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건설업체와 십장 거쳐 현장 노동자까지 5~7단계까지 횡행… 저임금과 산업재해, 만성적 임금체불로 결국 파업투쟁을 부르다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2001년 레미콘 노동자 장기파업, 2002년 여수지역 건설노동자 장기파업, 2004년 타워크레인 노동자 집단 고공농성 및 대구 지역 철근노동자 파업, 2005년 울산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70일 파업 고공농성, 2006년 6월 대구·경북 지역 건설노동자들의 1개월 파업, 그리고 포항 지역 건설노동자들의 포스코 본사 점거농성….
전국 곳곳에서 건설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이 물결을 이루고 있다. 왜 그럴까? 건설산업의 어떤 특수성 때문인가?
‘토·일요일 유급휴무’ 쟁점으로 부상
그동안 다른 산업에 비해 근로 조건이 매우 팍팍했지만, 뿔뿔이 흩어져 일하기 때문에 집단행동을 감행하기 어려웠던 것이 건설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다. 그런데 근로조건이 열악한 것도, 또 집단행동에 나서기 어려웠던 것도 따지고 보면 “건설산업은 ‘수주 산업’”이라는 특징에서 비롯된다. 수주 산업은 자동차처럼 먼저 사람을 고용해서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공사를 따내면 그 뒤에 고용이 이뤄지는 식이다. 따라서 실업과 취업이 반복되면서 고용이 불안할 수밖에 없고,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횡행하게 된다.
다단계 하도급은 굴지의 대기업들이 저마다 건설업체를 하나씩 꿰차고 ‘비자금 조성’ 통로로 활용하는 좋은 방편(?)이 되기도 하지만, 건설산업 노동자들의 삶을 불안하게 만들고 결국 파업에까지 나서게 하는 ‘만악의 근원’이 되고 있다. 물론 원청 건설자본은 재벌기업들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일하는 노동자들이 속한 회사는 수많은, 고만고만한 전문 건설업체 또는 십장(오야지)들이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은 다단계 하도급을 2단계까지만 허용하고 있다. 발주자가 원청(일반·종합 건설업체, 즉 모든 공종별 면허를 갖고 있는 건설업자)에 도급을 맡기고 원청이 전문 건설업체(토목·철근 등 특정 공종 면허만 가진 건설업자)에 ‘하도급’을 주는 식의 2단계다. 전문 건설업체가 다시 다른 업체에 도급을 맡기는 ‘재하도급’은 금지된다.
그러나 실제로 건설현장에 가보면 5단계, 심지어 7단계까지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판치고 있다. 단계는 일반·종합 건설업체-전문 건설업체-십장-실행소장-팀·반장-팀·반장-팀·반장…-현장 노동자’로 이어진다. 하도급은 원청이 건설 비용을 절감하려고 선택하는 생산 방식인데, 하도급 업체 역시 재하도급을 주는 것이 매력적이다. 인건비와 직접고용 부담을 줄여 이익을 더 많이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단계 하도급은 건설업에 생리적인 것일까?
이번 포스코 본사 점거농성 사태의 발단은 하루 8시간 노동, 주5일 근무, 일요일 휴무 등이었지만 건설현장의 다단계 하도급 관행과 무관하지 않다. 건설현장은 주5일 근무에서 배제되고 있고, 주당 70시간에 이르는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된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일요일은 쉬고 싶다”고 호소하고 있지만, 사실 발주자나 원청 대기업 건설업체마다 ‘휴일은 쉬게 하라’는 등의 하도급업체 관리지침을 두고 있다. 이 지침을 내보이면서 매해 초에 하도급 업체들과의 상생협력을 선언한다. 그러나 실제로 현장에서 적용되는 건 드물다. 대외 홍보용 지침일 뿐이다.
주5일제는 지난 7월1일부터 100명 이상 사업장에 확대 적용되고 있는데, 이에 따라 상당수 건설현장에서 토·일요일 유급휴무가 쟁점으로 부상했다. 2002년부터 레미콘 노동자들이 현장투표를 거쳐 일요일에 쉬자고 결의하고, 타워(크레인)노조는 일요일에 타워를 가동하는 건설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집회를 갖고 일요일 휴무를 요구해왔다.
그러나 실제로 주5일제가 이뤄지고 일요 휴무를 위해서는 주휴수당 같은 법정 수당 지급이 선결과제다. 건설산업노조연맹 최명선 부장은 “일본, 말레이시아, 네팔도 건설노동자들이 일요일에 다 쉬는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일요일에 쉬자’고 노동자들이 싸움에 나서야 하는가”라며 “건설노동자들이 일용직 형태이지만 임금은 매월 단위로 지급받고 있는데, 주5일제가 무급으로 시행되면 임금 20%가 삭감된다. 토요일을 유급휴일로 한다고 전문업체들이 과연 나자빠질 정도인가?”라고 말했다.
