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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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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덕여대 민주화 제2라운드

등록 2006-08-04 00:00 수정 2020-05-03 04:24

비리재단 몰아내고 2년 지났지만 파업과 점거·징계 등 파행 계속… 총장-총학생회 극단적인 충돌… 이사회·대학평의원회가 나서야 할 듯

▣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사립학교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하기 힘든 것이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설립 허가를 받는 것이고, 두 번째는 교육부의 감사를 받는 것이며, 세 번째는 관선이사가 파견되는 일이다.

사립학교 설립 허가를 받기는 힘들지만, 허가만 받고 나면 감사나 관선이사 등 공공의 감시망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동덕여대는 2003년 비리 재단과 총장 퇴진, 학내 민주화를 외치며 이 세 가지 중 두 가지를 해냈다. 교육부 종합감사를 받았고 관선이사가 포함된 이사진을 꾸렸다. 그리고 2년 반이 지났다.

총학생회는 인정조차 못 받아

장맛비가 쏟아지던 지난 7월27일 동덕여대를 찾았다. 이날은 동덕여대 총학생회가 등록금 인상과 학생자치권 탄압에 반대하며 총장실을 점거한 지 두 달째를 넘긴 날이었다. 총장실이 있는 본관 앞에는 교수노조 동덕여대지회가 32일째 천막농성을 하고 있으며, 민주노총 전국대학노조 동덕여대지부도 보름이 넘게 천막을 치며 농성 중이었다. 2003년 학내 민주화 투쟁에 한몫했던 ‘동덕여대 문제해결을 위한 교육·시민·종교계 공동투쟁위원회’(공투위)는 다시 꾸려져 본관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비리 재단과 총장을 몰아내 민주사학의 본보기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동덕여대에는 ‘민주화’라는 보기도 좋고 듣기도 좋은 단어 대신 학보사 기자 해임과 장기파업, 총학생회 부정선거 의혹, 총장실 점거, 교수-학생 충돌 사태, 학생 검찰 송치, 징계 등 학내 분규를 상징하는 단어들로 가득했다. 대체 동덕여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2004년 10월 시민사회단체 인사로 잘 알려진 손봉호 총장이 동덕여대에 취임했다. 손 총장 취임을 두고 학내외에서는 새로운 동덕여대를 이끌어갈 적합한 인사라는 평과 함께 민주적 시스템 운영에 대한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그 기대는 학내 갈등이 하나둘씩 불거지면서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등록금 인상안 협상에서 민주적인 절차를 기대했던 총학은 협상 대신 높은 등록금 인상률만 받아들어야 했고 이번 총학은 학교 쪽이 제시한 부정선거 의혹으로 학교로부터 인정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손 총장에 대한 설문조사 기사가 객관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보사 기자가 해임되기도 했고 근로여건 악화 등 노조탄압으로 학내 직원노조가 80일간 장기파업에 들어가기도 했다.

동덕여대에는 지난 2년 동안 이처럼 크고 작은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교수노조 동덕여대지회장 장창곡(보건관리학과) 교수는 “손 총장 취임 이후 학교에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는 민주화의 역행이자 손 총장의 능력 부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손 총장의 퇴진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장 교수는 “손 총장은 동덕여대의 민주화 정신에 대한 인식 없이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이나 합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독선적인 행정을 펼치고 있고 학교의 장기적인 비전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계속되는 분규에 피로감

이에 대해 학교 당국은 지금의 상황을 과도기라고 주장한다. 김병일 교무처장은 “지난 2년은 20년간의 독재 이후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의 갈등이 표출되는 시기였다”며 “민주화 체제가 성립하는 과정이기에 학내 단체들의 역할분담 문제 등으로 진통을 겪고 있지만 이제부터는 수습하는 기간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무처장은 “손 총장은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대로 학교를 이끌어나가고 있다”라며 “총장 퇴진 등 학교의 근간을 흔드는 식의 요구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밝혔다.

