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비싼 동네만을 통제하는 정부 정책 반대해온 서강대 김경환 교수…“주택정책은 저소득층을 타깃으로 해 주거 수준을 높이는 방향이어야”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서강대 김경환 교수(경제학과)는 참여정부의 여러 부동산 정책 가운데 “서울 강남이라는 특정 지역만을 타깃으로 한 대책은 잘못됐다”고 줄곧 비판해온 대표적인 학자이다. 김 교수는 도시경제학 전공으로, 재정경제부에 설치된 부동산가격안정심의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김 교수의 생각이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의 논조와 다른 면이 있지만, 최근 강남권 집값 거품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한 만큼 김 교수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5월25일 과 만난 김 교수는 “강남 집값을 잡아야 한다는 이유로 참여 정부가 ‘강남발 아파트값 상승 전국 확산론’을 들었는데, 실제로는 확산되지 않았고 오히려 청와대 스스로 규정했듯 ‘버블 세븐’ 지역만 집값이 올랐다. 물론 집값 안정을 위해 정부가 개입할 수 있지만 가장 집값이 비싼 지역만을 대상으로 삼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고 말했다.
‘거품’이란 업계나 언론의 표현
지금 아파트값 거품론이 뜨겁게 일고 있다. 요즘 논쟁을 어떻게 보는가?
=학문적으로 자산가격 거품은 존재 여부나 그 크기를 완벽하게 밝힐 수 없다. 개별 아파트의 내재가치를 정확히 알 수 있다면 거품을 밝힐 수 있지만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가려내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거품’이란 말은 업계나 언론의 표현일 뿐이다. 사람들이 볼 때 가격이 황당한 수준이라고 보면 거품이라고 치부하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전세계적으로 주택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저금리 현상이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금리는 자산의 내재가치를 결정하는 변수 중 하나이다. 따라서 저금리로 인한 가격 상승을 거품이라고 볼 수는 없다. 거품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가격 상승의 원인을 찾아 대응하는 일이다.
최근 “정부가 객관적 근거도 부족한 집값 버블론을 갑자기 들고 나온 의도가 뭔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버블이란 개념을 쓰면서 참여정부가 부동산 가격 안정에 주력하겠다고 선언할 때 명분으로 삼은 것이 “강남을 못 잡으면 다른 지역으로 집값 상승세가 퍼지게 된다”는 이른바 ‘강남발 주택폭등 전국 확산론’이었다. 그렇게 강남 집값 안정을 위해 전력투구했는데 어떻게 됐는가? 강남권과 버블 세븐에 포함된 몇몇 지역만 집값이 오른 것 아닌가?
강남 집값을 잡는다는 명분이 잘못됐다는 뜻인가?
=서울 일부 지역과 지방에서는 집값이 오르기는커녕 떨어질까 우려하고 있지 않는가. 청와대 발표자료를 봐도 버블 세븐 지역을 빼면 아파트값이 크게 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정부의 확산론이 틀린 것이 아닌가?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집값이 떨어지면 일부 버블 지역만 집중적으로 떨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참여정부의 정책 의도는 전반적으로 집값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일부 지역 집값만을 잡겠다는 것인데, 정책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주택 가격이 ‘비이성적으로 과열’될 때도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가?
=물론 집값 안정을 위해 정부가 개입할 수 있다. 문제는 타깃을 정확히 제대로 정했는지다. 특정한, 제일 비싼 동네만을 타깃으로 삼는 정책은 맞지 않다. 미국에서 샌프란시스코의 집값만 집중 관리하는 경우가 있는가? 대다수 국가의 주택정책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주거 수준을 높이는 데 목표가 맞춰져 있다.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그동안 우리나라 집값이 유독 많이 오른 것도 아닌데, 정부의 개입은 유별나게 강하다.
