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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여, 유리천장을 깨부숴라

등록 2006-01-24 00:00 수정 2020-05-02 04:24

남성 중심적 기업문화에서 봉쇄된 승진 사다리… 한국기업 2/3에 여성관리자 0명…핵심부서에 진입할 기회까지 아예 차단하는 ‘유리벽’도 돌파해야 하는 운명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단순히 치마를 입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유능한 인력을 낭비하는 기업은 생존하기 어렵다.” 요즘 ‘여성 파워’ 시대가 열렸다거나 “우수한 여성 인력이 미래 성장의 엔진”이라고 말하지만, 1980년대에 공채 1기로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한 대졸 여성들은 기존의 고졸 여성들이 하던 걸레질부터 시작해야 했다.

한시간 먼저 출근해 걸레를 빨던 시절

“내가 걸레를 든 걸 보이면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 내 의견이 먹히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고, 그들에게 걸레 든 걸 보이지 말자 결심했지. 그래서 한 시간씩 일찍 출근해서 책상을 닦았죠.”(대기업 여성 임원·42·광고)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다지 항의하지 않았다. 조직에서 일을 하고 능력을 인정받고 싶었고, 기회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청소가 장난이 아닌 것이 큰 건물은 한 층에 몇백 명씩 앉아 있잖아요. 그 사무실을 다 닦는 거야. 그걸 시키는 데는 ‘(여자가) 얼마나 버티는지 보자 그런 거지.”(대기업 전 여성 차장·41·전산)

오랜 세월이 지나 마침내 극소수는 임원이 되었고, 일부는 부장이나 과장이 되었다. 그리고 대다수는 일터를 떠나 부엌으로 돌아가야 했다. 여태껏 직장에서 살아남아 관리자로 일하고 있는 소수 여성들은 능력이 뛰어나기도 했지만, 직장에서 자신을 인정해주는 ‘성적 편견’이 없는 상사를 만나고 가사·육아를 부담해주는 부모 세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운’을 가진 여성들이 대다수다. “여자 남자 차별 안 하고 일을 시키고 훈련받을 기회도 주고 교육도 보내고 평가도 공정하게 해주는 좋은 상사를 만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대기업 여성 부장·36·제품개발)

우리나라 민간기업의 여성 관리직 현황은 정확한 조사가 부족한 탓에 간접적으로만 파악이 가능하다. 몇몇 연구 결과들은 대체로 종업원 10인 이상 민간기업에서 여성 관리자(과장급 이상)를 7천∼8천 명 수준(전체 관리직의 4∼5%)으로 보고 있다. <고용보험 DB>에 따르면 2002년 종업원 30명 이상 사업체만 볼 때 여성 관리직은 약 7600명(4.9%) 수준이다. 직급별로는 <임금구조 기본통계 조사>를 보면 2001년 500명 이상 기업에서 여성은 임원 350명(2.3%), 부장 862명(2.6명), 과장 5132명(4.0%)이다. 대기업일수록 관리자 비율은 형편없이 낮다. 1997년 정부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50대 그룹(586개 기업)에 근무하는 과장급 이상 여성 관리자는 729명(0.7%)에 불과했다. “최후의 미개척 자원인 여성 인력을 개발해야 경제 재도약이 가능하다”거나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향상되고 있다지만, 관리직 수에서 보면 불행하게도 아직 한국은 여성이 최후의 식민지처럼 남아 있는 것이다.

노동부가 2004년 종업원 1천 명 이상 사업장(354개)을 대상으로 여성 관리자를 조사한 결과 부장은 477명(1.4%), 차장 1706명(3.6%), 과장 6157명(5.6%)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노동연구원이 2002년 1443개 기업(100명 이상·이하 기업이 각각 절반)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을 보면, 여성 관리직이 단 한 명도 없는 기업이 3분의 2에 이르는 901개에 달했다. 게다가 중소기업은 단지 영업활동을 위해 여성한테 부장·과장 자리를 명함으로 준 것도 있기 때문에 여성 관리자 비율이 ‘과대 집계’됐을 가능성도 크다. 반면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2001년 관리직 여성 비율은 미국 43%, 독일 26%, 싱가포르 23%, 일본 11%에 이른다.

