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부동산 거품론을 바라보는 서울 강남 아줌마 4인의 시각…“정책 펴는 이보다 투기꾼이 노련… 강남권은 끄떡없이 건재할 것”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경아무개(39)씨 서울 송파구 잠실6동
▶공아무개(40)씨 서울 송파구 풍납2동
▶김아무개(34)씨 서울 송파구 신천동
▶박아무개(37)씨 서울 송파구 방이동(가나다순)
코웃음을 치고 있을까? 긴장하고 있을까?
은 정부의 ‘부동산 거품론’에 대한 서울 강남권 주민들의 생각을 들어보기 위해 ‘거품지역 7곳’(버블 세븐) 중 하나로 꼽힌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30~40대 젊은 주부 4명의 방담 자리를 마련했다. 방담은 4월25일 송파구의 한 어린이도서관에서 이뤄졌다. 이들 주민은 이 도서관에서 방과후 학습지도와 봉사활동을 같이 하고 있다. 방담자들은 모두 1가구1주택자여서 자신들 또한 집값의 안정을 바라지만, 그동안의 경험에 비춰볼 때 정부의 거품론을 믿기 어렵다고 말한다.
본격적인 얘기를 나누기도 전에 이들 참석자는 하나같이 자신들은 강남 주민이라고 할 수도 없는 ‘아웃사이드’(변방)일 뿐이라고 말했다. 송파구가 부동산 거품론의 핵심 지역이 아닐뿐더러 부동산 부자와는 다른 처지의 1가구1주택자라는 것이었다.
집값 상관없이 강남은 나의 집
송파 지역이 강남의 핵심은 아니라고 해도 어쨌든 강남권으로 분류된다. 이곳에 살게 된 계기를 우선 들어보자.
“우연찮게 강남에 살게 됐다.” 먼저 입을 뗀 이는 잠실에 산다는 경씨였다. 그는 “지방에 있다가 일자리를 얻어 서울로 와서 자취를 이 지역에서 했고, 결혼하면서 집을 구했다”고 말했다.
“굳이 강남에 살고자 했던 건 아니다. 1996년에 집을 샀다가 곧바로 외환위기를 맞아 크게 고생한 적이 있다. 집을 산 직후 값이 떨어지고 금리가 치솟아 참담한 상태였다.” 경씨는 외환위기로 홍역을 치르긴 했어도 운 좋게 스스로 강남에 뿌리를 내린 경우다.
공씨는 강북에 살다가 친정 따라 이사를 왔다고 했다. “친정 엄마 뜻에 따라 1980년대 들어 서울시립대 근방 주택에서 잠실지역 아파트로 옮겼다. 그때 아파트값이 8500만원이었는데, 지금은 15억원에 이른다. 결혼하고 처음엔 강북 지역의 다세대주택에서 살다가 아이를 낳은 뒤 친정 근처로 옮기게 된 것이다. 그게 1993년이었다.” 김씨는 삼촌, 이모들을 따라 강남에 살게 됐으며, 박씨는 시아버지 소유의 건물에 살고 있다고 했다. 대부분 부모 세대를 따라 자연스럽게 강남권에 머물게 된 셈이다.
강남 지역 아파트를 중심으로 세금이 계속 무거워지고 있다. 그렇다면 중과세에도 불구하고 계속 강남권에 거주하려는 것은 어떤 장점 때문인가? 흔히 얘기하듯이 자녀 교육 문제가 제일 큰 요인인가?
“교육 문제를 배제할 순 없지만, 익숙함에서 비롯되는 게 크다.”(경씨) 한번 눌러살게 된 곳에서 쉽사리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 게 사람 심리 아니냐는 것이다. 더욱이 집값이 오르고 있는 지역임에랴. 김씨는 “다른 데로 옮겨 살게 된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문화센터 같은 시설에서 차이가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고 했고, 박씨는 “고속도로와 가깝고 놀러가기 편해 남편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강남 거주의 장점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은 것인지, 자녀들이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기 때문인지 ‘교육’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얘기가 진행되면서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사교육에 대한 수요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공씨는 “공교육을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며 “교사의 질적 수준 때문에 사교육에 기대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가 많다”고 했다. 사교육 의존도가 높은 현실이 강남 지역에 살도록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토로로 여겨진다. “공교육의 문제는 시설보다 교사의 수준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과학 기자재를 갖춰놓고도 실험 한 번 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심지어 그런 건 학원 가서 하라는 교사도 있다고 들었다. 오죽하면 ‘학교에선 놀고 공부는 학원 가서 하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강남권에는 매물이 없는데…
정부의 부동산 거품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부는 확신에 찬 듯 거품이 꺼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는데….