손 총장에 대한 비판은 현재 보직을 맡고 있는 교수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처장직을 맡고 있는 보직교수들은 2003년 투쟁 당시 앞장서서 민주화를 요구했던 교수들이다. 이들은 구재단이 물러난 뒤 총장 직무대행 기간부터 보직을 맡고 있다. 그런데 학내에는 이 보직교수들을 중심으로 교수 사회의 파벌이 형성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수연(국사 4) 총학생회장은 “민주화 투쟁을 하면서 누구보다도 총학을 잘 아는 보직교수들이 학생자치권 탄압 등에 앞장서고 있다”며 “손 총장과 함께 보직교수들도 퇴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 교무처장은 “민주화 투쟁 이후 학교가 정상화되면서 각자 자기 자리와 역할로 돌아간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학교와 총학, 교수노조, 시민사회단체는 점점 더 각을 세우고 있지만 정작 학내 구성원들은 이에 대해 큰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다. 2003년 민주화 투쟁으로 생긴 기대가 점점 실망으로 바뀌었고 오랜 시간 계속된 학내 분규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동덕여대 재학생인 이아무개씨는 “학교를 다니는 4년 내내 조용할 날이 없었다”며 “2003년에는 우리 손으로 이뤄냈다는 만족감이 있었는데 지금 학교의 모습이 과연 민주화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또 “학교와 총학의 일방적인 주장만 있어 혼란스럽고, 그래서 더욱 입장을 밝히기가 머뭇거려진다”고 덧붙였다.

학내 분규가 도를 넘어서자 이사회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 동덕여대 이사회(이사장 박상기)는 교육부가 추천한 3명과 구재단이 추천한 3명, 공투위가 추천한 3명 등 9명으로 구성돼 있다. 지금까지 학교 문제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던 이사회는 학내외 단체들의 요구가 잇따르자 지난달 등록금 인상률을 2.5%선에서 재조정하기로 결의했다. 학교 쪽에서도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총학과 교수노조, 공투위 등은 이사회가 학내 분규 해결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촉구하고 있다.

학내 민주화의 ‘마무리’가 중요하다

사립학교법 개정에 따라 시행될 예정인 대학평의원회도 문제 해결에 하나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립대학이 의무적으로 구성해야 하는 대학평의원회는 교수와 직원, 학생이 참여하는 심의기구로 개방형 이사 추천권과 예산편성·학칙개정·정책결정 등에 대한 심의권을 갖게 된다. 이상철 사학개혁국본 자문위원은 “동덕여대 사태를 보면서 민주화 투쟁의 마무리와 제도적 보완, 지속적인 견제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며 “제도적 뒷받침과 시민사회단체의 관심으로 학내 민주화가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선관위까지 개입하라?

총학생회 부정선거 공방, 6개월째 지리한 줄다리기

“진실의 종아, 울려라!”
동덕여대 학교와 총학은 6개월이 넘도록 총학 부정선거 의혹을 놓고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다. 학교는 지난해 11월 치러진 총학 선거에서 선거인 명부와 실제 투표에 참여한 선거인 수가 일치하지 않는다며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선거에 참여한 학생 3천여 명 중 2천여 명을 대상으로 전화 조사를 벌여 ‘부정선거’라고 결론을 낸 뒤 선거로 뽑힌 총학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에 총학은 부정선거라는 정확한 증거를 제시하라며 반발했다.
지난 4월 학교는 총학 부정선거 의혹을 밝히기 위해 국가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의뢰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나랏일로 바쁜 중앙선관위가 대학 선거에까지 나설 리 만무하다. 중앙선관위는 개별 학교의 선거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며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5월에는 동덕여대 공투위가 나서 총학 선거 결과를 재검증했다. 그러나 학교는 재검증 실시가 일방적이고 공투위를 신뢰할 수 없다며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결국 동덕여대 교수들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만이 조사위원으로 참여해 선거 재검증을 지켜봤고 부정선거 의혹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6월 학교는 다시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공선협)에 선거부정 의혹 조사를 의뢰했다. 이를 받아들인 공선협은 동덕여대 총학선거논란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고 총학에 선거 관련 질의서를 보냈다. 그러나 이번에는 총학 쪽이 공선협 진상조사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했다. 총학은 손봉호 총장이 공선협 창립 시기부터 주요 역할을 하며 상임대표와 상임고문을 역임하는 등 공선협과 손 총장이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총학은 조사를 거부했고 공선협은 학교 한쪽만을 조사해 부정선거의 개연성이 있다는 판단을 내놓았다.
‘공정한 선거’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며 현 총학을 인정하지 않는 학교와 부정선거 의혹을 전면 부인하는 총학의 줄다리기는 양쪽 모두 인정할 만한 중립적인 단체가 나타나 진실을 밝힐 때까지 끝나지 않고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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