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10개년 경제재건 계획을 위해 ‘걸림돌’ 미국과의 관계 개선 등 바쁜 행보
‘전력 지원’으로 화답한 남한을 경제 건설의 주요 동반자로 선택한 듯</font>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앞으로 10년 내 안과 바깥 자원을 총동원해 경제 강성대국을 건설한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요즘 광폭 행보 뒤에는 ‘숨은 큰 그림’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가 13개월 만에 6자회담 참석을 선언하고, 숨돌릴 틈도 없이 남북 관계 개선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것은 임시변통이 아니라 치밀한 경제재건 전략이 뒷받침되고 있다는 얘기다.
일단 먹는 문제부터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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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최근 북한 지도부가 세워놓은 국가 비전을 한마디로 ‘경제 강성대국 건설 10개년 계획’이라고 표현했다. 김 위원장의 지금 나이 63살을 감안하면 73살이 되기 전에 쓰러져가는 경제를 곧추 세우겠다는 얘기로 해석된다. 그는 민생 문제 해결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즉, 식량의 자급자족을 당장의 목표로 삼고 있는 셈이다. 그는 올 신년 공동사설에서 ‘올 사회주의 경제건설의 주공전선은 농업전선’임을 강조한 바 있다. 북한은 이를 위해 종자기지와 자체 비료공장 건설 등 농업증산 인프라 구축에 힘을 쏟아부을 작정이다.
북한 지도부는 더 구체적으로 8년 안에 농업의 자급자족의 토대를 마련하고, 10년 안에 경제 전반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을 계획이다. 이를 위해 북한은 외국과 합영으로 ‘경제재건 특별기구’를 세워 치밀한 전략과 전술 수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투자자금 조달을 위한 새로운 합영은행 설립도 임박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은행을 통한 외환 유출입과 교환, 이익금과 업무용 외화의 대외 송금의 자유가 처음으로 보장된다. 또 공정하게 입장을 대변하는 중재기구를 세워 모든 분쟁을 해결할 방침이다. 중재인 가운데 60% 이상은 외국인 법률가와 전문가로 채워진다. 투자자에게는 우리의 재정경제부에 해당하는 북한의 재정성이 국가가 투자를 보장하는 담보서도 내어줄 요량이다.
소식통이 상세히 전하는 북쪽 핵심 지도부의 계획에 따르면 바깥의 저명한 국제금융·법률·투자 전문가 등이 북한 경제재건 자문에 공식·비공식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른바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들이 북한 경제재건 계획 수립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아직 드러내놓고 일하기를 꺼리고 있지만, 적절한 시점에 자신들의 계획을 관련 당사국에 통보해 도움을 요청하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북한 재건 종합 마스터플랜을 밝힐 예정이다. 북한은 스스로 힘이 모자란다는 점을 시인하고, 과감하게 필요한 인재와 기술을 바깥에서 구하는 ‘아웃소싱’을 추진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북한이 자신의 역량으로 정상적인 경제를 이끌고 나갈 수 있을 때까지 일정 기간 외부 기업이나 전문가들에게 투자활동과 경제관리를 맡기는 대신 북한은 각종 특혜 정책과 모든 자원, 토지, 자산, 인력 등을 제공할 계획이다.
북한 지도부는 외국 투자자들이 더욱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법·제도를 꼼꼼히 정비하는 한편, 유엔아태경제사회이사회(UNESCAP)와 같은 국제기구에서 환경, 에너지, 수자원, 교통 관리 및 각종 통계 수집, 분석 등과 관련된 선진 운용기법을 배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 밖에도 북한은 내부 경제관리 능력 향상을 위한 인재 육성에 적잖은 투자를 하고 있다. 북한은 대대적인 국가 개조에 나서고 있는 모양새다. 이는 “지금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된다”는 절박한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직접 지휘 아래 추진되고 있다.
6자회담 복귀, 미국도 긍정적 분위기
김 위원장의 국정목표는 항구적인 체제안전 보장과 경제 재건이다. 경제 재건에 안심하고 몰두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체제 안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체제 불안은 곧 군사비 지출로 연결되고, 이런 과도한 군비 출혈은 가뜩이나 허약한 경제를 더 휘청거리게 만드는 악순환이 수십년째 이어지고 있는 터다. 체제 안정의 핵심은 바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다. 핵 문제는 가장 도드라진 걸림돌이다. 이는 김 위원장의 전략적 결단 없이는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다. 마침내 김 위원장은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큰 걸음을 내디뎠다. 7월27일부터 중국 베이징에서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6자회담은 눈길을 끌 만하다. 핵심 당사국인 미국과 북한이 내보이는 최근까지의 속내와 태도로 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실질적 진전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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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은 7월13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로 평양을 방문 중인 탕자쉬안 국무위원을 만나 6자회담이 예정된 기일 내에 재개되기를 바란다며 “6자회담에서 적극적인 진전이 이룩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이 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김일성 동지의 유훈”이라며 “핵 문제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우리(북)의 일관한 입장”이라고 다시 강조했다. 미국의 태도도 어느 때보다 유화적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7월12일 한국 정부가 발표한 대북 중대 제안에 대해 “아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북핵 문제 해결에 유익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적극적인 지지를 보여주었다. 그는 “미국도 북한을 동등한 자격으로 존중하면서 대화를 해갈 준비가 돼 있다”면서 이전에 볼 수 없던 드문 미소를 던졌다.
