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감세’는 부유층만 살찌운다

등록 2005-10-12 00:00 수정 2020-05-03 04:24

서민용으로 위장된 한나라당 감세안은 서민 볼모로 서민에게 더 부담 주는 안…상장기업 현금보유액 최고치라 법인세 부담 때문에 투자 안한다는 건 말 안돼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과세는 흔히 ‘거위를 울지 않게 하면서 깃털을 뽑아내는 기술’로 비유된다. 세금을 내기 싫어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위는 대개 누굴까? 돈을 많이 버는 고소득층이나 부유층, 그리고 많은 수익을 올리는 대기업이다. 먹고살기조차 힘든 저소득층이나 중소기업한테서는 세금을 거둬들일 수 없다. 과세할 소득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한테는 오히려 부유층과 대기업한테서 걷은 세금을 공적 부조금 형태로 나눠줘야 한다.

광고

감세안은 미국 공화당의 단골메뉴

국가 기구는 독점적인 화폐 발행과 세금징수권을 기초로 존재하는데, 세금을 누구한테 얼마나 거둬 어떻게 분배하고 지출할 것이냐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정책 중 하나다. 정부의 재정정책이 선거 때는 물론 평상시에도 거의 모든 나라에서 정치적 논쟁의 한복판에 등장하는 건 이 때문이다. 미국의 부유층이 지지하는 공화당은 선거 때마다 감세안을 들고 나온다. 옛 레이건 정부가 대표적이다. 아무튼 부의 재분배 수단으로써 조세정책은 계급적 성격을 강하게 띠기 마련이다.

내년 예산안과 세제 개편안을 둘러싸고 국회에서 벌어지는 여야간 세금 논쟁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나라당은 지난 10월3일 소득세와 법인세 인하 등을 통해 8조9천억원의 국민 세금 부담을 줄이겠다는 대규모 감세안을 내놓았다. 소득세율을 2%포인트 내리고(현행 8∼35%를 6∼33%로), 법인세 과세 표준구간(현행 이윤 1억원 이하 13%, 1억원 초과 25%)을 2억원 이하 10%, 2억원 초과 25%로 상향 조정하자는 주장이다. 여기에다 정부가 세수 확대를 위해 추진키로 한 소주세율 인상과 LNG(액화천연가스·도시가스) 특소세율 인상 등을 반대하기로 했다.

광고

한나라당의 감세안 명분은 “국민과 기업의 세금 부담을 줄여줘 가처분소득과 이윤을 늘려주면 소비가 진작되고 투자도 촉진돼 경제 활성화를 꾀할 수 있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과 정부는 “감세정책은 소비 진작이나 경제 활성화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고, 특히 감세 혜택이 부유층에만 집중된다. 가뜩이나 세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더 이상의 감세는 안 된다”며 맞서고 있다. 정부·여당쪽에서는 세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오히려 법인세 등 일부 세금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감세 논쟁은 지난해 정기국회 때도 벌어졌다. 외견상으로는 지난해에도 경기 부양 수단으로 여당은 재정 지출 확대를, 한나라당은 감세를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여당도 당시에는 감세를 배제하지 않았던 터라 단지 감세 폭을 놓고 논쟁을 벌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여야 절충으로 올해부터 법인세가 2%포인트 내렸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2004년에 세수가 애초 예산 대비 4조3천억원이 덜 걷힌 데 이어 올해도 국세 수입예산(130조6천억원) 대비 4조6천억원이나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반회계 재정적자가 9조8천억원(국내총생산의 1%)에 이를 정도로 대규모 세수 부족 사태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정부·여당으로서는 더 이상 감세를 추진할 수 없는 처지다. 반면 한나라당은 지난 8·31 부동산대책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퍼진 ‘세금폭탄론’을 등에 업고 감세 추진을 본격화하고 있다. 감세안이 먹혀들 수 있는 좋은 여건이 조성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소득세율 2% 내리면 부자들만 2조6천억 특혜

광고

먼저 소득세 감세안을 따져보자. 소득세는 이미 2004년에 1%포인트 내렸다. 소득세를 내지 않는 면세점 이하 직장인, 자영사업자는 각각 49%에 달한다. 둘 중 한명은 소득세를 한푼도 안 내고 있는 셈이다. 결국 세금을 깎아주면 그 혜택은 고소득층과 전문직 부유층에게만 돌아가게 된다. 우리나라 소득세율(상한 35%)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7.2%)보다 낮은 편이다. 특히 소득세는 누진 체계라서 똑같이 2%포인트 내리면 소득액이 많은 부유층일수록 감면액이 훨씬 더 커진다. 민주노동당에 따르면 소득세율이 2%포인트 내리면 부자들이 약 2조6천억원의 세금 특혜를 얻을 것으로 추산된다. 소득세율을 2%포인트 내릴 경우 연간 1천만원 이하의 근로소득자는 4만5천원의 감세 효과가 발생하지만 8천만원을 초과하는 고소득자에게는 322만원의 세금을 깎아주는 효과가 생긴다.

