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평양의 이모저모…공식 경제와 비공식 경제의 차이가 크고 빈부 격차도 눈에 띄어
남쪽 사람들에게 평양은 지구상에서 가장 ‘먼 곳’이자 가기 힘든 곳이다. 지난해 평양을 다녀온 남쪽 사람은 4380명이다. 통일부는 1950년대 이후 지금까지 평양 방문객이 1만5천 명을 넘지 않을 거라고 밝혔다. 이 중 상당수는 중복 방문객이다.
언론을 통해 간간이 남쪽에 소개되는 북쪽, 특히 평양의 모습은 아주 제한적이고 단편적이다. 은 지난호에서 평양의 모습을 경제적 변화를 중심으로 조명해봤다. 이번에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곁들여 평양시와 시민들의 생활을 좀더 폭넓고 구체적으로 접근해봤다. 윤여두 동양물산기업 부회장, 이용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 대우자동차판매의 이병하 부장과 김윤겸 차장,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북한교통정보센터장, 김성옥 한국신발피혁연구소 본부장, 염태순 신성통상 회장 등과 이름을 밝히기 꺼린 두 명의 새터민(탈북자), 그리고 해외의 한 연구소의 분석과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
2007년 5월 평양은 어떤 모습일까? 의 기사가 이런 궁금증에 부족하나마 답이 됐으면 한다. 편집자
▣ 평양=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5월12일 중국 베이징공항 16번 게이트 앞. 오전 11시55분에 출발하는 비행기의 탑승객들이 지루하게 기다렸다. 11시10분쯤 되자 인천공항행 비행기 탑승을 재촉하는 한국어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13번 게이트는 11시35분에 출발하는 아시아나 항공기를 타려는 남쪽 승객들로 붐볐다. 이윽고 16번 게이트에서도 탑승이 시작됐다. 평양행 고려항공기 입구엔 한복을 입은 여승무원이 반갑게 맞았다.
시장 환전소 환율이 공식 환율의 20배![](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90/436/imgdb/original/2007/0531/02110600012007053159_1.jpg)
비행기 안은 좁았다. “무거운 짐은 되도록 화물로 부치라”는 고려항공사의 안내문이 괜한 게 아니었다. 땅을 차고 오른 비행기는 10분 남짓 아래로 떨어질 듯 몇 번이나 출렁거렸다. 여기저기 비명도 들렸다. 비행기가 40~50분을 날자 여승무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중 국경선인 압록강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82년 전 김일성 주석께서 조국 해방을 위해….” 영어로도 되풀이했다. 11시45분 비행기는 “주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에 도착했다.
평양 순안공항 청사에 걸린 김일성 주석의 거대한 초상화는 이곳이 어디인지 말해준다. 입국(경) 수속을 밟으면서 휴대전화는 모두 북쪽에 넘겨졌다. 출국(경)할 때 되찾을 수 있었다. 북쪽이 버스에 탄 남쪽 일행을 제일 먼저 안내한 곳은 만수대 언덕 김일성 주석의 동상 앞이었다. 갓 결혼식을 마친 신랑·신부 두 쌍이 보였다. 결혼식을 끝내자마자 방문하는 곳이란다. 기업소들에서 온 집단 참배객들도 줄을 이었다.
평양 시가지에선 더 이상 “미제 타도”와 같은 구호를 찾아볼 수 없다. 가장 많이 눈에 띈 구호는 공공기관 건물 앞에 붙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신다’였다. ‘김일성 95돐’로 시작되는 구호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양각도호텔에 도착했지만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어디를 가나 그곳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평양 시민들을 자유롭게 만나 얘기할 수도, 그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분단의 철책을 넘어 평양에 들어가더라도 그 안에 또 다른 ‘분단’이 존재한다. 이유야 다를 수 있지만 북쪽 인사들이 남쪽을 방문했을 때도 큰 차이는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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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멀리 파란 지붕의 중구시장이 내려다보인다. 은 평양의 가장 큰 시장 가운데 한 곳을 방문해 물가를 조사·분석한 자료(표1 참조)를 하나 입수했다. 지난 3월 외국의 한 연구소가 조사했다. 주민들은 흥정을 통해 가격을 조금 조정할 수 있다. 북한 돈으로 1만3천원이나 하는 수박은 노동자들의 평균 급여(3천원 안팎)로 볼 때, 턱없이 비쌌다. 시장의 2층 환전소에서 미화 1달러는 2900원으로 환전됐다. 공식 환율은 1달러에 약 140원이다. 20배의 차이가 난다. 공식 경제와 비공식 경제의 차이가 그만큼 크다. 호텔 매점에 딸린 환전소에서 1유로가 183원이라고 했지만, 평양 태성골프장 매점에선 139원짜리 과자를 1유로에 팔고 있었다. 장소마다 환율이 조금씩 달랐다. 평양 시민 중 대략 2%가 달러를 만지는 대외기관 근무자들이라고 한다. 이들과 관련된 사람들이 20%쯤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특권층이다. 지구상 어느 곳을 가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평양도 빈부 격차를 지닌 도시다.
