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2호 “여자도 군대 가자”보도 뒤 참신하고 기발한 주장과 대안들 쏟아져
3인의 남성 페미니스트들은 “찬반 가르기보다 군대 바꿀 지혜 모으는 계기로”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우려와는 달리 <한겨레21> 572호 “여자도 군대 가자” 표지기사가 나간 뒤 우익 마초들의 ‘환호와 갈채’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한 평화운동가는 이를 두고 “허를 찔려 ‘벙쪘나’ 보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대신 다양한 갈래의 논의들이 온라인상에서 벌어졌다.
‘우익마초’의 환호와 갈채는 적었지만…
<인터넷 한겨레> 토론방과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사이트, <한겨레21> 보도를 뒤따라 다룬 한국방송 1라디오와 문화방송 아침 시사프로에서 백인백색의 주장과 대안들이 쏟아졌다. “적응이든 효과든 복무 기간은 딱 1년이 좋다” “여성이 겪는 사회적 불평등을 먼저 해결한 뒤 얘기하자” “꼭 전투훈련이 아니라도 일정 기간 사회봉사를 하면 좋겠다” “징집과 모병을 혼합해 단계적으로 여성 참여를 늘리자”….
쏟아진 말말말 가운데에는 찬반을 떠나 네티즌들에게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당한 것들도 있었다. “여성은 남성과 신체적 조건도 다르고 출산·육아 등 사회적 의무도 다르다”는 ‘성별 분업적’인 이유를 내건 반대론과 “안보 기강이 흐트러지고 군 병력이 줄어드니 여성이라도 군대 가서 메워야 한다”는 ‘군사주의적’으로 편향된 찬성론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 “북한을 더 긴장시켜 호전적으로 만든다” “국방부의 음모이다” 등 ‘엉뚱한’ 주장과, “여자들이 군대 가면 남자들은 스페인처럼 부부 가사노동 분담법을 제기할 각오는 돼 있겠지?” “요즘 20대 밑으로는 여자들이 남자보다 더 센데, 군대까지 싹쓸이하면 남자들은 어떡해요? 잉잉” 같은 ‘기발한’ 의견도 있었다. 깊이 있는 논거로 설득력 있는 의견을 내놓은 논객들도 적지 않았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적응하지 못하는 조직은 이미 정상적인 조직이 아니다. 여성이 군대에 들어가면 군대 문화도 사회 전반의 문화도 많이 바뀔 것이다. 처음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내부 반발과 시스템 준비 부족으로 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병제 시행이 거의 불가능하다면 징병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여성 징집은 좋은 선택일 듯하다. 징집 대상을 늘이는 대신 복무 기간을 1년2개월 정도로 줄이자.”(필명 nuoripuu)
“1950년 8만명이었던 병력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60만명이 됐다. 인구 증가로 병력 자원이 넘쳐나자 정부는 병역특례라는 편법을 썼다. 병력 축소는 세계적 추세다. 여성의 의무복무는 국방개혁 방향과 맞지 않고 여성을 위한 병역특례 같은 위헌적 제도를 만들게 된다. 군복무와 같은 국민의 자유권 제한을 최소화하고 인권과 복지에 힘써야지, 여성에게도 의무를 부과하는 식으로 자유권 제한을 확대할 일이 아니다.”(필명 에스더)
김두식·변상욱·권혁범, 원칙적 반대
“남성 독점의 징병제 아래서 남성은 군대라는 특수한 사회화 과정에 노출돼 자신들이 여성보다 우월한 ‘1등 국민’임을 자연스레 학습하게 된다. 방어적인 태도의 여성운동가들은 군 이외의 영역에서 여성 차별을 먼저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여성의 군복무는 부적절하다고 얘기한다. 그렇다고 남성들만 병역의 의무를 다하라는 것은 여성들이 지금 받고 있는 차별이 정당하다는 논리일 수도 있다.”(필명 세상 속으로)
지난 기사에서 여성주의자들은 “적극 찬성” “반대는 못하겠지만 효과는 의문” “바람직하지 않다” 등 삼인삼색의 견해를 밝혔다. 남성이면서 여성주의자인 이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자타가 공인하는 세명의 ‘남성 페미니스트’들은 ‘삼인일색’으로 여성의 의무 복무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몸이라도 던져서 해결해보겠다’는 취지에 공감하지 않는 여성들의 희생까지 요구하게 된다”(김두식 변호사·한동대 법학부 교수), “군사문화에 물들지 않은 여성들이 그나마 (사회에서) 받쳐주던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문화가 같이 허물어진다”(변상욱 CBS 편성국장), “지나치게 신성화·정당화돼 있는 강제징집을 남녀가 ‘같이’ 문제 삼고 바꾸는 게 진정한 양성평등의 길이다”(권혁범 대전대 정치학과 교수)였다.
