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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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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코 센세, 히노마루와 싸운다

등록 2006-06-30 00:00 수정 2020-05-03 04:24

강제하강과 불기립으로 저항하다 징계당한 어느 일본 여교사의 투쟁…“전쟁의 상징 가르칠 수 없다” 부당한 정직·전근 지침에 1인 시위중

▣ 도쿄=황자혜 전문위원 jahyeh@hanmail.net

장마를 앞두고 뜨거운 햇살이 가차 없던 6월 초 도쿄도 다치가와시 다치가와 제2중학교. 굳게 닫힌 교문 앞에 외롭고도 의연한 ‘1인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네즈 기미코(55). 바로 2달 전까지만 해도 이 학교에서 가정 과목을 가르치는 인기 교사였다. 닫힌 교문을 뒤로 그녀가 홀로 버텨야 하는 이유는, 통학 자전거 핸들 바구니에 꽂혀 있는 팻말이 말해주고 있었다.

2004년 3월 뒤 350여명이 징계받아

“히노마루 앞에 일어서지 않았다고 해서 3달 동안 정직시킨 것은 부당합니다. 학교는 단 하나의 사고만을 강요하는 곳이 아닙니다. 왜 기미가요의 의미와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치지 않습니까?”

도쿄도 교육위원회(도교위)가 2003년 내린 ‘10·23 통달’ 이후, 각 학교 입학식과 졸업식 전에는 반드시 교장으로부터 각 교사에게 ‘직무명령서’가 떨어진다. 그리고 이것이 히노마루 게양 때 기립하지 않은 교사에 대한 징계의 근거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10·23 통달’은 2004년 3월부터 기립 거부 교사의 처분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350여 명의 교사가 징계받았다. 처음에는 경고가 주어지지만 거듭될수록 감봉 2개월, 6개월, 정직 1개월, 3개월 순으로 강도를 더해간다.

그런데 네즈 기미코 교사의 경우 처음부터 6개월 감봉 처분을 받았다. 게다가 지난해 입학식과 올해 졸업식 때 각각 정직 1개월과 정직 3개월 처분이 더해졌다. 스무 살 때부터 시작해 35년 동안 교단에 서온 네즈 교사의 이력이 한마디로 ‘징계투성이’가 되고, 결국 도교위 지정 ‘요주의 인물’이 된 이유는 뭘까.

바로 1994년에 일어난 한 사건 때문이었다. 도쿄도 하치오지중학교에 근무한 지 4년째가 되던 해. 교장이 직원회의 결정을 무시하고 히노마루를 게양한 것이 화근이었다. 학생들 역시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히노마루 게양 못하게 해요.” “말도 안 돼~. 히노마루 내리라고요!”

아이들은 목청껏 소리쳤다. 그때 학생들의 반발에는 아랑곳없이 일방적으로 게양된 히노마루 게양대 앞으로 다가간 이가 바로 네즈 교사였다. 모두의 앞에서 ‘천천히’ 그리고 ‘당당하게’ 히노마루를 내렸다.

당시 학생들의 반발은 이 학교에서 네즈 교사가 일궈낸 평화 교육의 결과였다. 주변 학교에까지 소문날 정도로 히노마루·기미가요 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도가 높았고, 그들 스스로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어난 ‘히노마루 강제 하강’을 빌미로 그녀는 ‘감봉 1개월’의 처분을 받았다. 또 이를 계기로 도교위는 ‘10·23 통달’ 이후 네즈 교사가 ‘반항하는 족족’ 강도를 더한 징계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자료에 히노마루의 ‘히’자만 들어가도 훈고(주의) 처분을 내리기까지 한다.

