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차 교육과정 경제 과목에서 찾기 힘든 ‘노동 문제’, 교과서의 편향성이여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현행 7차 교육과정에서 경제 과목의 노동 관련 대목을 보면, ‘경제성장 요인과 안정화 정책을 설명할 때 △기업경영 혁신 △가계저축 증대 △정부 규제 완화와 정책 일관성 그리고 △노사협력 등을 논의 자료로 사용한다’고 돼 있다. ‘학교 노동교육’에서 가르칠 노동 문제는 일과 직업에 대한 가치관, 직업세계와 직업선택, 노동인권, 실업, 노동조합 등 다양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도 현행 경제 교과서는 노동 문제를 오직 ‘노사관계’ 한 가지로 협소하게 다루고 있다. 게다가 노사관계를 보는 관점도 지극히 편향돼 있다. 노동인권이나 노사 간 힘의 불균형 해소라는 관점은 완전히 빠져 있고, 오직 국가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만 노사관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강성 노조 때문에 기업이 해외로?
(주)교학사, 대한교과서(주), (주)두산, (주)천재교육에서 펴낸 4종의 고교 경제 교과서를 보자. 노동 관련 서술 대목을 살펴보면 할애된 분량이 형편없이 적다(표 참조). 학교 노동교육의 철저한 부재라고 할 수 있다. ‘노동교육의 우파적 편향’을 걱정하기 이전에 노동교육 자체가 아예 없다시피 한 셈이다. 국민공통교육과정(1∼10학년(고교 1학년)) 중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는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이 있다. 헌법에서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다”는 내용, 그리고 ‘근로자와 기업가의 역할’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이 전부이다. 노사갈등도 ‘사회 문제의 이해와 합리적 해결’ 소절에 10줄 정도 짧게 설명되고 있을 뿐이다. 노사갈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편적이고 중요한 사회적 갈등인데도 갈등 해결을 다루는 대목에 제시되는 사례들을 보면, 노사갈등은 아예 빠져 있거나 부정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한국노동교육원 송태수 교수는 “우리 학교에서 노동교육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노동이 빠진 국민경제와 사회 공동체, 그리고 노동 없는 미래 사회만 그려지고 있을 뿐이다”고 지적했다.
내용을 보면, 실업 문제는 대부분의 고교 경제 교과서가 다루고 있다. 그러나 ‘실업’ 내용을 제외한다면 ‘경제 안정과 성장을 위해 노사관계 안정과 노사협력을 요구하는’ 내용이 노동 관련 서술 대목의 거의 전부다. 교학사 교과서의 경우 ‘노동’은 ‘Ⅴ-2-(2).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한국 경제의 과제’ 중에서 ‘② 성숙한 노사관계 정립’을 다루는 단원에 등장한다. 내용은 △임금 상승률과 생산성 증가율 추이를 보여주고 △과격한 노동운동, 고임금, 강성 노조 때문에 일부 기업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고 △기업이 문을 닫거나 외국인 직접투자를 가로막는 요인은 잦은 노사분규와 과격한 노동운동 때문이고 △개방화 시대에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조는 무리한 요구를 자제해야 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특히 두산 교과서를 빼면 노동시장의 ‘고용 구조’에 대한 내용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이 50%를 넘고 상당수의 ‘예비 노동자’들이 생애 처음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 비정규직이 될 공산이 큰데도 학교에서 비정규 노동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시장주의’ 강화된 7·8차 교육과정
학교 노동교육은 앞으로 직업세계에 진출할 학생들을 대상으로 노사관계·노동인권 등 노동자로서의 기회와 권리에 대한 의식뿐 아니라 노동문화, 직업선택, 근로계약 체결, 근로의 이행 및 종료까지 포함한 노동세계의 전 과정을 교육하는 것이다. 학교 노동교육은 사실상 사회과 교육과정 수립에 참여하는 사회·경제학자 네댓 명이 결정한다. 이들이 사회·경제 교과서에 ‘노동’을 얼마나, 어떤 내용으로 넣을지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노동교육은 교과서 편찬에 참여하는 학자들의 우편향, 노동부의 무관심, 교육당국의 보수성, 정치사회적 분위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근거 없이’ 불온시돼왔다. 물론 노동 문제를 아예 소홀히 취급한 측면도 있고, 노동을 이념적 차원에서 덮어놓고 기피한 측면도 있다. 특히 6차 이후 7·8차 교육과정으로 넘어오면서 ‘시장주의 교육’이 더욱 강화돼 노동교육 내용이 더욱 축소·우편향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한국 노동자의 경우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 때문이 아니라, 노동조합을 불온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 위축되고 막연한 두려움이 내면화돼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 성향도 강하다. 물론 학교 노동교육의 부재 탓이다.
