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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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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왜 비정규직 계약 해지 잇따르나

등록 2007-01-20 00:00 수정 2020-05-03 04:24

7월1일 시행 앞두고 공공 부문 중심으로 ‘대책’마련…우리은행의 정규직 전환은 ‘차별 고착화’라는 논란 일어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지난해 말에 제·개정된 비정규직 관련 법안(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이 오는 7월1일부터 시행된다. 300명 이상 사업장과 공공부문 사업장은 7월부터, 100∼300명 사업장과 100명 미만 사업장은 각각 2008년 7월, 2009년 7월부터 시행된다. 그런데 연말·연초에 법안 시행을 코앞에 둔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비정규직에 대한 계약 해지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철도공사·법원 행정처·서울대병원…

철도공사는 지난해 12월31일자로 계약직인 새마을호 승무원(KTX 여승무원이 아님)들에게 자회사인 ‘KTX관광레저’로 옮기라고 통보했다. 상당수 새마을호 승무원들은 외주 위탁사인 KTX관광레저로 옮기는 데 동의했고, 일부는 “철도공사가 직접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요구하며 농성 중이다. 법원 행정처는 지난해 말, 각급 법원에 ‘비정규직 보호법률 시행 관련 당부의 말씀’이란 공문을 보내 △민간 경비요원에 대한 계약을 2006년 12월31일자로 종료하고 △운전업무 기간제 근로자는 용역으로 전환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노사가 지난해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240여 명을 단계적으로 정규직화하기로 합의했으나, 병원 쪽은 12월31일자로 근무 2년이 되는 비정규직들에게 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공공연맹 이미경 비정규국장은 “공공부문은 비정규직 계약 만료 시점이 연말과 연초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도시철도공사, 산업인력공단, 법원행정처, 서울대병원, 학교 등에서 계약 해지가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공공부문에서는 비정규직 법안 시행과 별도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에 따라 오는 5월 기관별로 비정규직 중 정규직 전환 대상자를 선정하게 되는데, 이를 회피하기 위한 비정규직 계약 해지도 줄을 잇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 비정규직 법안이 통과될 당시 “2년 이상 근무한 계약직은 정규직으로 대거 전환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퍼졌으나, 정작 현실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법안은 “2년을 초과하여 기간제 근로자(계약직·임시직 등 기간의 정함이 있는 근로자)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정규직)을 체결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법 부칙에는 ‘2년의 규정은 법 시행 후 근로계약이 체결·갱신되거나 기존 근로계약을 연장하는 경우부터 적용한다’고 되어 있다. 즉, 정규직 전환 시점을 판단하는 기산점이 2007년 7월1일이란 뜻이고, 이전의 근무 경력은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참고로 기간제 근로와 달리 파견근로자는 7월1일 법 시행 이전의 근무 경력까지 소급 적용해 총 2년을 초과하면 ‘직접고용’을 해야 한다. 물론 정규직 고용이 의무화되는 건 아니고 계약직으로 직접고용을 해도 된다). 바꿔 말해 계약 기간이 2007년 11월31일에 끝나는 경우, 12월1일에 계약이 갱신·연장되거나 새로 계약을 체결하면 2년이 도래하는 시점은 2009년 12월1일이 된다. 계속 고용되지 않고 2009년 11월31일에 계약이 해지되면 당연히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될 수 없다. 아무튼 법에 의한 정규직 전환이 실제로 일어나는 건 빨라도 2009년 7월이고, 올 7월이 되기 전에 기업이 정규직화 또는 계약 해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나중에 벌어질 수 있는 혼란을 아예 차단하기 위해 우선 계약부터 해지하고 있는 양상이다. 또 법원행정처와 새마을호 승무원 사례가 보여주듯 정규직화 부담이 있는 비정규직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용역·파견 등 간접고용으로 돌리는 사례가 확산되고 있다.

