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민속학자 주강현씨와 생태주의자 박병상씨가 평행선을 달린 논쟁
개고기 합법화 놓고 엇갈렸지만 육식을 덜 하자는 데에는 의견 일치</font>
▣ 사회·정리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진보적 지식인’을 개고기 토론장에 불러들인 이유는 개고기 문제의 진보적인 해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지난 8월2일 한겨레신문사 5층 회의실에서 주강현 한국민속연구소장과 박병상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대표가 개고기 합법화를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주 소장은 “외국에서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비판하는 것은 구미의 육식가공업 자본의 이해와 연관돼 있다”며 “육식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서 개고기를 합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박 대표는 “지구 생태계의 문제가 즐비한 상태에서 개고기를 합법화해 더 이상 육식을 확대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둘 다 진보적인 틀로 개고기 문제에 접근했지만, 결론은 개고기 합법화 찬반으로 나뉘어져 평행선을 달렸다.
이들이 ‘진보적 지식인’이냐며 이의를 달 수도 있겠다. 주 소장은 자신을 ‘안티조선’이라며 “지금까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고, 박 대표는 “생명윤리에 앞장서야 할 <한겨레>가 어떻게 제2창간 광고에 황우석 교수를 내세울 수 있느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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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고기도 먹고 말고기도 먹어야 한다”
<font color="6b8e23">사회:</font> 두 분은 개고기를 먹습니까?
<font color="6b8e23">주강현(이하 주):</font> 부담감 없이 개고기를 먹습니다. 그렇다고 ‘마니아’는 아니에요. 여름에 서너번 먹는 정도예요. 올해는 아직 한번밖에 못 먹었습니다. 저번에 답사 가서 개장탕을 먹었는데, 아주 기분이 았습니다. 한마디로 개고기를 즐기는 사람이죠.
<font color="6b8e23">박병상(이하 박):</font> 나는 채식주의자까지는 아니지만, 길짐승이나 날짐승을 안 먹은 지는 3년이 넘었어요. 그래서 개고기도 먹지 않아요. 그 전에는 굳이 개고기를 피하지는 않았어요. 친한 신부님을 따라 개고기를 몇번 먹긴 했습니다. 구한말 가톨릭 박해 시절에 선교사들이 개고기를 먹으며 연명했다며, 신부님들은 개고기를 즐겨 먹더군요.
<font color="6b8e23">사회:</font> 주강현 선생은 일찍부터 개고기 합법화·제도화를 주장했고, 박병상 선생은 이에 대해서 반대 의견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고기를 반대하는 이유는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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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6b8e23">박:</font> 제 입장을 요약하자면 ‘고기가 지천인데 개고기를 굳이 합법화할 필요가 있냐’는 거죠. 지구 환경을 위해 고기 먹는 문화를 확대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font color="6b8e23">주:</font> 육식을 확대하는 건 저도 반대입니다. 하지만 좀 견해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요. 우선 옛날에는 개고기 소비량이 소나 돼지, 닭보다 많았습니다. 내가 소년일 때만 해도 소고기 먹는 것은 ‘연례행사’였어요. 그것도 고기를 덩어리째 먹는 게 아니라 꼬리곰탕처럼 우려서 오래오래 먹었지요. 이렇듯 소·돼지고기가 귀했기 때문에 개고기를 가장 많이 먹었어요. 로스구이로 왕창 먹은 건 얼마 안 됐어요. 현대는 고기의 과잉소비 시대지요. 그렇다면 그동안 불어난 고기의 총량을 누가 공급했느냐는 거예요. 여기에는 서양에서 번지수가 불분명한 고기(소·돼지고기)가 대량 투입됐죠. 그런 점에서 개고기가 육식 확대의 악덕 주범으로 몰릴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되레 서양 언론이 한국 개 식용 문제를 자주 들고 나오는 것은 음모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어요. 개고기 소비가 늘어난다면 수입산 소·돼지고기의 소비가 줄어들겠죠. 다국적 육가공 산업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작용한 것일 수도 있어요.
