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형 출판사 고단샤의 대표적인 종합주간지 <주간현대>
게릴라 저널리즘과 누드 그라비아가 혼재된 아저씨들의 ‘벤또’
▣ 도쿄=글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전철의 도시 도쿄. 유라쿠초선 고코쿠지역 개찰구를 빠져나오면 고단샤(講談社)로 들어가는 지하 출입구가 보인다. 굳은 표정을 한 청원경찰을 지나 고요한 통로 안으로 들어선다. 조심스레 지하세계에서 올라가면 기다리는 건 1층의 환한 세상. 2009년 창업 100주년을 맞이하는 유서 깊은 출판사에 고답미를 기대한 건 상투적인 도식이었다.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본관과 26층 높이의 신관 사이에 자리한 로비는 아트리움으로 넉넉히 빛을 받아들이면서 서울 광화문의 신식 빌딩처럼 세련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연간 1600여 권의 서적과 54종의 잡지를 발행하는 지식과 정보의 만물상은 현대적 기업으로 탈바꿈한 지 오래다. 이곳에서 ‘시마과장’이 이사로 승진하고 ‘배가본드’가 정처 없이 방랑할 때 종합주간지 <주간현대>(週刊現代)는 반고이즈미 전선을 지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반고이즈미 전선과 기자실 문화
“앞으로도 ‘반고이즈미’ 기조는 변함없다.” 2006년 3월 <주간현대>의 새 편집장이 된 가토 하루유키(51)의 말이다. 그는 1980년 도쿄대 문학부를 졸업하고 고단샤에 입사한 뒤 <주간현대> 편집차장, 사진주간지 <프라이데이> 편집장, 학예출판부장(서적 부문)을 역임하고 최근 친정에 돌아왔다.
가토 편집장 전 1년4개월간 지속된 다스제 가즈치카(47) 전 편집장 체제에서 <주간현대>는 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우정민영화 법안이 부결된 뒤 총리의 승부수로 띄워진 2005년 9월 총선 때도 “우정민영화 공약은 쇼에 불과하다” “730억엔에 달하는 선거 비용이 낭비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2006년 2월25일자 잡지도 황실 전범 개혁과 개인정보보호법 문제와 관련해 고이즈미 총리를 공격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다스제 전 편집장은 “권력을 감시하는 게 저널리즘의 역할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인기가 높았을 때 우린 독자가 떨어지든 말든 유일하게 반대 목소리를 낸 언론이었다”고 말한다.
종합주간지에서 드러나는 반정부적 태도는 일본의 기자클럽 제도와 관련이 있다. 가토 편집장은 “신문기자들은 기자클럽 제도로 인해 제한을 많이 받는다”고 말한다. “신문은 권력이 제공하는 편의에 젖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보도하는지가 애매해졌다. 미라 도굴꾼이 미라가 된 셈이다. 정치권의 발표를 그대로 보도하는 식이다. 세금을 내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세금을 쓰는 편에서 기사를 쓴다.” 무색무취한 뉴스의 이면에 또 다른 진실이 숨겨져 있다고 믿는 대중에게 주간지 저널리즘은 소구한다.
실제, 정치·외교팀 데스크를 맡고 있는 곤도 다이스케 편집차장은 국회엔 들어갈 수 있으나 총리 관저엔 못 들어간다. 기자실 출입과 재판 방청에도 제한을 받는다. 그리고 신문기자들은 여전히 주간지의 주요 취재원으로 남아 있다. 따라서 비밀과 진실을 움켜쥘 수 있고, 움켜쥐어야만 하는 주간지들은 자연스레 독립성과 폭로성을 강조하게 됐고, 스쿠프(scoop·특종) 경쟁은 과열됐다. “최근 불거진 중국 주재 일본 대사관 서기관의 자살 사건은 <주간문춘>(週刊文春)의 스쿠프로 세상에 알려졌다. 일본의 이라크 파병을 비판하는 것도 <주간현대>뿐이다.” 고단샤의 한 편집자가 말한다. 그러나 종합주간지에는 선정성, 상업주의, 인권침해 같은 부정적인 단어가 동반된다.
그런데 스쿠프 제일주의나 게릴라 저널리즘 같은 말이 종합주간지의 모든 것을 말해주진 못한다. 현재 주간지 4강 구도를 이루는 문예춘추(文藝春秋)의 <주간문춘>, 신초샤(新潮社)의 <주간신조>(週刊新潮), 고단샤의 <주간현대>, 쇼각칸(小學館)의 <주간포스트>(週刊ポスト)는 모두 출판사계 주간지로 신문사계 주간지가 주종을 이루는 한국의 시사주간지들 같은 ‘가타이’(堅たい·딱딱한) 잡지가 아니다. <주간문춘> <주간신조>는 여성 독자를 고려한 칼럼·소설을 기획하면서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으며 <주간현대> <주간포스트>는 주식·골프 기사, 연재 만화, 선정적인 여성 화보를 곁들여 남성 샐러리맨들의 ‘벤또’(도시락) 역할을 자임한다. <주간문춘> <주간신조>에 누드 ‘그라비아’는 없다.