세 사람 모두 군필자 처지에서 “살인을 훈련하고”(김두식), “보람찬 군인 정신보다는 뻐기는 군발이 정신을 가르치며”(변상욱), “폭력적인 위계질서로 운영되는”(권혁범) 군조직에 여성까지 ‘밀어넣는’ 것은 그럴 필요도 없지만, 정서적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이들은 ‘여성이 의무 복무를 해야 사회에서 궁극적으로 양성평등이 이뤄진다’는 논리에 대해서도 고개를 흔들었다. 권혁범 교수는 “다른 분야에서 여전히 여성이 권력적으로 불평등한데 왜 유독 국방에서만 평등이 강조되는지 의아하다”고 말했다. 김두식 변호사는 “한국 사회의 남녀 차별은 여성들의 잘못이 아니라 남성들에 의해 생긴 문제”라면서 “남성들이 정신차려 합리성, 인간성을 되찾아서 해결해야지 아무 책임 없는 여성들이 몸을 던져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변상욱 국장은 “남자가 군대에 있는 동안 여자들이 사회적 역할을 하는 것도 국방의 의무를 지는 것”이라며 “군대 안 갔다고 트집잡는 마초들에게 국가 경쟁력은 여성이 지켜주고 있다고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소수자 시민권’과 ‘비폭력’ 사이의 딜레마
‘여성이 들어가서 군대를 바꿀 가능성’에 대해서는 세 사람의 견해가 엇갈렸다. 김 변호사는 “조직이 유연해지고 덜 폭력적으로 되고 내무반 문화도 완전히 달라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변 국장은 “쇳덩이를 갖고 부채살 만들기 어렵듯이 군 조직의 속성상 오히려 여성들이 군사문화에 오염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미세한 변화는 있겠지만 사회적으로 여성의 소수성을 탈피할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여성이 군에 가기 위한 전제 조건’은 무엇일까. 세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군대가 바뀌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군대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해서 세 사람이 ‘방점’을 찍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변 국장은 “문민통제 강화”를 주장했다. “군이 가족과 지역사회에 더 많이 개방돼야 하고, 자유시간·외출·외박·면회·통신 등 사회 네트워크의 일부로서 존재해야 한다. 안보 개념이 바뀌고 군사 시스템이 기술집약적으로 바뀌면 여성의 영역이 확대된다. 장교와 부사관 등 모병 부문에서 여성 비율을 넓히면 군에 가고 싶어하는 여성들의 수요를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하지만 군대는 남성들에 맞춘 전투 조직이다. 시스템에 의한 민주적 통제로 건강하게 만들어야지, 양성 조화로 거듭날 조직은 아니다. 다수가 아니라도 병무 행정과 지도, 법무관, 감사실, 인사 부관부 같은 군의 민주적 통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분야나 비리 우려가 큰 분야에는 여성들이 많이 가는 게 좋겠다.”
권 교수는 “모병 영역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시급하게 손대야 할 것은 군의 조직문화와 인권, 처우와 복무 기간 문제들로 이를 점진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모병제로 유도해나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할 수 있는 게 굉장히 많다. 직업군인으로서 여성 비율을 확대하고, 군대 내 인권 보장을 확실히 하고, 병영 실태를 개선하고, 복무 기간은 1년 정도로 단축해야 한다. 여성들은 남성에게 ‘너희 고생했으니 우리도 같이 고생하겠다’가 아니라 ‘너희 고생하니까 우리가 도와주겠다’고 하는 게 옳은 접근법이다. 강제 병역의무제는 군사주의를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모병제로 전환하는 것이 군사 비용도 줄이고 현대전 성격에 맞다.”
