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FDA에게 무엇을 배울까

등록 2006-11-18 00:00 수정 2020-05-03 04:24

제약회사 유착의혹 등 잡음 있으나 시민·환자와 함께 하는 노력은 독보적…한-미 FTA 체결을 앞두고 식약청은 오류를 반성할 줄 아는 FDA를 배워야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미국의 경제 월간지 는 지난 2004년 건강의약 분야에서 올해의 인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의약품 안전연구원 데이비드 그레이엄을 선정했다. 그는 제약업체 머크의 관절염 치료제 ‘바이옥스’(Vioxx)가 심장 발작을 일으키고 뇌졸중 등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FDA 연구원 신분으로 밝혔다.

FDA가 1999년에 승인한 ‘콕스-2’(COX-2·체내 염증관련 효소) 억제제의 문제를 내부 고발자가 되어 공개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이로 인해 FDA는 의약품 안전성 감시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해야 했고, 머크사는 시판 중인 바이옥스를 시장에서 전량 회수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내부고발자 그레이엄의 반격

최근 그레이엄이 학문적 성과를 근거로 머크를 공격하는 내부 고발자로 나섰다. 머크에서 바이옥스를 대체하는 약물로 개발한 ‘아르콕시아’(Arcoxia)가 관절염 환자의 심장병 발병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여전히 그의 발언은 FDA의 공식 견해가 아니라 에 논문으로 실린 신경학자의 연구성과였다. 지난해 심장 발작 관련 소송에서 2억5300만달러의 배상 판결을 받은 머크는 지금껏 크고 작은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논란이 불거져 아르콕시아가 화이자의 ‘셀레브렉스’(Celebrex)가 장악한 ‘콕스-2’ 시장 판도를 바꾸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제대로 체면을 구긴 FDA도 승인을 미루고 있다.

대체로 ‘FDA 승인’이라는 말은 의약품의 최대 성취를 뜻한다. 당뇨병이나 관절염 치료제로서 FDA의 승인을 받으면 연간 10억달러 이상 판매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제약업체들이 FDA 승인에 목을 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FDA에서 승인한 약물이라고 해서 안전성을 확신하긴 어렵다. 머레이 럼킨 FDA 부국장은 “해마다 승인한 약물의 3%가 수거되고 있다”고 말했다. “수천 명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한 뒤 승인 절차를 밟는다. 승인을 받아 수백만 명이 복용했을 때 5만 명당 1명꼴로 부작용이 나오는데 심각할 경우 수거를 한다. 이는 FDA 시스템의 실패가 아니라 승인 뒤에도 안전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정말로 FDA는 의약품 허가와 안전성 관리에 빈틈이 없는 것일까. 미국 보건부 산하 감찰국이 펴낸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FDA 과학자 400명 가운데 3분의 2가 시판하는 약품의 안전성을 감시하는 활동이 미흡하다고 밝혔고, 3분의 1은 신약 승인 과정에 의혹이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일부 FDA 간부들이 제약업계에 너무 밀착됐다는 반응도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면 그레이엄의 뒤를 잇는 내부 고발자가 등장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이는 약품 회수로 인해 제약산업이 치러야 할 홍역을 최소화하려는 의도인지도 모른다. 자칫 제약업계의 위험 부담에 대한 화살이 FDA로 쏠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보건부 산하기관인 FDA의 국장은 보건부 장관이 아닌 대통령이 지명해 상원의 인준을 받아 결정한다. 이런 까닭에 부시 행정부 들어 FDA 청장은 두 차례 4년 동안이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올해 앤드루 에센바흐 박사가 지명됐지만 사후피임약 ‘플랜(Plan) B’의 무처방 시판을 놓고 정치적 대립을 빚어 권한대행 신분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만큼 정치적으로 휘둘릴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셈이다. 한때 부시 행정부는 국장 후보로 미국 테네시주 벤터빌트대학 메디컬센터의 알라스테르 우드 박사를 검토했다. 하지만 우드 박사의 “승인받은 의약품도 다시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알려져 지명을 포기했다.

독립적 감시기구, 효력 있나

이런 사정에 따라 의약품 심의 과정에 각종 자문위원회를 두고 있다. 예컨대 의료 분야별로 전문가 중심의 자문위원회와 의학계 중진으로 구성한 의약품안전관리자문위원회가 있다. 특이하게도 시민단체와 환자 등을 중심으로 구성된 공공자문위원회가 있다. 대개 15명에서 17명으로 구성되는데 4년 동안 활동한다. 주로 사안이 있을 때마다 3일 동안의 협의를 통해 의견을 내놓는데 결정권은 없고 말 그대로 자문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FDA는 개별 약품이나 이슈에 대해 대체로 여러 자문위의 의견을 종합해 따르곤 한다. 자문위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일부 자문위원들이 제약업체에 결탁됐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런 의혹을 해소하려고 FDA는 바이옥스 사태를 계기로 독립적인 감시기구 설립을 추진했다. 의사와 환자들에게 의약품의 위험과 효용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자문위와 감시위가 활동을 해도 원천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미국 미네소타대학 헬스저널리즘 석사과정 게리 슈바이처 교수는 “FDA의 위원회는 인원 구성에서부터 이해관계가 개입되기 쉽다. 자문위원들이 과학적인 토론을 제대로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있다. 현재로선 심사 과정 전반이 투명하게 진행되는지를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시민들이 청원 활동으로 FDA를 압박하기도 한다. 미국의 시민단체인 퍼블릭 시티즌은 “로슈의 비만치료제 ‘제니칼’(Xenical)이 암을 유발한다”고 주장하며 시장에서 철수시킬 것을 FDA에 요구했다. 로슈로부터 제니칼의 미국 내 비처방 판매권을 획득한 글락소 스미스클라인이 내놓은 일반의약품 ‘알리’(Alli)를 FDA 비만치료제 자문위에서 11 대 3으로 승인 권고한 것에 반발한 것이다. 퍼블릭 시티즌은 제니칼의 일반의약품 판매 추진에 반대하면서 지방과 암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촉구하기도 했다. 미국인의 소비생활에서 FDA의 규제를 받는 품목에 대한 지출이 25%나 되기에 시민단체로선 FDA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그렇다고 FDA가 허술한 심사로 이름을 떨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제약업체들은 FDA 심사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FDA가 너무나 높은 수준의 표준을 설정해 승인을 받는 데 많은 시간과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신약과 생물학적 제품이 승인을 받는 데 걸리는 시간이 평균 20개월 안팎이다. 그래서 FDA는 임상실험의 실시간 전자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심사 기간 단축을 모색하고 있다. 머레이 럼킨 부국장은 “신약 심사 과정에서 안전성과 효율성은 물론 제조 과정의 질까지 확인해야 한다. 약품에 따른 안전성 심사를 2500여 회나 실시하는 것도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다”고 밝혔다.

