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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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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 대형기획물의 끔찍한 맛

등록 2006-10-18 00:00 수정 2020-05-03 04:24

저작권료에서 최고가 기록하며 계약할 때 이미 의 비극 시작… 스타 마케팅과 출혈 마케팅 벌이며 달성한 100만부는 출판시장에 어떤 의미인가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어느 만두공장 사장이 만두를 많이 팔기 위해 묘책을 짜냈다. 온 국민이 사랑하는 장금이를 데려다가 만두를 빚게 해 장금이가 직접 빚은 만두라고 광고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일명 장금이 만두는 하루아침에 지적이고 예쁜 장금이가 직접 빚은 만두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만두공장은 큰돈을 벌었고, 예쁜 장금이도 로열티를 쏠쏠하게 챙겼다지.”(북에디터 인터넷 사이트, 아이디 wizard)

대리 번역에 전문가의 윤문 과정도

올해 단 하나의 100만 부 돌파 도서가 되리라 예측되던 의 대리번역 의혹이 불거져나왔다. 이전까지 의 위력은 대단했다. 5월 22주째 베스트셀러 1위를 하며 가 세운 역대 최장기간 기록을 깼고, 9월 첫쨋주까지 38주간 1위를 기록한 뒤 권좌에서 내려왔다.

대리번역 의혹에 대해 책을 출간한 한경BP는 “원번역자 김아무개씨와 정지영씨가 동시에 번역을 진행한 ‘이중 번역’”이라며 “전문번역가가 아니라 번역한 원고가 안 좋을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책의 출간 과정이 예상보다 길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황상 대리번역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원번역자인 김아무개씨는 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8월12일께 다른 사람 이름으로 나간다는 조건을 달고 번역 계약을 했다. 당시에는 번역자를 누구로 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덧붙여 김씨는 “가 저작권료를 많이 준 작품이어서 마케팅상 유명인사를 내세워야겠다는 얘기는 했다”는 사실까지 밝혔다(2006년 10월11일자). 한 출판사 편집자는 “상식적인 출판이었다면 전문번역가를 감수자로 붙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경BP는 출간을 빨리 하기 위해 동시에 번역을 진행했다고 하지만, 번역 원고를 받은 뒤 ‘전문 윤문작가’에게 맡겨 글을 손질하는 ‘시간 끌기’도 했다. 김아무개씨도 인터뷰에서 “편집자가 편집하는 과정에서 윤문을 (많이) 했다”고 말했는데 실제로는 편집자 정도가 아니라 윤문작가인 모씨가 참여했다.

이번의 대리번역 의혹은 ‘무리한 마케팅’이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는 지난해 입도선매 방식의 계약을 할 때부터 우려의 시선을 받았다. 자기계발 전문가인 호아킴 데포사나, 엘런 싱어의 <don eat the marshmallow yet>은 원저작처에서 아직 출판조차 되지 않는 책이었지만 ‘우화식 인생지침서’를 찾던 출판사들의 구애를 받았고 저작권료가 천정부지로 올랐다. 당시 이 책은 저작권 시장에서도 최고가인 12만달러(약 1억3천만원)를 기록하며 한경BP로 낙착되었다. 한경BP는 이후 ‘마시멜로 프로젝트’의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고 공을 들여나갔다.
책이 출간되자 대대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출판사는 ‘번역자’ 정지영의 인터뷰와 저자 사인회를 주선했다. 10월 말 출간하며 연말 분위기를 노린 회사는 1만원 상당의 다이어리를 사은품으로 붙였다. 독자들에게 “다이어리를 따로 사느니 를 사라”고 ‘설득’한 것이다. 당시 출판사의 엄청난 물량공세를 보며 한 출판사 편집자는 “엄청난 저작권료에다 저렇게 팔면 10만 부를 팔아도 이익이 남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해 말 는 예스24의 네티즌 선정 올해의 책에 오르고, 12월 셋쨋주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했다.

베스트셀러가 몰락을 부채질할 수도

이러한 출판사의 ‘계약부터 마케팅까지’의 전략적 사고는 최근의 출판 경향을 반영한다. 책을 만드는 개념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 중심에는 기획자들이 움직이고 있다. 80년대에는 필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원고 잘 주면 큰 오자 없이 내는 게 다였다. 9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기획자는 저자를 설득해서 원고를 받고, 들어온 원고의 개고를 요청했다. 그런데 2000년대 기획은 원고의 시작이 출판사의 필요에 의해서 시작된다. 원고를 받는 게 아니라 원고를 쓸 필자를 고른다.
기획자들은 ‘철저하게 준비한 원고는 성공’하게 된다고 말한다. 기획 개념의 목표는 ‘베스트셀러 만들기’다. 최근의 베스트셀러인 등이 기획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위즈덤하우스에는 기획만을 전담하는 수십 명의 인력이 있고 이들은 2주마다 전체회의를 한다. 이때 여러 기획서가 제시되는데 2만 부 이상 팔리지 않을 것 같은 기획서는 ‘보류’된다. 위즈덤하우스의 한 기획자는 “그런다고 다 2만 부가 팔리겠어요?”라며 “다른 조급한 출판사에 비해서 여건이 좋은 편이다. 인센티브도 플러스 개념으로만 운영되는데 이런 규모를 운영하기 위해서 2만 부가 적정선이다”고 말한다. 규모가 대형 기획물의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이 되는 것이다. 자연히 대형 출판물은 물량공세를 뒷받침할 대형 출판사에서 나온다. 2004년 랜덤하우스와 중앙이 합작해 만든 랜덤하우스중앙은 1천억원 매출 목표를 천명하기도 했다.



