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반전 티셔츠 단가 부풀리고 이소선 여사 병문안비까지 삥땅?…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서울지하철 노조위원장 시절의 회계부정 의혹들
▣ 길윤형 기자/ 한겨레 사회부 charisma@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지난 4월3일에 있었던 ‘해프닝’이다. 열린우리당 서영교 부대변인은 한나라당 배일도 의원과 관련한 논평 두 건을 잇따라 발표해야 했다. 첫 논평이 나온 시간은 오후 2시52분. 서 부대변인은 논평에서 “서울 경찰청이 배일도 한나라당 의원을 (조합비 3억1천만원을 유용한 혐의로) 수사해달라고 검찰에 수사 지휘를 했다”며 “충격적인 것은 배 의원 등이 유용했다는 조합비에는 안마시술소 카드 사용 내역 등이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안마시술소는 그저 안마를 받는 곳 이상의 의미를 내포한다. 당혹해진 배 의원 쪽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항의했고, 서 부대변인은 2시간30분쯤 지나 발표한 두 번째 논평에서 “배일도 의원 쪽에서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한 만큼 우리도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고 있음을 밝혀둔다”며 한발 물러났다.
경찰수사 6개월만에 비리 포착
사실, 배 의원이 서울시 지하철공사 노동조합 위원장 시절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으로부터 6개월 전인 2005년 10월에 불거진 일이다. 서울지방경찰철 수사과는 6개월 남짓 수사를 벌여 배 의원이 조합비로 단체 물품을 사거나 외부단체 지원금을 지출하면서 회계 부정, 공금 횡령 등의 비리를 저지른 사실을 확인하고, 배 의원 등 전직 서울시 지하철공사 노조 간부 8명을 업무상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 사실 여부는 검찰의 보강 수사와 법원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볼때 배 위원장 시절 노조에서 수억원대의 회계 부정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경찰 관계자는 “배 의원이 증거가 명백한 부분에서는 다른 노조 상근 간부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50만원 이상’의 벌금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게 된다.
배 의원과 당시 노조 집행부는 어떤 혐의를 받고 있을까. 배 의원이 서울시 지하철공사 노조를 이끈 것은 1999년 10월부터 2004년 3월까지 4년 반 남짓이다. 그는 ‘상생 경영’과 ‘노사 협조주의’를 외치며 세 번이나 노조위원장 연임에 성공했다.
그렇지만 재임 기간 동안 배 집행부는 노조원들에게서 크고 작은 회계 부정 의혹을 받아왔다. 진상 조사가 시작된 것은 그가 네 번째 연임에 실패하고 2개월이 지난 뒤다. 지하철 노조는 2004년 5월 정기 대의원 대회에서 배일도 집행부의 회계 부정을 조사하기 위한 ‘진실규명위원회’(이하 진실위)를 만들기로 결의했다. 진실위는 2004년 8월25일부터 두 달 동안 2001년 1월부터 2004년 3월28일까지 배일도 집행부의 조합비 사용 내역을 정밀 조사해 이듬해 5월 ‘진실규명위원회 보고서’를 작성해 조합 대의원 대회에 제출했다.
경찰 관계자는 “보고서 내용 대부분이 사실임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배일도 집행부의 혐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구입 물품의 매입 단가를 부풀리는 방식이다. 그는 2003년 6월3일 미국의 이라크 침공 반대운동에 동참하자며 반전 티셔츠를 만들어 조합원들에게 배포했다. 배 위원이 제시한 제작 단가는 한 벌에 7천원이었다. “못 입겠다”는 조합원들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문제는 품질이었다. 진실위가 청계천 6~8가에서 비슷한 옷의 단가를 조사해보니 한 벌에 3350~3450원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배 의원 쪽은 2005년 6월 진실위 쪽에 제출한 ‘서면 답변서’에서 “제작시 국산 원사의 사용과 제작 기일의 촉박 등 때문에 다소 높은 가격을 지급했다”며 옷값이 비쌌음을 인정했다. 그때 만든 옷은 모두 1만 벌. 경찰은 그가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 의무를 어겨 조합 쪽에 3500만원의 손해를 끼친 것으로 보고 있다.
