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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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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의 내일, 온라인에 묻지마

등록 2006-03-10 00:00 수정 2020-05-03 04:24

국제뉴스 특화로 파이 늘리기에 나선 격주간지 <쿠리에 자폰>의 창간
과도기 겪는 일본 인터넷 시장, 디지털 부문도 단행본 제작에 나선다

▣ 도쿄=글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지난해 일본 광고회사 덴쓰가 꼽은 2005년 상반기 히트상품 1위는 블로그였다. 2001년 1만여 명에 불과하던 일본 초고속 인터넷 이용자 수는 어느덧 3천만 명을 돌파했다. NHN, CJ 인터넷 등 국내 게임포털들도 일본 공략에 나선다. 그러나 당장 다음주의 스쿠프(scoop·특종)가 시급한 <주간현대>에게 온라인 전략을 묻는 건 한가한 일처럼 보인다. 줄어드는 잡지 시장, 밀려오는 인터넷. 잡지의 내일은 어디에 있을까.

한 사람의 아이디어, 전격 지원하다

지난해 말 고단샤는 오랜만에 저널리즘 잡지를 창간했다. 세계 1천여 매체에서 뉴스를 골라 게재하는 국제뉴스 격주간지 <쿠리에 자폰>(COURRiER japon)이 그것이다. 새 잡지는 2003년 말 고단샤 100주년 기념 사내공모에 응모한 고가 요시아키(41) <쿠리에 자폰> 편집장의 기획안이 채택되면서 준비가 시작됐다. 그는 이 잡지의 아이디어를 2001년 프랑스 파리에서 얻었다.

1989년 고단샤에 입사해 <주간현대> <프라이데이>를 거친 고가 편집장은 후겐다케 화산 폭발과 옴진리교 사건을 다룬 두 권의 사진집을 낼 정도로 현장형 편집자였다. 멀어지는 현장과 다가올 관리직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는 2001년 사내유학제도를 이용해 훌쩍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프랑스 사진주간지 <파리마치>(PARISMATCH)에서 1년간 연수를 하고 싶었던 그가 문의 이메일에 연락이 없는 <파리마치> 편집장을 휴가 기간에 직접 찾아가 연수 허가를 얻어낸 다음의 일이었다.

“2001년 파리에서 미국의 9·11 테러를 맞이했다. 그때 수십 권의 잡지를 사서 비교해 읽었는데 가장 재미있었던 게 ‘pourqui?”(왜)라는 타이틀을 단 국제뉴스 전문주간지 <쿠리에 인터내셔널>(CURRiER International)이었다.” 그는 미국, 유럽, 그리고 아랍, 이스라엘, 동아시아 언론의 사설과 기사들이 한데 모여 그렇게 강력한 힘을 뿜을 줄은 몰랐다. 독특하게 날것을 가공하는 이 방식이 무척 흥미로웠다. 1990년 4명의 젊은이들이 창간한 <쿠리에 인터내셔널>은 현재 전세계 127만여 명이 보고 있다.

2004년 5월 1차 시험판을 제작한 뒤 2004년 12월 신잡지편집준비팀이 꾸려졌다. 개인의 아이디어는 회사의 지원으로 조직화되기 시작했다. 기초사항이 게재된 사내 인명록을 뒤져 어학과 편집 능력을 겸비한 편집자를 물색하는 한편 별도의 공개 채용을 진행하고, 편집장 경험이 없는 자신을 지도해줄 요시오카 미치오 고문을 타 부서에서 영입해왔다. 종이와 디자인으로 아이덴티티를 강조하고 제호를 <쿠리에 자폰>으로 확정지었다. ‘세계는 일본을 어떻게 보는가’라는 잡지관도 정리됐다. 2005년 9월부터 나온 3권의 ‘0호’로 제작 시뮬레이션도 끝났다. 2005년 12월, 스쿠프와 스캔들이 없는 고단샤의 저널리즘 잡지가 세상에 등장했다.

<쿠리에 자폰>은 <쿠리에 인터내셔널>과 제호, 잡지 아이디어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있다. 콘텐츠의 구성은 전적으로 <쿠리에 자폰> 편집진 몫이다. 유럽·아프리카팀, 아메리카팀, 아시아·태평양팀 편집자들은 전문 통역가와 외부 프리랜서와 함께 1천여 종의 해외 언론을 살핀다. 게재 기사가 결정되면 판권 담당자가 일일이 해당 언론사나 저널리스트와 접촉한다. <한겨레21> 제578호 “용감한 우리, 삼남매를 키운다”가 <쿠리에 자폰> 제8호 “세계의 저출산 현상, ‘낳지 않기’라는 선택” 기획에 게재된 것도 그런 과정을 거친 것이다. 판권 담당자 유모토 치에코씨는 “해외 언론사와 일본 언론사의 제휴관계가 훼손되지 않도록 조심한다”고 말한다. 100여 년 된 고단샤도 국제뉴스 분야에선 신생아다.

