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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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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쟁의 기억을 여행하라

등록 2005-08-24 00:00 수정 2020-05-02 04:24

악몽과 상흔 남기면서도 ‘코뮌 놀이’로 통쾌하게 질주한 부안투쟁 18개월
반핵투쟁의 전국화와 에너지정책의 전환에 힘 실어준 새로운 희망으로

▣ 고길섶/ <문화과학> 편집위원

당신은 전라북도 부안을 기억하는가. 기억한다면 그 기억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격포? 내소사? 아니면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촬영장? 몇해 전 서해안고속도로가 뚫리면서 변산반도 부안은 관광지로 크게 부상했고, 어쩌면 당신의 기억은 그 이미지들에 붙잡혀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의 기억이 자연 경관의 여행에 머물러 있다면, 실패한 여행기다. 여행 혹은 관광이 자연 그 자체만을 즐기며 훌쩍 스쳐지나가는 주마간산이 되는 것은 그저 비디오 여행일 뿐이다. 그 지역의 육감적인 삶-욕망-문화-서사와 소통하는 텍스트 여행이 곁들여질 때 여행의 쾌감도는 더욱 커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부안, 그 항쟁의 기억을 여행하라고 권하고 싶다.

주권재민전쟁, 그 절정!

부안항쟁은 2003년 7월에 시작돼 18개월 동안 대서사시를 기록하면서 지역 사회를 완전히 뒤흔들어놓았다. 지역이기주의라고 매도당하기 일쑤였고 언론의 냉대를 받아야 했던, 그러나 군민들의 열정적 투쟁과 진실이 알려지면서 “부안에서 배우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안 핵폐기장 반대 투쟁은 노무현 정부가 칭하듯 ‘폭도들의 반란’이 아니라 민주주의 항쟁으로 자리매겨졌다.

노무현 정부는 부안에서 중대한 실수를 범했다. 노무현 정부는 한국수력원자력 등 핵 산업자본의 앞잡이가 되어, 영광 핵발전소와 새만금 방조제 사업으로 칠산바다의 황금어장 파괴가 초래돼 먹고살기가 팍팍해진 위도 주민들을 현혹해 사기극을 벌이려 했고, 핵폐기장 유치를 독선적으로 신청해 ‘군정(郡政) 독재자’라 불리는 김종규 군수를 옹호하다 결국 2003년 11월19일 민란과 경찰계엄 사태를 야기했다. 이는 민주화 시대의 참여정부가 저지른, 명백한 민주주의 유린이었다. 참여정부의 탈민주주의 정치는 그렇게 가속화됐고, 그로 인한 부안 군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러댔다.

그러나 부안 군민들은 분노에서 희망을, 투쟁에서 권리를 창조해낼 줄 아는 지혜를 보여주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할 것 없이 변산반도를 뒤덮은 노란 물결을 무기 삼아 투쟁하는 절대공동체의 전쟁기계가 되었다. 반핵민주투쟁의 전쟁기계, 그것은 주민의 희생과 지역 착취를 고리로 하는, 국가권력과 자본권력이 자행하는 폭력적인 핵발전 전쟁에 반대하는 것이자, 자발적이면서도 열정적인 존재의 힘을 표현하며 새로운 사회적 주체성의 탄생을 자축하는 주민들의 주권재민 전쟁이었다. 그 절정은 2004년 2월14일의 독자적인 주민투표였다. 72% 투표율에 92%의 핵폐기장 유치 반대라는 강력한 의사를 보여줬다는 것에 앞서, 군민들은 주권재민, 즉 ‘자치민주주의’를 창출하고 실험했다는 점에서 반대 일변도가 아닌 오늘날 21세기가 요구하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대안적 구성을 제시했다는 의미가 매우 크다.

요컨대 부안 군민들은 자발적이고 열정적인 항쟁 과정을 통해 생태 문화사회로의 전망이라는 욕망과 권리를 탄생시킬 수 있었으니, 부안항쟁은 단순히 핵폐기장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이미 넘어서 있었던 것이다. 존재의 거처를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었고, 존재의 이유를 바꾸어야 했고, 새로운 대안적 삶을 상상하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것은 권력에 대항해 권력을 넘어서고자 했으며, 따라서 부안항쟁이 한편으로는 악몽과 상흔을 남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코뮌 놀이’의 즐거움으로 통쾌하게 질주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군수독재의 군정권력에 맞서 절대 공동체의 주민권력을 형성하고 투쟁하는 일상들에서 해방의 공통감각들을 만끽하는 전복적 공간의 생성, 그게 바로 ‘웃으면서 싸우는’ 코뮌 놀이의 희열이었다.