안마시술소 ‘봉사비’까지 조합비로
배일도 집행부는 인쇄비도 부풀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들은 시중가보다 50% 이상 비싼 값으로 조합의 각종 홍보 책자를 만들었다. <노동조합의 현황과 과제>라는 같은 책을 배일도 집행부는 660만원에 새 집행부는 324만원에 인쇄했다. 배일도 집행부 시절 이전 2002년과 2003년의 인쇄비는 각각 1억4333만원과 1억3520만원인 데 견줘, 그 다음 집행부가 들어선 2004년의 인쇄비는 그 15% 수준인 1818만원에 불과했다. 그의 집행부에 속한 한 상근 간부는 2004년 2월19일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병문안을 가면서 500만원의 지원금을 줬다고 지급증을 제출했지만, 진실위가 이 여사 쪽에 직접 확인한 결과 지원금액은 300만원에 불과했다. 배일도 집행부의 ‘배달 사고’는 만성화돼, 진실위가 확인한 액수만 1570만원(11번)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 집행부는 흥청망청 자기 돈과 조합비를 구분하지 못하기도 했다. 진실위 관계자는 “조사 과정에서 가슴속의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꼈다”고 말했다. 배 의원(혹은 다른 노조 간부가 배 의원 명의의 카드를 이용해)은 2001년 2월27일 동대문 답십리에 있는 ‘ㅆ’ 안마시술소에서 15만5천원을 카드로 결제했다. 카드 전표에는 7만5천원은 요금, 8만원은 봉사료라고 써 있다. 그가 어떤 ‘봉사’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돈을 조합비로 쓴 것은 어떤 기준으로도 납득하기 힘들다.
2001년 7월2일에는 충남 보령 신흑동에 있는 파라다이스라는 단란주점에서 ‘한국통신 간부 상견례비’라는 명목으로 두 번에 걸쳐 51만원(31만원, 20만원)을 긁었다. 이 가운데 봉사료는 26만원(16만원, 10만원). 2002년 1월2일과 같은 해 12월6일에는 서초구 반포동의 팔레스호텔 멤버십카드를 갱신하는 데 각각 25만원을 조합비로 지출했다. 경찰 쪽에서는 배 의원과 그의 집행부가 이런 방식으로 조합비 3억여원을 유용했다고 보고 있다.
지하철 노동자 장경태(41)씨는 “지금 생각해보면 배일도씨의 말은 투쟁에 지쳐 상처받은 노동자들에게 믿고 싶었던 어떤 신기루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2004년 2월 성공회대학교에 제출한 석사학위 논문 ‘구조조정기 서울지하철노조의 변화- 자주형 노조에서 순응형 탈정치적 노조로’에서 “국가나 경영자는 노조가 정치적이지 않고 회사에 협조적이라면 오히려 부패하기를 바란다”고 적었다(상자기사 참조). 배 의원은 1983년 8월 서울시 지하철공사에 역무원으로 입사했다. 그는 1987년 지하철공사 노조 창립을 이끌었고, 이듬해 구속과 해직의 아픔을 겪었다. 그는 10년 만에 지하철공사에 ‘컴백’했다.
