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 농성에서 어용 변질까지 영광과 치욕의 현대중공업 노조 20년 역사
회사쪽이 자랑하는‘12년 무파업 신화’… 그들은 어떻게 침묵을 강요당했나
▣ 울산=글 길윤형 기자charisma@hani.co.kr
현대중공업 노조 20년의 역사는 한국 노동운동의 영광과 치욕, 좌절의 축소판이라고 부를 만하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그리스 리바노스사와 26만t급 초대형 원유 운반선 2척을 만들기로 계약을 맺으면서 ‘현대조선중공업주식회사’란 이름으로 조선소를 짓기 시작한 것은 1972년 3월의 일이다. 울산 미포만의 작은 조선소는 지난 3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150만 평의 공장 터에서 2만5천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세계 최대의 선박 건조 회사로 거듭났다. 회사 쪽은 조선산업의 호황으로 올해 매출 목표를 지난해보다 22.7% 늘어난 12조7천억원으로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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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명 높은 ‘현중 경비대’와 식칼 테러
회사가 노동자들을 통제하기 위해 노사협의회를 만든 것은 회사가 만들어진 뒤 2년쯤 지난 1974년 10월의 일이다. 회사의 무기는 고과 점수에 따라 차등 지급되던 연말 상여금이었다. 현대중공업 초대 노조위원장을 지낸 정병모씨는 <울산노동뉴스>에 연재 중인 ‘정병모의 노동운동야사’에서 “아이가 공부를 잘해도 아버지의 고과 점수가 낮으면 학자금을 받지 못했고, 아버지의 고과 점수가 좋아도 아이가 성적이 좋지 않으면 학자금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고 적었다. 회사는 점심 조회 때 노동자들의 머리 길이까지 관리하려 들었고, 노동자들은 “에이 씨팔”이라는 말을 되뇌며 가혹한 노동조건을 받아들였다. 관리직과 생산직의 차별도 극심해 크고 작은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서울대생 박종철의 죽음으로 시작된 1987년이 밝아왔다. 울산의 대공장들도 87년 여름의 열기를 비껴가지 못했다. 1987년 7월5일 현대엔진에서 노동자 권용묵씨를 중심으로 노조가 결성됐고, 이에 자극받아 현대중공업에서도 노조 설립 작업에 가속이 붙었다. 회사에서는 한발 빠르게 노사협의회 간부들을 중심으로 그해 7월21일 어용노조를 출범시켰지만, 대세를 거스를 순 없었다.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광장으로 모였고, 7월28일 새벽 4시 어용노조 집행부는 사퇴서를 제출했다. 그 다음날 민주노조의 깃발이 미포만에 펄럭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현대중공업 노조 창립일은 7월21일이 아닌 7월29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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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노조는 자타가 공인하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적자였다. 그에 따라 회사의 노조 탄압도 가혹했다. 1987년 9월12일. 경비대와 총무부 직원들이 수배 중이던 노조 간부를 집단 폭행하며 봉고차에 밀어넣자, 차 앞을 가로막던 이상남(당시 30살)씨가 차에 깔렸다. 악명 높은 ‘현중 경비대’ 소속 배아무개씨는 계속 차를 몰았고 이상남씨는 차 앞바퀴에 머리와 대퇴부가 낀 상태로 5m 이상 끌려갔다. 그는 612일간의 투병 끝에 숨을 거뒀다. 1988년 2월21일에는 파업 중이던 노동자들과 회사 관리직 사원 및 경비대원들 간의 몸싸움 와중에 경비대가 식칼을 휘둘러 노동자들의 등과 옆구리에 길이 10cm, 깊이 7cm가량의 중상을 입혔다. 이 ‘식칼 테러’는 그해 한국 사회를 뒤흔든 ‘128일 투쟁’의 기폭제가 됐다. 이따금 신문지면을 떠들썩하게 장식하는 노동자들의 골리앗 크레인 농성의 원조도 1990년 이곳 현대중공업이었다. 목숨을 건 노동자들의 치열한 투쟁이 사회 구성원 모두의 동의를 얻을 순 없겠지만, 한국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우리가 그들의 골리앗에 조금씩 빚진 바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긴 힘들다.
