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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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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맥경화, 남의 일 아니네

등록 2006-12-21 00:00 수정 2020-05-03 04:24

아무런 경고 없이 갑작스럽게 발병하여 암보다 사망자 많은 무서운 질병…콜레스테롤 수치만으로 알 수 없으니 C-반응성 단백질 농도 꼭 확인해야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불혹을 앞둔 김병철씨는 종합검진을 할 때마다 의사로부터 핀잔을 듣습니다. 벌써 4년째입니다. 며칠 전에도 검진을 받으며 한소리 들었다네요. 의사가 수치를 보더니 “혈압약을 드셔야 하는데요”라고 하자, 김씨는 잠시 머뭇거리면서 “약을 먹지 않는데 올해는 수치가 많이 떨어졌네요”라며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머지않아 검진 결과가 나오면 총 콜레스테롤 수치가 위험 단계인 220mg/dl에 다다를지도 모르기 때문이죠. 지난해 200mg/dl를 넘어선 터라 걱정이 많습니다. 보통 콜레스테롤 수치가 1mg/dl씩 올라갈 때마다 심장병 발생 위험이 2% 이상 증가한다더군요.

원인은 염증 반응으로 생긴 플라크

지금 김씨의 혈관에서는 동맥경화가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심혈관조영술로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몇 가지 증상으로 짐작할 수 있답니다. 지난해부터 김씨는 짧은 거리를 걸을 때도 장딴지와 허벅지에서 통증을 느낍니다. 통증은 걸음을 멈추면 사라지지만 다시 걸으면 어김없이 느껴집니다. 말초 혈관 질환으로 근육에 가는 혈류가 충분하지 않아 생기는 통증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김씨는 걷지 않으면 통증을 느끼지 않기에 짧은 거리도 자동차로 이동하기 일쑤지요. 하지만 운전석에서도 간혹 통증을 느끼면서 김씨의 근심은 깊어지고 있습니다. 흉통이나 심장마비·뇌졸중 등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실제로 동맥경화는 암보다 많은 사망자를 내는 무서운 질병입니다. 동맥경화는 혈관벽에 죽처럼 생긴 덩어리가 붙어 ‘죽상반’(粥狀斑)이라고도 하지요.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동맥경화를 노화로 인한 배관 문제로 여겼습니다. 주로 지방으로 이뤄진 끈적끈적한 덩어리가 동맥 혈관벽에 쌓여 혈관이 좁아지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지요. 마치 배관 파이프가 막히듯 혈관이 막히면서 혈액이 조직에 공급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로 인해 통증이 생기고 심근이나 뇌 일부가 괴사되면서 인체의 펌프가 작동하지 않아 심장마비나 뇌졸중을 일으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근래의 연구에 따르면 죽상반의 염증과 면역반응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지방과 섬유 성분 등이 혈관벽에 와서 쌓이는 게 아니라 혈관벽 내의 반응에 의해 돌처럼 딱딱한 ‘플라크’가 생긴다는 것이지요. 살아 있는 세포에서 이뤄지는 일이니까 세포나 분자 사이의 상호작용이 이뤄지게 마련이겠지요. 게다가 혈액의 흐름을 방해할 정도로 혈관에 찌꺼기가 쌓이는 경우도 드물다고 합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심장마비나 뇌졸중은 돌출한 플라크가 아니라 이른바 ‘피떡’이라 불리는 ‘혈전’에 의해 발병되기 쉽다고 하더군요.

사정이 어쨌거나 김씨는 동맥경화로 인한 위험이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심장마비나 뇌졸중 등이 아무런 경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발병하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플라크가 곧바로 동맥을 막지 않고 길게는 수십 년에 걸쳐 바깥 쪽을 향해 팽창한다고 하더라도 협착은 피할 수 없습니다. 수년 전 김씨는 흉골 아래에서 갑갑함과 통증을 느껴 정신과 진료까지 받았는데 그것도 심장 동맥이 손상되면서 혈류를 감당하지 못해 생긴 ‘협심증’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이미 혈관의 이상신호가 김씨의 몸에 나타났는데도 특별한 대책을 세우지 않았던 셈이네요.

이쯤에서 김씨의 혈관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문제는 혈중 콜레스테롤에서 비롯됩니다. 불량 콜레스테롤로 알려진 저밀도지단백(LDL) 농도가 높아 동맥의 염증을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염증은 특정 플라크를 파열해 조직 인자와 혈액에 있는 응고 촉진 인자가 결합해 혈전을 형성하는 구실을 합니다. 지금까지 김씨의 혈관에서는 커다란 혈전이 형성되지 않아 심장으로 공급되는 혈액의 흐름까지는 막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오래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작은 혈전이 반복해서 생긴다면 상처가 커지면서 플라크가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으니까요.

