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_ 국기에 대한 맹세]
<font color="darkblue">자기 사랑에 빠진 국가에 타율적인 사랑 맹세 읊어야 하는 학생들
국가의 이념과 활동에 비판적 감수성 지닌 자율적 애국주의자로 키워야</font>
▣ 박구용/ 전남대 교수·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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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사랑을 받을 만큼 아름다웠던 나르시스는 오직 자신만을 사랑한다. 자기 말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따라할 능력밖에 없었던 숲 속의 요정 에코는 자기를 버리고 나르시스만을 사랑한다. 나르시스의 자기 사랑과 에코의 자기 없는 사랑은 죽음으로 끝난다. 주고받는 사랑을 못하고 주거나 받기만 한 이들의 사랑은 참혹한 비극이다. 서로가 주체인 사랑은 서로를 아름답게 하지만, 나만 있거나 그만 있는 사랑은 서로를 파괴한다.
국가여, 나르시스여
나라 사랑도 마찬가지다. 국가와 개인이 ‘서로 주체’인 나라 사랑은 모두를 아름답게 하지만, 한쪽만이 주체인 사랑은 국가와 개인을 모두 파괴한다. 나라 사랑의 이름으로 오늘도 전국에서 울려퍼지고 있는 국기에 대한 맹세에서 국가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숭고한 나르시스다. 개인은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는 에코의 역할을 맡는다. 국가는 자기 사랑에 빠진 ‘홀로 주체’이며, 개인은 자기를 버린 타율적 존재가 된다. 맹세문에는 나라를 사랑할 자율적 주체가 없다.
우리는 오랜 억압의 역사를 뚫고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독재의 어두운 시절보다 더 풍요롭고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나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아직 전체주의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국가주의와 시장주의에 굴복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이데올로기는 전체주의를 비호하고 양산하는 파시즘의 두 얼굴이다.
국기에 대한 맹세문은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국가주의의 상징이다. 국가주의는 국가에 대한 어떤 의문과 비판도 불온한 것으로 간주한다. 국가가 불변하는 목적이라면, 개인은 충성을 다짐하는 도구일 뿐이다. 국가는 개인의 생존과 행복의 절대적 조건이다. 국가의 임무와 기능은 개인이 요구할 수 있는 국가의 의무가 아니라, 국가가 베푸는 사랑이고 은혜다. 국가주의는 국가의 은혜에 감사하고 헌신하는 타율적 개인, 즉 미성숙한 노예를 애국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타율적인 노예는 충성을 강제하는 억압과 공포가 사라지면 국가를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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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의자들은 끊임없이 국가의 위기를 말한다. 그들은 국가의 이념과 활동에 대한 모든 형태의 비판을 국가의 위기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국가의 위기는 조작된 것이지만, 조작된 위기는 현실이 된다. 비판 없이 성장한 국가는 바람 없이 성장한 나무와 같다.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면서 뿌리가 깊어진다.
자율적인 애국주의자는 국가의 이념과 활동에 대해 언제나 비판적이다. 자율적 의지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자율적 의지는 공동체의 요구에 대한 구체적 비판을 통해서 형성된다. 그런데 자율적 애국주의자는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 그 위기와 맞서 싸운다. 그는 공동체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공동체와 자신의 자율성이 상호 제약돼 있다는 것을 학습한 주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교 교육은 자율적인 비판정신을 가지고 국가와 대면하는 훈련의 장이 돼야 한다. 그때에만 국가는 건강하고 안정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
대한민국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 국기에 대한 맹세는 없어져야 한다. 먼저 학교의 공식행사에서 그리고 도덕 교과서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제거해야만 한다. 국기에 대한 맹세는 일제시대의 황국신민서사와 유신시절의 혁명공약이 표방하는 국가주의를 통해 개인을 노예화하고 국가를 병들게 한다. 그런데 국가주의가 요구하는 타율적 개인, 즉 미성숙한 노예를 길들이는 것은 맹세문에서 끝나지 않는다.