물론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계약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계약 기간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정당한 사유 없이 계약을 해지하면 부당해고가 된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처지에 있는 개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노동계는 계약 기간이 올해 말까지 남아 있더라도 회사와 노동자 간의 합의로 7월1일을 기점으로 다시 고용계약을 맺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일률적으로 2009년 7월1일을 시점으로 삼으면 나중에 빚어질 수 있는 논란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올 6월에 계약직의 대량 해고가 빚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노동부 김인곤 비정규직대책팀장은 “민간기업에서 오는 7월 법 시행 이전에 계약 해지를 못하도록 정부가 규제하거나 제재를 가할 수는 없다”며 “최근의 계약 해지 양상을 면밀하게 파악하고 있는데, 그렇게 우려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들은 기존에 사용해온 3년짜리 계약직은 모두 2년 이하로 줄이고 있다. 정규직으로 전환시킬 의사가 전혀 없는 것이다.

3년짜리 계약직은 2년 이하로

법안 시행을 앞두고 논의가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쪽은 시중은행이다. 지난해 말 ‘깜짝 발표’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우리은행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모델을 놓고 논란이 분분한데, 다른 시중은행 노조들은 “비정규직 차별을 고착화하는 반쪽짜리”라고 비판하고 있고, 다른 시중은행장들은 “정규직화의 나쁜 선례를 남겼다”고 우려하고 있다. 은행의 정규직 전환은 직군제와 맞물려 있다. 우리은행은 오는 3월 정규직으로 전환될 비정규직(3100여 명)을 매스마케팅직군(입출금 창구 텔러), 사무지원직군, 고객만족직군(고객상담·콜센타 지원) 등 기존 정규직 업무직군과 구분되는 별도의 직군에 배치하기로 했다. 따라서 고용안정은 보장되지만 임금체계는 직군별로 달리 적용되기 때문에 저임금을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금융노조 국민은행지부 양원모 지부장은 “국민은행 비정규직이 8천여 명에 달할 정도로 가장 많은데, 상반기에 노사 공동으로 해결책을 찾기로 했다”며 “우리은행 모델과 달리 직군제를 없애고 온전하게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찾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지부 유주선 부위원장은 “신한은행도 1분기 안에 비정규직 처리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며 “그러나 우리은행처럼 별도의 직군을 세분화하면 ‘저임금 정규직’이 대거 양산되고, 기존 정규직의 일자리도 저임금 일자리로 잠식될 게 뻔하다”고 지적했다.

알아서 헌신해야 정규직 전환?

사실 외환위기 이후 은행들에선 전체 인력의 25%나 28% 등 일정한 비율의 비정규직을 직군에 따라 채용할 수 있도록 노사가 합의했다. 그런데 비정규직 법안 시행을 앞두고 ‘정규직 전환’을 쟁취하기 위해 새로운 저임금 직군을 또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한 셈이다. 은행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복리후생을 정규직과 같이 적용받게 되지만, 사실 경조사 부조금·콘도 이용·의료 지원 등 복리후생은 임금에 비하면 몇 푼 안 된다. 반면, 직군별로 정규직화하면 은행 입장에서는 비정규직 사용이라는 사회적 지탄을 덜 받으면서 큰 인건비 부담 없이 인력을 채용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직군제 정규직화’가 되면 차별적 저임금 체계가 고착화되므로 노조가 별도의 보충 교섭을 통해 임금을 정규직 수준으로 높이는 것도 어려워질 수 있다. 현대자동차에서 정규직과 비정규 사내 하청노동자들이 섞여 일하면서 ‘자동차 왼쪽 바퀴는 정규직이, 오른쪽 바퀴는 비정규직이 조립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중은행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업무 구분이 모호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직군제 도입으로 업무를 뚜렷하게 구분하면 비정규직 법안의 차별적 처우(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직에 비해 합리적 이유가 없는 불리한 대우) 금지 조항을 피해갈 수 있게 된다. 국민은행 인사 담당자는 “2년 계약 기간이 끝난 뒤 새로운 비정규직으로 교체할 것인지, 기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서 계속 사용할 것인지는 직무와 개별 비정규직 노동자의 성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려면 비정규직 노동자 스스로 더 헌신하거나 노동 강도를 강화해야 한다.

특히 ‘직군별 정규직’ 체제에서는 영업점 대고객 창구 텔러의 경우 중년 나이에 이른 뒤에도 계속 텔러로 일할 수 있을지가 의문으로 제기된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쪽은 “10년, 20년 뒤 은행의 업무가 어떻게 변화할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단순히 나이 들면 대고객 업무를 할 수 없게 된다는 우려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업무에 배치해서 활용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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