부안항쟁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 오늘, 우리가 다시 부안항쟁을 말하려는 이유는 뭔가. 부안항쟁은 2004년 말 18개월의 장정 끝에 반핵부안대책위 스스로의 백지화 선언과 자진 해체로 종결됐다. 김종규 군수가 유치 신청한 것이 완전 무효화됐다. 군민들은 승리했다. 그러나 2005년 정부의 새로운 일정에 따라 김종규는 군의회에 핵폐기장 유치 동의안을 다시 의결할 것을 요청했다. 경주시가 최초로 핵폐기장 유치 신청을 했고, 군산시도 이미 의회 동의안을 채택했으며, 부안군 의회에서도 동의안 처리가 시도되고 있어 한바탕 전쟁이 예상된다. 이처럼 끝났으되 끝나지 않은 투쟁, 승리했으되 승리하지 않은 항쟁, 그것은 기억투쟁으로 현재화돼야 한다.

반핵대책위 지도부의 배신

부안항쟁에 대한 기억투쟁은 부안으로 완결되지 않는 반핵 투쟁의 전국화로서, 폭식증에 걸린 듯한 핵발전소의 증설과 전국의 도서·해안 지역을 유령처럼 들쑤시고 다니는 핵폐기장의 거처에 대한 거부, 즉 한국 사회의 에너지정책을 전환하도록 촉구하는 전국의 동시다발적 요구 투쟁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전국의 도서·해안 일대를 금권으로 유린할수록 지역 주민들은 정부에게서 고개를 돌려버리며 반핵 민주의 전복적 주체성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게 바로 부안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부안항쟁에 대한 기억투쟁은 부안 주민 자신들의 몫이다. 부안항쟁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정의하고 배치하고 구성하는 공론장을 통해 한낱 민초에 불과했던 부안 군민들이 역사적 민중으로 출현할 수 있었고 차이를 내재한 다중으로 연대할 수 있었던 기억들을 지역 사회의 희망으로 발굴해야 한다. 18개월의 대서사시가 생산해낸 매우 풍부하고 다양한 텍스트와 만인의 이야기들은 무용담의 추억거리가 아니라 삶의 정치와 생태문화 자치민주주의를 실현시킬 수 있는 증언들이다.

사람들은 먹고살기 바쁜 일상으로 되돌아갔고, 그리하여 투쟁했던 모든 것들이 공기 속에 녹아버린 듯하나 부안 군민들은 더 이상 반핵 이전의 군민이 아니다. 의정감시단, 민주노동당 부안지역위원회, 부안주민자치참여연대, 부안영화제, 부안독립신문, 갯벌배움터 그레, 생태문화공간, 부안희망, 변산 주민자치연합, 줄포면 농민회 등은 반핵 투쟁 이전에는 들어볼 수 없었던 이름들이다. 이 새로운 이름들로 모든 게 표상될 수 없지만, 반핵 투쟁 이후 부안 군민들의 욕망과 권리가 사회적으로 가시화된 이름들임이 틀림없다. 이 이름들보다 더 넓고 큰 역동성이 군민들의 마음 속에, 기억과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다. 부안의 희망이 거기에 있을 터다.

그러나 장애물 또한 존재한다. 여전히 김종규 군수는 공권력의 보호를 받으며 군정독재로 군민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고 핵폐기장을 유치하려 하고 있다. 또 하나, 반핵 투쟁을 이끌던 반핵대책위의 지도부를 차지했던 위인들이 군민들의 주권(욕망과 권리)을 배신하고 있다. 전 대변인은 차기 군수 선거에 출마하겠다며 부안에 고통을 준 찬핵 정당이자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당당히’ 입당하고, 그 지도부 사람들도 열린우리당 운동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그들을 비난하고 있다. 민중의 시선, 부안의 희망은 두 장애물과의 싸움을 통해 걸러질 모양이다. 그래서 부안항쟁은 갈등하고 모험하는 여행기다.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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