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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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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 펀드’는 독배인가 씨앗인가

등록 2006-09-02 00:00 수정 2020-05-03 04:24

경제개혁센터를 참여연대로부터 독립시킨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 활동 본격화 … 지배구조개선운동은 ‘자본의 국적성’ 시비를 뚫고 재벌개혁운동의 성과를 이어갈까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8월24일 서울 지하철 교대역 근방에 있는 서초동 강우빌딩 2층의 자그마한 빈 사무실에는 20~30개의 간이의자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의자마다 하나씩 놓여 있는 유인물 겉표지에는 ‘경제개혁연대 창립총회’라고 적혀 있었다. 사무실 앞쪽 벽에는 같은 글귀가 적힌 커다란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재벌개혁운동 10년 만의 전환점

저녁 7시가 가까워지면서 의자가 하나둘씩 차기 시작했다.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활동을 통해 바깥으로 얼굴이 알려진 이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초창기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을 주도했던 장하성 고려대 교수(경영대학장)는 조금 늦게 도착해 좌중을 둘러보더니 “시작이 조촐해야 뒤가 창대한 법”이라며 웃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의 사회로 정관, 조직구성안 등 안건이 속속 처리됐다. 장 교수의 바통을 이어받아 소액주주운동을 이끌어온 김 교수는 이날 경제개혁연대 초대 소장으로 정식 임명됐다. 마지막 안건인 예산안이 처리되자 박수 소리가 장내를 가득 메웠다.

이로써 우리 사회의 재벌개혁운동을 주도해온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는 ‘경제개혁연대’라는 별도의 독립조직으로 거듭났다.

이날 경제개혁연대의 출범에 따라 소액주주운동으로 대표되는 재벌개혁운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경제개혁연대는 경제개혁센터와 달리 참여연대의 ‘우산’에서 벗어났다는 외형적 변화 외에 활동의 ‘내용’에서도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개혁센터의 분화를 촉발시킨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일명 ‘장하성 펀드’)가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함에 따라 기존의 소액주주운동은 한 단계 발전된 형태의 ‘기관투자가 운동’과 연계돼 펼쳐지게 된다. 여기에는 재벌개혁운동을 위한 밑바탕 자료를 생산, 제공하는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CGCG)가 합세하고 있어 운동의 전문화를 꾀하게 된다. 1996년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경제개혁센터 전신)에서 시작된 소액주주운동과 법·제도 개선 운동을 중심으로 한 재벌개혁운동이 꼭 10년 만에 분기점을 지나고 있는 것이다.

참여연대 체제에서 이뤄진 지난 10년의 경제개혁운동은 이런저런 비판도 받았지만, 나름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운동 참여자들은 자평하고 있다. 실제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결과물을 적잖이 꼽아볼 수 있다. 국내 처음으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제일은행 소액주주운동’(1997)을 필두로 ‘삼성전자 전환사채(CB) 발행 무효소송(1997~2003), ‘집중투표제 의무화 및 증권 집단소송제 도입 입법운동’(2000~2003), SK그룹 부실 책임 추궁 및 부당지원 반대’(2003~) 등이 줄줄이 이어졌다.

제일은행 전·현직 임원들을 상대로 한 주주대표소송은 사법부가 소액주주의 권리를 처음 법적으로 보장해준 것일 뿐 아니라, 이사들이 불법행위로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데 대한 법적 책임을 분명히 함으로써 기업 경영 관행을 바꾼 사건으로 평가된다. 삼성전자 주주대표소송과 아울러 이건희 삼성 회장에서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로 이어지는 불법·편법성 경영권 승계 시도를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린 성과도 있다. 증권 집단소송제 도입운동은 법제화로 결실을 거뒀다.

소액주주운동의 빛과 그림자

2001년부터 경제개혁센터를 이끌어온 김상조 소장은 “주주참여운동을 통해 우리나라의 기업지배구조가 외형적으로 많이 개선됐다”며 “여기에는 경제개혁센터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젠 예전처럼 황당한 일, 예컨대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과 같은 행태를 하는 기업은 없을 것이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의 영향이다.” 김 소장은 또 “외환위기 이후 상법, 공정거래법, 증권거래법 개정에 참여연대(경제개혁센터)의 영향이 안 들어간 데가 거의 없다”며 “법·제도 개선에 기여한 점도 중요한 성과로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성과의 배경으로 김 소장은 “캠페인성의 큰 슬로건(구호) 대신 구체적인 사안을 내걸고 구체적인 성과를 기록하는 방식으로 (운동을) 진행했다”는 점을 들었다. “판결문에 ‘위법’으로 찍히면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기 어렵다. 그렇게 법이 바뀌면 경제주체들의 행동도 바뀌고 변한다. 그런 점에서 경제개혁센터의 가장 큰 기여는 ‘운동의 방법론’이었다고 생각한다. 먼 미래의 큰 목표 대신 작더라도 구체적인 성과를 축적함으로써,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변화를 이끌었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경제개혁센터의 운동 모델은 뚜렷한 한계를 띨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도 많다. 경제개혁센터의 상징인 소액주주운동에서 특히 많은 한계를 엿볼 수 있다. 소액주주운동의 행동주체는 마땅히 ‘소액주주’여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최소한의 지분을 위임받아 시민단체(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가 대신 나서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행위자(경제개혁센터)와 수익자(소액주주, 회사)가 다른 이런 방식의 운동은 장기간 지속되기 어렵다.

