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성 담론’ 주도적으로 제기해온 조항주 에이블재단 성상담센터 소장… 사회가 해결책 찾는 건 의무… 재방 반대한 여성단체에 유감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조항주(35) 에이블재단 성상담센터 소장은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 성 담론’을 주도적으로 제기하고 확산시켜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장애인 신문 의 성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해온 그는 지난 몇 년 동안 장애인의 성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해왔다.
대학을 다닐 때부터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1990년대 전부를 전국장애인운동청년회,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등에서 일했다. 2002년 한 남성 장애인을 인터뷰하면서 장애인 성 문제를 새롭게 인식했다는 그에게 이번 사태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에 남성만 등장해 불만도
여성단체들이 다큐멘터리 를 방영한 시민방송에 항의 공문을 띄웠다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 여성단체들에서는 어떻게 여성의 몸에 대해서 수요와 공급을 맞추고 서비스를 제공하느냐 하는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본다. 그럼 공창제와 뭐가 다르냐는 목소리 아닐까. 상당히 복잡한 사안이어서 더 논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는 장애인의 성 욕구가 실제로 이렇다고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방영하지 못할 이유는 특별히 없다고 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라. 감독이 “꼭 (성매매 업소에) 가야겠느냐.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더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어보는 장면도 있다. 의도적으로 몰아간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도 (여성단체들에서) 그렇게까지 보는 것은 왜곡된 시선인 것 같다. 물론 이 영화에도 아쉬움은 있다. 여성 장애인이 자신의 성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이 적었다. 남성만 등장했다.
장애인 성 향유권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낯선 주제인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다루는 데서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 먼저 장애인의 성 문제를 우리 사회 전체의 성 문제와 전혀 상관이 없는, 별개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 사회의 성 문제는 고스란히 장애인의 성 문제에 투영돼 있다. 여성 장애인들은 자신의 성 문제를 털어놓는 것 자체를 매우 꺼린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성적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면 ‘까진 년’ 취급을 당하기 때문이다. 남성 장애인들은 성매매 업소에서 욕구를 해결하려고 한다. 비장애인들의 행태와 맞닿아 있다. 이런 식이다. 장애인은 우주에서 날아온 개체가 아니다. 장애인의 성과 관련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편견도 많다. 장애인은 성적 욕구가 너무 강하다거나 없다, 정신지체장애인은 성적 욕구가 강해서 피해야 한다는 등이다. 장애인을 획일화하는 시각도 문제다. 장애인이 한 가지 체위로만 섹스하는 줄 안다.
장애인의 성 문제만을 특별하게 다뤄야 할 이유가 있나.
= 성 문제가 없는 이들을 향해서 우리가 나설 이유는 없다. 그런데 성 향유권에 접근하기 힘든 이들은 엄연히 있다. 공장 노동자나 농촌 총각, 노인 등은 성을 충분히 향유하기 힘든 이들이다. 장애인은 이들에 비해서도 접근이 쉽지 않다. 부부간 폭력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장애인 성 문제를 우리 사회는 무척 사적인 일로 치부한다. 네 고추가 서든 말든 난 관심이 없다는 식이다. 그러나 문제가 생기게 된 원인을 보면 사회적인 환경에서 비롯하는 측면이 크다. 사회적 지지와 지원이 다른 어떤 분야보다 필요하다.
마스터베이션이 뭔지 묻는 여성 장애인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가 있나.
= 대학 졸업 이후 장애인 단체들에서 일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됐다. 장애인 단체들은 지금도 그렇지만, 의식주 문제만 가지고 얘기한다. 물론 그것을 해결하는 게 기본이지만, 인간의 본능에 해당하는 성 문제도 중요하다. 96년쯤이었는데 주변 동료들도 장애인 성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 민감했다. 장애인 복지관 같은 곳에 성인용품 숍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내면 미친년 취급을 받았다.
장애인 성 문제 사례를 직접 대면했을 텐데.
= 고민과 욕구는 똑같지만 실현할 수 있는 방법과 능력이 모자란다는 차이가 있다. 44살 남성 장애인은 한 번도 섹스를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너무 궁금하다는 얘기도 한다. 섹스를 하려면 옷을 벗고 몸을 비벼야 하는데 그런 소통을 한 번도 못했다는 것이다. 파트너를 찾아달라고 하소연한다. 여성 장애인의 경우에는 남자를 만나 소통할 엄두 자체를 못 낸다. 마스터베이션 방법도 몰라서 묻는다. 성인용품은 어디서 구해요, 들키면 어떻게 해요 하는 식이다. 그런 상태가 마흔 살 넘어서 쉰 살까지 간다. 그러다 보니 이성 친구들이 자기를 이성으로 보지 않고 ‘동성’이나 ‘무성’으로 대한다는 고민도 털어놓는다.
장애인 커플들의 성생활은 어떻다고 보나.
= 역시 우리 사회의 성의식이나 성문화가 많이 반영돼 있다. 여성은 상대 남성에게 성적 만족감을 주지 못할까봐 무척 걱정한다. 하반신 장애의 경우에는 감각이 없을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남성들도 마찬가지다. 에너자이저가 되는 게 중요하진 않은데 여전히 ‘백만 하나, 백만 둘’에 목숨 건다. 만족시키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조바심을 낸다. 남성 장애인-여성 비장애인 커플이 남성 비장애인-여성 장애인 커플보다 훨씬 많다. 장애가 가벼운 남성들의 경우에는 비장애 여성을 만나려고 하는 경향이 짙다. 파트너가 아예 없는 여성 장애인 문제가 가장 심각한데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여성이 파트너를 찾거나 욕구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걸레 같은 년’이나 ‘문란한 년’으로 취급받는다.
‘성매매’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한 대목
성매매를 통해서라도 성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외국의 경우 제도적인 뒷받침이 되기도 하는데.
= 성관계는 그야말로 ‘관계’다. (동물의) 짝짓기와는 다르다. 그러나 장애인이 섹스만을 위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섹스를 하는 두 당사자가 동의만 한다면 문제가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섹스만 하려고 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성의 본질상 성관계가 자신은 즐겁지 않고 오로지 상대방을 위한 서비스의 의미만을 띤다면 폭력이 될 가능성도 함께 높아지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좀더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성매매와 관련해서는 우리 안에 이중적인 태도가 있다고 본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화해서 팔고 있다. 그런 자본주의의 근간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고 성 상품화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것은 문제다. 자본주의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성에 대해서만 문제 삼는 것은 고민이 부족해서이기도 하다. 왼손잡이에게는 왼손잡이용 글러브를 만들어 야구를 하도록 하지 않나. 장애인의 성 문제는 그에 맞는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하고 사회는 그것을 의무로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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