<font color="6b8e23">사회:</font> 소나 돼지고기 소비가 세계화되면서, 이를 즐겨 먹지 않던 동양권에서도 이들 고기의 소비가 급격히 늘어났다는 설명인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다시 개고기를 먹자는 건 어떤 의미가 있죠?
<font color="6b8e23">주:</font> 고기의 종류를 다각화하자는 거죠. 원래 아시아 사람들은 여러 종류의 고기를 먹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고려시대에는 양고기와 말고기도 자주 먹었어요. 내가 5년 전에 중앙아시아에 가서 양고기 꼬치를 먹었는데, 입에 맞습디다. 사람마다 고기 섭취량은 제한적입니다만, (문화권마다) 고기의 품종을 다양하게 먹어야 돼요. 낙타 고기도 먹고, 말 고기도 먹고, 회도 많이 먹어야 하고….
소의 고통을 생각해본 적 있나요?
<font color="6b8e23">박:</font> 물론 서양인들의 한국의 개고기 식습관에 대한 비난은 용납하기 어려워요. 또한 종이컵에 들어가는 개(토이푸들을 교배해 탄생시킨 크기가 작은 티컵푸들)를 키우고, 개에게 신발까지 신기면서 유난을 떠는 일부 애견인들이 개고기를 반대하는 것도 설득력이 없죠. 나는 개를 키워본 적이 없지만 개고기를 반대합니다. 개를 키우려면 그만큼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키우지 않아요. 집에서 키운 개는 사람과 인격을 교환하게 돼요. 그런데 그렇게까지 개를 먹어야 하나 싶어요. 옛날에 동네에서 개를 잡아먹을 때쯤 되면 할아버지가 정을 떼게 했어요. 그때처럼 주변에 먹을 게 없어서, 먼 곳에서 사위가 왔거나 동네 사람들이 잔칫날 잡아서 개고기를 먹는 정도라면 탓할 것도 없지만…. 개고기가 합법화되면 소·돼지처럼 공장식 축산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어요. 병이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항생제를 대량 투여하고, 사료도 엄청나게 주겠죠. 발바닥 댈 곳도 없는 좁은 우리 안에서요. 개를 합법화해 식용으로 키우는 것이 더욱 비윤리적으로 될 소지가 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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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6b8e23">주:</font> 개의 유통경로는 두 가지예요. 하나는 100마리 이상 철창 안에 가둬놓고 키우는 대규모 농장에서 길러 보신탕집으로 가는 거지요. 다른 하나는 농가에서 서너 마리 키우는 형태예요. 이 경우 수집상들이 돌아다니면서 개를 모으죠. 개는 농가 경제에 큰 도움을 줘요. 소나 돼지값은 폭등하기도 하고 폭락하기도 하지만 갯값은 항상 일정해요. 농민들은 절대 손해 안 보죠.
<font color="6b8e23">사회:</font> 개고기를 합법화할 경우 나타날 공장식 축산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죠?
<font color="6b8e23">주:</font> 왜 채소에도 유기농이 있잖아요. 나라도 ‘주소·성명’(원산지·유통경로 등)이 분명한 개라면 추천하고 싶을 거예요.
<font color="6b8e23">박:</font> 하지만 개고기 식용을 제도화한다면 공장식 사육의 전면화가 불가피할 거예요. 닭을 공장에서 처리하게 했더니만, 자본에 종속하는 일이 발생했어요. 지금 사람이 먹는 삼계탕을 위해서, 닭들은 뚝배기 크게에 맞게 체계적으로 성장돼 도살되고 있어요. 개고기가 합법화되면 동네에서 대충 개 잡아서 보신탕 끓여주는 집이 살아남을까요? 그러지 못할 거예요. 역설적이지만, 옛날 시골 동네에서 날을 잡아 개를 잡아먹는 것과 슈퍼마켓에서 소고기 포장육을 사서 먹는 것을 비교한다면, 동네에서 개고기를 잡아먹는 게 더욱 윤리적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옆에서 지켜보면서 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기 때문에, 사람들은 최소한 개에 대한 동정심이라도 갖게 되죠. 그런데 지금 소고기를 먹을 때를 생각해봐요. 소가 공장식 사육장에서 받았을 고통, 도살당할 때 느꼈을 끔찍함…. 소비자들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상상하지 않아요. 그저 갈비나 삼겹살을 먹는다고 생각하지, 산 동물을 잡아서 먹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고기의 주소와 이름을 알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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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6b8e23">주:</font> 고기의 주소·성명을 알 수 있다면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개고기에 관한 한 무방비 상태예요. 개고기는 우리나라 고기 소비량에서 소·돼지·닭에 이어 네 번째에요. 그런데 정부는 개고기가 사실상 무법지대에 있기 때문에 아무런 통계조차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개고기 합법화가 필요한 거죠.