소액주주 쪽에서 취할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도 있다. 소액주주운동은 ‘문제제기’에 그칠 뿐 ‘해결’로까지 나아가기 어렵다는 비판은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김상조 소장은 “기업지배구조 개선 노력은 본래 각종 연기금, 보험사 등 기관투자가들이 할 몫”이라며 “기관투자가들이 제 역할을 하면 시민단체 차원의 지배구조 개선운동은 불필요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지배구조 개선펀드는 바로 이런 기관투자가의 역할 모델을 제시해 기관투자가들이 제 몫을 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나 지배구조펀드의 지배구조 개선운동 모두 어차피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참여연대 체제에서 펼쳐진 경제개혁운동에 대해선 이같은 ‘미시적 한계’ 외에 ‘원천적 결함’을 안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경제개혁운동의 공격 대상이던 재벌 쪽은 제쳐두고라도, 진보진영 일각에서도 참여연대 개혁 모델에 대해 냉소적 시각을 드러낸다. 특히 국민경제의 민주적·자주적 발전 대안을 깃발로 내건 ‘대안연대회의’는 참여연대의 개혁 모델을 ‘주주자본주의’로 규정하고, 이는 신자유주의(시장만능주의)와 양극화 경향을 강화시킨다고 비판한다.

재벌의 이익을 상류층에 재분배했다?

대안연대에 참여하고 있는 정승일 국민대 교수(경제학부)는 라는 책에 실린 논문 ‘주주이익 극대화의 함의’에서 “소액주주운동이 주장하는 경제민주화란 수십만의 국내 주식 투자자들과 1만~2만의 영·미계 투자펀드들을 위한 부의 재분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소액주주운동은 분명 경제민주화를 일부 달성했는데, 과거 수백~수천 명에 불과한 극소수의 재벌 가족과 장군들에게 특권적으로 독점됐던 부와 재산이 주주혁명의 결과 수십만 명의 국내외 상류층에게 골고루 재분배되고 있다. 즉, 경제 민주화가 달성됐으되 수십만 명에게 달성되고 있다.” 정 교수는 “주주자본주의의 진전은 다양한 형태의 투자·소득 양극화, 그로 인한 저투자·저성장과 함께 고용 없는 성장과 빈부격차 심화, 비정규직 확대를 초래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실업극복국민연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공순씨는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을 ‘배타적 권리의 확정’일 뿐이며, (외국계) ‘투기자본의 사회적 기초’로 기능한다고 규정한 바 있다. 그는 2004년 8월(당시 실업극복국민연대 정책실장) 금융경제연구소 주최 투기자본 국민 대토론회에서 “경실련이 넓은 의미의 ‘시장’에서의 공정성을 문제 삼았다면,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은 좁은 의미에서, 즉 소유권을 가진 이들 사이에서의 권리의 개념을 확정하고자 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소액주주운동은 그 참여를 처음부터 배타적인 것으로 한정한다. 이것이 참여연대의 활동 방식이 경실련과는 다른 ‘법’ ‘권리’적인 측면에서 문제에 접근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유일한 기준은 누가 소액주주의 권리를 더 잘 보호해줄 것인가에 불과하기 때문에, 예컨대 ‘SK사태’에서 보듯 기업의 지배권이 누구에게 넘어가는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참여연대에 대한 대안연대 등 진보진영 쪽의 비판은 이 밖에도 다양하게 제시되는데, 이를 거칠게 요약하면 ‘자본의 국적성’ 시비라고 볼 수 있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는 자본의 국적에 상관없이 오직 불법·부당한 행위를 하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개혁운동을 진행해왔다. 이에 반해 대안연대 쪽은 외국계 투기자본을 주요 공격 대상으로 상정해 외국자본의 폐해를 알리고 이에 대한 적절한 규제를 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참여연대 개혁 모델은 ‘외국자본의 고배당 요구 → 투자 위축 → 경기 침체, 양극화 심화’라는 악순환 고리를 더욱 굳힌다는 비판이 여기에 덧붙는다.

