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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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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차기 전에 웬 국기에 대한 맹세?

등록 2006-03-01 00:00 수정 2020-05-03 04:24

태권도장의 관습화된 국가주의 정면비판하는 구효송 영산대 교수 인터뷰
“민족 대대로 내려온 순수한 무예인 양 신화화하는 태도도 옳지 못해”

▣ 양산=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경기 고양에 사는 이아무개(12)군은 매일 태권도 도장에 다닌다. 이군은 운동 시작에 앞서 아이들과 줄을 맞춰 도장 중앙에 걸린 국기를 바라보고 경례를 한다.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얹고 다 같이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워요.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국기 앞에 절하고 삼강오륜 외우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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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이식돼 군사정권에서 확립된 국가주의의 유산은 태권도에도 남아 있다. 전국의 태권도장에서 행해지는 국기에 대한 경례(맹세). 국가별 대항전도 아니고 하다못해 승단 심사도 아닌데, 하얀 도복을 입은 아이들은 매일같이 운동에 앞서 국기 앞에 절을 하고 맹세문을 외운다. 도장에 따라 국가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라는 태권도 정신이나 삼강오륜 등을 외우게 하는 곳도 있다.

아무도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던 태권도계에서 이를 정면 비판하는 소장 학자가 있다. 구효송(44) 영산대 생활스포츠학부 교수. 그는 2001년 태권도가 국가주의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 논문에서 “국기 경례는 태권도를 통한 이데올로기화 작업으로 인해서 파고들어온 부자연스러운 행위”라며 “태권도계가 국가기관도 아닌 마당에 국기에 대한 경례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2월23일 경남 양산 영산대 교정에서 만난 구 교수는 아직도 태권도계가 태권도에 일상화된 국가주의적 폐해에 대해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이제야 국기에 대한 맹세 존폐 논쟁이 벌어진 것은 때늦은 감이 있다”며 “태권도장에서 관습적으로 행해지는 국기 경례에 대해서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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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장에 평생 가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가 행해진다는 점에 좀 의외라고 생각할 것 같다.

=1969년 내가 태권도장을 다녔을 때부터 국기에 대한 경례 관습이 있었다. 그때에는 아이들이 도장에 들어가면 국기를 보면서 경례했고,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다시 경례했다. 요즈음에는 도장마다 다르지만 전체가 운동 전에 국기 경례를 한다. 99%의 태권도장이 하는 걸로 보면 될 것이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외국의 태권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이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제기나 토론이 없었던 것도 의외다.

=나 같은 사람에게야 부자연스럽지, 대부분의 태권도 사범에게 당연한 행위로 굳어져 있다. 어릴 적부터 태권도장에 다니면서 그렇게 배웠으니까. 나는 1985년 독일에 가서 태권도 사범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국기 경례를 시키지 않았는데, 선배들에게 많은 잔소리를 들었다. 그때야 대한민국이 보잘것없고 후진국 취급을 받았으니까 국기가 소중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해는 간다. 그러나 지금은 넘어설 때가 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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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태권도의 본부 격인 국기원에서 발행한 <태권도 교본>에도 국기 경례가 수양 방법으로 제시돼 있지는 않다. 국기 경례는 공식적인 수련 행위라기보다는 각 도장에서 관습적으로 전승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태권도 수행 도중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관습이 생겼을까.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정확지는 않지만 오래된 건 사실이다. 국기 경례는 해방 이후 태권도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지금의 태권도가 모습을 드러낸 건 1945년 해방 뒤였다. 태권도장이 생긴 것도 해방 이후다. 청도관, 무덕관, 조선연무관, 송무관 등의 문파가 도장 문을 열었는데, 핵심 인물들은 일본과 중국에서 무술을 익힌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무예가 2·3대로 내려와 현재의 태권도가 된 것이다.

태권도는 과연 화랑도를 계승했을까

일본의 가라테에서 전승됐다는 말인가.

=가라테, 검도 등 일본 무술은 19세기 말~20세기 초 군국주의와 함께 대중화됐다. 해방 뒤 도장을 연 사람들은 일본에서 가라테를 배워왔다. 1950년대만 해도 태권도 기본동작이 가라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가라테와 태권도는 다른 면이 있다. 현재 태권도는 가라테의 영향을 받았지만, 민족 고유의 몸놀림이 들어 있다. 해방 뒤에 그게 살아남았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고 태권도가 마치 민족 대대로 내려온 순수한 무예인 양 신화화하는 태도는 옳지 못하다. 이들이 일본과 중국에 역사를 왜곡한다고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

하지만 국기원 홈페이지를 보면, 태권도는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고 신라의 화랑도가 수련했다고 나와 있다.