공사비 누수는 부실 시공으로
건설현장에서 “돈만 주면 일할 사람이 올 것”이라는 시절은 이미 옛날이 됐다. 임금 체불이 빈번한데다 주5일제도 시행되지 않고 고용도 불안한 건설현장에 젊은 사람들이 들어올 리 만무하다. 포항 지역 건설노조 토목 일용노동자는 평균적으로 나이 53.7살에 18년 동안 일해왔다. 그러나 1년 내내 일해도 월차·연차 휴가도 없고, 일당 12만원이라 해도 유급휴일·가족수당·자녀학자금 지원 같은 ‘임금 외 혜택’은 전혀 없다. 2004년 건설산업 재해자는 1만8천 명이다. 이 중 사망자는 779명, 1년 내내 하루 평균 2.1명씩 사망하는 셈이다. 아파트 평당 분양가 1천만원인 시대에 180만 명에 달하는 건설 일용노동자 임금은 숙련공이라도 월평균 184만원에 불과하다. 2005년 노동부 조사에서 전체 노동자 임금이 평균 7% 안팎 올랐지만, 건설업만은 -0.8%로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물론 저임금과 산업재해 빈발, 임금 체불 모두 하도급 구조 때문이다. 실제로 건설교통부와 건설산업노조연맹에 접수된 건설노동자 체불임금 중 73%가 불법 다단계 하도급으로 인한 체불로 나타났다. 임금 체불 유형으로는 △하도급 업체가 십장에게 공사대금 미지급 △브로커의 유용·잠적 △실행소장 및 팀장의 유용·잠적이 대부분이다. 노동부에 접수된 건설산업 체불임금은 2004년 한 해만 3만5천 건에 이른다. 최명선 부장은 “브로커와 십장이 여러 곳에 공사현장을 갖고 이쪽에서 돈을 받아 저쪽 현장을 틀어막다가 나중에는 터뜨리고 도망가버리는 식”이라고 말했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인해 건설업계에는 항상 중간 브로커들이 활개치게 마련이다. 이른바 ‘부금이사’와 ‘시다오케 오야지’(단순히 도급 알선만 하고 자신은 현장 일에 참가하지 않는 십장)가 대표적인데, 부금이사는 전문 건설업체에 이사로 등재돼 있지만 인맥을 활용해 자기 이름으로 공사를 따온 뒤 회사에는 5% 정도 수수료를 내는(부금) 브로커다. 이들은 일당이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돌아가든 상관없이 무조건 공사부터 따낸 뒤에 현장에 회수되는 기성금만으로 도급공사를 벌인다. 그러다 보니 현장 노동자들에게는 ‘야리끼리’(일정량의 일을 할당받아 끝내는 작업 형태)로 일이 떨어지고, 작업 물량을 받으면 옆도 돌아보지 않고 쉴 새 없이 일해야 한다. 하도급이 다단계로 내려오다 보니 건설현장에서는 임금을 3∼4개월씩 깔아놓고 주는(지급이 밀리는) 이른바 ‘스메끼리’가 관행화돼 있다.