참여연대 쪽은 이에 대한 나름의 논리적 반박 근거를 제시하고 있지만, 뉴브리지캐피털·론스타 등 외국계 자본의 투기적 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터여서 ‘자본의 국적성’ 시비는 대중들한테 상당한 울림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른 부담은 참여연대 ‘우산’을 벗어난 경제개혁연대에서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경제개혁연대는 예전의 경제개혁센터와 달리 지배구조개선펀드와 밀접하게 연계된 것으로 인식해 ‘자본의 국적성’ 시비는 더 거세질 개연성이 높다. 경제개혁연대와 지배구조개선펀드는 독립적으로 활동하게 된다지만, 활동의 목표나 인적 구성으로 보아 한 덩어리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이런 터에 1300억원에 이르는 펀드 자금이 모두 외국자본이라는 사실은 결국 외국계의 ‘배’만 불려준다는 비판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음을 예고한다.

펀드 자금 모두 외국자본

김상조 소장은 “10년 전 소액주주운동을 벌일 때도 좌파니 사회주의자니 별별 소리를 다 들었다”며 “(새로운 차원의 지배구조 개선운동을 위해서는) 초기의 비판적 목소리는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의 지배구조 개선운동은 ‘돈’, 그것도 ‘외국자본’과 긴밀하게 연결된 펀드와 얽혀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차원의 운동인 동시에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자칫 참여연대 시절 10년 동안 쌓은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다. 경제개혁연대-지배구조펀드가 ‘독배’를 든 것일까, 새싹을 틔울 ‘씨앗’을 보듬은 것일까?



소액주주운동에서 기관투자가운동으로

미국계 라자드와 손잡은 ‘장하성 펀드’의 투자 전략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일명 ‘장하성 펀드’)는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가 ‘경제개혁연대’로 독립 분리된 것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애초 참여연대의 조직 구상 때부터 경제개혁센터를 비롯한 활동부서들은 독립해 분화 발전한다는 쪽으로 맞춰져 있었다”며 “속칭 ‘정하성 펀드’의 출범으로 (경제개혁센터의) 분리 독립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장하성 펀드’는 기관투자자의 역할 모델을 제시하고, 경제개혁연대는 (예전의 경제개혁센터처럼) 소액주주운동과 법·제도 개선운동을 더욱 전문적으로 수행해야 할 때여서 일반적인 시민단체 내부에 계속 있기 어렵게 됐다는 설명이다.
‘장하성 펀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삼성전자를 비롯해 국내 재벌그룹들의 봉건적 행태를 비판하고 소액주주운동을 이끌어온 장하성 고려대 교수(경영학과)가 자금 모집을 주도해 설립한 투자회사다. 펀드 운용은 미국계 라자드에셋매니지먼트가 맡고 있으며, 한국 책임자는 존 리(48)로 알려져 있다. 존 리는 장 교수와 함께 ‘장하성 펀드’의 핵심으로 꼽힌다.
‘장하성 펀드’는 올 5월 출범했으며, 미국 버지니아대와 조지타운대재단 등 국내외 10여 개 기관에서 1300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펀드 규모는 연내 2천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 펀드는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개선한다는 전략에 따라 투자해 수익금을 투자자들에게 돌려주게 된다. 펀드의 수익률이 종합주가지수(KOSPI 지수)를 웃돌면 일정 비율의 금액이 장 교수에게 돌아가며, 이는 전액 재단에 출연돼 공익 목적으로 쓰인다. 장 교수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CGCG)는 라자드 쪽에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 정보를 제공하는 컨설팅 계약을 맺고 있다.
펀드의 투자 전략은 두 가지다. 투자대상 회사를 10~30개 정도로 잡아 지배구조가 나쁜 회사 두 곳을 골라서 하는 ‘적극적·공격적 투자’가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지배구조가 좋은 회사에 대한 ‘소극적 투자’ 전략이다. 대부분 소극적 투자 대상이 된다.
‘장하성 펀드’는 경영 참여를 목적으로 대한화섬 주식 6만8406주(5.15%)를 확보했다고 8월23일 공시해 본격적인 활동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펀드는 “소액 주주의 권리 개선, 독립적인 이사회 운영, 회사와 그 계열사들 사이의 거래 투명성 개선, 배당금 증액, 주주이익을 저해하는 유휴자산의 매각”을 회사 쪽에 요구했다. 대한화섬이 소속된 태광그룹 전체의 지배구조 개선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장하성 교수의 재벌개혁운동이 소액주주운동에서 기관투자가운동으로 옮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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