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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가도 여전한 ‘상실의 시대’

등록 2007-01-13 00:00 수정 2020-05-03 04:24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처형 뒤에도 신산스러운 삶은 계속된다…매달 국경을 넘는 6만여 피난민을 요르단 암만에서 추적한 리포트

▣ 편집자

2006년은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처형과 함께 막을 내렸다. 12월30일 바그다드의 동쪽 하늘이 여전히 어둠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던 시각, 콘크리트 방벽으로 겹겹이 둘러쳐진 ‘그린존’에서 그의 사형 집행은 시작됐다. 삽시간에 전세계로 퍼져나간 현장 상황을 담은 휴대전화 동영상은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라크의 대표적 블로거인 ‘리버밴드’는 자신의 블로그 ‘바그다드 버닝’에서 동영상에 담긴 음성 내용을 풀어 이렇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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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무함마드와 그의 가족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무크타다, 무크타다, 무크타다…. (후세인을 향해) 지옥에나 떨어져라!” - 처형장 ’입회인’들이 한목소리로

“헤야 헤이 일 마르잘라.”(당신들이 말하는 인간다움이란 게 고작 이건가?) - 후세인 전 대통령이 입회인들을 내려다보며

“제발, 제발 그만해라. 저 사람 지금 처형되고 있지 않나!” - 제3의 목소리

“아샤두 안 라 일라하 일라 알라, 와 아쉬하두 아나 모함메둔 라술 알라….”(알라 외에 다른 신이 없고, 무함마드는 그의 사자임을 증언하나이다.) - 후세인 전 대통령

그가 두 번째로 ‘신앙고백’을 읊조리던 순간, ‘덜컥’ 소리와 함께 그의 몸뚱이가 자유낙하를 했다. 그리고 침묵이 흘렀다. 화면은 거기서 멈췄다. 1979년 7월16일 집권해 2003년 4월9일 쫓기듯 함락 직전의 바그다드를 빠져나갈 때까지, 24년여 동안 철권을 휘두르며 이라크를 호령했던 사담 후세인 압드 알마지드 알티크리티의 최후다. 향년 69살.

독재자의 죽음을 애통할 까닭은 없다. 그가 권좌에 있는 사이 수많은 이들이 비명에 갔고, 그보다 많은 이들의 기본권이 철저히 유린됐다. 잇따른 전쟁은 ‘상실의 세대’를 양산했고, 그 후과는 다음 세대에도 계속될 게다. 그럼에도 그의 죽음은 비극일 뿐,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표현한 “이라크가 민주주의로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이정표”로는 여겨지지 않는다. 그를 교수대로 이끈 우격다짐식 재판과 야유와 조소가 범벅이 된 처형 과정은 독재자에 대한 정당한 단죄가 되지 못했다. 한편에서 그의 죽음에 환호하는 사이, 다른 한편에서는 그의 ‘순교’에 오열하는 기현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벼랑 끝에 몰린 이라크인들의 삶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오히려 그의 죽음으로 수니와 시아로 갈린 이라크인들의 반목은 그 골이 더욱 깊어졌을 뿐이다. 내일도 어제처럼 바그다드의 거리엔 애꿎은 피가 뿌려질 테고, 매달 국경을 넘는 6만~9만 명에 이르는 피난민의 행렬도 이어질 게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이라크 땅을 벗어난 이들의 삶도, 남겨진 이들의 삶보다 나을 게 없다. 김동문 전문위원이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추적한 이라크 피난민들의 신산스런 삶은 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독재자는 갔지만, 이라크인들의 삶에 드리워진 그늘은 속절없이 짙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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