그러나 이런 수치는 전혀 놀라울 것이 못 된다. 우리나라 민간기업에 견고한 ‘유리천장’이 버티고 있다는 점을 새삼 일깨워주는 것에 불과하다. 유리천장은 능력이나 업적에 관계없이 여성이 관리직에 오르는 것을 막고 있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제도상의 차별은 없더라도 유리천장은 실제로 남성 중심적 기업문화에서 승진 사다리를 타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차별’이다.

선진국선 80년대에 사라진 M자형 노동생애

‘기업의 꽃’으로 불리는 여성 임원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대기업에 다니는 여성이 임원급에 진출하면 여전히 언론의 대대적인 조명을 받는 게 현실이다. 2002년 <포천>이 선정한 미국의 500대 기업 임원은 총 1만3673명으로, 이 가운데 여성 임원은 2140명(15.7%)이다. 우리나라는 삼성그룹 9명, LG그룹 11명, SK그룹 1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극소수 여성 임원의 일부는 경영수업을 쌓고 있는 오너 일가에 속하거나 외국 명문대 박사 출신, 판사·변호사 출신 등 외부에서 영입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고한 금녀의 벽과 성의 장벽을 뚫고 성공해 갈채를 받는 몇몇 여성 임원 뒤편에는 차별 속에 눈물을 삼키며 일하거나 좌절 속에 조직을 떠나야 했던 수많은 여성들이 있다. 유엔개발계획(UNDP)에 따르면, 2001년 한국의 남녀평등 지수는 세계 146개국 중 29위인데, 관리자 비율 등을 따진 ‘남녀권한 척도’는 64개국 중 61위로 최하위권이다.

한국여성개발원의 여성 취업실태 조사(2002)에서 가장 많은 여성(33%)이 ‘늙어서 할 수 없을 때까지’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혼 직후 노동시장을 이탈하고 승진에서 죄다 탈락하면서 여성 인력의 ‘소수자 고리’는 여전히 되풀이된다. 여성의 노동생애를 보면 20대 초·중반에 경제활동 참가가 증가하다가 30대 초·중반에 대거 퇴장해 움푹 꺼졌다가 40대에 다시 노동 참가가 증가하는 ‘M자형’을 보이는데, 서구에서는 1980년대 이후 이 모양이 사라진 반면 한국은 21세기에도 여전히 M자형이다. 가장 활발히 일할 나이에 일을 중단하고, 특히 대졸 여성은 재취업을 영구 포기하고 노동시장에서 퇴장하고 있다. 육아 뒤에 노동시장에 재진입할 경우 경력 단절로 인해 학력 수준과 상관없이 대부분 비정규직에 취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 황수경 연구위원은 “결혼 뒤 뒤늦게 노동시장에 진입하거나 경력 단절을 거친 여성들은 판매 서비스, 단순노무직 등 저임금 직종으로 몰리게 된다”며 “승리한 소수의 생존자들과 대다수 탈락자들 사이에 취업여성 구성이 양극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졸 이상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04년에 62.6%로 1995년 이후 10년째 60%대 초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구조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바꿔 말하면 정책적 개입이 필요한 때다.

이화여대 이주희 교수(사회학)는 “직장 여성이 결혼·임신을 해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갓난아기를 맡겨놓고 일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시기에 퇴직을 결정하는 현상이 최근 나타나고 있다”며 “아이를 너무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더 오래 일해도 승진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애가 학교에 가면 챙겨줘야 할 게 장난이 아니에요. 요즘 엄마들이 어떻게 하는지 알잖아요. 난 일부러 아파트 아줌마들 안 만나요. 스트레스 받기 싫어서.”(대기업 여성 부장·36·교육개발) 사실 여성의 평균 근속연수는 타 사업체에서 동일한 직무 경력을 포함할 경우 5년 이상 경력자가 1981년 12.8%에서 2001년 41.7%로 대폭 늘었다. 10년 이상 경력자도 1992년 4.9%에서 2002년 16.5%로 인상적인 증가를 보였다. 그럼에도 여성 관리자 비율은 4∼5%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올라갈수록 빛 안 나는 보직으로만

