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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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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전히 서태지가 최고라니…

등록 2005-09-15 00:00 수정 2020-05-03 04:24

[90년대의 추억_가요]

취향대로 골라 들을 수 있고 100만 장 판매도 별것 아니었는데
그 시절 가요의 열매들은 리메이크와 핸드폰 벨소리에 갇힌 것인가

▣ 이문혁/ KMTV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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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릴 적 토요일 오후면 친구들과 치르는 의식이 있었다. 한 녀석의 방 라디오 앞에 네댓이 머리를 맞대고 그날 미군 방송에서 나오는 ‘아메리칸 톱 포티’(Amerian Top 40)의 차트를 받아적는 일이었다. 속 모르는 사람이 보면 중학생 간첩단이라고 오해할 성싶은 그것은 우리에게 몇년 뒤에 있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신성한 사명이었다. 팝(Pop)만이 음악이던 그 시절, 뿌듯한 마음으로 집에 가는 길에 우리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던 다른 친구 얘기가 나왔다. “걔가 요새 듣는 음악은 뭐래?”라는 한 친구의 질문에 “‘가요’를 듣는대”라는 대답이 나오자 모두 우월감에 떼굴떼굴 굴렀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그 친구가 왜 우리보다 먼저 목소리가 굵어졌는지를 알았다. 그 녀석은 들국화를, 시인과 촌장을 그리고 김현식을 먼저 듣고 있었던 것이다.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보다 많이 팔렸지

#2 90년대란 가요의 황금시대는 80년대라는 자양분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유재하의 첫 음반이 국내 최고의 유작 음반이 돼버린 아쉬움의 그때, 중학교 중퇴생 정현철(서태지)이 시나위에서 베이스를 치며 <난 알아요>라는 폭탄을 준비하던 그 아련한 80년대에 한국 가요는 질적으로 성숙했고 양적 팽창의 에너지를 비축했다. 100만장을 팔아도 잘했단 소리를 듣기 힘들던 시절이 90년대였다. 음악은 아니 가요는 모든 이들의 관심이었고, 말 그대로 삶이었다. 애인을 친구들에게 소개할 때 왠지 뒤통수가 개운치 않으면서도 <잘못된 만남>을 흥얼거렸고, 엘리베이터를 여자와 둘이 타게 될 때 괜히 침이 한번 꼴깍 넘어갔으며, 선생님의 말에 “됐어 됐어”라고 하고 싶은 것을 참느라고 이를 악물었다.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만큼 많이 팔린 것이 음반(CD)이었고, 지하철에서 헤드폰을 끼지 않은 젊은이를 찾기는 삐삐 없는 직장인을 찾기보다 힘들었다. 그때 가요는 까다로운 식성을 가진 이들을 위한 메뉴 또한 갖추고 있었다. 서태지와 그의 음악으로 2시간짜리 세미나를 할 수 있게 한 것도, 신해철의 음악을 놓고 술자리에서 편 갈라 싸울 수 있게 만든 것도, 유재하가 뿌린 씨앗을 토이란 이름의, 조규찬이란 이름의 꽃으로 돌려준 것도 90년대였다. 거리에서 최루탄을 맞아가며, 뒤풀이 자리에서 함께 가자고 어깨를 부둥켜안고 아쉬움을 달래며, 앞에 운동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가요’를 함께 불렀다. 하지만 그렇게 가요의 황금시대는 모두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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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000년대, 여전히 서태지는 최고다. 하지만 추수 뒤 곳간처럼 CD가 그득히 쌓여 있던 레코드숍을 거리에서 구경하기 힘든 요즘 현실은 음반 속 그의 어깨마저 괜히 구부정히 보이게 한다. 90년대 그 많던 우리 가요의 열매들은 썩어 양분이 되기보다는 리메이크란 듣기 좋은 이름으로 계속 재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디지털이라는 한파를 준비하지 못한 베짱이 우리 가요가 기댈 곳은 개미같이 미래를 준비한 정보기술(IT) 산업뿐이라고들 한숨 쉬며 얘기한다. 10년 전, 마누라랑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고 기염을 토했던 한 대기업 총수가 결과적으로 10년을 내다본 영웅이 됐다. 그의 회사에서 만든 휴대전화에 벨소리란 이름으로 갇혀 있는 가요의 해방을 그래도 아직 꿈꾼다. 여기저기서 스스로 자라난 들풀 같은 우리 가요의 새싹들이 아주 가끔, 하지만 심심치 않게 보이기 때문이다. 2010년 다시 올 황금시대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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