전국사회교사모임 신성호 교사(중앙고)는 “1980, 90년대에 교육·노동 단체에서도 학교 노동교육을 정부에 적극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다”면서 “2003년부터 한국노동교육원이 학교 노동교육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민주노동당에서도 노동인권교육을 확대하고 있는 중이다”고 말했다. 한국노동교육원은 2003년 말에 프랑스·영국·독일 등 5개국 학교 노동교육의 실태를 분석한 바 있다. 노동교육원 송태수 교수는 “노사관계 갈등을 해결할 때 기업과 노동조합 쪽 실무자 대상 교육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사회적 환경과 의식도 중요하다”며 “노사관계 균형은 일반 국민이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고 노사관계를 이해해야 성공할 수 있으며, 그 토대가 바로 노동교육”이라고 말했다.
“노동교육 배제는 큰 사회적 손실”
교육과정은 그렇다 치고, “전교조 소속 교사를 중심으로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직접 노동교육을 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도 나온다. 교사들이 교육과정을 재구성해 수업하면 노동을 학생들한테 충분히 가르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신성호 교사는 “ 사회과 수업 시수는 제한돼 있고, 짧은 시간에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모두 가르치기에도 벅차다”며 “교과서에 나와 있지 않은 노동교육을 하면 당장 학생들부터 싫어하고, 학교장과 교육부의 제지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 노동절 등 계기가 있을 때 교사들이 노동교육을 하더라도 금방 교육부의 금지 지시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근거 없는 우려’와 달리 중·고교 학교 노동교육은 ‘이념’을 넘어선다. 노동조합과 노사관계뿐 아니라 일의 의미, 직업선택과 태도, 직업세계에서 보장되는 권리와 의무 등 포괄적인 내용을 다루기 때문이다. 특히 노동조합과 노사관계를 학교에서 일찍 가르치면 사회적 노사갈등 비용도 줄어들게 된다. 송태수 교수는 “노동교육은 시장경제 체제에서 갈등 해결과 민주주의 능력 함양에 가장 적합하고 필수적인 교육 영역”이라며 “어떤 역사적·정치문화적 배경에서든 학교 노동교육이 배제돼온 건 커다란 사회적 손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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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교육과정 지침서는 노동자 권리와 관련해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기업 내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는 인간 존엄성의 문제이다. 노동자로서 인간은 (컨베이어 벨트) 체인의 하나 또는 도구가 아니며 권리의 주체로 다뤄져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복종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고, 노동법은 노동관계 속에 존재하는 이런 불평등에 근거를 두어 제정됐다. 다음과 같은 사례 연구를 선택할 수 있다. △기업체의 단체협약을 비교 연구한다 △기업 내에서 노동자들의 집단적 의사표현 사례를 분석한다 △노동자의 권리가 어떻게 보호되는지를 알려주기 위해 판례를 공부한다.”
프랑스의 은 중학교 1∼4학년까지 주 3∼4시간의 필수교과로, 노동자의 권리와 자유, 고용 평등, 주 35시간 노동제 등을 다룬다. 이어 고교 교과는 빈곤, 일할 권리와 시민권, 근로계약서, 임금, 아동노동, 여성노동, 산업안전, 근로조건, 불법노동,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대표, 노동자들의 행위와 집단적 조직, 파업 등을 3년간 체계적으로 교육한다.
영국에서는 10여 년간의 논란 끝에 2002년부터 이 학교 정규교육 과정에 도입됐다. 이에 따라 10∼11학년에서 노동교육을 실시하고 있는데, 노동세계의 권리와 책임을 주로 학습한다. 구체적인 수업 주제로는 사용자와 노동자의 권리·책임, 청소년 노동인권, 아르바이트 노동 때 점검해야 할 목록, 노동자 상담 및 지원센터에 대한 정보, 노동조합, 산업안전, 노사분쟁 등이 다뤄진다. ‘노동사회’로 불리는 독일은 중등 사회 교과서에서 ‘노동’을 매우 중요한 주제로 다루고 있다. 특히 독일의 노동교육은 모든 교과서들이 토론식·유도식·체험식 방법을 채택하고 있고, 서술식 구성을 피하고 있다. 또 자료 취합의 구성을 채택해 단락마다 주제에 적절한 자료들(법규, 성명서, 신문기사, 그래픽, 통계 등)을 엮어 제시하고 있다. 한국노동교육원 송태수 교수는 “독일 교과서들은 내용 면에서도 대비되는 입장을 공정하게 보여주고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다”며 “노동세계와 노사관계에서 민주주의적 갈등 해결 원칙을 교육해 독일 사회의 민주주의와 사회통합 구현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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