여성이 관리자로 승진하려면 이중의 장벽을 깨야 한다. 유리천장뿐 아니라 관행이란 이름 아래 굳어져온 ‘유리벽’부터 돌파해야 한다. 유리벽은 승진 루트에 속하는 핵심 부서에 진입할 기회가 아예 차단되는 기업 내부의 구조적인 파이프라인 장벽이다. “보직을 주는데, 크는 자리는 주지 않고 남자들이 하기 싫어하고 열심히 해도 빛이 안 나는 그런 자리를 주지. 뒷바라지하고 제대로 빛이 안 나는 자리. 대리 때보다 과장 때 더 심해요.”(은행 여성 부국장·50·정보서비스) 핵심 부서 배치와 순환근무를 통해 전체적인 시각에서 일을 하는 경력 진로를 거쳐야 관리자로 승진할 수 있지만 여성은 이런 길에서 배제되기 십상이다. 기다리고 있는 건 알게 모르게 압력으로 작용하는 ‘자발적 퇴직’뿐이다.

남성은 책임감과 리더십을 갖고 있는 반면, 여성은 의존적 성격이 강하다는 편견 속에서 성공하려면 철저하게 남성들이 지배하는 직종에 뛰어들어야 한다. 경기장이 불공정하게 설계돼 있고 심판도 모두 남성인 게임에서 차별은 구조화된다. “여자는 일단 채용도 안 하고 클 수 있는 기회가 없어요. 여자가 없으니까 인식도 안 변하고, 비전이 없으니까 여자들은 떨어져나가고 악순환이 되는 거죠. 남자들 사회에 들어가기도 어렵고.”(대기업 여성 과장·42·고객관리) 통계청 조사(2004)를 보면 관리·전문 직종에서 여성 비율은 과학 전문가 15%, 보건의료 전문가 66%, 교육 전문가 61%, 컴퓨터 관련 전문가 19%인 반면 일반관리자는 7%에 불과했다. 여성은 비서·판매영업 부서에 주로 배치되고 기획·총무자리는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어떤 여성이 수출 업무에서 아프리카 어디를 뚫었어요. 그게 굉장한 시장인 거야. 그런데 어, 너 수고했다, 그러면서 남자한테 맡겨버려요. 여자가 다 뚫어놨는데 그걸 책임지고 키우는 건 못 맡기겠다는 거죠. 여성 인력을 키워야 된다 어쩐다 하지만 기업은 하던 대로 하면 편하고 잘 굴러가거든요.”(대기업 여성 과장·39·고객관리)

특히 우리나라 기업에서는 업무가 퇴근 뒤까지 이어진다. 여성들은 스태프 경험이 부족하고 술자리 등 비공식 모임에서 소외되면서 남성들의 견고한 네트워크 세계에서 배제된다. 일을 통해 인정받고 성장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남성 상사와 남성 부하, 동료의 도움 없이 여성이 유리천장을 깨는 꿈을 꾸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내가 여기서 올라갈 수 있는 자리까지 다 올라왔다고 생각해요. 다음은 임원급인데, 능력으로 되는 자리도 아니고…. 대리까지는 조금만 잘하면 잘한다 소리를 많이 들어요. 여자를 경쟁 상대로 느끼지 않으니까 견제를 않는 거죠. 부장급으로 올라가면 달라져요. 더 올라가는 데 여자라는 게 장애가 돼요.”(대기업 여성 부장·40·광고) 남자 중심의 기업조직은 승진 계절이 되면 더욱 남자들 중심으로 움직인다. “자기 일만 잘해도 되는 것은 과장까지이고, 그 뒤로는 네트워크가 중요해요. 술자리나 골프를 통해 친분을 쌓고 정보를 입수하는 것도 중요한데, 집안일도 있고 애를 일주일 내내 떼놨는데 주말까지 빨빨거리며 돌아다닐 수도 없고….”(대기업 여성 부장·40·광고)