임금 체불이 발생하면 7∼8단계 하도급을 거치면서 자신의 임금이 계속 깎여 지급됐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사용자가 누구인지 찾아나서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일쑤다. 다단계 하도급 때문에 고용관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노동자 임금뿐만 아니라 실공사비도 하도급 단계를 거치면서 계속 빠져나가는데, 예컨대 애초 100억원에 발주한 공사가 최종 단계에서는 38억원짜리 공사로 쪼그라들게 된다. 물론 공사비 누수는 부실 시공으로 이어진다. 최명선 부장은 “콘크리트 골조의 경우 아파트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공법과 자재를 쓰면 적어도 60년 이상 수명이 보장된다는데, 우리나라는 20년도 안 돼 재건축할 정도인 것도 다단계에 따른 부실 시공 때문”이라고 말했다. 건설산업연구원이 지난 5월 팀·반장 311명과 전문 건설업자 1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불법 다단계 하도급은 원청 또는 발주자가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브로커 농간 부채질해온 ‘시공참여제도’
그렇다면 임금 체불과 관련해 발주처와 원청사의 ‘사용자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현행 근로기준법에 원청의 잘못이 인정될 경우 하청업체와 연대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건설산업기본법에도 원청업체가 하도급 업체 아래 단계에 있는 재하도급 업체에 하도급 대금(개별 노동자 임금이 아니라)을 직접 줄 수 있는 근거가 있다. 이와 관련해 건설교통부 쪽은 “현재로서는 임금 체불과 관련해 원청과 발주자한테 임금 지급 (연대)책임을 묻는 법리적 논리를 구성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합동법률사무소 ‘참터’의 강문대 변호사는 “불법 다단계를 원청이 묵인한 경우에도 공사 부실화와 이에 따른 임금 체불을 초래한 책임을 원청에 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휴수당·시간외수당 등 법정 수당 문제는 이른바 ‘포괄임금계약’(각종 수당이 일정액으로 임금에 포함돼 있다고 보는 것)이란 명목 아래 건설노동자들에게는 사실상 배제돼왔다. 수당 지급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하면 법원과 노동부는 포괄임금 약정을 광범위하게 인정해 사용자의 책임을 면제해주곤 했다. 강문대 변호사는 “건설현장 노동자들에게 주휴·연·월차 등 법정 수당은 사실상 폐지된 것이나 다름없었다”며 “포괄임금 제도를 폐지하거나 건설현장 노동자에게는 시간외수당 정도만으로 극히 제한해 인정하는 방식으로 법정 수당을 확보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7월25일 건교부는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시공참여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시공참여제도는 성수대교·상품백화점 붕괴사고 이후 부실 시공의 원인을 찾다가 시공에 직접 참여하는 자를 실명화해 책임 시공을 정착시킨다는 취지로 1996년에 도입됐다. 시공 참여자한테 도급을 내려줄 경우에는 예외로 재하도급을 인정해준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시공참여제도는 “다단계 하도급 관행을 오히려 존속·확대시켜주는 제도”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건설산업연구원 심규범 연구위원은 “시공참여제도에선 중간 단계에서 실공사비만 챙기는 건설 브로커들이 활개치고, 이들은 도급 구조에서 은폐되고 팀장·반장이 시공 참여자로 등장하게 됐다”며 “팀·반장은 자신도 기능공으로 현장에서 일하면서 가끔 도급을 받아 10여 명 정도 사람을 데리고 일하는 노동자들이라서 임금을 책임질 자본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다”고 말했다.
예전에 십장은 일하지 않고 사람만 끌어모으는 인력 모집책에 불과했으나, 시공참여제도가 시행된 뒤부터는 이들이 직접 근로를 제공하면서 ‘사업주’로 등장하게 됐다. 현장에서 형님, 동생하는 사람들이 이제 한 사람은 ‘사용자’(팀장)가 되고 다른 동료들은 일꾼이 되어 같이 일하는 셈인데, 전문 건설업체들은 시공참여약정서(도급계약서)에 산재·체불임금·안전장구 지급·4대 보험 가입·세금 납부 등 모든 책임을 십장·팀장한테 떠넘겨왔다. 건설산업노조연맹에 따르면, 노동부도 시공참여 계약만 있으면 십장을 무조건 사용자로 간주하는 경향을 보여왔다고 한다. 겉으로야 ‘사용자’라도 자금력이 없는 십장·팀장들이 체불임금을 해결할 능력이 있을 리 없다. 전문 건설업체들은 시공참여계약을 내세워 ‘도급계약 해지’ 형태로 언제든지 현장 인력을 해고해버릴 수도 있었다.
참혹한 조건 속에서 숙련공 고갈 위기
건설교통부 쪽은 “시공참여제도가 폐지됐으므로 이제 전문 건설업체는 자신과 도급계약을 맺어온 기존 십장과 일용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며 “고용 형태는 한두 달 계약직 형태이든 일당제든 성과급제든 여러 형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임금도 전문 건설업체가 개별 노동자들의 급여통장에 직접 넣어야 하고, 4대 보험에도 가입해야 한다. 이에 대해 강문대 변호사는 “전문 건설업체가 직접 고용하게 되면 부실이나 임금 체불이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시공참여제도가 없어진다 해도 건설현장의 관행인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없어질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앞으로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드러날 경우 전문 건설업체와 현장 노동자가 직접 고용관계를 맺는 것으로 간주하는 규정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건설업의 특수성을 감안해 건설노동자들에게 ‘악천후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또 독일은 옥외노동과 중노동에다 취업과 실업이 반복되는 고용불안에서 건설현장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수주 산업’이라는 특징에도 불구하고 현장 인력을 상시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있다. 정반대로 우리나라에서는 수주 산업이라는 특징이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낳고 있고, 참혹한 노동 조건 속에서 건설현장은 숙련공 고갈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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