그라비아는 마약이다? 오락이다?
그라비아는 원래 인쇄 방식을 칭하는 용어지만 통칭 잡지의 앞뒤에 붙는 여러 장의 흑백·컬러 화보를 의미한다. 여행, 요리, 스포츠, 사건 관련 화보로 구성되는데 <주간현대>의 경우 가장 앞장을 차지하는 건 여성 연예인의 컬러화보다. 뒤편엔 누드 화보도 삽입된다. 일부는 음모를 노출하는 ‘헤어누드’이다. 그래서 <주간현대>엔 정치팀, 경제팀, 사건팀, 스포츠·예능팀 외에도 컬러 그라비아팀과 모노 그라비아팀이 있다.
고단샤 격주간지 <쿠리에 자폰>(COURRiER japon) 편집자 고마쓰자키 준씨는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주간현대>에서 사건팀과 그라비아팀에 몸담았다. 고마쓰자키씨는 “가슴이 1mm라도 깊게 보이고 살이 1㎠라도 노출되면 그라비아 편집자로서 성공이다”고 말한다. 지명도 있는 연예인의 독특한 사진이 게재되면 바로 판매부수가 증가한다. 그렇다 보니 <주간포스트>와 ‘그라비아 전쟁’을 벌인 적도 있었고 리듬체조 선수 열풍이 분 적도 있었다. 2006년 1월엔 지방 <nhk> 출신 캐스터가 온천을 배경으로 그라비아를 처음 시도해 화제가 됐다. 그 코너의 작은 제목은 ‘신춘(新春) 스쿠프컬러’. 고마쓰자키씨는 “여성에 대한 환상을 지닌 아저씨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것일 뿐”이라며 “샐러리맨들의 관심을 한 권에 담는데 누드만 빼는 것도 이상하지 않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곤도 편집차장은 그라비아를 ‘마약’으로 본다. “보도와 오락의 기능이 충돌한다. 외국에 잡지를 보낼 때는 화보 부분을 잘라버린다. 하지만 만화, 누드에 반대하는 나 같은 반그라비아파는 소수이고, 어차피 잡지는 편집장의 것이니 계속 갈 것이다.”(곤도 편집차장)
<주간현대>는 편집자나 기자의 이름을 내지 않고 편집장의 이름만 표기하는 전통이 있다. 책임도 권리도 편집장의 몫이다. 따라서 편집장이 현 총리를 좋아하느냐, 자이언츠를 좋아하느냐 등에 따라 잡지 색깔이 결정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요미우리신문사가 소유한 일본 최고 인기 프로야구 구단이다. 대형 신문사와 프로스포츠의 결합은 거대한 힘을 만든다.) 고단샤 내에도 <주간현대>나 정치·연예 스캔들을 사진으로 폭로하는 사진주간지 <프라이데이>를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이 있지만 편집장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라비아는 하나의 오락이다. 보기 싫으면 붙어 있는 누드 페이지를 자르지 않으면 된다.”(다스제 전 편집장) “독자의 80%인 남자들의 요구에 응할 뿐이다. 또한 잡지는 사회의 여러 가지 것들을 벗겨야 하는데, 정치가들의 거짓을 벗기는 경우가 있다면 여성의 옷도 벗겨야 한다.”(가토 편집장)
거리의 정서를 반영하는 주간지의 통속성은 1950년대 후반에 본격화됐다. 1922년 창간된 <주간아사히>도 초기엔 인텔리 지향이었으나 1951년 10월28일자에선 휴머니즘이 가미된 14살 천재 여가수 미소라 히바리 밀착기사를 내보내고 있었다. 1956년 최초의 출판사계 잡지 <주간신조>가 창간됐는데, 정보망도 취재 시스템도 판매망도 광고 영업력도 없는 출판사가 주간지를 냈으니 출판계가 경악할 만했다. ‘돈과 여자’를 소재로 삼는 ‘속물주의’ 노선은 필수적이었다.