디지털 시대, 디자인 시대 오면 달라질까

그러나 이제는 ‘다양성의 힘’을 깨달아야 한다. 기업의 노동력 구성에서 여성의 비중이 높아지면 다양성이 증가하고 다수의 의견을 견제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의사결정의 질’이 높아진다. 그동안 여성한테 남성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할 것을 기대하고 ‘남성의 규범’으로 생산성을 측정해왔지만, 여성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다른 유형의 기여를 할 수도 있다. 국내 기업의 여성 차별 때문에 우수한 인력이 넘쳐나고, 이에 따라 여성 관리자를 많이 쓰는 국내의 다국적 기업들은 같은 보수를 주고 더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양성이 주는 또 다른 혜택은 남성 중심의 고리타분한 고정관념을 깨는 혁신적인 창의성이다. “여자라서 좀 다른 행동이 받아들여지는 거죠. 회장님 만나러 가는데 상무님은 꼿꼿하게 긴장하며 앉고, 나는 비스듬히 다리 꼬고 앉고…. 처음에는 충격이었는데 한 2년 지나니까 사람들이 ‘네가 변화에 일조하고 있다’면서 계속 그렇게 해달라고 하더군요.”(대기업 여성 부장·39·제품개발) 이주희 교수는 “유리천장이 재생산되는 메커니즘은 주로 남성 고위 관리자의 차별적 의식 때문”이라며 “고용평등은 여성을 새로운 가치창출의 원천으로 인정할 때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특히 상품시장에서 디자인이 강조되고 디지털 시대에 ‘제조업의 소프트화’가 진전되는가 하면 서비스업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여성성, 감성, 상상력이 중요한 가치로 등장하고 있다. 여성이 소비시장에서 구매 결정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자리잡으면서 여성의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치열한 전략도 펼쳐지고 있다. ‘여성적 감성’을 상품 개발·판매에 적극 활용할 필요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세일즈는 술 마시고 그래야 하니까 남자가 해야 된다, 그런 생각이 있어요. 사장이나 본사 사람들이…. 그러나 여자도 술 마실 수 있다가 아니라 바이어 자체들도 여자들이 많아지고 있고 여자가 잘하거든요.”(다국적기업 여성 부장·38·마케팅) 삼성경제연구소 강우란 수석연구원은 “여성친화적인 감성적 상품이 늘어나고 고급 여성 인력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여성을 안 뽑으면 뒤처진다는 압력이 점차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조직 자체가 여성친화적으로 전환돼야

여성이 조직에서 수적으로 일정한 선을 일단 넘으면 여성 선후배끼리 끌어주면서 자신들의 이해를 공식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세력으로 등장할 수 있다. 유엔은 이런 임계치를 20∼30%라고 제시한다. 강우란 수석연구원은 “미국에서 여성 관리자 비율이 4%에서 16%로 증가하는 데 70년이 걸렸는데, 일단 16%에 오른 뒤에는 승진 비율이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며 “우리나라에서 기업들이 1994년 이후 대졸 여성 공채를 대폭 늘렸으므로 이제 과장급 등 여성 관리자 승진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 이런 예측을 거의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공고한 남성 조직문화에 ‘동화’돼 여성이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자체가 여성친화적으로 전환돼야 한다.



