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의 환수 움직임에 화가 났다”는 해괴한 억측까지 등장… 환수 내용과 독자적 작통권을 확보한 이후의 과제에 집중해야 할 때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건강한 토론을 기대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예상대로 억지가 판을 치고 있다. 논쟁의 틀도, 내용도 일방적으로 정해진 모양새다. 그저 성난 외침만 난무한다. 어느새 하나가 된 그들은 이렇게 외친다.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작통권) 환수는 절대 안 된다”고.
한-미 군사동맹, 그 순환논쟁의 오류
논리학은 때로 ‘실용학문’일 수 있다. 자기도 모르는 새 빠져들 수 있는 잘못을 깨우쳐주기 때문이다. 논리학에 ‘순환논증의 오류’라는 게 있다. 스스로 주장하려는 바를 자기 주장의 근거로 삼을 때를 일컫는 말이다.
따져보면 결국 있지도 않은 근거를 바탕으로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허망한 시도를 경계하는 것인데,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정부가 왜 이 사상을 탄압하는지 알아. 위험한 사상이기 때문이지. 왜 위험한 사상이냐고? 정부가 탄압하는 사상이니까 그렇지.”
작통권 환수를 둘러싼 ‘기이한’ 논쟁도 이와 비슷하다. 역대 국방장관들은 말한다. “작통권 환수는 안 된다. 작통권을 환수하면 한미연합사가 해체되고, 주한미군이 철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철수하느냐고. 그야 주한미군이 작통권 환수를 싫어하니까 그렇지.” 급기야 “미국이 작통권 환수를 가속화하려는 것은 한국의 작통권 환수 움직임에 화가 났기 때문”이란 해괴한 억측까지 등장했다.
기실 한-미 군사동맹에서 ‘순환논증의 오류’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한국의 방위를 위해 주둔하는 주한미군은 어느새 그 자체가 거스를 수 없는 ‘금기’가 돼버렸다. 미군 철수를 거론하는 것은 곧 반미였고, 친북이었으며, 불온한 사상이었다. 한 군사 전문가는 “북한에 비해 남한의 전력이 열세라는 주장을 지금껏 해오고 있는 것도 결국 미군 주둔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며 “군으로선 국방예산 확보와 군 조직 축소 논의 예방 차원에서도 주한미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게 여러모로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수단이 목적이 돼버린 꼴이다.
작통권 환수를 통해 자주국방의 초석을 다지겠다는 지금, 한반도의 ‘평화 관리자’로서 주한미군의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는 것은 지독한 역설이다. 작통권 환수를 추진하는 정부나, 이에 극렬 반발하는 보수 진영이나, 한결같이 한반도 방위를 위한 주한미군의 중요성을 경쟁적으로 강조한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지난 8월16일 열린 당정협의회에서 △한-미 상호방위조약 유지 △주한미군 지속 주둔 및 증원군 파견 보장 △미국의 정보자산 지원 지속 △한반도 전쟁억지력과 공동 대비태세 유지 등 작통권 환수를 위한 4대 원칙을 서둘러 마련하고 나선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작통권 환수를 둘러싼 ‘거짓 논쟁’을 바라보며 가장 행복해하는 쪽은 미국일 것”이란 한 안보 전문가의 말은 그래서 씁쓸하다.
헌법 74조 1항은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군을 통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학 교과서를 들춰보면 “군사력의 획득·관리·유지·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뜻하는 군 통수권은 “행정권의 수반으로서 대통령의 지위에서 나오는 권한이며, 국군 최고사령관으로서 국군을 지휘·통솔하는 것을 말한다”고 나와 있다. 이렇게 규정된 군 통수권은 크게 용병작전권(군령권)과 군사행정권(군정권)으로 나눠볼 수 있다. 육군본부가 1996년 내놓은 을 보면, ‘군령’을 “국가의 실력 수단으로서의 군의 행동을 지휘통솔하는 작용으로서 전투행동에 대한 지휘작용·작전연습·검열 등 용병작전 작용”이라고 적고 있다.
한미연합사령관 권한을 어떻게 돌려받느냐
전시 작통권이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위임된 현 상황은 대통령의 ‘군 통수권’ 행사에 분명한 걸림돌로 작용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8월15일 광복 61주년 경축사에서 작통권 환수를 두고 “국군 통수권에 관한 헌법정신에도 맞지 않는 비정상적인 상태를 바로잡는 일”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작통권 환수는 “어떤 조건이나 가정도 들이댈 수 없는 정언명령”인 것이다.
