋은 덜 뜨거운 분야’였기 때문일까? 5월29일 광주 5·18기념문화관에서 열린 한나라당의 대통령 선거 후보들의 첫 정책비전대회 주제는 ‘경제’였다.
한나라당 경제통들 박캠프로
감정적 대립각만 날카로울 뿐 정책적 대립선은 희미한 국내 정치 구조에선 당과 당 사이의 경제정책에서도 차별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일반론이다. 이런 터에 같은 당 후보들 사이의 경제정책에서 어떤 차이를 엿볼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는 시각도 있었지만, 토론회를 바라보는 세간의 관심은 제법 컸던 듯하다. ‘한반도 대운하’라는 메가톤급 경제 이슈가 도마 위에 오른데다 ‘대어급’인 박근혜·이명박 후보가 나란히 한나라당에 포진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지지율에서 압도적 선두권인 이·박 후보는 일반의 ‘관심’과 ‘사람’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6월11~13일 한나라당 대선 후보 등록을 앞두고, 두 후보 진영에는 경제정책을 중심으로 국정 포부를 다듬는 자문단이 모양새를 갖추는 소리로 부산하다.
박근혜 후보 쪽의 경제정책을 만드는 핵심 단위는 ‘경제자문회의’다. 3공화국 시절 ‘서강학파’의 대표 인물인 남덕우 전 부총리가 좌장을 맡고, 현명관 전 전경련 상근부회장(전 삼성물산 회장)·차동세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현 경희대 교수), 국회의원으로 이한구·박종근·최경환·유승민·이혜훈 의원, 학계에서 김광두(서강대)·김영세(연세대)·방석현(서울대)·안종범(성균관대)·최외출(영남대)·신세돈(숙명여대)·표학길(서울대)·김인규(한림대)·이종훈(명지대) 교수 등이 자문회의에 참여하고 있다.
자문회의의 실무 총괄을 맡고 있는 김광두 교수는 “학계 멤버들은 각각 연구팀을 두고 있고, 정책 과제가 생기면 전문성에 따라 각 연구팀에 과제를 할당해 검토하도록 하는 방식”이라며 “한나라당 국회의원 중 윤건영 의원을 빼고는 경제 전문가로 불리는 국회의원들이 대부분 박 전 대표 쪽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문회의는 매주 금요일에 회동을 갖는데 멤버가 10여 명으로 많다 보니 효율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어 4명이 따로 정책기획총괄팀(유승민·이혜훈·김광두·김영세)을 구성해 모인다. 각 연구팀들에서 내놓은 정책들이 자문회의에서 걸러지고, 총괄팀에서 주요 정책의 큰 줄기를 최종 결정한다. 그러면 박 후보에게 페이퍼가 전달되고, 총괄팀은 박 후보와 수시로 전화하며 내용을 협의한다.
박 후보를 돕는 경제 전문가들은 이회창 전 대선 후보 시절부터 한나라당 쪽에 관여했던 인물과, 오래전부터 개인적으로 박 전 대표와 인연을 맺었던 이들로 나뉜다. 남 전 부총리·김광두 교수는 서강대 학맥을 통해 박 후보(서강대 출신)와 오래전부터 교류해왔다. 안종범 교수는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의 민생복지특보를 지냈고 차동세 교수도 당시 이 후보 쪽에 경제정책을 조언한 경험을 갖고 있다. 이혜훈 의원은 “김광두 교수는 정치적으로 감각이 있는 사람이고 김영세 교수(이혜훈 의원의 남편)는 지난가을부터 매일 경제 이슈에 대한 페이퍼를 정리, 압축해 박 후보 집으로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MB의 대운하가 참모진의 ‘7·4·7’ 압도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경제정책을 자문하는 핵심 인사들로는 강만수 전 재정경제원 차관, 백용호 이화여대 교수, 유우익 서울대 교수 등이 있다. 이 후보 쪽에서는 유우익, 백용호 교수가 각각 원장을 맡고 있는 국제정책연구원(GSI), 바른정책연구원(BPI)이 정책 자문을 뒷받침하는 양대 조직으로 꼽힌다. GSI가 현안 이슈에 대응하고, BPI는 광범위한 분야별 전문가들을 포괄해 정책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을 총괄적으로 조정하는 ‘그물코’ 구실이 강만수 전 차관에게 맡겨져 있다고 한다. 이 밖에 GSI 정책실장을 맡고 있는 곽승준 고려대 교수, BPI 정책실장인 강명헌 단국대 교수도 이 후보 쪽의 경제정책 자문역으로 꼽힌다.