한 계단씩 밟아간 언니들

1960 저임금 여공→1980 서무 여사원→1990 여성 공채→2000 여성 상사

기업에서 여성 인력의 위상은 시대별로 바뀌어왔다. 1960∼70년대에는 ‘저임금 여공’이었다. 비용 측면에서 남녀간 임금 격차를 이용해 기업들이 여성을 활용했던 시절이다. 1980년대는 ‘서무 여사원’ 시대였다. 사무실 단순서무직에 주로 여상을 졸업한 여성을 배치해 문서 수발 등 비서 업무를 맡기는 경우가 많았고, 말쑥한 외양과 싹싹한 태도를 중시했다. 여성 사무원들한테 쾌적한 근무환경 조성 임무가 부여된 것이다. 이들은 결혼과 함께 퇴사하는 게 관행이었다.
1990년대는 ‘외로운 여성 공채’ 시대였다. 남성에 섞여서 공채된 대졸 여성들이 점차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무실 여성 인력이 늘면서 ‘평등’ 문제가 제기됐다. 고용평등에 대한 사회적·조직적 압력이 증가하자 이에 대응해 일부 기업들은 한두 명의 여성을 고위직으로 승진시켰다. 대부분 “우리 그룹에 여성 임원 있다!”는 식의 대외 이미지 효과를 노린 상징적 승진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대졸 여사원 공채도 시작됐다. 관리직에 속하는 여성이라 해도 여성은 마케팅·홍보 등 ‘여성친화적 부서’에만 배치하고 재무·기획 등 핵심 부서에는 제외하는 ‘유리벽’이 존재했다.
2000년대는 ‘여성 상사’의 시대다. 여성 인력 문제는 외부의 압력이 아니라 기업 내부적으로 비용과 수익을 감안해서 결정해야 하는 ‘비즈니스 현안’으로 부각됐다. 경제 구조와 상품 시장의 변화에 따라 여성 인력이 활약하고 비교우위를 갖는 공간이 크게 넓어졌다. 여성 인력을 얼마나 잘 활용하고 개발하느냐에 따라 회사 경쟁력이 좌우되는 국면으로 접어든 것이다.




혁신기업은 여성 관리자를 쓴다

여성 고용 상위 10% 기업의 주주 수익률이 평균의 12배

여성이 남성에 비해 생산성이 낮은지 아닌지는 아직 합의된 정설이 없다. 계량적 분석을 통해 명쾌한 진실이 드러난 것도 아니다. 다만 여성이 관리직으로 많이 진출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을 비교해 경영성과를 따져보는 방법은 있다.
1993년 조사를 보면 미국에서 고용평등 프로그램을 가진 기업은 5년 동안 500개 상장기업의 평균보다 연 2.4% 정도 높은 경영성과를 거둔 반면, 고용평등 조치가 빈약한 기업은 연평균 8% 정도 낮은 성과를 올렸다. 매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내 여성 관리자 비율 상위 10% 기업은 1996∼2000년 주주 총수익률이 해당 산업의 평균 대비 약 12배에 달한 반면, 하위 10% 기업들은 0.4배에 그쳤다. 나이키는 여성 고객을 전담하는 여성부서를 신설해 회사 수익의 20%에 달하는 수익을 올리기도 했고, 시티뱅크 등 선도 기업들은 이미 여성 인력과 여성 관리자 비율을 높여서 기업 성과를 높이고 있다. 고급 여성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기업에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용평등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미국의 시민사회단체인 카탈리스트(Catalyst)에 따르면, 2004년 조사에서 여성 임원이 많은 기업의 자기자본수익률(17.7%)이 여성 임원이 적은 기업의 수익률(13.1%)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에 여성이 참여해 노동력 구성이 다양해질수록 ‘혁신’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이주희 교수(사회학)는 “우리나라 기업들을 대상으로 실태를 조사한 결과 여성 관리직이 진출한 기업은 더 공격적인 시장전략을 가지고 있었고, 혁신 기업일수록 여성들이 관리직에 더 많이 진출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런 기업은 고객의 욕구와 시장에 대비해 항상 신제품을 먼저 내놓고 있고, 여성 관리직 진출이 많은 기업일수록 매출액과 영업이익 면에서 더 높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 2시간28분, 남성 51분