경씨의 첫 마디는 “반감이 든다”였다. “부동산 정책의 취지는 좋은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투기로 1천만원 번 사람이 세금 100만원 더 내는 게 무슨 부담이 되겠나.” 경씨는 잠실 지역의 29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다. 2000년에 2억원을 주고 산 집값이 지금은 7억~8억원에 이른단다. 집 한 채 없는 이들이나 강북 지역 주민들에겐 질시의 대상일지 몰라도 정작 경씨한테는 세금 때문에 집값 상승이 마냥 반가운 일만은 아니라고 했다.
“어차피 집 한 채 있는 사람들로선 팔아서 옮기면 그게 그거다.” 예전의 매입가와 견주면 차익이 많은 듯해도 비슷한 수준의 집을 구하려면 남는 게 없다는 설명이다. 6억원 이상 ‘고가주택’은 1가구1주택자라도 양도세를 물게 돼 있다. 집값 상승에 맞춰 보유세도 올라간다.
정부 정책에 대한 반감을 떠나 거품이 꺼질 것이란 말은 얼마나 믿는가? 엄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지.
“그다지 믿지 않는다.”
왜 그런가?
“누가 뭐래도 중요한 건 수급인데, 강남권에는 매물이 없다고 한다. 떨어진다는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강남 지역 부동산에 거품이 끼었다는 정부 진단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말로 들렸다.
공씨는 경씨와 조금 다르게 “거품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너무 많이 올라 있다는 데는 동의한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도 “거품은 세제 강화 등에 따른 추가 비용을 메우려는 ‘보상 심리’에서 비롯됐다”고 풀이했다. 적정한 집값이 6억원 정도라면, 세금 등 비용을 감안해 집을 파는 처지에선 7억~8억원으로 부를 수밖에 없고, 이렇게 해서 경쟁적으로 집값을 끌어올리게 된다는 주장이다.
정부의 거품론은 하반기부터 종합부동산세 부과 기준이 9억원에서 6억원으로 낮아지는 등 세제가 강화된다는 데 바탕을 두고 있다. 세금이 무거워짐에 따라 집값이 떨어질 것이란 얘기인데….
“(부동산 부자들한테는) 세제가 강화되더라도 (투기로 번 수익이) 좀 깎일 뿐이다.”(경씨) “주위에선 정부가 강남 집값을 올려준다고 고맙게 생각한다는 얘기도 들린다.”(김씨)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정부의 거품론이 정작 목표로 삼고 있는 강남권에는 별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셈이다.
“정부의 거품론은 (정책 실패에 대한) ‘변명’으로 들린다. 장기적인 안목의 부동산 정책이 없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잡으려는 식이다. 그사이에 전문가(부동산 투기꾼)들은 치고 빠져나간다. 정책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노련하다.”(공씨) 이 대목에서 “우린 강남이라고 해봐야 ‘변방’이다, 강남 축에도 못 낀다”는 말이 두런두런 흘러나왔다.
시간이 흐르면 정책도, 정권도 바뀐다
한 참석자는 ‘노사모’ 회원이었다는 시숙의 사례를 들어 정부 정책을 불신할 수밖에 없음을 털어놓았다. “시숙은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들어 절대 집을 사면 안 된다는 입장이었어요. 노무현 정권을 전폭적으로 믿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2003년 잠실 지역 33평짜리 아파트를 4억8천만원에 팔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가 시숙 몰래 ‘형님’을 배후 조종(?)해서 지난해에 집을 사게 했다니까요. 5억원에 샀는데, 지금 8억~9억원에 이릅니다. 그때 안 샀다면 형님네 아마 ‘쪽박’ 찼을 거예요.” 이런 경험들이 겹치다 보니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가 자꾸 떨어지지 않느냐는 설명이 따라붙었다.