김 변호사는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가 폭넓게 인정되고 대체복무를 확대하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그렇게 되면 특수학교나 사회관리 영역에서 필요로 하는 보조원 수요 등도 적절하게 충족시킬 수 있고 남녀 자원들이 군대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시민의 의무를 다할 기회를 갖게 된다”면서 “현 징병제의 문제점들이 고쳐진 뒤 남녀가 평등하게 군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여성의 군복무에 아무 이의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군필 남성이자 여성주의자인 세 사람은 모두 “여성주의자들과 여군 출신들은 군대 문제에 관한 한 우리 사회 누구보다 ‘발언권’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여성 의무 복무’ 주장은 찬반으로 단순히 가를 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군대에 대해 지혜를 모으고 해법을 찾아내는 계기로 작용할 문제”라며 “국방 정책은 시대 상황과 국민 의식이 결정하는 것인 만큼 낡은 체제나 폐쇄적인 사고 회로 속에서는 해답을 찾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여성의 의무 복무는 ‘소수자의 시민권 획득’과 ‘비폭력주의’ 사이에서 어쩔 수 없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최정민 평화인권연대 활동가는 각종 세미나에서 보고되는 내용을 보면 군대에서 여성 비율이 어느 정도 늘어났다고 해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군대가 바뀌기보다는 여성이 군대에 흡수돼버리는 폐단도 적지 않은데, 이를 여성의 의무 복무로 해결할지 (복무 형태나 병영문화, 병력 수급 방식에 대한) 군의 유연화·정상화로 해결해야 할지 평화운동가나 여성운동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고 전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우리 현실에서 남녀 공동 병역 의무는 ‘옳은 선택’이라고 보지 않는다”면서도 “군 민주화와 정상화를 위한 논의의 물꼬가 트였으면 좋겠다”는 바랐다.
여성이 논의를 주도한 점 주목!
군대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군 경험 유무에 따른 피해의식과 우월의식이 결합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소통’을 가로막는다는 점이다. 당·정 협의로 지난 6월 말에 꾸려진 병영문화개선위원회(위원장 김명자) 위원인 조용범 군 심리학자(임상심리학 박사·이화여대 겸임교수)는 “남성들의 기득권과 가부장 의식의 ‘틀’이 군대에서 만들어진다”면서 “군 복무에 대한 자기 합리화로 여성을 공격하거나 깔보는 일종의 ‘인지불일치’(인지부조화) 심리를 갖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지부조화 이론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여우의 신포도’ 이론이다. 저 멀리 포도가 있는데 너무 높아 따먹을 수 없게 된 여우가 “저 포도는 시어서 맛이 없을 거야”라고 여긴다. 먹고 싶은데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지각을 바꿔버리는 것이다. 포도를 먹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포도가 시다고 믿는 경향이 커진다. 이를 군 경험에 따른 남성 의식에 대입해보면 군 생활이 너무 힘들고 적절한 보상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군 생활을 하지 않는 여성들은 열등하고 무력한 존재라는 쪽으로 자기 지각을 몰고 간다고 설명할 수 있다.
조 박사는 “군대 문제에 관해 여성이 의사결정권을 갖거나 의사결정에 참여하기 어려웠는데, 이번 논의를 주도한 이들이 ‘여성’이라는 점을 주목한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여성의 의무 복무는 안보에서의 여성 소외나 사회적 차별 등 우리 사회 여러 문제를 해결할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 검토할 문제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군복무에 여성이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기에는, 국민들의 군의 기능과 관리에 대한 불신이 깊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국민적 인지부조화’가 있다는 뜻이다.
