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핵무기, 미국은 유엔 제재라는 새 카드를 들고 재개될 6자회담…‘비핵화’ 개념부터 힘든 협상 될 듯, 미국은 변화를 받아들일 것인가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극적 반전은 올 것인가?’
시점이 절묘하다. 지난 10월9일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이 미국의 중간선거를 불과 1주일여 앞두고 6자회담 복귀에 전격 합의했다. 이르면 이달 안에 회담이 재개될 전망이다. 지난해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제5차 회담 이후 꼭 1년 만이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껏 높아졌던 한반도의 불안한 기운도 일단 주춤하고 있다.
모양새는 얼추 예상이 가능했다. 중국이 적극적인 중재에 나섰고, 북-미 양자가 베이징에서 만났다. 기존 태도를 바꾼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지만, 북한도 미국도 반걸음쯤 ‘양보’를 했다. ‘제재의 모자를 쓰고는 회담에 나가지 않겠다’던 북한도, ‘금융제재는 불법행동에 대한 처벌이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던 미국도, 6자회담 틀 안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핵실험이란 위험천만한 상황이 오기 전에도 이런 식의 합의는 충분히 가능했다. 북-미 두 나라는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한반도에서 위기상황을 고조시킨 ‘공동정범’인 셈이다.
문제의 2400만달러, 미국의 선택은?
물론 상황은 전과 같지 않다. 북한은 핵 보유국이란 새로운 카드를 손에 쥐었다. 미국도 일방적 금융제재에서 국제사회가 참여하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라는 카드로 무장했다. 언뜻 시곗바늘을 1년 전으로 돌려놓은 것에 불과해 보이지만, 협상의 역학은 사뭇 달라져 있는 것이다. 회담이 재개되더라도 북-미 양쪽의 줄다리기가 쉽게 타협점을 찾기 어려울 것이란 비관론이 많은 이유다.
북·중·미 3개국의 6자회담 재개 합의 이후 단연 관심의 초점으로 떠오른 것은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에 개설된 북한 계좌 처리 문제다. 지난해 ‘9·19 공동성명’의 잉크가 채 마르기 전에 미국은 ‘애국법’ 311조 규정에 따라 방코델타아시아를 ‘돈세탁 우선 우려 대상’으로 지정하고, 이 은행에 개설된 북한 계좌 50여 개에 입금돼 있는 2400만달러를 동결했다. 6자회담을 1년여 공전시킨 대북 금융제재의 시작이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제1차관이 11월1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보고한 내용이 아니어도, 이들 계좌에 대한 미 재무부의 ‘선별적 제재 조처 해제’가 가능할 것이란 지적은 끊임없이 나왔다. 특히 문제의 2400만달러 가운데 이른바 ‘위법행위’와 관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800만달러에 대해선 중국 정부에 ‘합법 자금’임을 통보하는 방식으로 쉽게 자금 동결을 풀 수 있다. 결국 조지 부시 행정부의 ‘결심’이 문제일 뿐, 딱히 타협이 어려울 것도 없는 문제다. 다만 아직까지 미국이 이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
지금 부시 행정부에 가장 중요한 것이 ‘핵확산 방지’다. 북한이 핵물질을 외부로 유출시키는 것도 문제지만, 핵물질의 총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상황도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플루토늄 생산 공장’이 돼버린 영변의 흑연 감속로 가동을 멈춰야 한다. 또 재처리가 가능한 폐연료봉을 봉인하고, 이를 감시할 국제 모니터도 배치해야 한다. 이는 제2차 북핵 위기가 발생하기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미국으로선 단지 ‘현상 복귀’로 보일 테지만, 이미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으로선 ‘추가 핵실험 유보’와는 비교도 안 되는 중요한 ‘양보’로 여길 수 있다. 대가 역시 만만찮게 요구할 것이란 뜻이다.
한국의 ‘주도적 역할’은 허상 될수도
재개될 회담의 가장 큰 난제는 ‘비핵화’의 개념을 두고 벌일 논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제1차 북핵 위기를 봉합한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는 이른바 ‘과거 핵’이 아닌 ‘현재 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핵실험 이후 ‘과거 핵’은 핵무기를 뜻하게 됐다. 이를 묵인하는 것은 곧 북한의 핵무장을 용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비핵화’는 ‘현재 핵’은 물론 ‘과거 핵’도 당연히 폐기 대상임을 뜻한다.
더구나 북한은 ‘핵 보유국으로서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 전체를 놓고 핵 군축 협상에 나서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이는 6자회담이란 틀 자체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발언이다. 특히 북한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 등은 핵 보유국으로서 핵 군축 협상에 당사자가 될 수 있지만, 일본과 한국은 핵 비보유국으로서 구경만 해야 할 처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 미국이 이런 구도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어찌됐든 회담의 실질적 진전을 가로막을 수 있는 폭발력 있는 논쟁거리임은 분명하다.
우리 정부의 처지가 답답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4차 6자회담을 이끌어내기 위해 정부는 대북 직접 송전 방식을 뼈대로 하는 ‘중대 제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대한 북한의 공식 반응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적 대북 제안을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금으로선 ‘공동의 포괄적 접근’이 유일한 희망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란 목표를 위해 북-미 양국이 취해야 할 조처들을 제시하고, 포괄적 협상 타결을 위해 북-미를 설득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하지만 협상이 ‘핵 군축 회담’ 쪽으로 흘러갈 경우, 이 또한 쉽지 않다. ‘우리 정부의 주도적 역할’은 허상이 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체면 살린 중국, 북한에 ‘성의’ 보일 것
다시 ‘공’은 미국 쪽으로 넘어갔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시간’이다. 지금까지 부시 행정부는 ‘시간은 미국 편’이라고 여겨왔다. 북한의 도발에 ‘무시’로 일관하며 압박의 수위를 높여가면, 북한이 제 풀에 지쳐 무너지거나 적어도 대화에 나설 것이란 논리였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졌다.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으로선 이제 협상이 늦어지더라도, 정권이 유지되는 한 핵물질 보유량을 늘려 위협을 키워가면 그만이다. 시간 싸움에서 북한은 자신들이 우위에 섰다고 여길 공산이 크다.

여기에 회담 재개 합의라는 ‘선물’을 받아든 중국으로선 북한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 북한이 외교적 ‘체면’을 세워준 상황에서 중국이 대북제재에 적극 나서기는 어려워 보인다. 설령 재개된 6자회담에서 별다른 진전이 없더라도, 북한이 회담 탁자를 박차고 나가는 모양새만 보이지 않는다면 중국이 대북압박에 동참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움직임은 북한에 별다른 압박이 될 수 없다.
여섯 번째를 맞는 6자회담은 그래서 쉽지 않아 보인다. 시작부터 이른바 ‘근본 문제’를 두고 한판 대결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모든 핵 프로그램 폐기를, 미국은 북-미 수교와 불가침 약속을 맞바꿔야 한다. 이는 동북아 안보 지형의 근본적인 변화를 뜻한다. 냉전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동북아에서 ‘냉전질서 관리자’ 노릇을 해온 미국이 이런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느냐, 그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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