“센세, 감바래!” 방과 후 아이들의 응원

그뿐만이 아니다. 원래 공립학교는 한 학교에서 3∼7년 동안 근무하다가 전근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시하라 도쿄도지사에게 충실하기로 소문난 도교위는, 자신들의 눈밖에 난 네즈 교사를 1년 만에 다른 학교로 전근시켜버렸다. 이미 다른 학교로 발령이 떨어진 네즈 교사는 일주일의 반은 현 다치가와 제이중학교 교문 앞에서, 그리고 나머지는 전근이 확정된 새 학교 교문 앞에 가서 매일같이 히노마루 처분의 부당성을 알리는 ‘1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방과 후 닫힌 교문이 열리면서 학생들이 하나둘 무리지어 나온다. 네즈 교사에게 인사를 건네는 학생들. “센세, 감바래!”(선생님 힘내세요!) “선생님, 아직도 복직 안 된 거예요?” 네즈 교사 주변에 아이들이 모여들고 선생은 마치 수업을 끝내고 돌아가는 아이들과 교문 앞에서 특별 방과 후 수업이라도 하는 양, 자연스런 분위기를 만들어나갔다.

수업 시간에 채 이해가 안 간 것을 물어보는 아이, 학급 일을 보고하는 아이, 선생님 자전거 옆으로 가 히노마루에 대해 묻는 아이들. 이들은 네즈 교사에 대해 하나같이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시고 많은 경험을 들려주시니 최고!”라고 입을 모았다.

이렇듯 아이들이 좋아하고 인정하는 교사가, 도교위의 지도하에 교장을 위시로 한 지역의 우익 세력에게까지 ‘부적격 교원’이라 공격당하고, 히노마루 문제로 부당한 처분을 받아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히노마루·기미가요의 역사를 가르치려고 하면 ‘수업 감찰’을 실시해 ‘지도력 부족’이라는 낙인을 찍어서 학교에 못 나오도록 하기 위해, 교사들 사이에서 ‘수용소’라 불리는 연수센터에 넣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행태. 이것이 바로 “일본국 이시하라 도쿄도의 히노마루 강제 교육위원회”의 현주소다. 이런 현실에서도 네즈 교사는 담담하게 말한다. “교사인 이상, 자신이 문제 있다고 생각하는 걸 할 수는 없어요. 전쟁의 상징인 히노마루를 강요하는 것에 복종할 수 없습니다. 해고가 눈앞에 보이고 점점 더 다가오는 것을 느끼지만, 틀린 건 틀리다고 말하며 싸우는 모습도 학생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것도 교육의 하나니까요.”

결정권 없는 초·중교 교사 더 열악

일본에서 히노마루·기미가요의 강요가 옳다고 생각하는 교원은 거의 없다. 다만 교직원회가 결정권이 없는 초등학교와 대부분의 중학교는 학교 내의 권력 관계로 인해 발언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나마 고등학교에서는 처분 교사에 대해 지지·지원해주는 동료 교사들이 있어 함께 연대할 수 있는 분위기다. 교사들 내에서도 지금의 히노마루·기미가요 강제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불러올 것인지에 대한 자각의 정도는 각기 다르다.

그러나 350여 명에 달하는 ‘히노마루 앞 기립 거부’ 때문에 처분받은 교사들과 함께 네즈 교사가 ‘처분투성이’를 자처하면서 부단하게 저항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교사가 솔선해 학생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던 “60년 전의 일본과 같은 길을 다시금 걷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냉정한 자각 때문이다.



졸업식날, 허를 찌른 지혜

‘사회자의 권한’으로 도쿄도 교육위 통제를 우회 폭로한 이구로 유타카

도쿄도 교육위원회(도교위) ‘10·23 통달’ 이후 입학식·졸업식 때 전 교사에게 떨어지는 직무명령서에는 ‘국가 제창 때 국기를 바라보고, 반드시 국가를 제창해야 한다’는 항목이 있다.


