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쌀 국회비준 강행한 정부, 계속 욕먹지 않으려면 농민 살리기 대안을
‘허용대상 보조금’과 ‘품목별 최소허용 보조금’ 등 선진국형 정책 도입해야</font>
▣ 윤석원/ 중앙대 교수·산업경제학과
이제 한국 농업은 쌀 산업마저도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거센 파고에 맞닥뜨리게 됐다. 앞으로 10년간 관세화 유예를 더 받아놓았다고는 하지만 10년 뒤면, 아니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 결과에 따라서는 이르면 수년 안에 전면 개방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양정제도는 수매제에서 공공비축제와 쌀소득보전직불제로 이미 올해부터 바뀌었다. 그야말로 우리의 쌀농업은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할 것인가 아니면 거센 파도에 함몰될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
당연히 우리의 쌀 산업은 유지 발전돼야 한다. 함몰되거나 축소되는 것을 기정사실화해서는 올바른 대책이 나올 수 없다. 우리 사회가 먼저 쌀 농업의 중요성과 가치를 철저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쌀이 우리 농업의 기반을 유지하는 유일한 품목이라는 사실이다.
자급률 2%의 위험과 안일한 정부
현재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6% 정도이며 그나마 쌀을 제외하면 2%도 안 된다. 주식인 쌀만 자급을 하고도 조금 남을 뿐 매년 수조원어치의 곡물(밀, 옥수수, 콩, 잡곡 등)을 수입하고 있다. 쌀마저 수입할 경우 우리 후손은 주식을 마련하는 데 수십조원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또 아직도 쌀에서 얻는 소득이 농업소득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곡창지대의 경우 쌀이 농가 소득을 지탱해주는 중요한 작물임을 가볍게 여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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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쌀 농업은 국토의 정원사로서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하고, 홍수를 조절하며, 공기를 정화해주고, 토양의 유실을 방지해 수질을 정화하는 구실을 한다. 쌀 농업으로 인해 농촌이라는 지역 공동체가 유지되며, 우리의 전통과 문화가 숨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를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 또는 다원적 기능이라 하여 국제사회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선진국이 그러하듯,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할 가치임을 깊이 인식해야 하며, 이러한 인식과 철학을 바탕으로 농정이 추진돼야 지속 가능한 쌀 농업과 농촌이 존재하는 대안을 찾을 수 있게 된다. 특히 정부는 이를 누구보다 깊이 인식해야 한다.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보여줘야 한다.
지난해의 쌀 협상 과정과 최근 쌀 비준 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진실하지 못한 자세와 안이한 태도는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 협상 과정에서는 협상 내용을 비밀이라 하여 이해주체인 농민단체에도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2004년 말까지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자동관세화(관세화 의무) 개방으로 간다는 일방적인 주장만 국민과 농민들에게 되뇌면서 기만을 일삼았다. 쌀 비준안 처리 때도 비준되지 않으면 관세화 개방이 된다는 주장을 다시 들고 나와 국회와 농민을 압박했다. 대화를 하자고 해도 막무가내였고 비준안을 강행 처리했다. 대화조차 거부할 이유는 없었던 것 아닌가.
WTO 체제 아래서 가능한 장치들
농민들이 목숨 걸고 정부의 대안이 부족해 이대로 가면 희망이 없어 농사를 계속할 수 없다고 항변해도, 정부는 할 것 다 했다는 식의 안이한 태도로 일관했다. 이래서는 정부에 대한 농민들의 신뢰는 땅에 떨어지게 된다. 아무리 그럴듯한 대안을 내놓아도 정부를 신뢰하지 않으니 문제 해결이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협조가 이뤄지지 않는다. 이를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다.
쌀 농업과 농촌을 유지·발전시키기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대안으로 선진국형 농업·농촌 정책을 우리도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 사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아래에선 농산물도 예외가 아니어서 자유무역을 통한 개방은 어쩔 수 없으며, 시장 기능을 강조할 수밖에 없고, 농민들의 경쟁력 제고 노력은 필수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농산물 수출 선진국인 미국, 유럽연합(EU),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 대부분의 나라들이 갖가지 명목으로 엄청난 액수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WTO 체제 아래에서도 이것이 가능한 제도적 장치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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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을 명목으로 하는 ‘허용대상 보조금’(Green box)과 ‘품목별 최소허용 보조금’(De minimis) 지급이 가능하고, 농가소득이 급격히 낮아졌을 때 지급하는 보조금 등 다양한 형태의 보조금 장치들이 있다.
예컨대 미국 쌀 농가소득의 약 50%가 각종 명목의 보조금이며, EU 농업 예산의 약 80%가 보조금으로 이루어졌고, 캐나다는 농가소득 안정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등 사실상 선진국 농업의 경쟁력과 농촌의 유지는 각종 명목의 보조금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제3세계 국가나 개발도상국들은 국가 재정이 없으니 농업·농촌에 투자하거나 지원할 수 없을 뿐이다. 이 부분에 대한 인식이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나 낮다.
정부와 농민은 농산물의 가격과 품질경쟁력을 높이고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배전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농업·농촌을 유지할 수 있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이를 직시해 개별 농가의 소득안정 장치를 하루빨리 도입하는 것이 급선무다. 우리도 곧 선진국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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