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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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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도박권의 탄생

등록 2006-09-01 00:00 수정 2020-05-02 04:24

1975년 뇌물 등의 우려로 폐지됐다가 90년대에 부활한 상품권의 역사 … 2002년 4조5천억원 시장으로 폭발, 성인용 오락기와의 동침을 시작하다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대한민국을 ‘도박 공화국’으로 만드는 데 기름을 부은 상품권의 역사는 상품권법이 제정된 196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품권법은 “권면에 금액을 표시하는 상품권의 확실한 상환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일본의 ‘상품권규제법’(1932년 제정, 현재는 ‘선불식지급증표의 규제 등에 관한 법률’로 대체)을 본떠 1961년 12월27일 만들어졌다. 법은 “상품권의 확실한 상환”이라는 목적에 걸맞게 소비자 보호를 위한 의무 공탁제(발행액의 절반 이상)와 상품권 표시 내용의 규제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도서상품권이 만든 빈틈

법은 만들어졌지만 발행 성과는 대단치 않았다. 정부의 규제가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상품권은 1971년 신세계·미도파·화신 등 백화점과 와이셔츠 업체인 시대, 관광업체인 한일관광·국제관광공사, 제화업체인 에스콰이어 등 8개 업체가 발행 허가를 받으면서 각광받기 시작했다.

상품권의 전성시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1975년 12월, 정부가 “상품권 열풍 탓에 물가가 오르고 상질서가 문란해졌다”며 모든 종류의 상품권 발행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종로 화신백화점 앞을 지나던 중 사람이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무슨 일 때문이냐”고 묻자, “상품권 구입을 위한 인파”라는 대답을 듣고 뇌물 등 부작용을 우려해 폐지를 지시했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1980년대는 상품권의 암흑기였다. 제화업체들은 할부구매전표·현금보관증·물품교환증 등의 이름으로 유사 상품권 발행과 유통을 멈추지 않았고, 정부는 이를 뒤쫓아다니며 벌금 물리기에 정신이 없었다. “현실적으로 유통되는 상품권을 차라리 양성화하자”는 업계의 요구가 거셌지만 정부는 끝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988년 올림픽이 지나고 대망의 1990년대의 문이 열렸다. ‘상품권 불허’ 방침을 유지하던 정부 정책에 빈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990년 10월에는 이어령 당시 문화부 장관이 “국민들에게 책을 많이 읽히자”는 취지 아래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던 도서상품권을 도입했고, 쌀과 바꿀 수 있는 양곡상품권의 발행도 시작됐다. 결국, 1994년 2월 정부는 업계의 요구에 밀려 모든 상품권 판매를 전면 자율화하는 대신, 상품권법을 개정해 각종 소비자 보호 규정들을 신설했다. 5년 뒤 정부는 돌이킬 수 없는 마지막 한 발자국을 내딛고 만다. 1999년 외환위기를 거친 정부는 “쓸데없는 정부 규제를 없앤다”는 명분으로 상품권법을 전격 폐지했다. 이로써 상품권법으로 유지되던 소비자 권익 보호 규정들은 사라지고, 상품권법은 완벽한 사인(私人)간의 거래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1997년 기준으로 200개 회사에서 1조5891억원 규모이던 상품권 시장은 2002년 4조5천억원 정도로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정확한 수치는 아무도 모른다).

수수방관하는 사이 26조원 공룡으로

상품권과 성인용 오락기의 동침이 시작된 것은 그 무렵부터다. 통상 ‘오락실’ 게임으로 불리는 아케이드 게임산업의 수익성 악화로 막다른 길에 몰린 오락실 주인들은 1998년부터 경품을 취급하는 성인용 오락산업에서 활로를 찾았다. 2002년 12월30일 문화관광부는 ‘게임제공 업소의 경품 취급 기준’을 개정해 도서상품권·문화상품권·국민관광상품권·호텔시설이용권 등을 제공할 수 있게 만들었다. 상품권은 가맹점을 통해 현물과 교환되는 대신 오락실 앞에 자리한 환전방에서 10~12%의 할인율로 환전되기 시작했다. 청와대·문화관광부·영상물등급위원회·경찰·국회가 4년 동안 수수방관하는 사이 상품권은 26조원 규모의 ‘도박권’으로 변질됐다. ‘도박민국’이 완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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