건강한 식생활과 체중 조절이 급선무

물론 파열되는 플라크가 혈관 안쪽으로 파고들지 않는다면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미 협심증의 징후를 느낀 김씨로선 심근의 괴사를 염려해야만 합니다. 다시 협심증을 느낀다면 다양한 대책을 검토해야겠지요. 예컨대 좁아진 동맥의 통로를 넓히는 ‘풍선성형술’이나 철사로 된 보철물을 삽입하는 ‘스텐트 시술’을 하거나 수술로 우회로를 만들어주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도 심장마비를 완전히 예방하지는 못합니다. 숨어 있는 플라크가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이지요.

정말로 김씨는 동맥경화의 위험에 놓여 있는 것일까요.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만 따진다면 김씨는 고위험군이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콜레스테롤 수치만으로 위험도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게 나온 사람 중에서도 심장마비가 생기곤 하니까요. 그래서 연구자들은 염증의 수치를 확인하는 ‘C-반응성 단백질’의 혈중 농도를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더라도 C-반응성 단백질 수치가 높으면 안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혈관의 염증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게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사실에 따라 김씨는 적절한 대책을 마련할 수도 있습니다. 체내의 염증을 차단하는 약물을 복용하는 것이지요. ‘아스피린’이 혈액 응고 위험을 줄인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것으로는 염증 자체를 줄일 수는 없다네요. 자칫 소염제로 수년에 걸쳐 동맥경화를 막으려다가 면역계가 손상되어 감염병을 일으킬 수도 있답니다.

지금 김씨가 선택할 수 있는 대책은 간단합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게 나온다면 지질강하제를 복용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야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건강한 식생활과 규칙적인 운동, 체중 조절 등이 급선무입니다. 흡연은 괜찮냐고요? 지금 당신의 심장이 마비되고 있을 것입니다.

도움말 주신 분: 경북대병원 박헌식 교수, 부산대의대 김치대 교수, 서울대병원 김효수 교수.



‘녹황색’ 생활습관으로 바꿔라

채소 위주 식사, 동맥경화 가능성을 40% 이상 줄여


우리나라는 동맥경화의 안전지대로 꼽혔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전의 일일 뿐이다. 심·뇌혈관계 질환은 사망 원인 1위 자리를 꿰차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1개 광역시를 대상으로 내년 7월부터 3년 동안 관련 질환자를 관리하는 등 심·뇌혈관 질환에 대한 체계적인 예방·관리를 하기로 했다. 여기에 소요되는 예산이 68억원으로 올해(29억원)보다 134%나 늘어났다. 국가의 환자 관리에 대한 논란에도 예산을 책정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심·뇌혈관 질환으로 인한 국가적 손실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가 심·뇌혈관 질환자를 관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아무리 환자의 등록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고 취약 계층에게 약값을 지원하더라도 환자 스스로 위험을 관리하지 않는다면 헛일일 뿐이다. 보통 혈관 안 지름이 50% 이상 좁아지면 스트레스 상황에서 혈관이 막혀 장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70% 이상 줄어들면 평상시에도 혈류 공급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런 상황에선 특단의 대책을 세워도 혈관이 원상태로 회복되지 않는다. 미리 생활습관을 바꿔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일 혈압이나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에서 벗어났다면 먹을거리를 서둘러 바꾸는 게 좋다. 되도록 육류 섭취를 줄이고 채소와 과일 섭취를 늘여야 한다. 콜레스테롤과 칼슘 등을 함유한 지방성 물질은 동맥 벽에 플라크를 형성해 혈액 흐름에 장애를 준다. 대신 브로콜리, 시금치 등 녹황색 채소 위주의 식사를 하면 동맥경화 가능성을 40% 이상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채소에 항산화 효과가 있는 캐로티노이드나 비타민C, 셀레늄 등이 풍부하고 ‘설포라페인’ 같은 물질이 항염증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동맥경화 예방에는 생활습관 개선을 통해 혈압을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유전적으로 고혈압이 생기는 사람들은 혈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소금을 제거하는 능력이 떨어지기에 특별히 유의해야 한다. 동맥경화의 3대 위험인자가 고지혈증, 고혈압, 흡연인 만큼 금연은 필수다. 1년만 금연해도 비흡연자에 준하는 동맥경화 위험도를 갖는다고 한다. 소리 없는 살인자라 불리는 동맥경화이지만 어떤 식으로든 전조는 있게 마련이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혈관의 신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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