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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추~ 기관차가 폭주한다

등록 2006-08-24 00:00 수정 2020-05-03 04:24

지난달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 뒤 16경기 19안타 불 뿜은 추신수 선수…‘악바리’ 근성으로 플래툰 시스템 벗어나 에이트-툴 갖추는 게 목표

▣ 김동훈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지난 8월4일 미국 프로야구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구장 펜웨이파크에서 한 동양인 선수의 운명을 바꾼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

3-3 동점이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6회 초 공격. 1사 만루의 기회에서 타석에는 키 작은 동양인이 들어섰다. 그는 양쪽에 모두 귀마개가 달린 헬멧을 쓰고 있었다. 마이너리거가 착용하는 헬멧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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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투수는 보스턴의 에이스 조시 베킷. 플로리다 말린스 시절이던 2003년 월드시리즈 최우수선수(MVP)이자, 올 시즌 아메리칸리그 다승 2위(13승6패)를 달리는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투수다.

투수로 이름 날리다 타자로 스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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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과 다윗의 대결. 베킷은 초구에 156km짜리 강속구를 던졌다. 순간 동양인의 방망이가 정확히 공의 중심부를 강타했다. 포물선을 그린 공은 펜웨이파크 외야 가장 깊숙한 우중간 관중석에 꽂혔다(펜웨이파크 외야 펜스는 타원형이 아니라 각이 진데다 오른쪽 펜스가 유달리 높다). 베킷은 어이없다는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다이아몬드를 돌아 홈을 밟은 선수는 한국인 추신수였다. 그의 이름 석 자가 한국과 미국에 동시에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이날 이후 클리블랜드 팬들은 추신수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추~ 추~” 하면서 응원을 한다. ‘칙칙폭폭’처럼 열차 소리를 흉내낸 것이다. 그의 별명은 ‘추추 트레인’. 폭주 기관차처럼 거침없이 달려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7월27일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클리블랜드로 전격 이적했다. 이적 뒤 17일 현재, 16경기에서 53타수 19안타(0.359) 15타점으로 영양가 듬뿍 담긴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경기당 거의 1타점씩 올리고 있고, 19안타 중 홈런 2개와 2루타 6개로 장타율이 0.585에 이른다.

추신수는 고교시절 이승엽처럼 좌완 투수로 이름을 날렸다. 부산고 2학년 때인 1999년 대통령배 고교야구 결승전에서 그는 9이닝 동안 삼진을 무려 16개나 잡아내며 대회 최우수선수에 뽑혔다. 이듬해에도 우승과 함께 최우수선수상을 받았다. 그해 캐나다에서 열린 제19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는 한국의 우승에 기여하며 최우수선수상과 최우수 좌완투수상을 한꺼번에 거머쥐었다. 이때 시애틀 매리너스 극동 담당 스카우트였던 짐 콜번은 그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계약금 137만달러(약 13억원)라는 거액에 그를 낚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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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은 추신수를 투수보다 타자로 키우려고 했다. 정교한 타격과 폭넓은 수비, 센스 있는 주루플레이에 장타력과 강한 어깨까지 이른바 ‘5가지 기능’(파이브-툴)을 모두 갖춘 선수로 평가한 것이다. 하지만 추신수는 자신이 타자로 스카우트된 줄도 모르고 있었다. 교육리그에서 첫 경기를 하던 날, 그는 엉뚱하게도 마운드에서 몸을 풀 정도였다.

이때부터 시작된 마이너리그 생활은 길고도 험했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이겨냈다. 그는 마이너리거 최고 수준인 월급 6400달러(약 600만원)를 받으며 야구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해했다. 그리고 마이너리그 4년차이던 2004년, 팀내 올해의 마이너리거로 선정되는 작은 기쁨도 누렸다. 마침내 지난해 4월22일, 추신수는 5년 만에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빅리그를 통보받는 순간,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한 살 아래인 아내 하원미씨는 한 시간을 넘게 울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는 더욱 녹록지 않았다. 그의 포지션(우익수)에는 일본이 자랑하는 스즈키 이치로(33)가 버티고 있었다. 대타로 잠깐씩 출전하며 받아든 성적표는 10경기에서 1할도 안 되는 타율(0.056)이었다. 다시 기약 없는 마이너리그로 떨어졌다. 1년여 만인 올 7월 다시 빅리그로 올라왔지만 4경기 11타수 1안타(0.091)로 역시 타율은 1할을 밑돌았다. 그리고 며칠 뒤 추신수는 아예 짐보따리를 쌌다. 클리블랜드로 전격 트레이드된 것이다.