현재의 부동산값에 거품이 끼어 있는 것으로 본다는 공씨는 정부의 거품론 제기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일본의 경우 부동산 거품 붕괴로 10년 동안 경기 침체를 겪었다고 하는데, 부동산값이 폭락하고 경기 침체에 들어갈 경우의 대책을 세우고서 그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그도 “부동산 거품이 빠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시아버지의 예를 들면서 “부동산 부자들이 쉽게 집을 팔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송파구 방이동에 있는 시아버지 소유의 상가 건물에 살고 있으며, 남편은 1년 전부터 직장 생활을 접고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3층짜리 건물의 1, 2층은 세를 주고 우린 3층에 살고 있다. 건물값이 15억원 정도 한다는데, 양도세 물고 나면 시아버지 손에 들어오는 건 10억원 정도뿐이어서 팔려고 하지 않는다.” 박씨는 주위를 봐도 “돈 갖고 있는 이들은 정부 정책에 지지 않고 계속 버티겠다는 말을 한다”고 전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여기저기서 동감을 표시하는 말이 이어졌다. “좀 기다리고 버티면 더 오른다고 여긴다, 과거 경험으로 봐서 그렇다고 한다, 집값 떨어진다는 정부 말이 언제 맞은 적이 있었나? 시간이 지나면 정책뿐 아니라 정권이 바뀐다고 여기는 분위기다.” 숱한 부동산 정책에도 강남권은 끄떡없이 건재했다는 경험이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감을 단단하게 굳혀놓았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부녀회 가격 담합으로 매도 호가만 높은 경우도 많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인근에서 그런 경우를 보긴 한다. 덜 오른 데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행태다. 그렇지만 효과를 거둘 수 없다고 본다. 급하게 팔아야 할 사람이 있는데, (담합이) 성립될 수 있겠나. 어차피 가격은 실수요 원칙에 따른다고 본다.”(공씨)
강남발 집값 상승세가 다른 지역으로 옮아붙는 게 현실인데, 정부로서도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것 아닌가?
“혼란스러울 정도로 너무 자주 바뀌었다는 게 문제라고 본다. 그래서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 같고….”(박씨) 그는 한 예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남편조차 바뀐 정책을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흔드는 지경이라며 푸념했다. “TV 뉴스를 보다가 (남편에게) ‘어떻게 바뀐다는 거냐’고 물으면, ‘모르겠다’고 손을 내젓는다. (남편은) 직장 생활하다가 부동산 중개업에 뛰어든 지 1년도 안 됐는데, (거래 부족으로) 폐업할 지경에 이르렀다. 다시 직장에 돌아가려고 한다.” (웃음)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은 깊어도 과세 강화에 따른 부담감은 다들 느끼는 듯했다. 다만, 집값 수준에 따른 편차는 엿보였다.
잠실 지역에 사는 경씨는 “2~3년 전에는 보유세가 18만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30만~40만원에 이른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2010년이면 천만 단위를 넘는 경우가 많이 나온다고 들었다. 우리만 해도 600만원 정도 되는 것으로 안다. 월급 받아서 이만한 돈을 내기는 힘들다.” 보유세 강화를 줄기로 하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부동산 중개업자도 모르는 부동산정책
공씨는 보유세 강화에 일부 찬성이라는 뜻을 비치면서도 “1가구1주택자와 1가구다주택자는 뚜렷하게 구분하는 정책을 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물론 현행 제도에서도 구분을 하고 있지만, 1주택자에 대해선 세 부담을 더 낮춰줘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정부의 부동산 거품론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이들의 주장 속에서 명백한 근거를 들어보기는 어렵고, 정부의 공언이 번번이 빗나간 경험칙에서 비롯된 바가 커 보인다. 정부의 거품붕괴론은 이들 주민의 불신을 뛰어넘을 만한 근거를 확보하고 있을까? 엄포일 뿐일까? 그 판가름의 시기로 꼽히는 하반기가 째깍째깍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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