어쨌거나 FDA는 의약품 허가에서 심의에 활용되는 지식의 본산이다. 이는 100년 전에 출범하면서 밝힌 ‘공중보건을 보호하고 증진한다’는 설립 목적에 걸맞은 활동을 벌인 덕분이다. 당연히 업무의 중심 역시 제약회사의 제품이 아니라 환자의 생명과 시민의 건강에 맞춰져 있다. 이런 사실은 외부의 시선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미국 UC샌프란시스코대 이형기 교수는 <fda vs>이라는 저서를 펴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FDA의 권위는 규제과학이 정립된 뒤 단순한 규제기관에 머물지 않고 과학기관으로, 공중보건기관으로 거듭나면서 실력을 쌓은 데서 나온다.”

식약청은 과학적 평가체계 확립했나

국내에도 FDA의 권위를 지향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있다. 불리는 명칭은 비슷하지만 권위에서는 출범 역사만큼이나 많은 차이가 있다. 식약청은 의약품 안전관리를 주요 업무로 삼고 있음에도 이에 관한 과학적 평가체계를 확립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곤 한다. 지금도 데이비드 그레이엄 같은 내부 고발자가 나와야 할 상황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예컨대 의약품 심사 과정에서 주요 구실을 해야 할 의사 출신 연구원도 소수에 지나지 않는 형편이다. 이는 국내 신약 개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올해 들어 FDA 관계자들이 국내 보건의료 관련기관을 잇따라 방문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앞두고 의약 분야가 쟁점으로 떠오른 때문이다. FDA가 미국의 의약품 대외협상 창구는 아니라 해도 승인 약품에 관한 건강보험 적용 여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식약청과 FDA는 생물학제제의 공동 심사·연구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추진하기로 하는 등 교류의 폭을 넓히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식약청은 시민·환자와 함께하려는 FDA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오류를 반성할 줄 아는 FDA를 말이다. 갈수록 의약품과 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금도 식약청의 ‘FDA 따라 배우기’는 늦지 않았다.



나노를 어찌해야 하나

제품 독성에 대한 공청회 열며 골머리 앓는 FDA

이제는 나노제품들이 특별한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화장품이나 식품, 첨가제 등으로 널리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나노 화장품’이 보통명사로 쓰일 정도다. 이산화티탄이나 산화아연 같은 나노입자가 자외선 차단제를 비롯해 샴푸, 영양크림에도 들어간다. 이 물질들은 미세한 광물성 거울처럼 작용해 자외선을 반사하거나 흡수하면서 피부를 보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노 연구자들은 나노입자가 건강한 세포에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노입자가 피부에 미치는 영향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다.



사실 나노입자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수십 년 전의 일이다. 0.2~100나노미터 크기의 입자들이 각종 포장지나 약물 캡슐 등의 형태로 식료품이나 인체에 들어온 것이다. 다만 구체적인 설명이 표시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식품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나노화합물을 첨가한 ‘나노 푸드’도 등장할 태세다. 이미 FDA는 몇몇 종류의 나노화합물의 판매를 승인했다. 최근엔 주방용품에 항세균성 나노 박막을 입히거나 나노입자가 첨가된 직물이 FDA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나노입자가 일상생활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나노 독성학’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나노샴푸만 해도 나노입자들이 모발의 모앙세포 부근에 한동안 머물다가 모발이 성장하면서 다시 피부 표면으로 올라올 수 있다. 이때 피부가 상처를 입으면 나노입자가 세포 속으로 쉽게 파고들 수 있다. 이같은 우려에 따라 FDA의 나노제품 승인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나노제품을 개발하는 것보다 나노입자의 영향에 대한 분석이 더 시급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FDA는 나노입자의 독성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구체적으로 밝혀진 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FDA의 입장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머레이 럼킨 FDA 부국장은 “올해가 가기 전에 공청회를 열어 FDA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나노기술이 의약품이나 화장품, 산업제품 등으로 널리 활용되는 추세다. 이를 다각도로 활용하려면 위험성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해야 한다.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공청회를 방송으로 중계해 국민적 관심을 모을 예정이다.”
아직까지 FDA의 나노입자 관련 공청회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 이미 독일위험평가연구소(BFR)의 전문가 토론에서 나노입자를 이용한 제품의 위험성이 심도 있게 거론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나노기술 모라토리엄(유예)’ 선언을 촉구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FDA가 마련하는 공청회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자못 궁금하다. 자칫 기술 개발과 위험 연구라는 어정쩡한 결론에 이르거나 권고안을 채택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거나 FDA가 나노기술로 인해 골머리를 앓는 건 사실이다.


</fda>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