그 뒤 1959년 <주간현대> <주간문춘> 등 20여 종의 주간지가 창간되면서 주간지 붐이 몰아쳤다. 한국전쟁에 따른 경기 부흥으로 대도시를 중심으로 샐러리맨층이 형성되고, 주택 공급의 부족으로 통근권이 확대되면서, 통근시간이 늘어난 샐러리맨들이 ‘나도 한번 볼까’ 손 내밀고 ‘위클리’의 감각은 정착됐다. 아직도 회사의 부장급 관리자가 전철로 통근하는 게 보편적인 일본에서 주간지들은 서점이나 정기구독망이 아닌 가판대를 중심으로 50만 부 이상씩 팔린다.
편집자 중심 조직, 프리랜서 문화
출판사계 주간지의 성장은 자연스럽게 기자, 편집자 같은 ‘작가’에 대한 수요를 불렀다. 프리랜서, 프리라이터라 불리는 주간지 저널리스트가 육성된다. 신문기자, 편집자 출신의 매스컴통, 작가 지망생인 문학통, 1960년대 운동세대 출신인 마르크스통 등 여러 곳에서 모여들었다. ‘데이터 저널리즘’ ‘르포르타주’도 등장했다. 여러 명이 분담 취재한 ‘데이터 원고’를 한데 모아 필력을 갖춘 한 명의 ‘앵커맨’이 일필휘지로 기사로 엮어내는 ‘앵커 시스템’이 나온 것도 이때다. 이런 토양에서 나온 이가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이다. 1967년 금권정치의 대부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를 구속시킨 ‘록히드 뇌물사건’을 <문예춘추>에 폭로했다. 그는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등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지성인으로 국내에 소개돼있다.
주간지의 조직은 편집자이다. <주간현대>도 마찬가지다. 현재 27명의 편집자, 30명의 계약기자, 5명의 카메라맨이 있으며, 필요에 따라 프리랜서도 합류한다. 편집자는 고단샤의 정직원으로 편집·영업 구분을 두지 않는 공식채용제도를 통해 입사했다. 계약기자는 공고나 소개 등으로 뽑힌다. 일부 고용 불안이 있지만 계약기자로 10년 넘게 기자생활을 한 이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주간현대> 편집자들은 취재 전반을 지휘하는 편집자의 일과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의 일을 병행한다. 정치팀 데스크 곤도 편집차장의 일도 한국 신문사의 중견급 팀장과 별 차이가 없다. 가토 편집장은 “프리랜서 제도는 다양한 이를 불러모아 독자와 가까운 위치에서 기사를 쓰게 만든다. 그리고 편집자는 되도록 현장에 나가야 한다. 그래야 진실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어쨌든 주간지 편집장은 기자 경력만 있는 이가 되는 경우는 없으며 기자 체험을 한 편집자 가운데서 나온다.
일본 경제신문에서 30년간 기자생활을 한 호세이대학 경제학부 교수 호세이 나가오카씨는 “프리랜서 제도는 착취 제도이다. 신문에 열 가지 문제가 있다면 주간지엔 스무 가지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도 “잡지는 신문의 금기를 깨뜨린다”는 점을 인정한다. <조선신보>를 거쳐 2001년부터 ‘작가’로 일하는 재일동포 3세 김현씨는 자신을 “용병 같은 존재”라고 정의한다. “중학교 때부터 꿈꾸던 일이다. 구속을 싫어하는 만큼 안정을 바라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덧붙여 “일부에선 <주간문춘>의 부상을 일본의 우경화와 연관짓는데 나는 우파와 상관없는 유능한 편집자들이 최근 많이 모여든 데에서 이유를 찾는다. 기획을 잘하고 프리랜서의 전문성을 존중한다. 그곳 일이라면 미국이든 아프리카든 맘껏 취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일본은 없다>(전여옥 지음)의 표절 의혹설로 화제가 된 프리랜서 유재순씨도 지난해 <주간현대>에서 우파인 아베 신조 관방장관의 북한 밀사 파견건을 기사화했다. 당시 중국에서 북한 출신 취재원을 만날 때 일본의 일간지 기자도 동행했으나 유재순씨만이 기사를 썼다. 능력에 따라 A, B, C, D급으로 구분돼 원고지 400자 기준으로 4천엔부터 1만엔 이상까지 지급되는 프리랜서 세계, 작가들은 배고파도 뛴다.
샐러리맨 문화는 사라졌을까
몇 년간 종합주간지 시장은 내리막세를 보여왔다. “장기 불황으로 아저씨들의 용돈이 줄어들었다” “종신제의 몰락이 샐러리맨 문화를 없앴다” “휴대전화와 인터넷에 독자를 뺏겼다” “개인주의는 사회 문제에 무관심을 가져왔다” 등 고단샤 내부에서도 다양한 진단이 나온다.