가사노동 시간 여전히 불평등… 남성의 생애주기 여성화해야

육아와 가사노동은 차별과 더불어 여성들의 직장생활과 승진·관리직 진출에서 또 하나의 걸림돌이다. 통계청 조사(2003)에서 여성 취업 장애요인으로 30대 여성의 56.8%, 40대의 45.9%가 ‘육아·가사 부담’을 꼽았다. ‘사회적 편견과 관행’ 및 ‘불평등한 근로여건’이라는 응답은 30대가 29.8%, 40대가 36.2%였고, ‘여성의 능력 부족’이라는 답은 30대 1.8%, 40대 3.1%에 그쳤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시집가면 사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분위기였고, 임신·출산을 회사에서 거치는 건 매우 이례적이었다. 결혼 뒤에 사직하지 않은 사내 1호 여성, 임신하고 회사를 계속 다닌 최초의 여성, 아이를 낳고도 자리를 유지한 최초의 여성이란 수식어가 사라진 것도 불과 몇 해 전의 일이다. 민간기업에서 여성 진출을 늘리려면 ‘가족친화적’ 제도와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 그동안 노동분업 구조에서 남성은 가사노동 무능력자로 치부됐으나, 이제는 가사노동(돌봄노동)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이 남녀 간에 평등하게 배분되고 남성 노동자의 생애주기가 여성화돼야 한다. 통계청 생활시간조사보고(2004)를 보면, 20살 이상 취업 여성의 가사활동 시간은 하루 평균 2시간28분이고, 취업 남성의 가사활동 시간은 하루 51분에 불과했다.
육아 부담을 개별 맞벌이 가계에 맡기지 않고 ‘사회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미국의 유리천장위원회는 직장 보육시설을 제공한 결과 여성 종업원의 직무 몰입도와 만족도가 크게 증가하고 이직률이 63% 정도 줄었다고 보고했다. 육아·가사 노동이 여성의 사적 노동이 아니라 사회적 몫으로 바뀌고, 돌봄노동을 남녀가 공동 분담하지 않는 한 ‘정보화·고령화 사회의 새로운 성장동력, 여성’이란 말은 한계가 빤하다.




여성임원 11명, LG의 우먼파워

삼성의 여성인력은 전체의 26%인 3만7200여명, 과장급 이상은 1600여명

기업별로 삼성그룹의 여성 인력은 2005년 전체(생산직 포함)의 약 26%인 3만7200여 명이다. 과장급 이상 여성 관리자는 1600여 명이다. 삼성전자는 전체 임직원 중 여성 인력 비중이 2만800명(33%)인데, 과장급 이상 여성 인력은 750여 명(전체의 5%)이다. 삼성SDS의 경우 전체 임직원 7100명 중 여성은 1200명(17%)이다. 과장급 여성은 1996년 19명(2.0%)에서 2001년 134명(6.8%), 2005년 말 326명(26.9%)으로 크게 늘었다. 차장·부장급은 1996년 1명, 2001년 5명이었는데 2005년 말에는 임원 2명(5.0%), 부장 3명(0.2%), 차장 21명(1.7%)으로 증가했다. 삼성SDS 쪽은 “지식집약형 산업으로 창의력과 조화를 요구하는 정보기술(IT) 업계는 우수 인력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여성 인력 활용은 기업경쟁력의 원천이고 IT업종은 특히 시장에서 섬세한 여성 인력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LG그룹은 재계에서 가장 많은 여성 임원(11명)을 보유하고 있는 등 금녀의 벽을 깨고 ‘우먼 파워’를 주도하는 기업이다. LG CNS의 경우 전체 임직원 6천 명 중 여성은 1266명(21%)이다. 과장급 이상 여성 관리자는 407명(약 15%)이다. LG전자는 2004년부터 신규 채용의 20%를 여성으로 선발하도록 각 사업본부에 지침을 내렸는데, 여성 특유의 강점이 있는 디자인·마케팅·소프트웨어 부문을 중심으로 여성 채용 비율을 30%까지 높여나갈 계획이다. LG생활건강은 전체 종업원 2430명 중 여성 인력이 920여 명(38%)인데 과장급 이상 여성 관리자는 670여 명(27%)이다. LG생활건강 쪽은 “현재 여성 중 부장급은 단 2명이지만, 차장·과장급이 바로 밑에 몰려 있다. 7∼8년 전부터 대졸여성을 많이 뽑고 경력이 쌓여 층이 두터워졌다. 따라서 1∼2년 안에 부장급이 많이 배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SK그룹은 에너지화학 중심의 전통적인 ‘남성형’ 사업구조 탓에 그동안 여성 인력 채용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다. 계열사별로 SK(주)가 7%, SK텔레콤이 13%, SKC&C가 21%의 여성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과장급 이상 여성 인력은 SK텔레콤 17%, SKC&C 11%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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