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 찾기 소송 이어지는 가운데 특별법이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전망
일제의 훈작 받은 소수의 ‘조선 귀족’만 대상, 적용과정에서도 난관 많아
▣ 길윤형 기자charisma@hani.co.kr
“아니, 또 이런 일이!”
해방 60돌을 기념하는 8월15일치 신문을 받아든 사람들은 매국노 후손들의 파렴치함에 또 한번 치를 떨어야 했다. 을사늑약 때 왕실 종친으로 궁내 동정을 탐지해 일제 밀정 역할을 한 이재극(경술국치 이후 일제로부터 남작 작위와 은사금 2만5천엔 받음)의 손자며느리 김신덕(82)씨가 국가를 상대로 “시할아버지의 땅인 경기 파주시 문산읍 땅 1만5천㎡를 돌려달라”며 소유권보존 등기말소 청구소송을 낸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아직까진 재산권 제한할 규정 없어
지난 1992년 ‘매국노’ 이완용의 후손인 이윤형씨가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땅 712평(당시 시가 30억원)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내 승소한 이래, 지금까지 30여건의 크고 작은 친일파 후손 재산 찾기 소송이 이어져왔다.
법무부는 지난 5월13일 지금까지 친일파 후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유권 확인 소송은 모두 23건인데, 이 가운데 16건의 확정 판결이 났고 친일파 후손들이 실제 승소해 땅을 찾아간 경우는 8건이라고 밝혔다. 승률로 치면 50%. 승소 확률은 꽤 높은 편이다. 백동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소송에서 국가가 이기는 경우는 친일파들이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한 땅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다른 사람에게 팔렸음을 증명하는 경우뿐”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1997년 이완용의 증손자 이윤형의 소송에서 “반민족 행위자의 후손이라고 해서 법률에 응하지 않고 재산권을 제한 박탈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놓은 이후 대체로 이 판례를 따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8·15 경축사에서 “국회에 계류 중인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 환수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되면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이 나라와 민족을 팔아서 치부한 재산을 그 후손이 누리는 역사의 부조리도 해소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특별법이 새삼 주목 받고 있다. 친일과 매국으로 얼룩진 치욕의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데 누가 반대할 수 있을까.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법률(대표발의 최용규·노회찬 의원)은 이르면 이번 정기국회 때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법안은 “일본 제국주의 식민 통치에 협력한 반민족 행위자가 그 당시 축재한 재산을 국가의 소유로 함으로써 정의를 구현하고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는 것”(1조)을 법률 제정 목적으로 못박고 있다. 또 친일 반민족 행위자는 일제에 협조해 훈작을 받거나 을사보호조약이나 정미7조약 등을 주도한 고위 공직자와 법에 의해 만들어지는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및환수위원회’(위원회)가 정하는 사람(4조)으로, 그들의 재산은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국고에 귀속(19조)된다. 이완용과 송병준 후손의 땅을 국가가 빼앗아오는 법적 근거가 생기는 것이다.
반민족 행위와 재산권의 연관성 확인 어렵다
과연 법률은 민족의 정통성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인가. 이와 관련해 임대식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이 1993년 <역사비평> 가을호에 낸 ‘이완용의 변신 과정과 재산 축적’이라는 논문이 관심을 끈다. 지금은 익숙한 주제가 됐지만, 당시는 김성수·윤치영 등 친일 행위가 뚜렷한 사람들의 독립유공자 서훈 문제와 이윤형(이완용의 증손자)씨 등의 재산 환수 소송이 잇따르며 큰 파문을 낳았다. 임 연구원은 논문에서 “우리 사회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힘의 압력이 있어서인지 전자(김성수·윤치영 서훈)의 문제는 원점으로 회귀되어 하나의 포말로 사라지지만, (땅 찾기 소송은) 모든 이들의 공분을 일으키며 재산 환수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다”라고 적었다.
