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기소 경력, 최근 출판기념회 때문에 또 구설수…다른 후보 진영도 몸조심하기 바빠
▣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선거법과 질긴 악연이 있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두 번이나 기소돼 법정에 섰다. 이 전 시장은 1996년 ‘4·11 총선’ 당시 선거 비용 초과 지출 등의 혐의로 유죄가 확정됐고, 재판 진행 중에 의원직에서 물러났다. 2002년 서울시장에 출마해서는 자신이 쓴 라는 제목의 책을 무료로 배포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으나, 직접적으로 관련됐다는 혐의가 인정되지 않아 무죄를 받았다.
이명박쪽 “캠프와 아무 관계 없다”
이 전 시장에게 선거법 위반 경력은 지워진 과거형이 아니다. 2002년 기소될 당시 검찰은 공소장에 “96년 15대 총선에서 당선됐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은 전과가 있어 기소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붙였다. 과거가 당시 그의 현재를 ‘구속’한 것이다.
96년 사건은 꼬리표처럼 붙어다닌다. 최근엔 그의 전 비서관인 김유찬씨가 그의 과거를 다시 끄집어냈다. 김씨는 이 전 시장 쪽이 거짓 증언을 하도록 시켰고(위증 교사), 자신을 해외로 도피시켰다(범인 도피)고 폭로했다. 위증 교사 부분은 당사자 간 다툼이 있으며 여전히 논란 중이다. 김유찬씨는 추가로 당시 이 전 시장 쪽이 “기자들한테 성접대를 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전 시장은 최근 다시 한 번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3월30일 열린우리당 선병렬 당무부총장(의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3월13일 고양시 킨텍스(KINTEX)에서 열린 이명박 전 시장의 출판기념회와 관련해 대전에서 동원된 버스에서 기부 행위와 사전 선거운동이 있었다고 하는 녹취록이 확보됐다고 해서, 중앙선관위가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회의가 끝나자 서영교 열린우리당 부대변인은 논평을 내, 이 전 시장의 과거를 다시 한 번 긁었다. “선거법 위반 범죄, 국회의원직 박탈, 증인 도피, 위증 교사, 살해 협박, 거기에 당선을 위해 성접대까지 서슴지 않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는데, 이젠 출판기념회 사전 선거운동에 기부행위도 제기되고 있다.” 논평은 확실한 물증을 바탕으로 나온 건 아니다. 일단 의혹의 불씨를 살려두고, 40%가 넘는 지지율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 이 전 시장의 이미지를 타격을 주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열린우리당은 당 사무부총장을 단장으로 하는 가칭 ‘불법 선거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중앙선관위는 이 전 시장의 출판기념회를 조사하고 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출판기념회 식장에선 불법 사례가 없었다. 하지만 지방에서 버스가 60~70대 왔는데, 그것에 대한 불법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그는 “우리가 알기로는 캠프가 관여하지 않았다. 지역별로 경쟁적으로 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거 아닌가 싶다. (조사가) 더 이상 윗선으로 가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로 봤을 때, 조사 결과가 어떻든지 이 전 시장이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시장의 ‘대리인’인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출판기념회의 모든 걸 선관위와 상의하면서 했다. 선관위에서 100명 이상의 현장 지도 인력이 와서 감독했다. 다만, 대전에서 올라온 일부 인사들한테서 지구당 위원장(당원협의회장)이 돈을 다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부 불법 사례를 시인한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캠프와는 상관없다. 우리가 신신당부했는데…. 우리로선 방법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선관위의 조사를 좀더 지켜봐야 한다.
5년전보다 훨씬 조심하는 분위기
사실 이 전 시장으로선 출판기념회를 통해 손해를 본 게 더 크다. 3월14일 김형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불법 사전 선거운동 의혹을 제기하진 않았다. 대신 그는 출판기념회에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운집한 것과 관련해 “어제 출판기념회를 평하자면 세몰이, 줄 세우기, 구시대 인물 내세우기로 압축할 수 있는데, 이는 이제 정치권 무대에서 퇴출돼야 할 3가지를 다시 확인시켜준 것”이라고 꼬집었다. 불법 의혹 제기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이 전 시장의 아픈 부분을 건드렸다. 유기준 한나라당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대선 주자 흠집 내는 정치 공세를 즉각 중단하라”고 했지만 옹색했다.
다른 어떤 대선 예비 주자들보다 이 전 시장은 선거법을 크게 의식하고 있다. 과거 경력 때문이기도 하고 ‘부자 몸조심’ 때문이기도 하다. 정두언 의원은 “유달리 많이 의식하게 된다. 선거법 위반 전력도 있고, 또 선거법 위반 첫 후보가 되면 안 좋을 거 같아 각별히 신경쓰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출판기념회는 이 전 시장 또는 그의 대선 캠프와의 직접적 관련성 여부를 떠나, 대선 주자와 관련된 첫 선거법 위반 사례로 기록될 가능성이 있다.
