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이재용의 아슬아슬한 질주

등록 2007-01-26 00:00 수정 2020-05-02 04:24

전무로 승진된 데 이어 언론에도 활발히 모습을 드러내며 후계자로 부각…불법 승계· 경영 성과 부족 등 걸림돌…이건희의 카리스마도 상속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인간은 65세 전후면 노망기다. 절대 실무 맡으면 안 된다. 60이 넘으면 손떼야 한다. 65세 넘으면 젊은 경영자에게 넘기고 명예회장 해야지 어느 그룹처럼 70~80에 실무 맡으면 안 된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회의 때 했던 말로 전해진다(박원배의 (1994)).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고 한 이른바 ‘신경영 선언’ 때 얘기다.

최고고객책임자, 이미지 구축 기회

‘프랑크푸르트 선언’ 당시 만 51살이었던 이 회장은 올해 1월 65살에 이르렀지만, 삼성 회장직에서 내려올 것 같지는 않다. 2005년에 불거졌던 옛 안기부 불법 도청 테이프(X-파일) 사건 뒤 칩거하다시피 해온 이 회장의 대내외 활동은 요즘 들어 활발해지는 분위기다. 1월9일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자랑스런 삼성인상’ 시상식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룹 현안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았으며, 앞서 지난해 12월28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기업·중소기업 상생회의에 참석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 회장의 후계자로 일컬어지는 장남 이재용(39)씨가 아직 40살에 이르지 못했고, 전무(삼성전자) 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회장의 ‘집권’ 연장은 당연지사로 여겨진다. 이 회장은 1987년 그룹 회장직을 물려받을 당시 45살이었으며, 이보다 훨씬 앞선 1979년 이미 그룹 부회장직에 올랐다. 이 회장의 장기 집권 관측을 낳는 또 하나의 배경은 건강 호전이다. 이 회장은 지난해 폐암 완치 판정을 받은 뒤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져 재계 안팎에서 간혹 나돌던 ‘건강 이상설’은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런데도 삼성의 후계 문제가 집중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은 이재용 전무의 부각이 올해 들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이재용씨는 1월17일 이뤄진 삼성그룹 임원 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2001년 3월 상무보, 2003년 1월 상무로 승진한 데 이어 4년 만의 일이다. 정몽구(69)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장남 정의선씨가 35살이었던 2005년에 이미 현대·기아차기획총괄본부 담당 사장 자리에 오른 것에 견주면 한참 늦었지만, 이번에 전무직에 오른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분석을 낳는다. 승진 인사에 뒤이어 1월19일 이뤄진 임원 보직 발령에서 최고고객책임자(CCO)를 맡았기 때문이다. 삼성 전략기획실의 임대기 전무는 “(신설된 삼성전자의 CCO는) 소니, 델 등 세계적인 대형 글로벌 고객들을 총괄 관리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삼성 쪽은 “이 전무의 CCO 임명은 삼성전자 매출의 약 90%를 차지하는 글로벌 고객들의 니즈(수요)를 파악하고 경영 수업을 쌓는 일환”이라고 밝혔다. 한 조직을 책임지는 데 따라 언론 노출도 잦아질 뿐 아니라 성과를 통해 강한 나름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기회를 갖게 된 셈이다.

형제들과의 암투는 없으나…

전무 승진에 이은 CCO 임명과 함께 또 하나 눈에 띄는 이 전무의 변화는 언론을 대하는 태도다. 많이 알려졌듯이 그는 전무 승진 직전인 1월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발리하이리조트에서 열린 삼성전자 기자간담회장에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이재용씨가 기자간담회 같은 공식 석상에 나타난 것은 전례없는 일이었다. 그는 최지성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 사장과 이인용·김광태 홍보팀 전무의 ‘안내’를 받아 테이블을 돌면서 기자들과 일일이 명함을 주고받고 인사를 나누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의 명함에는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라고 적혀 있었고, 사무실 전화번호와 전자우편 주소도 들어 있었다.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던 예전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그는 마이크가 설치된 단상으로 나가 “동계 디지털 가전 전시회(CES) 참석차 왔다”며 “개인적으로나 회사 안에서나 커리어(경력) 개발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이재용씨의 경영 활동 일정을 언론에 상세히 공개하고, 사진을 찍어 언론에 제공한 일도 예전과 달라진 대목으로 꼽힌다.

삼성전자 한 임원의 표현처럼 이재용씨는 “어차피 갈 길(그룹 회장 자리)이 정해져 있는 사람”이라는 데 별 이견이 없다. 지난번 미국 CES 행사에서 LG전자 전시관을 방문했을 때 그를 직접 맞아 안내한 이는 남용 LG전자 부회장이었다. 회사 밖에서는 이미 ‘최고경영자’로 대접받고 있는 것이다. 이재용씨가 전무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갈 길이 정해진 최고경영자’ 대접을 받는 바탕은 크게 두 가지다. 이 회장의 외아들로 ‘경쟁자 없는 후계자’란 점과, 그룹 지주회사 격인 삼성에버랜드의 최대주주라는 사실이다. 이재용씨가 외아들이란 사실은 예전 이 회장의 처지와 크게 다른 대목이다. 이 회장은 이병철 삼성 창업자의 3남으로 그룹 회장에 오르는 과정에서 형제들과 치열한 ‘암투’를 벌여야 했다.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재벌가를 괴롭히는 최대 숙제인 형제 사이의 재산 다툼이 지금의 삼성가에선 자연스럽게 해결돼 있는 셈이다. 지분으로 본 그의 위치는 더 확고하다. 에버랜드 지분(지난해 9월 말 현재 25.1%)을 지렛대로 삼아 그룹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다. 이미 숱하게 지적됐듯 총수 일가의 그룹 내부 지분율은 5%에 미치지 못하지만, 순환출자 구조에 힘입은 바다.