이 후보 진영에서 조정자 노릇을 하고 있는 강 전 차관은 ‘종교’를 매개로 이 후보와 처음 대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와 강 전 차관은 모두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소망교회 장로다. 강 전 차관은 인연의 뿌리에 대해 말을 아꼈고, 이 후보의 한 측근은 “수십 년 전부터”라고 말했다. 관료 시절 ‘세제통’으로 꼽힌 강 전 차관은 17대 총선을 앞둔 2004년 초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으로 일했으며, 이 전 시장의 서울시장 후반기 때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을 맡은 바 있다. 이 전 시장의 3대 정책 슬로건 중 하나인 ‘대한민국 7·4·7 전략’(연평균 경제성장률 7%를 달성해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열고 세계 7대 강국에 진입하겠다는 구상)을 세운 주역으로 알려져 있다.
백용호 교수는 한나라당이란 ‘정치’ 공간을 통해 이 전 시장과 만났다. 백 교수는 1996년 15대 총선 때 서울 서대문에 출마했을 당시 이 전 시장과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1997년 대선 패배 뒤 꾸려진 한나라당 미래경쟁력분과에서 이 전 시장은 분과위원장으로, 백 교수는 2명의 민간 위원 중 1명으로 일했다. 나머지 1명의 민간 위원이 강만수 전 차관이었다고 백 교수는 전했다. 백 교수는 이 전 시장이 설립한 동아시아연구원 원장을 맡은 바 있고, 이 전 시장이 서울시장에 취임한 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곽승준 교수와 이 전 시장을 묶는 고리는 고려대라는 ‘학벌’이다. 곽 교수는 “2001년부터 편집인을 맡고 있는데, 언젠가 고대 교우회 자리에서 만나 많은 얘기를 하면서 인연을 맺었다”고 말했다.
후보와 경제정책 자문그룹의 관계맺음 양상을 보면, 두 후보 진영 사이에는 재미있는 차이가 나타난다. 박 후보 쪽에선 상대적으로 자문그룹 쪽의 생각이 후보에 반영돼 정책화한다면, 이 후보 쪽은 후보가 자문그룹을 선도하는 모습으로 비쳐진다.
‘이명박 브랜드’로 여겨지는 ‘한반도 대운하’가 다른 정책 공약들을 압도하는 현실에서 비롯된 단순한 이미지 탓일지 모르지만, 이 후보 쪽의 참모진은 주로 후보의 애초 생각을 다듬는 역할로 평가된다. 이 후보 쪽 곽승준 교수의 발언에서 이런 분위기를 느낄 수있다. 곽 교수는 “경제정책에 대해선 (후보) 본인의 생각이 분명하고 확고하며, 너무 잘 알아서 자문할 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이 전 시장이 1996년 국회에서 발언했던 것”이라며 이 역시 이 후보 주도의 작품임을 강조한다. 경제 쪽에 특화돼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 가운데 이 후보 쪽에 가담한 사례가 드물다는 점도 이 후보 쪽 경제 분야 참모진의 특징으로 꼽힌다. 참모진의 작품이라고 알려진 이른바 ‘7·4·7 전략’은 ‘경부 대운하’만큼 강한 인상을 주지 못한다.
박근혜 후보 쪽의 중심적인 경제정책 슬로건은 ‘줄·푸·세’(정부와 세금 규모 줄이기, 규제 풀기, 법 질서 세우기) 운동이다. 이와 함께 △‘5+2%’ 경제성장론(지도자의 리더십이 2% 경제성장을 가져온다) △사람경제론(성장 동력을 사람에서 찾아야 한다)을 합쳐 이른바 ‘근혜노믹스’(박근혜+이코노믹스)라고 압축해 부른다. 이렇게 박 후보의 이름을 정책 브랜화했어도 정책의 내용은, 박 후보 고유의 작품으로 여겨지기보다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한국 보수세력의 전통적인 주장으로 읽힌다. 경제 전문 의원들을 박 후보 쪽에서 더 많이 끌어들이고 있는 현실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높은 경제성장이 빈곤 대책” 한목소리
박 후보의 경제자문단은 박 후보의 경제정책이 영국의 대처리즘과 유사하다고 설명한다. 법 질서를 세우고, 규제를 완화하고, 대대적인 민영화를 통해 경제성장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안종범 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5년간 추진해온 정책들이 복지국가 드라이브(강력 추진)였고, 그래서 한국 경제가 마치 대처가 집권하기 직전 영국 경제가 처하고 있던 상황과 유사해지고 있다”며 “한국에도 대처 같은 사람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박 후보 쪽은 이 후보 쪽을 ‘소프트웨어 없는 하드웨어’ 또는 ‘머리 없는 손발’쯤으로 여긴다. 김광두 교수는 “이명박 후보 쪽의 경제정책은 대운하 건설, 과학도시 건설 등 1970년대 하드웨어 중심 방식을 따르고 있다”며 “이는 일시적으로 실업자 수를 줄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제 한국 경제는 ‘손발’로는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힘들고, ‘머리’를 써서 먹고사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과 인적자본 투자를 통해 지식기반 경제에 맞는 고용을 창출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른바 ‘사람경제론’이다. 유승민 의원은 “MB(이명박)가 ‘운하’면, 우리는 ‘사람’이다”고 했다. “21세기에 맞는 경제정책을 하고, 21세기에 맞는 신성장 동력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능력 있는 미래형 정부를 만들겠다. 21세기 신성장 동력은 한마디로 사람이다.”
