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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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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부와 금감위의 후안무치

등록 2006-06-30 00:00 수정 2020-05-03 04:24

감사원 감사 결과로 드러나는 ‘외환은행 매각’과정의 막가파식 행태… 론스타에 유리한 콜옵션 조건 억지로 관철시킨 뒤 6100억원 챙겨줘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자격 없는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헐값 매각했다”는 감사원의 외환은행 매각 의혹 감사 발표 직후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 등 금융감독 당국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재경부는 “당시 외환은행 론스타 자본 확충이 이뤄지지 않았으면 외환은행은 부도 사태에 직면했을 것이고 금융시장은 혼란스런 상황에 빠져들었을 것”이라고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또 매각 가격인 주당 4250원(신·구주 가중평균)은 당시 주가보다 높은 수치라면서 헐값 매각 주장을 일축했다. 금감위도 “적법한 절차와 충분한 검토를 거쳐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자격을 승인했다”고 반박했다.

은행 부실 부풀려 협상가격 낮췄다?

그러나 참여연대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과 관련된 경제관료들을 즉각 경질하라”고 촉구하면서 “외환은행 매각은 금융감독 기구가 정치적·정책적 목적을 위해 권한을 남용하면서 야기된 관치금융의 폐해”라고 주장했다.

이른바 ‘모피아’라고 불리는 재정경제부의 인적 결합망이 법과 원칙을 초월해 감독기구의 집행 기능을 무력화한 사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재경부와 금감위의 항변은 과연 일리 있을까?

감사원 발표는 외환은행과 재경부가 은행을 파는 입장인데도 왜 은행 부실을 최대한 반영하거나 부풀려 오히려 기업가치를 낮게 평가해 헐값에 매각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당시 한국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지분(사실상의 공적자금)을 합치면 정부가 외환은행의 최대주주였는데, 정부 돈 회수를 극대화해야 할 금융감독 당국이 오히려 싸게 팔아 국고 손실을 초래한 셈이다. 감사원은 “외환은행의 소수 경영진이 론스타와의 딜을 성사시키기 위해 부실을 과장해 협상기준 가격을 낮게 산정했는데도 감독 당국이 제대로 검증하거나 확인하지 않고 관련 법규를 무리하게 적용해 은행법상 인수 자격에 문제가 있는 론스타에 매각했다”고 밝혔다. 또 “재경부가 매각을 막후에서 조정하는 방식으로 관여하고, 재경부와 금감위가 은행법상 지분 10% 이상을 취득할 수 없는 론스타 펀드의 주식 취득 ‘예외승인’을 요청하는 공문을 주고받는 등 책임을 전가하는 행태를 보였다”고 결론 내렸다. 사실 과거 신용카드 부실 대란 때도 재경부와 금감위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빴다.

재경부와 금감위가 “당시 정책 판단에 잘못은 전혀 없었다”고 반박하지만, 감사원 재정금융3과 관계자는 “자산 규모 70조원이나 되는 은행을 잘못 팔아놓고서 ‘론스타한테 돈 안 먹었다’고 합리화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콜옵션(만기일 또는 그 이전에 미리 정한 행사가격으로 자산을 살 수 있는 권리) 대목만 봐도 재경부의 주장은 금세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미 구속된 변양호 당시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은 수출입은행이 론스타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콜옵션 조건에 결사반대하자 이를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넣고 콜옵션 행사가격까지 정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통해 론스타는 추가로 매각 차익 6100억원을 더 챙길 수 있었다. 감사원 관계자는 “신주와 구주를 합쳐 이미 51% 이상의 경영권을 갖게 됐는데도 콜옵션을 덤으로 얹어주는 건 국제 인수·합병 관행상 이례적인 경우다. 딜이 안 깨진다는 사전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론스타의 무리한 콜옵션 요구가 관철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재경부가 매각을 조언하고 방향을 지도하는 수준을 넘어 이미 일을 다 해놓고 수출입은행에 도장 찍으라고 했다. 론스타가 인수 자격이 있느냐는 외환은행의 질문에 재경부 국장이 ‘그런 것은 너희가 신경쓸 일 아니다. 계속 협상하면 된다’고 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재경부가 지도감독은 해야 하지만 권한을 부당하게 행사했다는 것이다. 특히 당시 외환은행 1대 주주였던 코메르츠방크에도 재경부는 ‘너희가 론스타 매각에 동의하지 않으면 공적자금이 들어가고 감자가 이뤄져 주식이 휴짓조각이 될 수 있다’고 협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감사원 발표와 재경부의 반박 대응에 대해 성균관대 김태동 교수(경제학)는 “경제를 일반 국민도 정치인들도 잘 모르다는 것을 악용해, 잘 안다고 자칭하는 공무원들이 여러 번 일을 저질렀다. 국제통화기금(IMF) 협상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도 근거 자료가 없거나 박약한 상태에서 결정됐다”며 “관료들이 늘 정책 실패를 감추려고 하는데, 정책실명제를 도입해 당당하게 결재 라인에 자기 이름을 기록하고 정책 판단에 대한 증거물을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공장 하나 짓는 것도 수십 개의 도장을 찍도록 귀찮게 하는 것이 경제관료들인데, 정작 자신들은 나중에 책임질 일이 생길까봐 빠져나가려고 기록을 안 남기는 것을 관행처럼 하다 보니 은행을 파는 쪽이 오히려 싸게 파는 이상한 일까지 벌어진 것”이라고 했다.

일본의 경제관료 실패를 보라

일본 경제 기적은 가장 우수한 엘리트들이 모인 ‘통산성(MITI)의 기적’으로 불린다. ‘일본주식회사’가 말해주듯 실제로 경제관료들은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고,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거의 모두 관료들이 입안해왔다. 그러나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보내면서 부동산 버블에 대한 경제관료 책임론이 제기되고 대장성 관료들의 부패 스캔들이 잇따라 터지면서 ‘경제관료의 실패’가 확산됐다. 이제는 관료가 아니라 선출된 국회의원 등이 정책 결정을 주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고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투기자본감시센터 장화식 정책위원장은 “정부가 제일은행은 부실이라고 팔고, 한미은행은 ‘50 대 50’ 합작투자 형식을 갖췄다는 이유로 펀드에 팔더니 다음에는 아예 론스타 투기펀드에 그냥 넘겨버렸다. 한마디로 투기자본의 ‘먹튀’ 천국을 만들어줬다”며 “외환은행 불법 매각은 투기자본과 경제관료의 사슬, 그리고 잘못된 금융 구조조정의 역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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