국기에 대한 맹세문에서 시작되는 우리의 도덕 교과서는 국가주의와 시장주의를 은밀하게 뒷받침한다.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초등학교에서 도덕은 3학년부터 배운다. 그 전에는 바른생활이 도덕의 역할을 한다. 나는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를 보면서 두 번의 충격을 받았다. 교과서의 첫 페이지에 나와 있는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보고 놀랐고, 각장 마지막에 있는 ‘마음에 새겨두기’ 덕목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교과서는 옷을 단정하게 입을 것, 부모님을 기쁘게 할 것, 학교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것, 나라의 발전을 내 일처럼 생각할 것, 선생님께 감사할 것, 법과 규칙을 잘 지킬 것, 민족은 하나임을 잊지 않을 것 등 150여 가지의 도덕 규범을 마음에 새겨두고 실천하라고 말한다.
숙연한 도덕적 질서는 고통스러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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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 교과서가 제시하는 기준에서 보면 나는 비도덕적인 사람임이 틀림없다. 학생들은 어떨까? 예민한 학생은 자신뿐만 아니라 친구, 선생님, 그리고 부모님까지도 비도덕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것이다. 도덕 교과서는 이런 방식으로 어린이들에게 원죄 의식을 심어준다. 원죄 의식은 자기 존중심을 버리고 절대적 힘을 가진 도덕규범에 순종하게 만든다. 그러나 자기를 상실한 사람은 억압적 기제가 사라지면 언제든지 반도덕적 태도를 취할 수 있다. 젊은 학생들의 도덕심이 땅에 떨어졌다는 어른들의 상투적 비판에 일말의 진리라도 담겨 있다면, 그 원인은 타율적으로 복종하는 미성숙한 개인을 통해 도덕을 실현하려는 도덕 교육에 있다.
중·고등학교에서와 달리 초등학교 도덕 교육은 이성 중심이 아니라 심미적 감성 중심의 교육이어야 한다. 바로 어린이의 심미적 놀이 충동을 자극하는 방식이다.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도덕적 삶을 놀이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두려움을 통해 도덕 규범을 습득한 어린이는 두려움이 사라지면 비도덕적으로 된다. 그러나 도덕을 놀이로 이해한 어린이는 즐거움을 위해 규범을 따른다. 심미적 감수성은 즐거움을 동반한다. 그런데 도덕 교과서가 제시하는 예들은 하나같이 학생들을 엄숙하고 숙연한 감정을 갖도록 유도한다. 어린이는 도덕 교과서가 목적으로 설정한 올바른 행동 습관, 이치에 맞는 도덕 문제 해결, 공동체 안에서 도덕적 역할과 책임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진지해질 수는 있지만 즐거워하지는 않는다. 어린이는 교과서가 제시하는 절제된 삶, 희생적인 삶, 정의로운 삶이 아니라 아름다운 삶의 예를 들을 때 즐거워한다. 아름답게 느낀 도덕적 질서는 즐거운 것이지만, 숙연하게 느낀 도덕적 질서는 고통스러운 것이다.
도덕 교육에서 감성적으로 수용돼야 할 내용은 무엇일까? 초등학교 도덕 교육의 내용은 위계적 존중심을 갖게 하는 덕이 아니라 상호 존중의 덕이 중심이어야 한다. 상호 존중의 토대는 자기 존중이다. 자기 존중은 홀로 존중이 아니라 타자 존중과 뗄 수 없는 ‘서로 존중’이어야 한다. 이때 타자는 타인, 자연, 그리고 우리를 포함한다. 그런데 도덕 교과서의 중심 내용은 위계적 덕 규범이며, 부수적으로 제시되는 서로 존중의 덕조차도 자기 존중이 아니라 우리 존중에서 출발한다. 적어도 초등학교 도덕 교육의 방법은 ‘타율적 엄숙주의’를 택하고 있으며, 내용은 우리(가족·민족·국가) 존중의 규범을 중심으로 한다. 수많은 도덕규범을 제시하면서도, 그것을 즐겁게 수용하고 규범화할 자율적 주체의 형성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교과서는 자율성을 잃는다는 것이 나를 잃는 것이며, 내가 없는 사람은 우리도 버린다는 것은 망각하고 있다.
