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이스라엘은 반드시 다시 온다”

등록 2007-03-09 00:00 수정 2020-05-03 04:24

이슬람 성직자이자 헤즈볼라 15인 정치위원 중 한 명인 코도르 누르 에딘…“내전상태에 빠지게 할 헤즈볼라 무장해제를 실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 베이루트=글·사진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kimsphoto@hanmail.net

베이루트 남부 지역의 헤즈볼라 사무실에서 코도르 누르 에딘(52)을 만났다. 그는 헤즈볼라 정치위원회를 구성하는 15인 정치위원 가운데 한 명이다. 에딘은 레바논 남부 사이다 지역 출신의 이슬람 성직자다. 그래서 이름 앞에는 항상 ‘셰이크’란 존칭이 붙어다닌다.

2006년 1월부터 지금껏 병원에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아리엘 샤론이 이스라엘 국방장관으로 있던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전면 침공해올 때, 에딘은 이란에서 건축학을 전공하던 젊은 학도였다. 레바논이 침공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귀국 보따리를 쌌다. 그리고 그때 막 구성된 헤즈볼라(우리말로 ‘신의 당’)의 일원으로서 총을 들고 이스라엘군에 맞서 싸웠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이슬람 신학교로 들어가 성직자가 됐다.

유엔평화유지군은 침략 막을 의지 없어

며칠 전에 남부 레바논을 다녀왔다. 지금의 잠정적 경계선인 ‘블루라인’(Blue Line)이 이스라엘-레바논 국경으로 굳어지는 것은 아닌가.

=무슨 소리냐. 블루라인은 미국이 힘을 쓰는 유엔에서 그어놓은 잠정적인 군사분계선일 뿐이다. 특히 레바논 남동쪽 ‘셰바 농장지대’는 누가 뭐래도 레바논 영토다. 그 영토를 되찾고 시오니스트 세력이 레바논에 더 이상 위협적인 존재가 아닐 때까지 우리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가까운 시일 안에 이스라엘이 침공해올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가?

=알다시피 이스라엘은 2006년 전쟁에서 이기지 못해 창피를 당했다. 지금껏 이스라엘이 그렇게 창피를 당한 적은 별로 없다. 이를 설욕하기 위해서도 이스라엘은 적당한 트집을 잡아 다시금 전쟁을 벌이려 할 것이다. 우리는 이에 대비하고 있고, 다시 한 번 시오니스트들을 패퇴시킬 것이다.

유엔평화유지군(UNIFIL·이하 유엔군)이 전쟁을 막을 수 없다는 얘기인가?

=지금까지 유엔군이 맡아왔던 역할은 매우 한정적이다. 지난 여름 전쟁 때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군의 진격을 막지 못한다. 막을 의지도 능력도 없다. 이스라엘 침략군은 지난여름 전쟁 때 그랬던 것처럼 유엔군 주둔지를 피하고, 기독교 마을과 수니파 마을들을 우회해서 곧바로 헤즈볼라 지지도가 높은 시아파 마을들을 공격할 것이다. 유엔군은 지난 전쟁 때 팔짱을 끼고 구경만 했다. 레바논 평화를 유엔군이 보장해주리라 믿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다.

한국군이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여하기로 돼 있다. 이를 어떻게 보는가?

=나도 한국군 파병이 예정돼 있다는 소식을 들어 알고 있다. 친미 국가인 한국의 군대가 레바논에 오는 것을 반기진 않지만, 이스라엘의 이익을 위해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면, 다시 말해 중립성을 조건부로 한다면, 굳이 한국군의 레바논 파병에 반대하지 않겠다.

레바논 정부의 푸아드 시니오라 총리는 헤즈볼라가 무장해제돼야 한다는 의견을 밝혀왔다. 또 유엔군 임무 가운데 하나는 헤즈볼라의 무장해제를 돕는다는 것인데.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레바논 정부가 헤즈볼라의 무장해제에 나서면서 레바논 정부의 지원 요청이 있을 경우에 유엔군이 나선다는 것이다. 그러나 레바논 정부가 헤즈볼라 무장해제에 나설 것으로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레바논은 내전상태에 빠져들 것이다.