작통권 환수의 당위성을 부인하지 않는다면, 이를 둘러싼 논쟁은 작통권 환수의 내용과 독자적 작통권을 확보한 이후의 과제에 집중되는 게 자연스럽다. 작통권 환수의 핵심은 한미연합사령관이 수도 서울을 포함한 한국 방어 책임을 다하기 위해 가지고 있던 권한을 얼마나 올곧게 돌려받느냐로 모아진다. 군사·안보 전문가들은 “지휘·통제 시스템은 물론 군 부대의 이동과 훈련을 비롯한 군사행동, 공역 통제권, 교전 명령권, 각급 부대의 임무와 조직·무기체계·배치 등에 대한 작전계획 수립과 변경, 위협에 대한 평가에 이르기까지 연합사령관에 ‘위임’됐던 군령권을 우리 군 통수권자가 모두 돌려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에 한반도로의 진입 및 한반도에서의 진출 문제, 정찰과 훈련을 포함한 실제 군사행위 등에 이르는 주한미군의 활동에 어떤 형태로든 협의·통제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작통권 환수에 이행기간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많지 않다. 반세기 이어져온 군 지휘체제가 일대 격변을 겪어야 하는데, 성급하게 처리해 일을 그르칠 이유는 없다. 한 군 관계자는 이렇게 지적했다.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한 ‘작전계획 5027’은 위로는 합참에서 아래로는 각급 중대본부까지 촘촘하게 짜여 있다. 이를 전면 개편하는 데는 당연히 시간이 필요하다. 미군과 단절된 상태에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보완해야 할 부분에 대해선 일정한 전력증강 사업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연합사 체제에 안주해온 우리 군의 지휘·관리 능력과 부대별 작전계획 작성, 문서 시스템 구축 등 군 구조가 전면적으로 개편돼야 한다.” 작통권 환수는 ‘우리 군 환골탈태의 서막’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작통권 환수를 위한 구체적인 이행계획(로드맵)은 오는 10월 워싱턴에서 열리는 제38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공동 발표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작통권 환수의 큰 방향을 제시하는 것에 불과하다. 작통권 환수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까지 확정된 게 많지 않다. 예를 들어 중대하고 불리한 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긴장상태가 전개되거나 적의 군사개입 가능성이 있을 때를 뜻하는 “‘데프콘(전투준비태세)-3’ 발령의 주체에 대해선 아직까지 논의조차 이뤄진 바 없다”는 게 국방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1994년 평시 작통권 환수의 교훈
그럼에도 벌써부터 작통권 환수의 결과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방부가 8월17일 국회 국방위에 보고한 내용을 보면, 작통권 환수로 해체될 한미연합사를 대신해 가칭 ‘전시-평시 군사 협조본부’가 꾸려질 예정이며, 연합사의 상위 기구로 전략 지침을 하달했던 한-미 군사위원회도 존속될 예정이다. 한-미 군 당국 간의 유기적 협조체제를 마다할 이유는 없지만, 군사위원회와 협조본부 체제를 통한 ‘한-미 군사당국 간 유기적 협조’를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자칫 ‘한국 주도-미국 지원’이란 작통권 환수 이후 방위체제의 밑그림이 훼손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게다가 “육·해군과 달리 전시 초기 대응에 절대적 역할을 하는 공군의 경우, 연합사 체계가 거의 고스란히 유지될 것”이란 전망마저 나오고 있으니,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이다.
실제로 지난 1994년 평시 작통권 환수 때도 이런 현상이 벌어졌다. 제1차 북핵 위기와 김일성 주석 사망이란 안보불안 상황을 뚫고 이뤄진 평시 작통권 이양 과정은 애초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다. 당시 주한미군의 단계적 감축을 추진하고 있던 워싱턴 정가에선 작통권 환수를 찬성했지만, 한국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들 사이에선 이에 대한 반발이 거셌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한 군사전문가는 “이 때문에 로버트 리스타시 주한미군 사령관이 직접 워싱턴으로 날아가 백악관과 의회 등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로비를 벌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작전 및 정보능력과 정전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평시에도 일부 작통권을 연합사령관에게 위임하는 이른바 ‘연합권한위임사항’(CODA) 6개항이 만들어진 것도 이런 반발 때문으로 풀이된다. 권한 위임 사항에는 △연합연습 및 합동훈련의 계획과 실행 △전시 작전계획 수립 발전 △전쟁억제·방어·정전협정 준수를 위한 연합 위기관리 사무 △전쟁에서 핵심이 되는 지휘·통제·통신·컴퓨터·정보(C4I) 상호운용성 등이 포함됐다. 평시 작통권 환수를 두고 ‘앙꼬 없는 찐빵’이라고 비판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당국자는 8월18일 “연합사 위임사항은 작통권 환수 이전에 당연히 돌려받을 것”이라며 “구체적 일정은 양국 군사 당국 간 논의할 테지만, 구체적 이행계획이 확정되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그 문제도 정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1994년의 우를 범하지 않고, 작통권 환수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우선 작통권 환수의 시한을 명확히 못박고, 막판에 이를 되돌릴 수 있는 유보규정은 배제해야 하다는 게 군사·안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한 안보 전문가는 “한시적으로 협의기구를 구성해 작통권 환수 이행기에 필요한 조정사항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하되, 그 역할의 내용과 기능·권한을 시스템화해 권한 남용의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한-미 간 전·평시 긴밀한 협력을 위해 필요하다면 군사위원회의 성격과 역할, 기능과 권한을 세세히 규정해 군사협력 또는 군사협조위원회(MCC) 형태로 바꾸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다”며 “한미연합사를 대체할 협조본부의 기능과 역할 역시 하나하나 명문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탈냉전 시대 적정 군사력도 고민해야
지구촌이 이념의 동서로 갈려 팽팽한 군사적 대치로 치닫던 냉전 시절, 세계 각국은 이른바 ‘절대 억지력’ 확보를 위해 노력했다. ‘핵 절멸의 공포’가 불안한 평화를 지탱해주던 그때 ‘상호확증파괴’(MAD)는 현실성 있는 대안으로 여겨졌다. 우리 군이 주한미군의 압도적 무력에 기반해 대북 절대 억지력을 유지하는 데 주력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냉전은 이미 십수 년 전에 막을 내렸다. ‘북한의 위협’이란 위기의식의 공유에서 출발한 한-미 동맹은 남북 화해·협력의 증대로 전환점에 서 있다. 공유했던 위협의 실체가 바뀌면서 동맹의 형식과 군사대비 태세의 내용이 달라지는 건 당연하다. 작통권 환수 논의와 맞물려 탈냉전 시대 우리 사회가 보유해야 할 적정 군사력의 수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통권 환수는 자주국방의 끝이 아니다.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주한미군 주둔이 한국 방위를 위한 것이지, 미군 주둔 자체가 우리 국방·안보정책의 목적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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