그를 믿었던 지하철노동자들의 아픔은…
배 의원은 1999년 4·19 파업으로 실의에 빠진 지하철 노동자들에게 구세주가 됐다. 지하철 노동자들은 김대중 정부의 가혹한 구조조정에 4·19 파업으로 대항했고, 처절하게 패배했다. 그해 파업으로 지하철 노동자들은 270명이 고소·고발됐고, 66명의 체포 영장이 발부됐으며 30명이 구속됐다. 회사에서 징계를 받은 사람은 6679명, 이 가운데 21명이 파면됐다. 배일도 의원은 “동종 업계 최고 대우를 싸우지 않고도 얻을 수 있다”며 “기존 집행부가 조합원들을 투쟁의 장으로만 동원해 피해를 줬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투쟁에 지친 지하철 노동자에게 메시아의 구원의 메시지로 들렸다. 그는 상생 경영을 내세워 그해 10월 치러진 선거에서 9대 서울시 지하철공사 노조위원장에 당선됐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노조위원장으로 있는 동안 노동 조건은 4조3교대에서 3조2교대로 개악됐고(역무지부), 정년은 3년 단축됐다. 대학생 자녀의 학자금 지원이 폐지됐고, 2000년 1월에는 1621명이 회사를 떠나야 했다. 그동안 배일도 집행부는 조합비로 안마를 받고, 단란주점에 가고, 호텔 멤버십카드를 만들고, 물품 대금을 부풀리고, 배달 사고를 냈다. 그는 비리 의혹이 불거진 2005년 10월 “노조라고 특별한 도덕성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겨레21>은 배 의원 쪽에 여러 차례 해명을 요청했지만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는 응답만 돌아왔다. 그의 보좌관은 기사 마감 중에 <한겨레21>에 전화를 걸어와 “이미 다 취재를 끝낸 상황에서 구색 맞추는 인터뷰는 하지 않을 것”이라며 “잘못이 있다면 죄를 받겠지만, 지금 불거진 의혹은 사실이 아니기에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한겨레21>도 서 부대변인의 말처럼 배 의원과 관련된 의혹들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모든 의혹들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4년 동안 그를 믿고 무자비한 구조조정을 군말 없이 받아낸 1만 지하철 노동자들이 너무 불쌍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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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태(41)씨는 16년차 지하철 노동자다. 그는 2000년 성공회대 사회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2004년 2월에 졸업했다. 그의 석사학위 논문 제목은 ‘구조조정기 서울지하철노조의 변화- 자주형 노조에서 순응형 탈정치적 노조로’, 주제는 배일도 전 서울시 지하철공사 노조위원장이다. 그는 “김대중 정부 때 가혹한 구조조정으로 노동자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는데 회사에서도 노조에서도 해결을 안 해줘 노동자들끼리 술을 마시며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논문을 쓰게 된 이유는.
=나는 전업 학생이 아니니까 짬짬이 시간을 내 대학원 공부를 했다. 1999년 4·19 파업 이후 노동조합에는 피바람이 몰아쳤다. 사람들은 직장에서 정리해고되지 않고 그동안 다니던 직장에서 월급 받아가며 다니기 위해 배일도 위원장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야 했다. 그 과정이 너무 기막히고 속상해 논문으로 내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배일도 집행부는 어떻게 들어섰나.
=4·19 파업 이후 정부의 극심한 탄압에 조합원들은 지쳐 있었고, 외부의 구조조정 바람은 두려웠다. 해직 뒤 10년 동안 공부하고 연구해서 투쟁하지 않고도 우리 것을 찾을 수 있다는 배일도씨의 목소리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조합원들에게 떨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노조 선거에 △상조회 △중간관리자 △운동부 △향우회 등을 적절히 이용하는 기술도 뛰어났다. 민주노조 전통으로 작업장에서 이어지던 전통이 무너지고 인사, 성과급, 노조 집행부 인선 등에서 이기주의가 판치기 시작했다.
비리 문제는 어떻게 보나.
=내가 직접 조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뭐라 단언하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배일도 집행부에 모인 사람들은 정직하게 노조 활동을 하려는 이념을 가졌다기보다는 그를 통해 뭔가를 이뤄보려는 사람들이었다는 게 내 솔직한 의견이다. 결국 배일도 위원장에 대한 환상이 깨졌고, 2004년 선거에서 그를 몰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노조위원장의 경험을 발판 삼아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그를 두고 노조 내에서 말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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