위와 같은 비판은 법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법률이 재산 환수 대상으로 꼽은 것은 일제로부터 훈작을 받은 ‘매국형 친일파’ 60~70여명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훈작을 받은 ‘조선 귀족’ 출신들은 1세대들이 죽은 뒤 대부분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완용 후손의 경우 1930년대까지는 거부 명단에 이름이 오르내리지만, 이후의 기록에선 이름을 찾을 수 없다. 송병준 등 다른 ‘매국노’들의 경우, 자손간의 다툼으로 재산이 공중분해됐다는 사실을 당시 신문 기사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엄청난 액수의 은사금도 5년 거치 50년 상황의 공채인데다 이자도 턱없이 낮아(5푼), 실제 가치는 액면 가치의 20분의 1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3·1운동 이후 문화통치가 도입되면서 조선 귀족들의 효용 가치는 더욱 줄었고, 일제의 푸대접도 심해졌다. 대표 ‘매국노’ 이완용의 경우 3·1운동 이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4월5일치 1면 톱으로 “동포의 자중을 당부한다”는 내용의 ‘경고문’을 발표했지만, 담화의 약발이 없었던 듯 2차 경고문은 사회면 중간으로 찌그러졌고, 3차 경고문은 아예 지상에 실리지 않았다. 전우용 전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연구위원은 “조선 귀족들은 일제의 비호가 축소되는 과정에서 정치적인 권세가 크게 줄었고 재산도 흩어지는 과정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 자리를 일제와의 결탁을 통해 경제적 성장을 했던 매판 기업가·지주 등 ‘매판형 친일파’와 일제의 식민 통치에 이바지한 ‘부역형 친일파’가 메우게 된다. 한쪽은 식민지 시기 빠른 근대화 과정 속에서 급격히 몰락한 데 견줘, 다른 한쪽은 그 물결을 타고 사회의 지도 세력으로 성장한 셈이다. 후세까지 권력을 전하지 못한 ‘매국노’의 후손들은 60년 만에 재산을 빼앗길 위기에 놓였다. (기자는 재산을 빼앗자는 과격한 기사에 매판·부역형 친일파들의 이름을 올리는 것조차 불경스러워 뻔히 아는 그들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는 자기검열을 하고 있다.)
법률은 적용 과정에서도 수많은 난관에 부딪칠 것으로 보인다. 조기룡 법무무 법무심의관실 검사는 지난 6월17일 국회 법제사업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의 환수에 관한 특별법안 관련 공청회’에서 “친일 행위자가 친일의 대가로 얻은 재산만을 무효로 보는지, 친일 행위자의 재산 취득 행위를 무조건 무효로 보는지 불명확하다”라고 지적했다.
적극적 법 해석으로 재산 환수 막아야
이완용의 경우, 1907년 이후 3~4년 동안 재산이 급격히 증가했고, 이 재산의 대부분이 나라를 판 대가로 형성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그러나 1997년 증손자 이윤형(71)씨가 소송을 통해 찾아간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545일대 3필지(712평)가 어떻게 이완용의 손에 들어갔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법안 도입에 적극 찬성하고 있는 이헌환 서원대 교수(헌법학)도 “반민족 행위와 재산권 사이의 연관성을 엄격하게 확인하지 않고, 친일파의 후손이란 이유만으로 재산권 침해 논란을 잠재워가며 재산을 환수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21>이 이 땅의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니, 땅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매각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법은 이 경우 그의 다른 재산을 환수해야 할지, 또 그 돈을 종자돈 삼아 재산을 불린 경우에는 환수 범위는 어디까지 정할지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정치는 때때로 ‘희생양’을 필요로 한다. 백동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친일 반민족 행위자의 대상이 60여명에 불과하고, 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면 실제 재산 몰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소수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소수의 피를 역사의 제단에 뿌린다고 “반민족 행위자들이 나라와 민족을 팔아서 치부한 재산을 그 후손이 누리는 역사의 부조리”가 해소될 수 있을까. 전우용 연구위원은 “좋은 취지로 법을 만든다는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면서도 “법원이 적극적으로 법을 해석해 친일파들의 재산 환수를 막고 사기의 표적으로 전락한 국가 재산 관리 체제를 재편하는 게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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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가를 상대로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당동리 땅 1만5천평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낸 이재극 후손의 가족사는 치욕으로 점철된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압축해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매국노’ 이재극의 아들은 이인용으로 덕수궁 내인 이씨와 결혼했지만, 자손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고종의 아들인 의친왕 이강의 다섯 번째 아들 이수길을 양자로 받아들였다. 의친왕 이강은 14명의 아내에게서 13남9녀를 뒀지만, 일곱 번째 아들까지는 이재극 같이 손이 귀한 왕실 종친의 집에 양자를 보냈다.