=태권도계는 우리 전통 문화와 역사에서 태권도의 뿌리를 찾고 있다. 이를테면 신라시대 화랑이 태권도를 수양했다거나 전통 무예인 태껸에서 기원을 찾는다. 그러나 이는 매우 빈약한 근거에 기반하고 있다. 태껸협회 쪽에서조차 태권도와의 관련성을 부인하고, 화랑도와의 관련성도 입증할 만한 게 없다. 그때 무술이 재현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아나. 동양무술은 손발을 쓰는 게 기본이다.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나온 그림도 태권도라고 하는데, 그게 가라테인지 태권도인지 어떻게 아나? 그리스 판크라티온의 벽화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채 태권도에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덮어씌운 것이다.

마치 단군신화가 단지 신화일 뿐인데, ‘우리 민족의 시조’는 단군이라며 사실로 받아들이는 태도처럼 말인가.

=그렇다.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사실을 그대로 봐야 한다.

국가(민족)주의에 입각한 주술이란 말인가. 그런데 일본 무술인 가라테에서 변형된 무술이 어떻게 한국의 국가주의와 결합했다는 말인가.

=원래 ‘태권도’라는 이름은 없었다. 해방 뒤 각 도장에서는 ‘공수도’ ‘당수도’라고 불렀다. 이를 일본말로 읽으면 가라테다. 1952년 한국전쟁 중 당수도를 연마하던 최홍희 육군 소장은 휘하의 부대를 데리고 이승만 대통령 앞에서 당수도 시범을 보였다(최홍희는 일본 유학 중 학병에 참가했다가 한국에 돌아와 육군 간부를 맡았다). 이승만은 이 자리에서 “태껸이 좋아! 남북 통일하는 데 이것이 필요해”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태권도가 훌륭한 스포츠이기 때문에 이를 채택해야 한다는 논리가 아닌 남북 통일의 정신적 바탕으로 태권도를 받아들이자는 사유 구조가 최홍희의 뇌리를 지배했다. 그는 1954년 당수도를 태권도로 이름 바꾸고 이승만의 재가를 받았다. 태권도가 순수 무술로서 출발하지 않은 것이다.

일본 무술인들은 군국주의 이용 반대

태권도의 형성이 전쟁이나 반공 이데올로기와 연관돼 있다는 의미인데. 최홍희는 군사 태권도를 보급하는 한편, 1959년 대한태권도협회를 창립했다가 1965년 다른 관장들과 함께 협회를 재창립한다. 박정희 정권 시기에는 어떤 의미를 갖나.

=군 실세였던 최홍희는 박정희와의 불화로 도미하고 대신 김운용이 그 자리를 잇는다. 박정희 시대에 주목해야 할 사실은 태권도가 1971년 ‘국기’로 인정된 것이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는 한국에 민족주의적 쇼비니즘이 뿌리를 내리던 시기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삼천리금수강산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로, 한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로 우리 머리속에 각인하게 됐다.

유신정권이 성립되는 바로 이때 태권도가 현대적 모습으로 체계화됐다. 당시는 닉슨 독트린이 발표되고 핑퐁외교를 통해 중-미 정상화가 이뤄지면서, 박정희가 ‘자주국방’을 들고 나서던 시기였다. 유신에 들어가면서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때였고. 박정희는 ‘국민교육’이라는 걸 시작해야 하는데, 가만히 보니까 태권도가 있더란 말이다. 각 도장에서 조국에 충성하라고 가르치고 국기 경례까지 시키고 있었다. 태권도의 이념적 부분이 박정희의 이념적 필요와 맞아떨어진 것이다.

재밌는 건 일본 군국주의 무술이 박정희 시대에 재현된다는 점이다. 일본 무술인 가라테는 원래 오키나와에서 전승됐다. 1920년대 일본에 보급되는데, 군국주의의 이상을 만드는 데 이용됐다. 검도, 유술, 합기도도 마찬가지였다. 전시 국민교육에 이용돼 각급 학교에서 교육했고, 군인들은 일상에서 무예를 익혔다. 그러나 1960년대 일본 무술계에서는 ‘무술이 군국주의에 이용돼선 안 된다’는 흐름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태 이런 논의조차 없다.