그리고 입학식과 졸업식 2주 전까지 도교위에 꼼꼼한 세부계획을 세워 보고서를 제출하게 돼 있다. 번호를 명기한 교사 좌석배치표, 히노마루 게양 때 국기의 정확한 위치 그리고 접수 및 경비 담당 교사가 누구인지, 국가 제창은 식순의 어디쯤에서 하게 되는지 등 세세한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도쿄 아다치구의 한 도립고등학교 수학교사 이구로 유타카(46)가 일을 벌인 건 교장에게서 직무명령이 떨어진 뒤 거행된 올해 3월5일 졸업식 때였다. 그에게 사회를 보게 한 것이 학교 입장에서 보면 화근이었다. 이구로 교사는 직무명령에 ‘허를 찌르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했다. 올해 들어 학생과 보호자들까지 ‘적절히 지도할 것’을 항목에 넣어 교사들을 강제하는 것에 대해 뭔가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대체 적절한 지도가 뭐냐”고 물어도 교장과 관리직 교원은 대답을 피했다. 단지 “(국가 제창 때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서지 말라거나 부르지 말라고 하면 안 된다”고만 했다. 도교위의 ‘꼭두각시’ 격인 교장과 관리직 교원들에게 묻는 것이 통할 리 만무했다.
사회를 맡은 이구로는 원활한(?) 진행을 위해 대본을 미리 준비해 식전 안내말씀으로 예의 ‘사건 멘트’를 쳤다. 그것이 히노마루·기미가요보다도 먼저 장내에 울려퍼졌다.
“도교위에서 내려온 지도사항에 대해 안내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공무원에게는 헌법 98조와 99조에 있는 것처럼, ‘최고 법규인 헌법의 존중과 그 옹호의 의무’가 있습니다. 이에 따라 3년 전까지는 식전에 ‘인간에게는 한 사람 한 사람 내심(양심)의 자유가 있으며, 이것을 침해할 수 없다’고 하는 주지의 설명을 하고, 학교의 졸업식에서 여러분에게 무언가를 강제할 수 없음을 확인해주었습니다. 그러나 2003년 10월 도교위에서 당시의 교육장이며 현재 도쿄도 부지사가 된 요코야마 요우지의 이름으로 전교에 통달이 내려졌고, 그 뒤에도 수차례 통지와 교장의 강한 지도가 있었습니다. 현재는 교장으로부터 각 교사에게 직무명령이 내려지고,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처분도 있을 수 있다는 강력한 지도 아래 졸업식이 집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국가 제창 때는 히노마루를 향해 기립하고, 기미가요를 제창하는 것이 지시됐습니다. 올해는 우리만이 아니라 학생 여러분에게도 같은 것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도를 받은바, 오늘 졸업식에서는 여러분께 ‘내심의 자유’가 있다는 말도, ‘강제하지 않는다’는 말씀도 여기서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도교위의 학습지도 요령에 기초한 지도사항에 대해 안내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에 대해 이날 참석했던 공명당의 한 국회의원이 사회자에 대한 비난의 글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다. “히노마루 게양, 기미가요 제창에 대해 얼토당토않게 내심의 자유를 운운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이구로 선생은 “졸업증서 수여식의 사회자로서 참여자들에게 ‘적절치 않은‘ 개인적인 견해에 관해 발언” “교장 및 부교장 등이 모두 5차례 명했음에도 발언을 멈추지 않음” “교육 공무원으로서 교직의 신용을 손상시키고, 교직 전체의 불명예가 되는 것”으로 “동법 제33조 위반으로 앞으로 이러한 일이 없도록 문서로써 엄하게 훈고(주의) 처분한다”는 내용으로, 도교위로부터 ‘문서 훈계’라는 처분을 받았다.




왜 히노마루·기미가요를 거부하는가

2차대전 동원의 도구… 1999년 국기·국가법으로 법제화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일본의 시민사회는 히노마루(일장기)와 기미가요를 과거 침략주의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반대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정부는 이런 국가적 상징물을 동원해 고취시킨 애국심으로 일본과 아시아 민중을 전장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의 진보적인 시민들은 히노마루 앞에서 예의를 표하지 않고, 기미가요도 부르지 않는다. 기미가요는 ‘왕이 통치하는 나라가 천대에서 팔천대까지, 조약돌이 되어 반석이 되고 이끼가 낄 때까지’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자민당과 정부는 1999년 시민단체의 반대 속에 국기·국가법을 제정해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법제화했다. 히노마루와 기미가요가 각각 일본의 국기와 국가가 된 것이다. 도쿄 도교육위원회는 한술 더 떠 이를 거부하는 교사들을 징계하기 시작했다. 도쿄 도교위가 2003년 내린 ‘10·23 통달’은 ‘국기는 무대 정면에 게양하고, 교직원은 선 채로 국기를 바라보며 국가를 제창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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