“<주간현대> <프라이데이> 같은 기존 잡지는 광고 유치나 속보 경쟁에서 한계가 있다.” 고가 편집장이 말한다. “조사를 통해 2001년 이후 신문·방송에서 국제뉴스가 조금씩 증가하는 걸 확인했다. 특파원을 수십 명씩 두지 못하는 잡지사도 <쿠리에 자폰> 같은 방식을 취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세계 유수의 저널리스트가 쓴 기사를 내보낼 수 있다. 인터넷에 국경은 없지만 언어의 장벽은 있다. 우리의 번역은 고급 정보에 쉽게 접근하게 해준다.” 국내 문제에 더 집중하고 특파원도 주로 영어 매체로 현지 정보를 수집하는 일본 신문사의 제약이 <쿠리에 자폰>엔 기회다. ‘일본’이라는 필터가 완전히 제거된 현지어 매체에서 경쟁력을 찾는다. 잡지의 고급 이미지 덕분에 IBM 등 외국계 광고주도 유치했다. 고가 편집장은 10호, 20호를 기점으로 잡지 콘셉트 홍보를 펼칠 예정이다. 고단샤의 강력한 편집력이 만든 새 잡지가 시장에 무사히 안착할지 기대가 된다.

블로그 베스트셀러 <생협의 시라이시씨>

일본 출판 정보지 <쓰쿠르>는 2006년 2월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미국에선 잡지를 출판물로 판매하면서 동시에 같은 내용을 디지털 콘텐츠로 판매한다. 일본에서 이런 비즈니스가 확대되면 출판계는 대응할 수 있을까.” 또한 <전차남> 같은 인터넷 발신 히트작들은 아직까진 베스트셀러가 되기 위해선 ‘출판물’이라는 중재자가 필요하며 이런 상황을 과도기적 현상으로 해석했다.

2000년 설립된 고단샤 디지털 사업국의 요시이 준이치 국장에게 잡지의 온라인 전략을 묻자 “특별히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2000년 ‘Web현대’로 웹저널리즘을 주창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지금은 잡지의 일부 콘텐츠를 무료로, 유로로 공급하는 수준이다. “인력과 기술이 사내에 있다고 기계적으로 종이를 디지털화하면 성공할 수 없다.” 그는 “콘텐츠 생산자가 처음부터 디지털화를 염두에 두고 생산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단샤는 인터넷 광고나 콘텐츠 유로사업에 기반을 둔 회사가 아니다. 컴퓨터, 게임에 독자를 뺏겼다는 건 흥미로운 콘텐츠를 못 보여주는 출판사의 변명이다.” 요시이 국장은 “고급 콘텐츠로 사람들을 모아 단행본이나 잡지로 유도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최근 디지털 사업국은 고단샤 콘텐츠 포털 사이트 ‘MouRa’(http://moura.jp)를 매개로 서적 <생협의 시라이시씨>(生協の白石さん)를 발간해 인기를 끌고 있다. 2006년 2월 중순까지 88만 부 이상 팔렸다. 시라이시씨는 도쿄농공대 소비생활협동조합의 직원으로 식당, 점포에 비치된 의견엽서에 적힌 학생들의 질문에 항상 성실하고 재미있게 답을 달아준다. 그의 얘기가 블로그에서 화제가 되자 ‘MouRa’ 편집자는 시라이시씨를 취재해 온라인에 게재했다. 그리고 2005년 11월 의견엽서의 문답을 모아 단행본으로 발간해 히트를 친다. <쓰쿠르>가 말한 ‘과도기적 현상’이다.

현재 디지털 사업국의 매출액 20억엔의 절반은 모바일 게임에서 나온다. 요시이 국장은 “출판사는 재능을 대리해 돈을 버는 회사다. 요즘 문예지나 만화 잡지에 응모하는 사람이 적다. 하지만 문자 사용량은 증가하지 않았나. 종이를 쓰는 이들이 줄었을 뿐이다. 지금의 출판사 구조로는 재능을 모으지 못한다”고 지적하면서 “디지털 사업국의 비전은 인터넷에 널린 재능들을 발굴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소설가 가네하라 히토미는 휴대전화 이메일로 틈틈히 메모를 남긴 뒤 집에서 컴퓨터로 이메일을 정리하며 소설을 쓴다. 문학은 변신 중이다. 종이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고단샤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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