선거법은 모두에게 동일한 조건이다. 역대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뽑는 데 선거법 위반이 문제가 돼서 당선이 취소된 적은 없다. 하지만 모든 예비 후보들이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불법 (사전) 선거운동을 했다는 이미지가 대선 경주에 도움이 될 리 없는 탓이다. 물론 결정적인 흠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항상 존재한다.
중앙선관위 공명선거지원단의 김대년 지원운영과장은 요즘 하루 15건 정도의 선거법 관련 문의를 받는다. 예비 후보들이 차린 캠프, 팬클럽, 정당, 시민단체 등에서 수시로 궁금한 것들을 물어온다. 지난해 10월15일 여의도에 꾸려진 공명선거지원단은 1월1일 6명에서 10명으로 인원 수도 늘렸다. 이곳에서 하루에 처리하는 선거법 문의 건수는 70여 건에 달한다. 김대년 과장은 “5년 전과 비교하면 선거법을 지키려는 분위기가 강하다. 입후보 예정자들이 일일이 물어보고 선관위에서 문제가 있다고 하면 안 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다른 캠프도 마찬가지이지만 이 전 시장 캠프는 선관위의 지도에 따라 실제로 강연 등을 몇 차례 취소하기도 했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3월25일 ‘평화경제포럼’ 서울 지역 출범식에서 축사를 했다. 그가 나타나자 팬클럽인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 300~400명이 티셔츠를 맞춰 입고 나와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선관위에서 나온 현장지도원은 그 자리에서 사회자를 통해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현행 선거법상 동일한 로고가 박힌 옷을 입고, 예비 후보자의 이름을 외치거나 플래카드를 거는 행위를 할 수 없다. 정 전 의장 캠프에서 일하는 장형철씨는 “캠프 안에 선거법 위반 여부와 관련해 자문을 해주는 변호사가 한 명 있다”고 말했다. 정 전 의장 캠프는 후보자의 일정을 매일 선관위에 보내고,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글 중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는 것들은 관리자를 통해 자진 삭제하고 있다. 이 전 시장 쪽도 법률가를 통해 수시로 선거법 위반 자문을 받는다.
17대 대선 관련 위반 건수 28건
하지만 적지 않은 선거법 위반 사례가 적발되고 있다. 이 중앙선관위에 의뢰해서 받은 지난해부터 3월27일 현재까지의 ‘17대 대선 (선거법) 위반 행위 조치 내역’ 건수를 보면 모두 28건에 이른다. 고발 3건, 수사 의뢰 10건, 경고 15건이다. 경기 화성시에 사는 김아무개씨는 지난 1월 특정 후보자에게 불리한 내용의 유인물을 작성해 전국의 교회와 사찰 등 종교지도자 2만 명에게 우편을 발송한 혐의로 선관위에 의해 고발 조치됐다.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산악회 등 단체를 통한 사전 선거운동을 하다 적발된 경우도 4건에 달한다. 선관위는 특정 후보를 선전하기 위해 ‘파워 코리아 클린 제주’를 결성해, 후보자의 초청 강연시 회원이 아닌 일반 선거구민 200여 명을 초청해 강연을 듣게 한 이 단체에 폐쇄 명령을 내렸다.
선관위는 계속해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놓고 있다. 가장 최근엔 ‘대선 관련 출판기념회 및 각종 서적 광고 등 운용 기준’을 상세히 제시했다. 대선 관련 팬클럽, 포럼 등 각종 단체·모임 등이 사조직화할 경우 엄중 조치하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물론 선관위가 틀어막는 것만은 아니다. 논란이 됐던 사용자제작콘텐츠(UCC)를 이용한 선거운동과 언론과의 대담은 상시 허용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선거법이 여전히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도 많다. 예비 후보자들은 4월23일부터 등록이 가능하다. 하지만 각 당의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후보자로 등록하면 이 때부터 후원회를 꾸릴 수 있는 것과 달리 예비 후보 단계에선 ‘돈줄’이 막혀 있다. 따라서 국회의원이 아닌 경우, 더구나 호주머니가 빈 예비 후보자의 경우 불리한 조건에 놓일 수밖에 없다. 팬클럽의 오프라인 활동도 좀더 풀어줘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장형철씨는 “돈은 묶고 입은 푼다는 게 현행 선거법의 기본적인 방향이라고 할 때, 자발적·자율적 선거를 할 수 있는 국민적 역량이 커가는 만큼 팬클럽 활동 등은 최대한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관위는 지난해 12월 △예비 후보자의 선거운동 확대 △정책 대결 활성화를 위한 대선 후보자 정책공약집 배부 △대통령 선거 입후보 예정자 후원금 모금 등의 내용을 뼈대로 한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흔들리지 말아야 할 원칙은 자율의 폭은 넓히되 책임은 강하게 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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