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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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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살리는 고철 재활용

등록 2006-02-23 00:00 수정 2020-05-03 04:24

고로 방식보다 친환경적인 전기로 공법은 1t의 누적사용량이 무려 10톤
철강산업, 지구온난화 주범이라는 오명 벗고 ‘철든 산업’으로 변신할 때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세계적인 환경운동가 레스터 브라운은 그의 저서 <지구를 살리는 새로운 경제학 에코 이코노미>에서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순환경제, 생태경제)를 실현할 유력한 수단으로 자원재활용을 꼽고, 그중에서도 ‘철스크랩’(고철)의 재활용을 최우선 관심 대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철강 생산량의 30%가 재활용돼

고철의 환경적 의미가 이처럼 높게 평가되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고철을 이용한 철강 생산량이 엄청나게 많을 뿐 아니라 재활용률도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금속 중에서 인류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게 철이다. 2005년 기준 전세계 철강 생산량 11억3천만t 가운데 고철을 재활용해 생산되는 철강은 3억~4억t으로 30%를 웃도는 것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의 경우 이 비율이 더 높아 44%(2005년 기준 2104만t)에 이른다.

고철의 환경적 의미는 철강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철강 생산 방법은 광산에서 캐낸 철광석과 유연탄을 용광로에 넣은 뒤 1200℃ 정도의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으면 철광석이 녹아 쇳물이 된다. 이를 흔히 고로 제강법(또는 일관제철)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포스코가 유일하게 이 공법을 채택하고 있으며, 현대INI스틸이 2011년까지 700만t 규모의 고로 2기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밝혀놓은 상태다. 다른 한 방법은 전기로 제강법으로, 전기로라는 커다란 그릇에서 고철을 녹인 뒤 철강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이 공법은 철광석의 채굴이 필요하지 않은데다 버려질 경우 자연환경을 오염시키는 고철을 이용하기 때문에 고로 방식보다 상대적으로 친환경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현재 기술의 전기로 공법에선 자동차 강판 같은 질 좋은 철강 제품을 생산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국내 전기로 제강업체는 INI스틸, 동국제강, 한국철강, 환영철강 등 8곳에 이른다.

고철을 활용하는 전기로 제강법의 또 다른 특징으로 일관제철에 비해 에너지 사용량이 35%,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8%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국가청정지원센터 자료집). 일관제철의 경우 1t의 철을 생산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새로운 철광석과 유연탄을 들여야 하지만, 전기로는 1t의 고철을 제품화해 사용한 뒤 다시 수거해 제품화할 때 90% 이상 회수하게 된다. 따라서 1t의 고철은 40회 이상 수거·재활용돼 누적사용량이 무려 10t에 이르는 셈이다.

유럽지역의 환경운동 진영에서 많이 쓰이는 재미있는 환경 용어로 ‘생태적 배낭’(ecological rucksack)이란 게 있다. 이는 특정 제품 한 단위를 만드는 과정에 관련된 물질의 전체 무게에서 그 제품의 무게를 뺀 값을 말한다. 예컨대 흙 2kg과 석유 9kg을 갖고 1kg짜리 그릇 하나를 굽는다면, 그릇 하나의 생태적 배낭은 10kg(=2+9-1kg)이 된다. 이 수치는 특정 제품의 생산으로 말미암아 자연이 떠안는 부담을 표시하는 것으로, 수치가 클수록 자연환경에 주는 부담이 크다.

‘생태적 배낭’의 무게를 줄여라

철의 생태적 배낭은 생산 방식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고로 방식에 따른 철 1kg의 생태적 배낭은 대략 10~20kg이라고 한다. 철광석의 채굴에서부터 완제품에 이르는 과정에 철 자체 무게의 10~20배의 물질이 관여된다는 뜻이다. 금 1kg의 생태적 배낭은 54만kg으로 계산돼 있다. 고철을 이용하는 전기로 방식은 고로 방식에 견줘 에너지 사용량은 3분의 1인데다 광산에서 용광로에 이르는 공정이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철의 생태적 배낭을 훨씬 가볍게 하는 공법이다.

철강산업은 그동안 환경파괴와 대기오염, 지구온난화 등을 일으킨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 때문에 환경의 중요성을 모르는 ‘철없는 철강산업’이란 빈축을 샀으며, 지금은 환경의 중요성을 깨달은 ‘철든 철강산업’으로 변신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고로 방식이나 전기로 방식의 철강 회사들 모두 생태적 배낭을 줄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인데, 고철 재활용은 ‘배낭’의 무게를 줄이는 한 실마리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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