태권도를 통해 국가주의가 재생산됐다는 것인가.

=나는 두드려맞지 않으려고 태권도를 한다. 여기서 시작해 명상하고 수련하는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축구공을 차기 전에 국기 경례 하는 거 봤나. 그런데 우리는 도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국기 경례를 강요하고, 태권도를 국가를 위해 쓰라고 가르친다. 태권도를 통해 아이들에게 국가주의를 주입시키는 거다. 과연 한국이 민주화됐나. 군부 독재를 극복했다고 하지만 우리 내면의 전근대성과 군국주의는 일제 시대 그대로다. 2002년 월드컵의 붉은 물결을 보면서 한편으로 위험성을 느꼈다. 황우석 사태는 전형적인 파시즘 현상이다. 사태를 뜯어보는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파시즘에서 나타나는 국가, 경제, 군부에서 군부만 빠졌다.

태권도 사범들이여 스스로 깨우쳐라

일반인들은 ‘태권도에서 경례하는 게 뭐가 대수냐’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암암리에 강요하는 게 문제다. 국기 경례를 하고 싶은 사람은 하면 된다. 단, 경례하지 않는다고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으면 안 된다. 바로 그것이 문제다. ‘국가가 있어야 내가 있다’는 관념은 본말이 전도됐다. 국가가 존재하는 건 개인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국가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태권도 사범들이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태권도는 한국 국가주의의 역사

누구도 의심 않는 ‘전통무술’… 김용옥의 ‘메이드 인 재팬’ 필화사건도

태권도의 역사는 한국 국가주의의 역사라 할 만하다. 일본 군국주의에 봉사했던 국가 중심의 무예관이 태권도에 그대로 이식됐고, 이는 반공정권과 군사정권을 거치며 민족주의적으로 포장됐다. 일선 현장에서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국기 경례가 행해졌고, 국가에 대한 충성이 강조됐다.
1971년 박정희가 태권도를 ‘국기’로 삼은 일은 태권도의 대중적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로 인해 태권도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서 알게 모르게 ‘전 국민의 유신화’에 앞장서게 됐다. 물론 당시 사범들이 비정치적으로 교육에 임했다 하더라도, 당시의 태권도장에서 ‘확고한 국가관’과 ‘애국심’이 신라시대의 화랑에 비유해서 강조돼왔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하여 태권도는 가라테보다 더 세고, 쿵푸보다 더 실용적인, 태껸의 맥을 이어받은 한민족의 고유 전통무술로 ‘거듭났다’.
이 시기 김운용은 대한태권도협회장으로 일하며 국기원을 만들고, 세계태권도협회(WTF)를 통해 세계적 보급에 나서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는 데 크게 이바지한다. 반면 이 과정에서 소외된 최홍희는 캐나다로 망명해 북한과의 연계 속에서 국제태권도연맹(ITF)을 통해 동구권에 태권도를 전파한다(브리태니커백과사전은 최홍희를 태권도의 창시자로 기록하고 있다). 국가주의를 등에 업은 태권도가 분단의 굴곡을 똑같이 겪은 것이다.
태권도계에서 국기 경례가 단 한 차례도 진지하게 토론된 적이 없는 건 철옹성 같은 한국 국가주의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되레 태권도의 국가(민족)주의 신화를 걷어내려는 시도를 단호하게 배격하고 있다. 1990년 도올 김용옥은 해방 뒤 태권도의 성립 과정을 밝히면서 “우리가 태권도라고 부르는 모든 무술의 조형은 완벽하게 메이드 인 재팬이다”고 주장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논문은 태권도학회에서 발표가 취소되고, 태권도연구논문집에서도 막판에 삭제당하는 ‘필화’가 벌어지기도 했다(김용옥, <태권도 철학의 구성원리> 참고).
태권도계의 한 관계자는 “각 도장의 국기 경례는 예전보다 빈도가 줄어들었지만, 대다수 태권도인은 아직 미덕인 양 받아들이고 있다”며 “국기 경례 이야기를 꺼내면 불순한 의도인 양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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