이후 이수길은 일본 여자와 첫 번째 혼인을 한 뒤, 이번에 소송을 낸 김신덕(82)씨와 결혼했다. 법적으로 본다면 매국노 이재극의 후손이 “조상의 땅을 찾겠다”고 소송을 낸 것이지만, 혈통으로 보자면 나라를 빼앗긴 황실 종친이 매국노의 집에 양자로 들어가 법적인 조상인 매국노의 땅을 찾겠다고 소송을 낸 셈이다. 김씨가 법원에 낸 소장을 보면 이수길은 일본 여성에게서 두명의 자손을 뒀고, 김씨와의 사이에서 4명의 자녀를 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림)
이수길은 장면 정부 시절 구황실재산사무총국장(현 문화재청장)이 된다. 일본 기자 혼다 세쓰코가 1989년에 쓴 <비운의 황태자비 이방자>를 보면 “그가 구황실재산관리국의 예산 중에서 100만원을 은(영친왕)에게 줬다”는 장면이 나온다. 일제가 패망하기 전까지 그는 조부가 일본 황실에게서 받은 남작 작위를 유지했고, 해방 이후에는 황실 자손으로 인정돼 우리 나라 문화재를 책임지는 수장이 됐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위원장은 “조선 황실은 합방이 된 뒤에도 일본 황실의 보호 아래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며 “최근 불고 있는 복벽론(황실을 다시 복원하자는 주장)과 황실 동정론은 일고의 가치조차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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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이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때도 ‘을사오적’ 이근택의 친형 이근호의 후손이 경기 오산에서 땅찾기 소송을 벌였다는 소식이 처음 알려지며 비난의 여론이 들끓었다.
당시 <한겨레>는 인천 부평에서 ‘열심히’ 땅찾기 소송을 벌이고 있는 ‘매국노’ 송병준의 증손자 ‘돈호’(60)씨의 배다른 형 준호(73)씨의 인터뷰를 추진하고 있었다. 그때 그는 전북 ㅅ시의 ㅇ교회의 보호를 받고 있었는데, 독립운동 관련 단체에서 활동 중인 ㅈ(45)씨의 소개로 <한겨레> 지면을 빌려 국민들 앞에 참회 인터뷰를 할 계획이었다. 그는 1993년 행방을 감춰 실종 처리됐다가 1998년 다시 주민등록을 회복했다. 인터뷰 예정일은 지난해 8월25일이었지만, 인터뷰는 이뤄지지 못했다. 이유를 따지는 기자에게 ㅈ씨는 “ㅇ교회의 이름은 물론이고, 준호씨의 거처도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유가 궁금했다. <한겨레>는 교회 이름도 모른 채 ㅅ시로 무작정 달려갔다. ㅅ시에 있는 교회를 하나하나 뒤질 계획이었는데, 처음으로 찾은 교회가 하필 그 교회였다. 확률로 치면 로또 1등은 못 돼도 2등 당첨 수준은 되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거기까지였다. 돈호씨를 보호하고 있는 목사는 인터뷰를 거부했다. 짐작한 대로였다. 문제는 돈이었다.
ㅈ씨가 언론에 공개하기 위해 준비했던 기자회견문을 보면 “그동안 조상들이 국민들에게 저지른 죄에 대해 정중하게 사과한다”며 “앞으로 취득하게 되는 재산을 ㅈ씨가 회장으로 있는 단체쪽에 기부할 예정이고, 이에 대한 법적 공증도 마쳤다”고 적혀 있다.
ㅇ교회쪽은 이에 대해 “ㅈ씨가 기자회견문을 날조했다”며 “그 XX는 사기꾼”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떳떳한 사람이었을까. ㅇ교회 목사는 인터뷰를 요청하는 취재진들에게, “내게 빚이 좀 있다”며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ㅈ씨에게 물어보니 “ㅇ교회쪽이 송씨를 공개하는 조건으로 3억원에서 5억원 정도의 돈을 요구했다”고 실토했다. 그러면서 “그쪽 사람들은 성직자도 아니다”며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ㅇ교회 목사는 “땅 문제로 돈호씨를 찾아오는 토지 브로커들이 수없이 많다”며 “신변의 위협을 느껴 곧 거처를 옮길 것”이라고 말했다.
돌아오는 고속버스에서 진정으로 혼란스러웠다. 과연 누구에게 돌을 던져야 할까. ㅈ씨는 지금 광복회 개혁을 하겠다고 맹렬히 활동 중이고, ㅇ교회 목사의 소식은 듣지 못했다. 기사는 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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