메이저 입성한 포지션에는 이치로가…

추신수에게 클리블랜드는 ‘희망의 땅’이었다. 우선 라커룸 분위기부터 달랐다. 누구 하나 말 붙여주는 이 없던 시애틀과는 달리, 클리블랜드 라커룸은 언제나 화기애애했다. 또 시애틀은 5할을 밑도는 승률에도 포스트시즌 진출에 아등바등했다. 추신수를 믿고 기다릴 여유가 없는 팀이었다. 하지만 클리블랜드는 내년 시즌을 대비하며 추신수 같은 루키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있다.

추신수의 메이저리그 첫 홈런도 이런 분위기에서 터졌다. 7월29일, 공교롭게도 친정팀 시애틀과 맞서 6회 말 볼카운트 0-3에서 홈런을 뽑았다. 볼카운트에 상관없이 스윙을 해도 좋다는 에릭 웨지 감독의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추신수는 선발 출장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차츰 마음의 안정도 찾고 있다. 클린업 트리오인 5번 타자로도 4번씩이나 나섰다. 지난 7일에는 아내 하원미씨와 돌이 지난 아들 무빈이가 클리블랜드로 이사하면서 호텔 생활도 청산했다.

지난 16일에는 고국에서 기분 좋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오는 12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아시아경기대회 국가대표 명단에 그의 이름이 오른 것이다. 추신수는 평소 “국가대표로 뛸 기회가 생긴다면 만사 제쳐두고 달려가겠다”고 말해왔다. 그는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서 제외됐다. 텔레비전으로 경기를 지켜보면서 마음 한구석 허전함을 달랠 수 없었다. 그런데 그토록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드디어 달게 된 것이다.

클리블랜드로 온 뒤 좋은 일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추신수는 아직 웨지 감독의 플래툰 시스템(한 포지션에 두 명의 선수를 번갈아 기용하는 것)을 적용받고 있다는 게 냉정한 평가다. 지난 13일 연속경기 1차전에서 6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이어갔지만, 2차전에서는 출장 기회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마이너리그에서 6년씩이나 ‘눈물 젖은 빵’을 먹었다. 시련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그는 천성적으로 근성도 타고났다. ‘악바리’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박정태(전 롯데)가 그의 외삼촌이다. 피는 속일 수 없는 모양이다.

추신수는 큰 꿈과 작은 꿈이 하나씩 있다. 큰 꿈은 어린 시절부터 달던 등번호 17번을 찾아오는 것이다. 클리블랜드에서는 메이저리그 톱스타 애런 분(33)이 달고 있는 번호다. 그는 현재 17번에 하나 모자란 16번을 달고 있다.

작은 꿈은 오른쪽 귀마개만 있는 자신의 헬멧을 맞추는 것이다. 팀에 있는 헬멧은 하나같이 옆이 맞으면 앞뒤가 너무 크고, 앞뒤가 맞으면 옆이 작다. 그래서 거추장스럽지만 마이너리거들의 양쪽 귀마개 헬멧을 착용한다.

그가 헬멧을 맞춘다는 것은 플래툰 시스템에서 벗어나 붙박이 주전으로 자리잡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등번호 17번을 달 때쯤이면 메이저리그 스타로 발돋움해 있을 것이다.

큰 꿈은 등번호 17, 작은 꿈은 헬멧

추신수는 곧잘 이치로와 비교된다. 체구와 포지션, 빠른 발과 정교한 타격 등 공통점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짧게나마 한솥밥을 먹었던 이치로에게는 별 관심이 없다. 그의 목표는 다른 곳에 있다. 메이저리그 최고 연봉 선수 알렉스 로드리게스(31·뉴욕 양키스)를 뛰어넘는 것. 이는 곧 ‘파이브-툴’에다가 선구안과 팀 공헌도, 품성까지 겸비한 ‘에이트-툴’에 도전함을 뜻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한 야구선수. 추신수의 원대한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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