‘군대는 변할 수 있다’(따라서 여성의 의무 복무는 ‘실천적’ 선택이다)와 ‘군대는 변할 수 없다’(따라서 여성의 의무 복무는 ‘비현실적’ 발상이다)라는 양쪽의 견해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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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여자들, 병영을 바꿨다
▣ 베를린=강정수 전문위원 jskang@web.de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독일은 남녀공동 의무복무제에 대한 논란이 수년 동안 ‘다이내믹’하게 이어지고 있다. 1996년 독일 연방군에 지원했다가 “여성은 어떤 경우에도 무기를 들고 하는 임무에 배치돼선 안 된다”고 명시한 독일 헌법(12항 a)에 따라 입대를 ‘거절’당한 전기공 탄야 크레일(Tanja Kreil)이 1998년 유럽재판소에 독일 헌법의 ‘여성 전투병 금지 조항’은 유럽법과 어긋난 남녀차별이라고 헌법소원을 내면서다. 그때까지 여성은 위생병과 음악병(군악대)에만 입대할 수 있었다. 소원의 요지는 “민주 국가에서는 군대도 다른 공공기관과 같은 구조로 운영돼야 하며, 기회균등의 원칙에 따라 모든 ‘공적 직업과 일자리’에 여성의 접근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유럽 전체가 크고 작은 논쟁을 벌이며 이 사건을 주목했고, 유럽법원은 2000년 탄야 크레일의 손을 들어줬다. 군대나 경찰의 임무 중 ‘특수 목적 임무’에 여성이 배제되는 것이 독일 연방군 전체에 확대 적용돼서는 안 되며, 지나치게 포괄적인 분야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독일 헌법의 이 조항과 그 하부 법들을 사용하지 말라는 결정이었다. 이에 따라 독일은 법을 개정했고 이듬해인 2001년부터 군의 전 분야에 여성 장병을 뽑기 시작해, 2005년 5월 현재 탱크부대·낙하산부대·잠수함부대 가리지 않고 육·해·공 1만2380명(전체의 6%)의 여군이 있다. 지난해부터는 ‘여성 군인과 남성 군인 평등법’의 효력이 발휘돼 여성 비율 15%를 목표로 하고 있다.
독일이 여성을 위생병과 음악병으로만 한정했던 것은 나치의 과거에 대한 ‘반성’에 따라서다. 나치 시절 여성은 국토방위, 전쟁물자 생산, 폭격지역 복구, 부상병 치료 외에도 남군이 진격하기 전 전선 맨 앞에 내몰리며 이중으로 ‘당’했다. 독일 사회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헌법에 이를 금지하도록 명시했다.
독일 여성들의 ‘군대 접근권’ 항의 소송의 시초는 서독의 경우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범위한 사회적 토론이 붙었으나 군 당국의 반발 속에 결론을 내지 못했다. 그 뒤 인구 감소에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부위원회는 1982년 여성에게도 군사임무(전투임무)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야 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 독일 여성계는 “가고 싶다고 할 때는 막더니, 여자들이 땜빵이냐”고 크게 반발했다. 어쨌든 20여년 세월을 건너뛰어 독일 군인들은 이제 빡빡머리 뒤통수만이 아니라 하나로 머리를 묶어 늘어뜨린 뒤통수도 보면서 구보를 할 수 있게 됐다.
적녹연정은 임기를 마치기 전까지 ‘국방의 의무’ 개념과 체계를 재검토하기로 합의했는데, 선거가 올 9월로 앞당겨졌으나 아직 ‘결론’을 못 내리고 있다. 사민당의 공식 입장은 징병제를 유지하되 규모나 기간이 축소돼야 한다는 것으로, 이유는 국방의 의무를 폐지하면 대체복무(시민봉사)도 없어지는데 그렇게 되면 이를 위한 새로운 사회적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녹색당의 공식 입장은 직업군인제(모병제) 도입을 근간으로 하고 있지만, 안보 개념을 뜯어고쳐 남녀 공동의 시민봉사제를 도입하자, 여성의 복무 기간은 짧게 하자, 왜냐하면 여성은 출산휴가·교육휴가가 있어도 사회생활이 훨씬 어렵다, 과연 남성이 군복무로 사회생활에 손해만 보느냐 등 꼬리에 꼬리를 문 논의들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정치권의 갑론을박과는 달리 독일의 군대는 빠르게 바뀌고 있다. 논란이 뜨거웠던 2001년 40만명의 징집 대상자 가운데 18만2420명이 징집을 거부하고 ‘시민봉사’를 선택했고, 8만3500명이 신체·심리적인 이유로 ‘면제’됐다. 그 결과 2002년에는 12만명만이 병영생활을 하게 됐다. 남녀 공동 복무를 위해 군 시설이 전면 정비됐고 복무 준칙이 보강됐다. 2001년 봄까지 모든 부대에 여자 화장실과 탈의실을 신축했고, 남군이 여군에게 ‘존경을 표하는 법’이 교육됐다. 지난해부터는 병사들의 출퇴근 근무나 반나절 근무가 가능해졌으며, 남녀 친구나 애인, 결혼한 쌍은 막사에서 같이 지낼 수 있게 됐다. 이 모든 변화는 시험이나 행군에 남녀 차이를 두지 않고, 군 간부들이 나서 “여자 상관을 못 받아들이는 사람은 군대를 떠나라”고 일침을 놓고, 장기간 남성 위주의 문화에 길들여진 장교들에게 ‘윗대가리’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취지로 ‘파트너적, 동반자적 행동 준칙’을 반복해서 가르친 결과다.
