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 집중된 관심 되찾고 6자회담 복귀의 명분 찾게 된 북한… 미사일방어망 구축 힘 얻은 부시, 큰 흐름에선 얻은 게 더 많아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애초부터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는지 모른다. 따져보면 모든 것이 몇 장의 위성사진을 바탕으로 한 추정이었다. 그 안에서 무수한 정치적 계산만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청진에서 남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의 미사일 발사대에 ‘다단계 로켓 추진체’가 올려진 순간부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북한의 ‘미사일 게임’은 그래서 위태로워 보인다.
액체 연료통, 눈길 끌기 위한 미끼?
북한발 ‘미사일 위기’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발사대에 올려진 미사일은 요지부동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지난 며칠새 급격히 냉온탕을 오갔다. 6월18일 오후까지만 해도 상황은 급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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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당국자들도 ‘막바지’라는 단어를 되뇌기도 했다. 등 일부 일본 언론을 중심으로 “북한 지도부가 주민들에게 ‘2시에 국기를 게양하고, 5시에 텔레비전을 통해 대국민 메시지를 청취하라’는 명을 내렸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발사 임박설’은 탄력을 받는 듯했다.
하지만 상황은 거기서 멈췄다. 미사일 발사대 주변에 즐비한 액체 연료통은 ‘연료 주입이 끝난 것 아니냐’는 추론을 가능케 했지만 더 이상의 상황 진전은 없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장맛비가 발사 연기의 ‘유력한’ 이유로 떠오르더니, 이제는 액체 연료통 자체가 눈길을 끌기 위해 갖다놓은 미끼였는지도 모른다는 추정까지 나오고 있다.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현 단계에서 정보를 취합할 때, (미사일 발사가) 아직 확정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밝히자, 위기설을 퍼뜨리던 미국 언론들도 이내 ‘자기 성찰’을 시작했다.
‘발사 임박설’이 해프닝으로 마무리되기 무섭게 북한의 의중을 드러내는 발언이 한성렬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 차석대사의 입을 통해 나왔다. “우리는 주권국가로서 미사일을 개발·배치·시험할 권리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수출할 권리도 있다. (하지만) 미사일 시험발사에 대해 미국이 우려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면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그는 이어 “이른바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는 조-미 사이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만 적용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으론 미사일 발사의 논리적 근거를 밝힌 것으로 보이지만, 방점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데로 모아진다.
이에 대한 조지 부시 행정부의 반응은 쉽게 예측이 가능했다.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으로 비판을 받아온 부시 행정부가 유독 북한 문제만큼은 ‘다자주의’를 강조해온 탓이다. “외교적으로 문제를 푸는 게 원칙이다. 북한이 회담에 복귀하기만 하면 어떤 논의든 가능하다. 6자회담 틀 안에서 얼마든지 북-미 양자접촉이 가능하다. 그러나 ‘나쁜 행동’에 대한 보상은 있을 수 없다. 미사일 발사 위협 때문에 양자접촉에 나서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로써 적어도 표면상으론 미사일 카드를 활용한 북한의 대화 제의와 이에 대한 미국의 거부라는 모양새가 만들어졌다.
“크루즈 미사일로 선제공격해버리자”
이러는 사이 미 국방부가 미사일방어망(MD)을 실전 모드로 전환했다는 보도가 흘러나오더니, 급기야 ‘선제타격론’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1998년 1차 북한 미사일 위기 때 대북 조정관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해 북-미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담은 일괄 해법을 내놓았던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국방차관보를 지낸 애슈턴 카터와 공동으로 6월22일치 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용납하면 그들은 더욱 대담해질 것”이라며 “잠수함 발사 크루즈 미사일 등으로 대포동 미사일을 선제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쯤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 북한의 ‘미사일 게임’으로 조성된 위기 국면을 가장 즐기고 있는 건 누구인가? 분명 북한은 이란에 집중되던 미국과 세계의 관심을 ‘되찾아’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온건파에게서도 ‘대북 정책의 총체적 실패’라는 비판을 받고 있던 부시 행정부 역시 ‘미사일 게임’으로 조성된 위기 국면이 싫지만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잇따른 실험 실패로 움츠러들던 미사일방어체계 구축도 아연 활기를 띠게 된 것은 ‘부수입’이다.
한 안보전문가는 이렇게 지적했다. “북한은 6자회담에 복귀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미국의 금융 제재를 받고 있는 형편에 이대로 회담에 복귀하는 건 ‘굴복’으로 비쳐질 우려가 있다. 당연히 군부도 반발할 것이다. 그러니 명예롭게 회담 탁으로 복귀하기 위한 사전작업이 필요하다. 이번 미사일 위기는 그런 면에서 효과적이다. 이란 핵으로 몰렸던 국제적 관심을 북한 쪽으로 되돌려 대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한편, 북한 내부에서도 미국에 ‘본때를 보여줬다’는 명분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9·19 공동성명 이후 위폐 문제 등으로 미국에 끌려다니던 북한이 미사일 카드를 통해 상황을 반전시키는 계기로 삼으려 했다”고 지적한다. 결국 미사일 발사는 없을 것으로 본다는 게다. 그는 “1999년 5월 페리 당시 대북정책조정관의 방북 때도 북한은 ‘미사일 게임’을 벌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며 “북-미 사이에 협상이 타결돼 이른바 ‘페리 보고서’가 나올 때까지 5개월여 동안 북한은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대에서 내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북한이 궁극적으로 6자회담에 복귀하더라도 미국 입장에선 북한에 내준 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 작은 판에선 북한이 얻은 게 있을지 몰라도, 큰 흐름에선 미국이 얻은 게 많아 보이는 게 현실이다.
6자회담 8~9월 재개설과 위험한 발사대
북한 쪽 6자회담 차석대표인 리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이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미국 방문을 추진 중이다. 리 국장은 군축평화연구소(IDP) 부소장 자격으로 연구원 4명과 함께 보스턴의 매사추세츠공대(MIT)와 샌프란시스코의 스탠퍼드대 주최 학술회의에 초청을 받은 상태다. 미 국무부가 리 국장의 입국사증을 내주고 방미 기간 동안 비공개적으로라도 북-미간 직접 접촉이 이뤄진다는 가정을 전제로, 6자회담 8~9월 재개설을 조심스럽게 거론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미사일 위기로 미뤄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이 “두세 달 안에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추론에 불과하다. ‘미사일 카드’의 위력은 미사일이 발사대를 벗어나기 전까지만 유효하다. 미사일이 발사대를 벗어나는 순간 ‘불확실성’은 사라지게 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대에 오래 세워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는 사이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의 장마 구름은 걷히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게임은 이래저래 위태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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