빵 15개, 노동자 한 달치 임금
시장에서 원산지를 확인할 수 있는 상품 가운데 수박·배·마늘·콩기름 등이 중국산이었다. 마늘은 남한과 마찬가지로 북한산이 중국산보다 두 배 가까이 비쌌다. 화학조미료는 모두 수입품이었다. 대만뿐만 아니라 멀리 인도네시아와 타이에서도 수입돼, kg이나 파운드 단위로 1500~2400원에 팔렸다. 시장은 붐비지만 큰 도로 옆 남새(채소)·식료품 상점은 손님이 뜸하다.
평양은 다른 지역과 달리 배급 사정이 좋은 편이지만 쌀 배급과 간장·된장·소금·기름 등 기초 식료품 공급은 한 달을 기준으로 20일 미만이다. 국가가 직접 해결해주지 못하는 부분은 소속 기업소와 개인이 해결해야 할 몫이다. 5월13일 이 평양 중심가인 고려호텔 맞은편 매대(포장마차)에서 파는 물품 가격(표2 참조)을 확인했더니, 가볍게 한 끼니를 때우거나 간식으로 할 수 있는 ‘남새빵’이 200원이나 했다. 빵 15개가 노동자 한 달치 임금인 셈이다. 매대에서 30m 떨어진 식당에서 파는 강냉이국수는 120원이었다. 과거 사회주의권에서 흔히 관찰할 수 있듯이 평양의 물가는 매우 높다.
대동강엔 모래를 퍼올리는 바지선이 듬성듬성 떠 있다. 모래는 건설재다. 회색빛 도시로 악명 높은 평양은 밝아지고 있다. 천연색을 입은 건물이 늘고 있다. 김책공대 옆 아파트는 옥상에 빨간 깃대를 꽂고 공사가 한창이다. 평양대수리공사는 2~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영광거리의 모습을 바꾸는 공사를 진행 중이다. 비용 탓에 재건축을 못하고 외벽재와 페인트칠을 다시 하는 리모델링을 택했다. 관리 소홀로 화재가 난 대동강호텔도 2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새 단장 공사를 하고 있다. 재일 총련 관계자들이 많이 들르는 곳이다. 김일성·김정일·김정숙이 다녀간 ‘사적지’로서 의미도 크다.
하지만 만경대로 가는 광복거리와 평양의대 맞은편에서 각각 하나씩 건물이 올라가는 것을 빼곤 건축 중인 건물을 찾아볼 수 없다. 평양의대 안 어린이심장병원센터는 남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형 철제 빔으로 지어지고 있었다. 남쪽에서 지어준다고 한다. 바로 길 건너편엔 북쪽의 인부 수십 명이 달라붙어 기계장비 없이 손으로 건물을 올리고 있었다. 북쪽의 자원을 엄청나게 동원한 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앞두고 광복거리에 아파트 단지를 짓고, 고난의 행군에 앞서 통일거리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 이후에 아파트 단지 건설 공사는 끊겼다.