한편, 이런 엄청난 변화의 물꼬를 튼 탄야 크레일은 전투병으로 갈 수 있게 된 2001년 이후 “난 더 이상 군대에 관심 없다”면서 생업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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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공동 국방의 의무 논의를 계기로 쏟아져나온 각종 의견 가운데 눈에 띄는 점은 ‘모병제 전환’에 대한 찬반이 팽팽하게 맞선다는 것이다. 독자들과 네티즌들은 이에 대한 여론도 알아보라고 <한겨레21>에 요청했다. <한겨레21>은 남녀 공동 국방의 의무에 대한 지난 여론조사(7월25∼26일 리서치플러스와 공동 실시, 전국 성인 1천명 전화조사, 오차범위 95% 신뢰수준에서 ±3.1%)에서 현 의무복무제(징집제)를 지원복무제(모병제)로 전환하는 문제에 대한 여론을 함께 물었다.
모병제 전환에 대한 찬성(21.8%)과 긍정적 검토(23.9%)를 합하면 45.7%로 반대(24.1%)를 눌렀다. 찬성하는 이유로는 “병력 수보다 군의 정예화·과학화가 더 중요하다”(군의 정예화)는 의견이 33.7%로 가장 많았고, “징집제가 계속될 경우 군이 사건·사고 등으로 늘 불안하다”(사건·사고 불안)는 이유가 29.2%로 뒤를 이었다. 반대하는 이유로는 “국방의 의무는 신성하므로 모든 국민이 져야 한다”(신성한 국방의 의무)는 이유가 62.2%로 압도적인 1위로 꼽혔다.
지난 조사에서 남녀 공동 국방의 의무에 대한 답변에서는 남녀 차이가 크지 않았으나, 모병제와 관련한 문항에서는 남녀의 답변 차이가 도드라졌다. 모병제로의 전환에 대해 여성들이 찬성 의견을 남성보다 오차 범위 내 근소한 차이로 더 많이 냈고, 반대 의견은 남성이 비슷한 비율로 더 많이 냈다. 세대 차이는 크지 않았다. 모병제 찬성 이유에 대해 남성의 49.6%가 ‘군의 정예화’를 꼽은 반면 여성은 19.7%만 이를 꼽았다. 대신 여성의 35.1%는 ‘사건·사고 불안’을 남성 22.5%에 견줘 많이 꼽았다. 특히 20대 여성의 66.7%는 ‘사건·사고 불안’을 가장 많이 꼽아 같은 20대 남성 32.5%의 두배를 넘게 기록했다. 폭력에 예민한 세대적·성별적 특성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징집이 기본적인 인권침해이므로 모병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답변도 여성이 23%로 남성 7.7%보다 훨씬 더 많이 냈다.
모병제 반대 이유에서도 남녀 차이가 눈에 띄었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이유로 한 반대 의견은 남성(67.2%)이 여성(56.5%)보다 많이 냈고, 빈곤층만 군에 가 또 다른 불평등이 생긴다는 이유로 반대한 의견은 여성(14.4%)이 남성(8.6%)보다 더 많이 냈다. 반면, 모병제를 실시하면 예상되는 가장 큰 문제점으로 ‘국민의 안보의식이 흐려진다’는 답변은 여성(40.6%)이 남성(32.3%)을 눌러, 안보의식에 관한 기존의 ‘성별 고정관념’을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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