이란·시리아, 이슬람 형제로서 정신적 지원

레바논 정부군이 이스라엘에 맞설 의지나 능력을 갖추려면 아직 멀었다. 헤즈볼라는 정규군이 아니지만, 강도 높은 훈련과 전투 의지로 이스라엘 병사들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게다가 헤즈볼라 전사들은 익숙한 지형지물을 이용한 매복전술로써 이스라엘군을 괴롭혔다. 지금도 남부 레바논 사람들은 모였다 하면 그날의 무용담들을 자랑스레 전하곤 한다. 지난여름의 전쟁은 이 지역에 ‘신화’를 남긴 셈이다. 그 전쟁 뒤로 레바논 정부도 이스라엘과의 투쟁에서 헤즈볼라의 역할과 존재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앞으로 언젠가 레바논 정부군이 제대로 역할을 한다면, 헤즈볼라가 무장해제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

(헤즈볼라는 두 번에 걸쳐 이스라엘에 승리했다고 주장한다. 1982년 이스라엘 침공에 맞서 줄기차게 투쟁한 끝에 2000년 5월 이스라엘로 하여금 남부 레바논에서 철수하도록 만들었고, 2006년 7월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의 압도적인 화력에 맞서 이스라엘에 치욕적인 패배를 안겨주었다는 것이다. 베이루트에서 만났던 몇몇 지식인들은 헤즈볼라의 이념에 동조하지 않더라도 투쟁 성과에는 대체로 후한 점수를 매겼다. 힐랄 카샨 베이루트 아메리칸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헤즈볼라가 레바논의 국가적 자존심을 살렸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미국은 헤즈볼라를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해체를 주장해왔다. 헤즈볼라가 반미 국가이자 같은 시아파인 이란이나 시리아로부터 지원을 받는다는데.

=지원이 없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렇지만 이란과 시리아로부터 우리가 받는 지원은 이슬람 형제로서의 정신적 지원이다. (목청을 높이며) 미국과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를 테러집단이라 하지만, 실제로 누가 테러리스트냐?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감옥이나 쿠바 관타나모 포로수용소를 가봐라. 그곳에 갇힌 이들을 상대로 전쟁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누구냐? 남부 레바논의 키암 수용소에 갇힌 레바논 애국자들을 상대로 국제법상 불법인 모진 고문을 가한 자들이 누구냐? 마구잡이 폭격으로 부녀자들과 어린이들을 죽인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행위가 곧 국가테러가 아니고 뭐냐? 이스라엘의 점령에 맞서 싸우는 하마스나 헤즈볼라의 저항이 테러라는 주장엔 동의할 수 없다.

국민들이 인정하는 정치적 실체

최근 이란 핵에너지 개발을 놓고 미국이 이란에 대한 군사적 공세를 펼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미국-이란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헤즈볼라는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

=그 문제는 헤즈볼라 지도부가 다 함께 논의해야 할 사안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대목은 미국의 중동 군사 거점인 이스라엘이 미국의 이란 공격을 기회로 삼아 레바논을 다시 침공할 가능성이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이 언제라도 다시 침략해 들어올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다시 말하거니와, 우리는 레바논 국민들이 인정하는 정치적 실체다. 전세계 사람들이 보는 헤즈볼라에게는 두 가지 이미지가 겹쳐 있다. 하나는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만들어낸 헤즈볼라 이미지, 다른 하나는 레바논 국민들이 생각하는 헤즈볼라 이미지다. 앞의 이미지는 악의에 찬 선전이 만들어낸 허상의 이미지다. 헤즈볼라를 제대로 알려면 레바논에 와서 이곳 대중들이 어떻게 헤즈볼라를 말하는지 하루만 살펴보라고 말하고 싶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