‘세금폭탄’이란 말 함부로 쓰면 안돼
강남에 거품이 지나치게 많이 형성돼 있기 때문에 강남을 타깃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는, 그것이 거품이든 뭐든 부동산에 관한 한 시장가격을 인정하지 않고, 정부 역시 가격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모든 상품은 물건이 달리고 손님이 몰리면 가격이 오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유독 부동산만은 가격이 오르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또 투기세력만 잡으면 된다고 보았다. 물론 투기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투기가 발생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돈, 즉 집을 살 자금이고, 또 하나는 상품의 희소성이다. 강남 집값이 오른 데는 국지적인 수요·공급의 괴리가 분명히 작용했다. 그런데 참여정부는 이 점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데 몰두했다. 그래서 나는 10·29 대책, 8·31 대책을 내놓을 때도 이렇게 해서는 집값이 잡힐 수 없다고 계속 말해왔다. 주택은 극단적으로 보면 하늘 아래 동일한 상품이 없다고 할 정도로 매우 이질적이다. 위치에 따른 차별성은 주택 가격을 형성하는 핵심 요인이다. 참여정부는 “왜 굳이 강남에 집을 사려고 하나. 다른 지역에서 살면 안 되나”는 식으로 접근한다. 강남에 공급을 늘릴 수 없거나 늘려도 소용이 없다고 일축하면서 강남 아파트의 수요를 차단하기 위해 무거운 세금을 물리고 대출을 제한하고 있다. 한 외국 전문가는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정부는 규제가 효과를 못 낼 경우 원점부터 재검토해 대안을 찾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규제로 대응한다고.
정부가 왜 거품을 걱정해야 할 때라고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인가?
=8·31 대책의 약발이 떨어져서 강남 집값이 계속 오르고 있다고 말하면, 정부는 “아직 먹지도 않은 약이다. 올 하반기부터 효과를 미치게 될 것이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요즘 정부가 느닷없이 청와대 브리핑 같은 여러 자료들을 내놓으면서 거품론을 부추기고 있다. 강남 아파트 값을 안정시키겠다면 약발이 먹혀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지켜보면 되지 않는가? 청와대는 또 “90년대 초의 거품 붕괴가 우려된다” “일본식 거품 붕괴가 걱정이다”고 했다가 너무 파장이 커지니까 다시 “집값이 반토막 나도 금융 시스템에 문제가 없다” “일본식 거품 붕괴는 없을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너무 떨어질까봐 걱정하는 것인가? 아니면 떨어지지 않게 하겠다는 것인가?
정부가 부동산 가격의 ‘연착륙’ 하락을 유도하기 위해 거품을 미리 경고하고 있는 것 아닌가?
=정부의 요즘 발언들은 연착륙 유도가 아니라 오히려 급격한 가격 하락을 부추길 수 있다. 연착륙을 원한다면 거기에 맞는 정책을 차분히 연구해서 내놓으면 된다. 부동산 정책을 경기 국면과 관계없이 일관되게 추진하겠다고 밝혀온 정부가 갑자기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국가 경제가 위기에 빠질 것 같다고 말하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정책 당국자가 발언할 때는 시장에서 통용되는 말보다 더 완곡한 표현을 써야 한다. ‘폭락’ ‘세금 폭탄’ 같은 말이 책임 있는 당국자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된다. 강한 말을 할수록 뒷수습이 안 되고, 신뢰성과 정책 효과도 떨어지게 된다. 또 약속을 못 지키게 되면 만회하기 위해 더 강한 약속을 하게 된다.
진짜 부자와 무늬만 부자 구별정책?
과거에도 거품 논란이 있었지만 그 뒤에도 집값이 올랐다. 하지만 이번 논란은 강도가 더욱 센 것 같은데….
=2년 전쯤 거품 논란이 벌어질 때에 비해 너무 많이 강남 집값이 올랐다.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그래서 가격이 하락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수요·공급의 괴리가 남아 있는 한 빌미가 생기면 또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 한 국가의 주택 정책은 더 좋은 집으로 상향 이동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참여정부는 “과도한 세금을 감당할 수 없으면 1가구 1주택이라도 집을 팔고 더 작은 집으로 이사가라”는 식이다. 그래서 참여정부의 강남 집값 잡기는 진짜 부자와 무늬만 부자를 가려내는 정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참여정부가 국민임대주택 건설 등 사회적 약자의 주거 안정을 위해 노력해왔고 상당한 성과도 있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타워팰리스가 30억원이든 얼마든 서민들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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