자기를 업신여기도록 훈련하는가
도덕 교과서가 국기에 대한 맹세를 앞세우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자기를 상실한 ‘도덕적 엄숙주의자’를 양성하려는 교과서의 의지는 국기에 대한 맹세문에서 가장 분명하게 표현된다. 학교가 자기 상실을 강요당한 난민들의 수용소가 되지 않도록 하려면 먼저 국기에 대한 맹세를 없애고, 나아가 자율적 서로 주체에게 아름답고 즐거운 이야기를 들려줄 새로운 도덕 교과서를 마련해야 한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철폐하자고 하면 나라가 망하기를 바라냐고 호들갑을 떨 사람들이 많다. 나라 사랑이 나쁜 것은 아니며, 도덕이 불필요한 것도 아니다. 나쁜 것은 나라에 대한 사랑 표현을 강요하는 맹세문이며, 자기 상실을 강요하는 도덕 교과다. 사랑 표현을 강요하는 사랑은 사랑을 파괴한다. 나라 사랑에 대한 표현을 강요하는 것은 나라 사랑을 못하게 하는 것이다. 아니 사랑 표현을 강요하는 나라는 사랑할 것이 아니라 부정해야만 한다. 국가를 부정하는 것은 국가를 팔아먹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가는 자유인의 몸부림이다. 도덕을 부정하는 것은 반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즐거운 도덕을 찾아가는 서로 주체의 함성이다. 함석헌의 말처럼 “남을 업신여긴 것도 죄지만 자기를 업신여기면 더 큰 죄다. 그 죄에서 모든 죄가 나오기 때문이다”. 국기에 대한 맹세와 맹세문에서 시작하는 도덕 교과서는 학생들에게 자기를 업신여기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노예를 만들고 죄인을 만드는 것이다.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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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2학기부터 교과서에 등장</font>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1972년 8월9일은 국기에 대한 맹세가 전국 학교에서 암송되기 시작한 날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충남과 전남만이 자체적으로 맹세문을 만들어 시행했다 <font color="6b8e23"> <u> (<한겨레21> 592호 참고)</u> </font> <동아일보> 8월9일치는 “(문교부가) 국기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국기에 대한 맹세’를 제정, 앞으로 각급 학교의 모든 행사에서 학교와 교직원들이 암송, 국기에 대한 존경심을 높이도록 했다”고 기록했다. 문교부는 맹세의 보급을 위해 ‘계몽 및 암송 단계’(8월부터 1973년 2월까지)와 ‘묵송 단계’(1973년 3월 이후)로 나누는 등 구체적인 지침을 내렸다. 초·중·고교는 대표 학생이 선창하면 나머지 학생들이 따라 부르고, 대학에선 대표 학생 선창에 따라 전 학생이 마음속으로 암송하도록 했다.
<한겨레21>이 한국교육개발원에 보관된 1960~70년대 교과서를 찾아보니, 국기에 대한 맹세문은 1976년 초·중·고 2학기 도덕에서부터 태극기와 함께 실리기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이때만 해도 초등학교 저학년 교과서에는 국기에 대한 맹세 대신 태극기 도안 아래에 ‘자랑스런 태극기- 세계로 뻗어가는 빛나는 우리 국기’라는 표어를 실었다.
재미있는 건, 1960년대 교과서에는 태극기조차 실려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교과서의 태극기와 맹세문은 1960년대 말부터 불어닥친 ‘애국주의’ 열풍의 연장선상으로 이해된다. 박정희 정권은 1968년 국민교육헌장을 제정한 이래 1971년 극장에서 ‘애국가 영화’를 상영토록 하고, 국기 보급 운동을 장려하는 등 국가 상징물을 동원한 애국주의 운동을 벌였다. 국기에 대한 맹세도 1968년 충남 도교위가 제정한 이래 1971년 전남, 1972년에는 문교부가 제정해 전국적으로 시행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유신시대 애국주의 운동의 잔재는 현재 초등학교 도덕 3학년 교과서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로 오롯이 살아 있다. 교과과정 개편으로 ‘국민윤리’에서 이름이 바뀐 고등학교 ‘시민윤리’ 과목에서도 맹세는 어김없이 살아남았다. </font></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r><tr><td colspan="5"></td></tr></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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