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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비 분담금, 용어부터 없애라

등록 2006-12-28 00:00 수정 2020-05-03 04:24

국회 국방위 용역보고서에 드러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요구의 문제점…미국이 내야 할 ‘주둔비’에 불과, 재협상 요구 않는 국회의 직무유기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동맹은 철저히 ‘기회비용의 게임’이다. 하나를 얻게 되면, 다른 하나를 반드시 내줘야 한다. 힘이 센 쪽이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것도, 힘이 약한 쪽이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 수혜의 대상이라면, 그 동맹은 ‘지속 가능성’이 있을 수 없다. 냉혹한 국제정치 무대에는 ‘산타클로스’도 ‘착한 사마리아인’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동맹 사이엔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성립할 수 없다.

동맹 사이에도 지켜야 할 금도는 있다.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는 건 물론 자연스럽다.

그러나 상대의 약점을 교묘히 비집고 들어와 억지를 부리거나 위협을 가해, 자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구도를 만드는 건 바람직한 동맹의 자세가 아니다.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경기 안산 상록을)이 국회 국방위 연구용역의 하나로 이철기 동국대 교수팀에 맡겨 12월20일 제출받은 ‘미국의 방위비 분담 요구의 문제점과 대안 보고서’(이하 대안 보고서)에 눈길이 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방위비 분담, 근거는 어디에?

한-미 두 나라는 지난 5월부터 11월까지 6차례 협상을 벌인 끝에 2007년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7255억원으로 하는 협상안에 12월6일 최종 합의했다. 이는 지난 2004~2005년의 6804억원에서 451억원(6.6%) 늘어난 규모다. 외교통상부는 “이번 협상 결과는 한-미 양국 모두가 전적으로 만족하는 내용은 아니나 한-미 동맹의 정신에 입각한 최선의 합리적인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발표했지만, 예년과 마찬가지로 시민·사회 진영의 비판을 비껴갈 순 없었다.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시민·사회 진영의 비판은 크게 3가지로 모아진다. 먼저 방위비 분담금 협정의 근거가 없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체결된 주둔군지위협정(SOFA) 제5조1항은 주한미군의 주둔 비용을 미국이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행 방위비 분담금 협정은 미국 쪽의 요구에 따라 이런 규정을 무력화하는 ‘한시적 특별협정’이므로 폐기해야 마땅하다는 지적은 여기서 비롯된다.

둘째, 한-미 양국은 지난 1월19일 외무장관 회담을 통해 ‘주한미군의 지역적 역할’(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했다. 이는 ‘한반도 방어’라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주한미군의 역할이 바뀌었음을 뜻한다. 미군 수뇌부조차 그동안 여러 차례 “한국의 방위는 한국군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해왔다. 결국 대북 억지력 확보를 위해 부담하고 있는 방위비 분담금의 존립 근거가 사라진 것이다.

이 두 가지 지적이 방위비 분담금 협정 폐기의 근거라면, 주한미군의 지속적 감축은 “최소한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삭감해야 한다”는 주장의 논거가 된다. 더구나 국방비에서 방위비 분담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우리 국방비에도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지난 2004년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1991~2003년 국방비 증가율은 135%인 반면 같은 기간 방위비 분담금 증가율은 686%에 이른다. 이제 ‘대안 보고서’의 지적을 들어보자.

2006년에만 1조4555억원 지출

“방위비 분담(금)은 그 시작 때부터 미국과 한국 사이에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해온 문제다. 미국은 ‘공정한 부담’을 하라며 한국을 지속적으로 압박해왔지만, 우리 정부가 ‘공정한 부담’을 요구하는 미국의 논리가 ‘공정’하다고 생각해서 방위비 분담을 계속해온 것은 아니다. …방위비 분담 또한 한-미 군사 관계의 다른 문제들처럼 불평등한 한-미 관계를 반영한다.”

보고서를 보면, 한국 정부가 방위비 분담금(특별협정 분담금)이란 이름으로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은 18년 전인 1989년부터다. 그사이 우리가 지불한 돈은 방위비 분담금 명목으로만 약 64억달러(5조9430억4천만원)에 이른다. 하지만 주한미군 주둔 비용으로 지불하는 부담은 비단 방위비 분담금 외에도 셀 수 없이 많다. ‘부동산 지원, 카투사 인력 지원, 미 지상군·공군 탄약 관리, 한국 노무단 운영, 주한 미 공군시설 경계 관리 등 각종 인력 지원, 공동사용 한국군 훈련장 관리, 미군기지 이전 비용, 이라크 파병 비용….’ 각종 명목으로 방위비 분담금을 훨씬 웃도는 비용을 간접적으로 부담해왔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006년 국방예산의 주둔군 지원 내역을 보면, 방위비 분담금을 빼고도 △용산기지 이전비용(3305억원) △연합토지관리계획(LPP) 협정 이행 비용(2959억원) △주한미군 시설부지 지원금(58억원) △이라크를 비롯한 해외 파병 비용(1422억원) △주한미군 기타 분담금(7억원) 등 각종 지원 비용이 모두 7751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방위비 분담금 6804억원을 더하면 주한미군 주둔에 따른 비용은 모두 1조4555억원에 이른다는 게 ‘대안 보고서’의 지적이다.

이런 ‘아낌없는 지원’은 주한미군 지원비가 주한미군의 자산가치를 상회하는 기현상을 낳았다. ‘대안 보고서’는 “지난 1989년부터 2006년까지 지원한 방위비 분담금(약 64억달러)에다, 간접지원 비용 가운데 부동산 지원비(연간 10억달러)만 더해도 그 총액은 244억달러(약 22조6578억4천만원)에 이른다”며 “이는 국방부가 2003년 펴낸 ‘미래를 대비하는 한국의 국방비’란 보고서에서 내놓은 주한미군 자산가치(주둔 전력과 전시 대비 비축 물자 등) 추정치 약 200억달러(약 18조5720억원)를 충당하고도 남는 액수”라고 지적했다.

방위비 분담금이 주한미군에 대한 과도한 특혜임은 ‘대안 보고서’가 지적한 다음과 같은 점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2004년 주한미군 1인당 지원비는 방위비 분담금을 기준으로 1만6395달러(주둔 미군 3만8천 명 기준)에 이른다. 이 액수는 2004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1만4161달러를 능가한다. 보고서는 “만약 주한미군에 대한 직·간접 지원을 합친 것을 기준으로 하면 주한미군 1인당 지원비는 3만6219달러로, 같은 해 미국의 1인당 GDP 3만9722달러와 맞먹는다”고 꼬집었다.

“기지 사용료 받는 게 현실적”

동맹의 조건이 바뀌면, 그 내용도 당연히 달라져야 한다. 미군 주둔은 한국의 일방적 요구에 따른 게 아니라, 미국의 필요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임종인 의원은 “방위비 분담금이란 용어부터 ‘미군 주둔비’로 바꾸는 게 실체에 가까울 것”이라며 “미국 스스로 ‘대북 방어는 한국군 스스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만큼, 주둔 비용을 지원할 게 아니라 오히려 기지 사용료를 받는 게 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현실’은 멀게만 느껴진다. 그동안 국회에 제출된 여섯 차례 방위비 분담금 협정비준 동의(안)은 모두 원안대로 통과됐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특별협정은 한-미가 합의하면 언제든지 개정하거나 수정할 수 있게 돼 있어, 국회에서 재협상을 요구할 경우 수정이 가능하지만, 국회는 한 번도 재협상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명백한 직무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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