마비된 노조를 비리 파문이 덮치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치열해질수록 회사의 노조 관리 방식도 교묘하게 진화했다. 회사는 강성인 노조 지도부와 현장 노동자들을 잇는 등뼈 역할을 하는 대의원들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 김아무개(46)씨는 “회사 쪽 대의원이 되면 노동자로서 뿌리칠 수 없는 여러 혜택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회사 쪽에 협력하면 승진이 빠르고 자유롭게 회사 출입을 할 수 있었다. 2002년 마지막 민주노조의 부위원장을 지낸 김형균씨는 “회사에 협조하는 어용 대의원이 유·무형의 여러 떡고물을 챙길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회사 쪽으로 붙는 어용 대의원들의 수가 절반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마지막 파업은 1994년 7월이었다. 노동자들의 63일 파업에 회사는 직장 폐쇄로 맞섰고, 그해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무노동 무임금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회사는 파업 기간에 봉급과 상여금을 주지 않는 강경노선을 밀어붙여 관철시켰다. 이후 1996년 말 노동법 날치기 파문 때 짧은 파업이 있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회사 쪽은 그해 파업은 파업으로 인정하지 않고 ‘12년 무파업 신화’를 선전하고 있다. 회사 쪽에 포섭된 대의원들에 포위된 노조는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었다. 노조 간부는 꾸준히 민주노조 쪽이 장악해왔지만, 예전과 같은 활력을 찾긴 힘들었다. 한쪽에선 그것을 “선진 노사 관계”라 칭송했고, 노동계에선 “현대중공업 노조의 치욕”이라 불렀다. 아마도 진실은 그 중간 어디께에 있을 것이다. 노동자들은 나이가 들었고, 그들에게 젊은 시절의 초심을 지키라고 말하는 것은 감성적으로는 지당한 말이겠지만, 사람들을 광장으로 불러모으기에는 늘 2% 부족했다. 대의원은 90% 이상 회사 쪽에 포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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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된 노조를 파고든 것은 비리 파문이었다. 2002년 현대중공업노조 사무국장 강아무개씨가 노조 창립 기념품 선정 과정에서 납품 업체로부터 6천만원을 받은 사실이 경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민주노조의 다른 간부가 개입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됐지만, 민주노조는 명분을 잃었다. 그들은 내몰리듯 집단 사퇴를 결심했다. 김형균씨는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도 정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노조 집행부 교체로 현대중공업 노조의 세력 관계는 ‘여소야대’에서 ‘여대야무’가 됐다.
4년동안 50명이 숨지다
공장은 평온을 되찾았다. 그렇지만 민주노조에서는 “그것은 강요된 침묵”이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가혹한 노동현장에서 잇따라 쓰러졌다. 2001년부터 2004년 상반기까지 조선산업에서 발생한 산업재해로 숨진 사람 수는 217명, 다친 사람은 1만68명이나 된다. 이 가운데 현대중공업에서 숨진 노동자는 모두 50명(직영 44명, 사내하청 7명)이다. 김영주 열린우리당 의원은 “더 나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의 사망자 수가 더 적은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 침묵 속에서 사내하청 노동자 박일수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4년 2월14일이었다. 노조는 그 죽음을 외면했다. 그들은 “박일수를 열사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현대중공업 노조를 제명했다. 이후 최윤석-탁학수-김성호 집행부를 거치면서 실리주의를 내건 노동자민주혁신투쟁위원회(노민투) 쪽 후보들이 줄곧 승리해왔다. 선거 결과 노민투는 55% 안팎, 옛 민주노조를 계승하는 ‘전노회’는 45% 안팎의 득표율을 보이고 있다.
2005년 6월15일 현대중공업 노조는 사내 체육관에서 노조원, 회사 관계자 등 5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노·사 상생과 협력’을 기조로 한 노조 이념과 강령을 선포했다. 그들은 참여와 협력을 바탕으로 “노·사 상생을 통해 공존 공영한다” “노사가 함께 발전하는 노사문화를 창출해 조합원들의 안정을 도모한다” “노조의 사회적 책임을 인식해 지역 발전을 도모하고 밝은 복지국가 건설을 지향한다”고 선언했다. 지난 2월14일은 고 박일수씨의 2주기였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추모단이 회사 내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다. 그날 울산의 하늘은 내내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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