<font color="6b8e23">박:</font> 고기 때문에 나타나는 성인병을 차치하고서라도, 지금은 개고기를 합법화해야 할 시기가 아니에요. 고기 소비량을 줄이고, 동물을 존중하는 애견 문화를 만들어야 할 때지요. 개나 사람이나 생명 있는 것들은 존중받아야 해요.
<font color="6b8e23">사회:</font> 두 분의 논리가 평행선을 달리는데요. 마지막으로 한 말씀씩 해주신다면요.
<font color="6b8e23">주:</font> 개고기 문제에서는 좌익과 우익이 연정해야 합니다. 다국적 자본의 침공을 받은 식탁의 안보를 위해서요. 그리고 고기를 덜 먹어야 하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토론은 생산적이었어요. 그런 전제조건 아래서 개고기 논쟁을 다시 벌여야 합니다.
<font color="6b8e23">박:</font>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상업주의가 ‘문화’로 위장해 개고기 합법화로 이어질까봐 걱정이에요. 과거처럼 순전히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서, 개에게 미안해하면서 잡아먹는 것이라면 큰 문제가 아니겠죠. 개고기 식용 문제는 거대한 육식 문화에 대한 성찰과 재조정, 그리고 무책임한 애완 문화에 대한 개선이 있은 뒤에 검토해도 늦지 않아요.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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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위거나, 법 밖이거나</font>
일부 개농장주들은 합법화 반기지 않아
개고기는 무법자다. 개를 기르고 도살하고 팔고 먹는 행위는, 법 밖에 있거나 법 위에 있다.
개는 가축일까? 개와 개고기는 축산물가공처리에 의한 가축과 축산물이 아니다. 이에 따라 엄격하게 규제받는 돼지나 소, 닭 등의 축산시설과 달리 개 농장과 도축장은 신고 의무도 없고, 위생·안전·유통 등의 관리기준도 없다. 따라서 개 농장주는 사업자 신고만으로 영업하고, 개를 도축해 유통시키더라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일정한 장소에서 도축해야 하고 사육장 면적, 농약·항생제 등 약품 투여기준 등 엄한 규제를 받는 축산업자들에 비해 운영이 편하다. 다만 공개된 장소에서 개를 몽둥이로 때리거나, 도살하거나, 도살된 개를 통째로 내걸고 팔 경우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는다.
개고기는 식품일까?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개고기는 식품위생법상 의약품을 제외한 모든 음식물에 해당하므로 식품”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보신탕집은 정기적으로 위생점검을 받는다. 그런데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42조 별표 13을 보면,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시·도지사가 인정한 혐오식품은 조리·판매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고, 이에 따른 서울시 고시에서 보신탕은 혐오식품으로 분류돼 있다. 이 기준에 따르자면 서울 시내 보신탕집은 불법 영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올림픽을 앞두고 1984년에 설치된 이 법 조항들은 현재 사문화된 상태다.
개고기가 합법화돼 소·돼지처럼 유통되려면 축산물가공처리법에서 가축과 축산물로 규정돼야 한다. 하지만 100마리 미만의 소농장주들은 일정한 시설을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 때문에 합법화를 그리 반기지도 않는 형편이다. 현재 개 농장은 따로 신고를 받지 않기 때문에 그 숫자를 헤아리기 힘들고, 보신탕집은 전화번호부로 검색하면 전국에 5천여곳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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