베스트셀러 지향 시장은 마시멜로같이 말랑말랑하고 입에 달콤한 책들이 쏟아지는 콘텐츠의 하향평준화로 직결된다. 이러한 기획마케팅이 견인하는 출판시장은 곧 한계를 드러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많아봤자 한국어 시장은 5천만 명 내외다. 100만 부면 다 팔았다고 봐야 한다. 100만 부가 되는 게 있다면 시장 자체가 안 팔리는 시장이 되어버린다. 나눠먹기가 안 된다”고 말한다. 그는 덧붙여 “출판사(史)에는 베스트셀러가 몰락을 부채질한 사례가 부지기수다. 대표적으로 고려원을 보라. 자연스러운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기획력이 뛰어난 베스트셀러라면 현상의 반영이겠지만 스타 마케팅, 출혈 마케팅으로 갈 수밖에 없는 현재의 형국에서는 이러한 시스템은 단기간에 무너진다”고 말한다. 등 악수를 거듭한 대형 기획물이 새겨들을 말이다. 참고로 의 교훈은 ‘마시멜로를 참고 먹지 않는 자가 성공한다’였다.



‘이름’ 없으면 이름도 없다

처녀 번역작을 빼앗긴 7년차 번역자의 고백

▣ 김영아(33·가명) 프리랜서 번역가

이름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명도고 하나는 태어날 때 받은 성명이다. 번역판에서는, 말장난 같지만 “이름 없으면 이름이 없다”. 이름 없는 번역자가 자기 이름을 표지에 올리지 못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번역가(街)에서 처음부터 ‘이름’(지명도)을 얻을 수는 없다. 아나운서나 탤런트가 아닌 한 말이다. 그래서 처녀 번역작은 대부분 자신의 것이 아니다. 이번 ‘마시멜로 사태’는 이름 없는 번역자의 설움 또한 단적으로 보여준다. 처녀 번역작을 잃어버린 7년차 한 번역자의 사연을 구술받아 정리했다. 편집자


2002년 말 소속된 번역회사 I에서 책을 하나 건네주며 번역을 하라고 했다. 그 책을 받고 나서 속으로 깜짝 놀랐다. 서양 탐험시대의 역사를 다루는 작가의 책이었는데, 최근 출간된 책 <h>가 반응이 좋아 후속작 및 전작들에 대한 계약이 성립되었고, 그중의 한 권이 나한테 온 것이다. “이런 인연이”라는 마음은 속 좋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작가의 이전 출판된 작품 <h>는 나의 잃어버린 자식이니까.
1999년부터 번역을 시작했다. 유명 번역가 S씨가 하는 번역회사에서 번역일을 도왔다. 보수는 거의 없었다. 이름이 나가는 일 없는 기업 번역을 하고 몇 권의 번역을 도운 시점에서 S씨가 <h>의 원서를 건네며 “이 책은 당신 이름으로 나가는 책이다. 언제까지 번역을 해달라”고 말했다. 초짜 번역가에게 “이름이냐, 돈이냐”라고 묻는다면 “이름”이라고 답할 것이다. 1500원 미만의 번역료였지만 내 이름으로 책이 나간다는 생각에 밤낮없이 매달렸다. 책도 재밌었다. 책을 받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일독할 정도로. 책을 다 번역해서 넘기고 옮긴이의 말까지 써서 넘긴 뒤에 S씨에게서 그 책은 자신의 이름으로 나간다는 말을 들었다. 너무 화가 나서 번역회사를 옮겼다. 이후로 S씨는 잠적했고 번역료도 받지 못했다.
I사로 번역회사를 옮긴 뒤에도 사정이 많이 나아지진 않았다. 몇 달 정도 기업 번역을 한 뒤 I사의 대표가 건네준 (S) 라는 책을 번역했고 이 책은 나의 ‘공식적’인 처녀작이 되었다. 이 책의 출판사가 역자 교정을 맡기는 등 ‘직거래’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도 계약서까지 ‘직거래’를 한 것은 아니었다. 출판사와 여러 권을 싼 가격에 번역해준다는 동의하에 개별 책에 대한 계약서가 번역회사 이름으로 작성되었고, 나는 이 계약서에 명기된 번역료의 절반을 받았다. 이때 번역료는 1250원이었다. 그렇게 I번역회사에서 1년 정도를 일했다. 그래도 내 이름으로 번역된 책을 낸 뒤에는 사정이 나아졌다. 출판사의 편집자가 번역을 의뢰하기도 했다. 1년 전 여름 번역자들이 주축이 되어 모인 B번역회사로 옮겼다. 아직도 I사로부터는 300만~400만원을 받지 못했다.
현재는 일반 번역자의 수준보다 조금 높은 번역료를 받고 있으며, 현재 소속된 B사의 원칙이 그러해서 번역료를 못 받거나 자기 이름으로 못 나갈지 모른다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다른 번역자들에 비해 상황이 훨씬 나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풍족한 생활과는 거리가 멀다. 어려운 책은 석 달도 걸리는데 수입은 고작 300만~400만원 정도니까. 그래도 번역을 업으로 삼고도 줄곧 해오던 영어 과외를 지금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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