법인세율 역시 올해부터 이미 2%포인트 내렸다. 이에 따라 이윤이 1억원을 초과하는 기업은 상한세율 25%, 1억원 이하 기업은 하한세율 13%를 내고 있다. 그런데 2004년의 경우 상한세율의 법인세를 내는 기업은 전체 법인(31만6천개)의 15.3%인 4만8200개에 불과했고, 나머지 법인은 하한세율이 적용되거나 면제됐다. 전체 법인의 34%는 결손으로 법인세를 아예 내지 않고 있다. 특히 이윤이 100억원을 초과하는 854개(전체 법인 중 0.26%) 대기업이 총 법인세 세수의 71.7%를 차지하는데, 결국 법인세 감면은 단지 이들 기업만을 위한 조처일 뿐이다. 법인세가 2%포인트 내리면 전체 법인의 0.26%에 불과한 재벌·대기업에 2조4천억원의 세금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법인세율 상한(25%)은 OECD 평균(28.2%)에 비해 높지 않다. 미국, 프랑스, 일본, 멕시코 등 주요 국가의 법인세율은 30%대를 넘는다.

사실 우리나라 기업들이 법인세 부담 때문에 투자를 안 하는 건 결코 아니다. 상장기업의 현금보유액은 지난 3월 현재 26조4천억원으로 연거푸 사상 최고치를 깨고 있다. 대기업마다 이처럼 막대한 여유자금을 사내유보로 쌓아두는 판이라서 법인세를 깎아준다고 그것이 투자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한나라당 감세안은 소주세율과 도시가스 세율 인상을 반대한다는 식의 ‘서민용’으로 위장돼 있으나, 사실은 서민을 볼모로 부유층과 재벌에게 엄청난 세금 혜택을 안겨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감세에 따른 세수 부족과 관련해 한나라당은 “정부가 세출 규모를 줄여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 부채는 2005년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할 때 248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30.4%에 달한다. 재정적자가 거의 10조원에 이르고 정부 부채가 관리목표치(30%)를 초과할 정도로 국가 재정이 크게 악화된 건 사실이다. 경기 침체로 세금이 덜 걷히는데다, 수명이 늘고 출산율 감소로 노년층 인구 비중이 늘어나면서 자연히 복지 지출이 늘어나 정부 지출도 증가하게 마련이다.

한나라당의 주장은 정부 지출을 줄여 균형재정을 확보하자는 것인데, 바꿔 말하면 부유층과 대기업한테서 거둬들이는 세금을 주요 재원으로 하는 정부 지출을 축소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세금 징수를 통해 부를 재분배하는 시스템을 파괴하자는 계급적 내용을 담고 있는 셈이다. 박종현 국회도서관 입법정보연구관은 “균형재정 도그마에 빠지면 안 된다. 경기 침체기에는 어느 정도 재정적자를 감수하더라도 정부 지출을 확대해 경기를 부양하고 양극화를 줄여야 한다. 정부 지출이 줄어들면 인적 자본과 기술에 대한 투자가 감소해 성장잠재력을 훼손하게 된다. 그런데 감세로 인해 세수가 더 부족해지면 정부로서도 지출 축소가 불가피해진다”고 말했다. 세수 부족분을 메우려면 세금을 더 걷거나 적자국채를 발행함으로써 차입을 통해 재정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세금을 깎아주자는 주장은 결국 적자국채를 찍자는 것인데, 그러면 정부 부채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정부 부채를 줄여 균형재정을 확보하자는 한나라당의 주장에 모순이 생기는 셈이다.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 지출 감소할라