이명박 후보 쪽이 내세우는 경제 분야의 무기는 ‘경험’과 ‘구체성’이다. 이 후보 쪽의 곽승준 교수는 “감세하고 규제를 푸는 철학에서는 두 후보가 비슷한 것 같아도 (박 후보 쪽은) 구체화된 실천 계획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감세를 할 경우 영세민을 위해 쓸 돈이 줄어드는데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백용호 교수도 “이 전 시장의 경우 (서울시장으로서) 실제로 예산을 집행해본 경험을 갖고 있다”며 박 후보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킨다. 백 교수는 “청계천 생태계 복원, 서울시내 대중교통 체계 개편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을 효과적으로 관리한 경험을 쌓았고, 비전과 추진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한국 보수 세력의 경제 이데올로기는 대체로 두 축으로 이뤄져 있다. 거시적인 기조에선 분배보다 ‘성장’을, 자본과 노동의 대립 구도에선 ‘자본’을 중심에 놓는다. 박·이 후보 모두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두 후보는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로 여겨지는 5%보다 훨씬 높은 7%의 경제성장률을 내걸고 있는 데서 성장 이데올로기를 엿볼 수 있다. 박 후보 쪽의 안종범 교수는 “경제가 침체될수록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쪽은 하위 소득계층”이라며 “따라서 경제성장률을 올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빈곤 대책이다”라고 말한다. 분배를 잘하면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는 현실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 후보 쪽도 그 점에선 마찬가지다.
성장 위주는 곧 자본 중시의 논리로 이어진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침체 원인은 민간 소비의 부진보다는 기업가의 투자 정체이기 때문에 이를 위한 해법으로는 당연히 기업의 법인세를 줄여주고, 출자총액제한제나 금융·산업 자본 분리 원칙 같은 기업 규제 장치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개발독재’와 ‘시장만능주의’
흥미로운 대목은 한나라당 경제모델의 뿌리로 여겨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개발국가’ 모델을 중심에 놓고 양쪽을 비교해보면, 이 후보 쪽이 박 전 대통령을 더 많이 닮았고, 박 후보는 오히려 아버지의 정책에서 멀어지는 길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 후보는 ‘성장’을 위한 국가의 역할을 상대적으로 더 강조한다. 경부 대운하 프로젝트가 박정희 시절의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연상시키는 터에 ‘경제 대통령’을 표방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보다 더 박정희적인 개발독재”(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라는 비판을 낳는 빌미다.
박근혜 후보는 ‘정치적 리더십을 통한 경제성장’을 꾀한다는 목표 아래 ‘작은 정부, 큰 시장’을 모토로 내걸고 있다. ‘개발 국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박 후보 쪽의 ‘한-중 열차 페리 구상’은 이명박 후보의 경부 대운하만큼 정책의 중심을 이루지는 못한다. 박 후보 쪽의 김광두 교수는 “그동안 규제 건수는 계속 줄었지만 규제의 큰 줄기는 오히려 노무현 정부 들어 강화됐다”며 “정부의 역할을 줄이고 민간 시장 영역을 늘리는 쪽으로 경제 질서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경제의 자유’를 강조하는 박 후보 쪽은 특히 경제의 자원이 취약 계층보다는 기업가의 입장을 먼저 고려해 배분돼야 한다는 태도다. 박 후보 쪽에 대해선 ‘개발독재’라는 말보다는 ‘시장만능주의’(신자유주의)라는 비판이 더 자주 들리는 배경이다. 다음번 대통령 자리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두 사람의 경제 보따리에서 ‘분배’와 ‘노동’은 아직(!) 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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