샤프하고 겸손, 그 이상은?

그룹 내부만 들여다볼 때는 이렇게 탄탄대로인 이재용 전무의 앞길을 막는 최대 걸림돌은 역시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매개로 그룹 지분을 불법·변칙적으로 증여받았다는 의혹이다. 에버랜드 CB 사건의 1심 판결에선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이 유죄를 선고받았고, 2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2심 판결도 유죄로 결론날 경우 이건희 회장이 검찰 조사 대상에 오를 것이란 관측이 많아 이재용 전무로 이어지는 승계의 법적·도덕적 정당성이 흔들릴 수 있다. 창업자의 2세인 이건희 회장이 경영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다툼을 벌였던 대상이 ‘형제들’이었다면, 3세인 이재용 전무는 그룹 바깥의 ‘사회 규범’과 싸워야 하는 처지다. 2세에서 3세로 넘어오는 동안 묽어지는 지분을 방어하기 위해 불법 변칙성 방법을 썼던 데 따른 불가피한 운명이다.

이건희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을 때도 사회 규범과 충돌하는 모양새가 있긴 했다. 1987년 이병철 회장 사망 당시 11조원을 웃돌았던 삼성그룹의 경영권과 자산을 실질적으로 고스란히 물려받은 이건희 회장이 국세청에 납부한 상속·증여세는 총 180억원이었다. 탈세 의혹이 제기된 것은 당연했다. 이재용씨가 수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재산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낸 세금이 고작 16억원이었는 사실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이재용씨에게 지분을 넘겨주는 과정에서 CB 발행이라는 신종 금융수법이 동원됐다면, 이건희 회장 승계 당시엔 ‘공익재단’이 매개체였다. 삼성그룹은 1965년 4월 삼성문화재단(설립 당시엔 삼성미술문화재단) 설립을 시작으로 10여 개의 공익법인을 잇달아 설립했다. 명분은 이병철 회장의 창업이념인 ‘사업보국’(事業報國)이었지만, 초특급 절세의 결과에 비춰보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인다. 겉보기엔 이렇게 비슷해도 이건희 회장의 승계 과정에는 이재용씨의 경우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재산을 가진 만큼 세금을 내야 한다’는 사회 통념과 어긋나기는 했지만, 법적 문제로 불거지지는 않았다. 당시만 해도 엉성하기 짝이 없던 상속세법 탓에 법적 단죄를 할 근거가 없었다. 정부가 1993년 말 상속세법을 바꿔 공익법인이 특정 회사 지분을 일정 수준 이상 못 갖도록 했을 때는 이미 삼성의 2세 승계는 말끔히 마무리된 뒤였다. 이에 반해 이재용씨의 승계와 얽혀 있는 에버랜드 CB 사건은 우여곡절 끝에 법적 다툼으로 이어졌고 비록 1심이지만 유죄를 선고받은 터다.

에버랜드 사건에 대해 최종적으로 무죄 선고가 내려진다면 이재용 전무는 사회적 부담을 덜고 날개를 달겠지만, ‘경영역량 시험대’라는 또 하나의 걸림돌을 넘어서야 한다. 이건희 회장은 형제들과 치열한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과정을 통해 기업을 물려받은 데 이어 1993년 ‘신경영’ 선언 뒤 삼성의 비약적인 발전에 힘입어 누구의 도전도 불허할 만큼 강력한 카리스마를 구축했다. 각종 조사에서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존경받는 기업인’에 꼽힐 정도로 기업 바깥에서도 단단한 권위를 확보하고 있다. 이에 반해 이재용 전무는 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16년에 이르는 동안 뚜렷한 성과나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삼성 직원들에게 ‘이재용씨는 어떤 사람인가’라고 물으면 대개 “샤프하고(똑똑하고) 겸손하다”는 데서 말이 끊기고 마는 게 혹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투자 실패 뒤 보유 주식 떠넘기기도

더욱이 이 전무는 인터넷 거품이 꺼지는 과정에서 투자 실패를 경험한 바 있다. e삼성, e삼성인터내셔널, 가치네트 등에 투자했다가 닷컴기업의 전반적인 몰락으로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지난 2001년 보유 주식을 모두 삼성 주력 계열사들에 떠넘겨 국내외에서 냉랭한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재용 전무에게 다소 위안거리라면 그가 첫 등기이사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S-LCD(삼성과 소니의 합작회사)가 설립 3년 만인 지난해 200억~300억원의 흑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는 정도를 꼽을 수있다. 이재용 전무로선 삼성전자 CCO를 맡은 것을 계기로 눈에 띄는 업적을 거둬 투자 실패의 기억을 상쇄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지분은 상속받을 수 있어도 카리스마는 상속되지 않는 엄중한 현실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