5월14일 하늘이 흐렸다. 주민의 반은 외출복에 ‘사철장화’(고무장화)를 신었다. 평양 류원신발 공장 등에서도 생산하지만 중국산 장화도 많다. 비포장도로가 많은 탓에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장화가 최고란다. 동원이 잦은 것도 한 원인이다. 단순한 공정으로 남쪽 기준 생산 원가는 3~4달러 정도다. 맑은 날 남자는 2천~3천원 하는 운동화, 여자는 편리화를 가장 많이 신고 다닌다. 천으로 만든 ‘포화’다. 남쪽에서는 이제 거의 생산하지 않는 신발이다. 남쪽 인사들에게 보여준 류원 신발공장에서 생산되는 하얀 운동화는 1주일 동안 평양에 머물면서 한 켤레도 볼 수 없었다. 신발공장은 꾸준히 가동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남쪽에서 원자재가 지원되겠지만 낡고 부족한 기계가공 설비도 문제다. 어느 공장이든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칭송하는 구호들이 벽의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자전거가 중요한 교통수단
날씨가 흐린 탓인지 호텔 방 밖에서 본 동평양화력발전소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가 낮게 깔려 평양시를 덮는다. 무연탄이 발전소 땔감이다. ‘환경’이란 단어에 제법 익숙해진 남쪽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는 장면 중 하나다. 원래 시외에 발전소가 있었지만 시가지가 팽창하면서 시내로 들어왔다. 공장 이전은 힘들다. 열난방식 발전소로 전기와 함께 온수도 생산해 공공기관과 아파트 등에 따뜻한 물을 보낸다. 공장을 옮기면 평양의 온수가 문제다.
평양에 도착한 지 네댓새가 된 5월15~16일, 평양의 거리도 익숙해진다. 이동할 때 버스 안에서 지나치는 시민들의 표정을 훑어본다. 무표정한 얼굴들이 많다. 대부분은 어두운 카키색 인민복을 입었다. 3천~4천원 하는 원단을 외화 상점이나 시장에서 사다가 양복점에서 맞춰 입는다. 기성복은 생산량이 적다.
버스와 전차는 늘 만원이다. 교통 신호등은 있어도 불이 켜 있지 않다. 남쪽에서 평양 하면 떠올리는 것 중 하나인 여성 교통안내원의 수신호가 대신한다. 신호등이 필요할 만큼 교통량이 많지 않다. 북한엔 승용차와 승합차를 더해 약 32만 대가 있다고 한다. 일본차가 10만 대로 제일 많고, 최근엔 중국산이 빠르게 늘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대북 중고차 수출을 중단했다. 새 차는 보기 어렵다. 남쪽 인사들을 태운 버스는 닛산 93년식이다. 8만km를 달렸지만 브레이크 라이닝을 한 번도 갈지 않았다. 도로에 서 있는 승용차도 종종 볼 수 있다. 최근 평화자동차가 1년 내, 주행거리 1만km 안에서 보증을 해주기 시작했다. 평화자동차부품공장은 평양에 딱 한 곳이 있다. 자동차는 소수의 얘기다.
웬만한 거리는 걷는다. 자전거가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운전대 사이에 번호판이 달렸다. 평양 시내에선 볼 수 없지만 외곽으로 나가면 중간중간에 남쪽처럼 불심검문을 하는 군인들을 볼 수 있다.
5월17일 청년영웅도로를 타고 남포로 갔다. 왕복 10차선 도로였지만 차는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다. 손님을 태운 시외버스 두 대가 지나쳤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완성된 도로다. 평양∼남포 간 옛 고속도로를 빼면 북쪽엔 모두 6개의 고속도로가 있다. 고속도로는 관광지와 혁명유적지를 잇고, 주요 군의 보급 수송로 구실을 한다. 남쪽과 마찬가지로 전시 비행활주로로도 쓰이는 다목적용이다.
갈비뼈가 나온 돼지들을 보다
농촌에서는 모내기가 막 시작됐다. ‘천리마28호’ 트랙터가 간혹 보였지만 이양기는 한 대도 찾을 수 없다. 손으로 모내기를 하고 있다. 1958년부터 개발된 트랙터도 그 수는 남쪽과 비슷한 20만~30만 대에 이른다. 하지만 실제 움직일 수 있는 건 10~20%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품이 없다. 간혹 소가 끄는 쟁기도 보였다. 가축은 흰염소가 대부분이다. 돼지는 사료가 없어서 키우기 어렵다. 지난해 8월 평양에 있는 돼지공장(농장)에 다녀온 남쪽 인사는 돼지 5만 마리가 수용 가능한 축사에 1천~2천 마리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곳에서 갈비뼈가 나온 돼지들을 봤다.
다음날 평양을 이륙한 아시아나 전세기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북녘 땅은 1시간 뒤 내려다본 김포와는 닮은 구석을 찾기 힘들 정도로 차이가 났다. 시간이 지나면서도 남북의 다름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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