감세는 그 혜택이 부유층과 재벌·대기업에만 집중될 뿐 아니라 다수 서민들에게 더 큰 부담을 떠넘기게 된다. 왜 그럴까? 세수 부족분은 적자국채를 발행하든지 다른 간접세를 인상하든지 해서 메워야 한다. 이에 따른 정부 부채 증가와 간접세 인상은 모든 국민의 공동 부담으로 돌아온다. 소수 부유층과 재벌의 호주머니를 채워주기 위해 다수 서민들이 부담을 짊어지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부유층의 세금을 깎아줘서 세수가 줄어들면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 지출이 줄어들 공산이 커진다. 정부 지출 가운데 국방비·정부운영비 등은 정해져 있어서 줄이기 어렵고, 결국 더 재량적인 사회복지 지출을 줄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는 상황인 만큼 경제 활성화 못지않게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은 더욱 강조된다. ‘시장논리’가 휩쓸면서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들이 더 많이 발생하고, 결국 복지 지출을 계속 확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정부 지출을 보면 1991∼2000년에 경제성장률 대비 예산규모증가율이 1.23인 데 반해 2001∼2004년은 0.76으로 대폭 줄었다. 상대적인 재정지출 규모가 역대 정부에 비해 늘어나기는커녕 오히려 줄어드는 셈이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재정에서 정부 지출을 충분히 늘리지 않은 채 경기 부양을 위해 금융정책만 과도하게 쓴 탓에 왜곡된 저금리가 형성됐고 이것이 집값 폭등을 낳았다는 분석도 있다. 이처럼 정부 지출이 줄어든 상황에서 대규모 감세는 경제적 실익도 없이 부유층만을 살찌우고, 재정적자를 심화해 정부 지출 축소에 따른 사회 안전망 취약을 초래하게 된다. 더욱이 한번 늘어난 소비지출은 줄이기 어렵다. 따라서 세금을 한번 줄여주면 나중에 세율을 올리기는 무척 어렵다.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는 “두 차례에 걸친 법인세 인하를 관철해 지금의 세수 부족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가 한나라당인데, 감세정책은 경기 활성화 효과도 없고 그 혜택이 서민들한테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라며 “지금은 오히려 고소득층 탈루 세금을 징수하고, 각종 선심성 세금 감면 조항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부양하려면 정부지출 늘려야

감세는 경기 진작효과 작고 장기적 후유증 훨씬 커

수요를 진작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재정정책 수단으로는 크게 정부지출 확대와 감세정책 등 두 가지가 있다. 감세는 가계와 기업의 세금 부담을 가볍게 해줘서 투자와 소비에 쓸 여유자금을 늘려줌으로써 노동 공급과 투자 의욕을 고취해 공급을 확대하는 효과가 있고, 장기적인 성장잠재력 확충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진다. 반면 정부지출 확대는 직접적으로 수요를 증가시켜 경제 활성화에 효과적이고 단기적 경기 부양 목표에 적합하다. 특히 정부지출 확대는 중산·서민층에 대한 직접적 지원으로 소득 재분배에 효과적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04년에 작성한 ‘재정지출 확대와 감세의 경제적 효과분석’을 보면, 산업연관표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 재정지출을 1조원 확대하면 성장률은 0.15%포인트 상승한 반면, 근로소득세를 1조원 감면해주면 성장률은 0.08%포인트, 법인세를 1조원 깎아주면 0.013%포인트 오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정부지출을 1조원 늘리면 국민소득이 3조7500억원 증가하는 반면, 조세를 1조원 감면하면 소득이 2조7500억원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감세는 경기 진작 효과가 간접적이고 크지 않다. 왜냐하면 감세는 부자들이 주로 혜택을 보는데 부자들은 한계소비성향(소들이 1단위 추가로 증가할 때 소비지출의 크기)이 매우 낮아서 늘어난 소득의 대부분을 쓰지 않고 저축해버리기 때문이다. 소비 진작을 통한 경제 활성화 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감세는 단기적 경기부양 효과도 크지 않고 장기적인 후유증이 훨씬 크다. 감세 혜택이 주로 부유층에 집중돼 오히려 소득 양극화를 심화하고 세입 기반을 잠식해 재정 건전성을 악화한다. 특히 감세가 소비지출 및 설비투자 확대로 이어지기까지는 대략 6개월∼1년의 긴 시간이 소요되는 단점이 있다. 또 감세정책이 실패할 경우 대규모 재정적자로 정부의 손발이 묶이게 되고, 재정적자 확대에 따른 이자율 상승으로 소비와 투자가 위축돼 가계와 경제에 큰 부담이 따른다.
미국 레이건 정부는 1981년 소득세 최고세율을 70%에서 50%로, 1986년에는 다시 31%로 내리는 대규모 감세정책을 폈다. 그러나 대규모 재정적자만 초래하고 실패하고 말았다. 박종현 국회도서관 입법정보연구관은 “감세정책은 정부지출 확대정책에 비해 그동안 힘을 얻지 못하다가 2000년 이후 국제적인 자본이동이 활발해지고 각국이 외국자본 투자 유치에 목매달면서 하나의 추세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다국적 자본이 법인세를 가장 많이 깎아주는 나라를 골라 투자하는, 이른바 국제미인대회에서 ‘체제 쇼핑’을 즐기고 있는데, 이 때문에 각국이 감세정책을 주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광고

4월3일부터 한겨레 로그인만 지원됩니다 기존에 작성하신 소셜 댓글 삭제 및 계정 관련 궁금한 점이 있다면, 라이브리로 연락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