<주간현대>가 소속된 제1편집국의 와타세 마사히코 국장은 “<주간현대> <프라이데이> 등은 고정 독자가 분명한 만큼 그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일관성을 강조한다. 새로 부임한 가토 <주간현대> 편집장도 주간지가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에 대해 고심 중이다. 텔레비전과 신문이 안심하고 보도하기 위해 주간지의 ‘폭로’가 필요한 일본의 현실에서 주간지 저널리즘은 빌딩 숲의 마지막 게릴라를 자처한다. 콘텐츠의 항구 고단샤, 세상을 부유하는 온갖 지식과 정보들이 이 항구에 닻을 내릴 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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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 분쿄구에 자리한 주식회사 고단샤는 1909년 11월 노마 세이지(野間淸治)에 의해 설립됐다. 처음에는 다이니혼유벤카이(大日本雄辯會)라는 이름으로 시작됐으나 ‘고단샤’ ‘다이니혼유벤카이고단샤’(大日本雄辯會講談社)를 거쳐 1958년 ‘주식회사 고단샤’가 됐다. 1910년 변론 잡지 <유벤>(雄辯)의 창간을 시작으로 잇달아 잡지를 창간하고 1931년 총 9개 잡지의 발행부수가 530만여 부에 달하면서 잡지왕국을 만든다.
현 대표이사는 노마 가문 출신의 6대 사장 노마 세이코(野間佐和子). 사업은 크게 코믹, 잡지, 서적 부문으로 나뉘며 2004년 매출액은 1598억엔에 달했다. 700억엔가량이 코믹 부문에서 나왔고, 점차 라이선스와 디지털 부문이 신장하고 있다. 정사원 수는 2005년 6월 현재 1031명인데 계약직 프리랜서를 포함하면 매일 빌딩 안에선 3천여 명이 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킹 레코드 등 관련 회사를 다수 보유하고 있으며, 2003년 미국 랜덤하우스와 합작해 ‘랜덤하우스 고단샤’를 설립했다. 현재 고단샤 창립 100주년 기념 기획 제1탄으로 소설가 이쓰키 히로유키(五木寬之)의 사찰 100곳 순례기 <百寺巡?>(전 10권)의 발간이 이어지고 있다.
서적보다 잡지가 많이 팔리는 나라
“일본의 잡지문화요? 최고죠.” 엔씨소프트 일본 법인 엔씨재팬의 마케터 안우성(28)씨는 한마디로 정리한다. 그는 서점에서 <gq> <에스콰이어> 같은 남성지만 6종 이상, 시계만을 다룬 잡지가 3종 이상 있는 걸 보고 크게 놀랐다. 일본에서 잡지는 여전히 값싸고 대중적인 레저문화다. 일본에선 잡지 판매 규모가 서적 규모보다 우위다(표1 참조). 1955년부터 시작된 발행부수제(ABC제)도 정착돼 130여 종의 잡지가 부수 공개 중이며, 이와 별도로 일본잡지협회는 <매거진 데이터 2005>를 발행해 인쇄소증명 발행부수 416종을 포함한 총 645종의 잡지부수를 공개했다. 2005년 6월 발행된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riceWaterhouseCoopers·이하 PWC)의 <세계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전망>(Global Entertainment and Media Outlook: 2005∼2009)에 따르면, 판매와 광고수익을 합한 일본의 2004년 잡지시장 규모는 아시아·태평양 시장의 62%에 달한다.
그러나 잡지왕국의 명성도 예전만 못하다. 1993년 620만 부와 350만 부를 발행한 주간 만화잡지 <주간소년점프>와 <주간소년매거진>은 2004년 299만 부, 272만 부를 발행했다. PWC는 일본 잡지시장의 2005∼2009 연평균 성장률 예상치를 2.8%로 본다. 이는 아시아·태평양 전체 예상치 4.8%보다 낮다.
한국의 잡지시장은 신문·서적 분야와 달리 아시아·태평양 시장에서 영세적이다 2004년 시장 규모는 한국잡지협회 추정 연간 1조원, PWC 추정 4억600만달러다. 2005~2009년 연평균 성장률 예상치도 1.8%로 아시아·태평양 조사대상 14개국 중 가장 낮다. 일본출판학회 정회원인 (재)한국출판연구소 백원근 책임연구원은 “잡지와 서적을 1대1로 병행하는 일본과 달리 한국에선 잡지시장의 존재감이 없다”고 말한다. 잡지가 만개할 수 있는 역사적 과정이 결핍됐으며, 정보를 비즈니스화하는 마케팅 능력이 열세라는 진단이다. 그러나 그는 “인터넷 시대에도 ‘어떤 콘텐츠냐’라는 점이 제일 중요하며, 국내에도 고급 정보에 고가를 지급하는 ‘콘텐츠 킬러’가 늘었으므로 잡지시장의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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