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 위반 혐의로 사법처리 움직임 구체화되는 강정구 교수의 항변
연구결과를 사실논쟁이 아니라 이념논쟁으로, 법의 잣대로 심판해야 하나
▣ 강정구/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올해는 해방과 분단 60년 환갑의 해다. 환갑은 지난 일생을 성찰하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전환점이다. 이를 입증하듯 이번 6·15와 8·15 행사는 새로운 민족사의 출발을 알리는 이정표를 세웠다. 이는 세계사적으로는 탈냉전, 민족사적으로는 평화·통일 시대를 맞아 시대의 흐름에 함께하는 역사 순응적인 행보다.
이러면서도 6·25 전쟁은 통일전쟁이고 맥아더는 전쟁광이라는 나의 칼럼이 커다란 파장을 몰아오고 드디어는 사법 처리 운운하는 수준까지 치달았다. 정말 어이가 없다. 상식마저 통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에 개탄을 넘어 민족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앞선다.
‘악마와 천사’의 성역을 깨어야 한다
내가 추구하는 학문은 민족사의 흐름과 함께하는 통일사회과학이다. 이 학문 영역 가운데 급선무가 냉전 성역 허물기다. 냉전 성역은 과거 60년 동안의 냉전분단 체제 때문에 북의 것은 무조건 악마로 규정하고 남이나 미국의 것은 천사로 설정해, 이에 대한 다른 평가나 의견을 일절 허용하지 않는 불가침과 금기의 성역을 말한다. 한국전쟁, 미국과 주한미군, 연방제 통일, 민간인 학살, 정통성,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등이 이에 속한다. 여기에는 표준 정답이 있어 이를 위배하면 조봉암같이 생명을 앗기고 옥살이도 하고 이념몰이의 희생물이 된다.
문제는 냉전 성역의 대부분이 냉전반공 이데올로기라는 맹목적 믿음에 의존하기에 객관적 사실, 역사적 사료, 논리적 추론 등의 과학적 지식기반이 없는 허구라는 점이다. 이 허구를 바탕으로 상대를 악마로 보는 상태에서, 곧 냉전 성역을 허물지 않은 상태에서 진정한 남북 화해와 통일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탈냉전 통일시대가 시작되는 1989~90년부터 이 냉전 성역 허물기를 학문 연구의 중심 영역으로 삼아왔고 이번 칼럼도 이 허물기 가운데 하나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우려스런 것은 보수언론이 사실논쟁을 이념논쟁으로 환원시켜 색깔몰이로 판결을 내려 한다는 점이다. 나의 학문적 귀결인 통일전쟁론이 틀렸다면 실증적 차원에서 남북 지도부가 전쟁의 목표에 통일을 배제한 객관적 자료를 제시만 하면 된다. 곧, 북의 국토완정론이나 남의 북진통일론이 통일 목적이 전혀 없었고 다른 목적만 있었다는 것을 사실적으로 입증하면 된다. 문제는 이를 입증할 수 없으니까 이제까지 전가의 보도로 써먹던 이념논쟁을 들이댄 것이다.
무력이나 사회주의식 통일은 통일이 아니고 평화나 자본주의식만이 통일이라는 것은 가치논쟁이지 사실논쟁이 될 수 없다. 하나로 합치면 통일이지 누가 하면 통일이 되고 누가 하면 통일이 안 되는가? 독일만 통일이고 베트남과 예멘은 아직도 분단돼 있단 말인가?
이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과 조갑제도 6·25를 신라 통일과 같이 통일 시도로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필자는 사실 측면에서 통일전쟁이고 맥아더가 전쟁광이라고 본 것이지 ‘잘 됐고 못 됐고’의 가치 논의는 하지 않았다. 선진사회 진입 운운하면서 이제 동일 차원에서 논쟁하는 정정당당함을 우리 언론이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또 학문 연구결과에 대해 이적행위나 찬양고무라는 잣대를 대는 것일랑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학문적 결론은 객관적 자료, 타당한 방법론, 논리적 추론 등이 종합·포괄화되어 귀결되는 것이지 학자가 원하는 대로 말한 것이 아니다. 만약 학문적 결론이 어느 단체나 특정인의 이해득실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객관성도 설명력도 없기에 과학적 지식이나 학문이 아니다. 이는 학자의 양심을 팔고 곡학아세하는 지식인의 자기 파멸이며, 학문의 존립기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나는 남한의 입장을 고무·찬양했다
나는 6·25를 북한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라고 서술했다. 이는 남침이라는 남한의 공식적 입장을 ‘고무·찬양한’ 것이다. 동시에 북침이라는 북의 기조를 완전히 허무는, 곧 북의 입장에선 ‘이적행위’를 한 셈이다. 또 북은 조국해방전쟁으로 보지 통일전쟁으로 보지 않는다.
이런데도 북을 찬양하고 이적행위를 했다고 처벌한다면 남을 찬양한 부분에 대해서는 상금을 내릴 것인가? 이런 모순처럼 학문적 결론은 어떤 이해당사자에게 때로는 ‘찬양’도 되고 ‘이적’도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가보안법상의 이적이나 찬양이라는 잣대는 학문세계의 평가에 끼어들 수 없다.
학문적 논쟁은 오직 객관적 자료와 타당한 방법론(나의 경우 역사추상형비교방법을 애용한다)을 기반으로 한 논쟁과 설명력이라는 학문의 장에서만 가려질 수 있다. 어떤 학문외적 강제인 폭력과 빨갱이몰이, 또는 보안법이라는 국가 폭력에 의해 강요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사회가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부정하는 자기 부정을 저지르는 것이다.
이번 필화사건을 마지막 소모적인 진통으로 마무리하고 분단 60년에 즈음해 우리 남북 모두는 잘못된 지난날을 겸허히 반성하고, 시야를 남북 한쪽에 고착시키는 외눈박이가 아니라 전 민족 차원으로 넓히고, 외세가 강제한 분단과 적대를 직시하고, 19세기 말의 각축전이 재연되고 있는 엄중한 동북아 정세에 함께 대처하고, 평화와 통일을 이루기 위한 실천으로 나아가기를 염원하고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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