김 위원장은 일찍부터 체제 생존과 경제 재건의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다고 판단해왔다. 지난 6월17일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만나 보낸 핵심 메시지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정동영 장관도 7월14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메시지의 핵심은 미국과 우방이 되고 싶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날 낮 언론사 정치부장단 간담회에서 “북핵 문제의 해결은 곧바로 북-미 관계의 정상화라는 등식이 가능하다고 본다”며 이렇게 말했다. 얼마 전 딕 체니 미 부통령을 찾아가서도 거의 절반의 시간을 김 위원장의 이런 희망을 전하는 데 할애했다고 그는 소개했다. 그러나 관계 정상화까지는 멀고 먼 길이다. 핵 포기를 선언하고 이를 검증받는 시간은 몇년이 걸릴지 모른다. 북한은 이 기간 동안이라도 미국이 경제제재를 풀어주고 방해만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숨기지 않고 있다.
“노무현 정부와 손잡는 게 최선이다”
그는 현실적으로 경제 재건 과정에서도 반드시 넘어야 할 과제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첫손에 꼽아왔다. 미국은 자본주의의 맹주로서 북한과 다른 나라와의 관계 설정에도 영향을 줄 뿐 아니라, 국제금융기구의 경제개발 자금 원조에도 거의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장 개성공단에서 부닥치는 문제인 전략물자 반출입의 제한이나 공단 생산품의 제3국 수출도 고율의 관세로 인해 시장 개척이 쉽지 않다. 생산 제품이 세계 최대 규모의 미국 시장에 접근할 수 없다는 점도 큰 한계로 지적된다.
그리고 북한은 자체 역량으로 경제를 재건하기에는 힘이 부친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외부의 적절한 도움 없이는 10년 안 식량 문제 해결 및 경제 정상화 목표 달성이 어렵다. 당장 직면한 식량난을 극복하는 데도 남쪽의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형편이다. 7월11일 남북 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 식량 50만t 지원이 결정됐지만, 북한 관계자들은 당장 끼니를 거르고 있는 주민들을 위해 라면이라도 먼저 보내달라는 물밑 메시지를 보낼 정도다. 김 위원장은 장고 끝에 경제건설의 동반자 혹은 후견자로 남한을 찍은 듯하다. “북한은 나름대로 지금의 남한 정치 지형을 분석하고 차기 정부까지 감안한 결과, 그래도 노무현 정부와 손잡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10년 경제재건 계획을 차질 없이 수행하기 위해서는 현 정부뿐 아니라 차차기 정권까지 생각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적어도 현 정부의 정책을 계승·발전시킬 수 있는 상대를 찾을 수밖에 없다.” 핵심 당국자의 이 말 속에는 최근 뜨겁게 달궈지고 있는 남북 관계가 적어도 일시적인 냄비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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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맥락에서 정동영 장관이 7월12일 공개한 200만kW 전력 지원 중대 제안은 북이 솔깃해 할 만하다. 북한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당국간 회담 등에서 남쪽의 남아도는 전력을 보내달라며 단골 메뉴처럼 요구해왔다. 홍순직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전력난은 북한 경제난의 출발점이자, 경제재건 전략 추진의 최대 걸림돌”이라면서 “북한은 전력과 석탄을 ‘경제 강성대국 건설의 생명선’이란 인식 아래 이 문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 없이는 경제 재건은 엄두도 낼 수 없다.
북한은 또 극심한 생필품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7월9일부터 나흘간 서울에서 열린 제10차 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 주민 생활과 직결되는 의복·신발·비누 등 경공업 제품 생산용 원자재 지원을 요청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정부는 북쪽 주민 생활을 낫게 하고, 경제의 상호 보완성을 높이기 위해 2006년부터 요청 품목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경공업 제품 생산 지원도 적지 않은 의미를 품고 있다. 북한은 지난 2002년 7월1일 경제관리 개선조처 이후 소비재의 공급 부족으로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생필품 생산 지원은 북한의 이런 어려움을 더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볼 대목이 아니다.
지원 국가엔 다른 방식의 보상 고민
북쪽은 이번 경추위에서 경공업 제품 생산용 원자재를 요청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풍부한 아연·마그네사이트·인회석·정광 등 지하자원 개발에 대한 투자를 보장하고 생산물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유무상통과 상생의 새로운 경제협력 방식에 뜻을 모은 것이다. 사실 이것도 예정된 수순이었다. 김 위원장은 바깥의 무상원조에 심기가 편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애초 북핵 문제나 대미 관계 개선 등이 조만간 이뤄져 식량난이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낙관했던 듯하다. “그는 어려울 때 도와준 이들을 잊지 않는다. 이들에게 현금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보상하는 방안을 고민해왔다”고 한 정보 관계자는 귀띔한다. 그는 또 무상 지원이 중장기적으로 북한 내부의 역량을 되레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는 “경제생활에서 공짜가 많은데 이런 것들을 정리해야 하고, 무상 공급, 국가 보상 및 기타 혜택들도 검토해서 없앨 것은 없애야 한다”고 지시했다. 이전의 평균주의적 분배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에게서 노동 의욕을 뺏어갔으며 놀고 먹고 쉬운 일을 하려는 건달풍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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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의 야심찬 경제 재건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신 남북경협 시대가 서서히 막을 올리고 있다. 이번 경추위에서 합의된 많은 사업들은 북한 경제의 기초체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이어 북핵 문제의 실질적 진전에 따라 북한에 투입될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대북지원 방안’까지 감안하면 김 위원장이 구상하는 10년 안 경제재건 목표 달성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중대 제안은 서막이다. 참여정부 임기 안에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 지원부터 시작해 농업·제조업·정보통신·교통망·관광·지적 인프라 등 분야가 다양하다. 핵이 동결되고 구체적인 해체 과정에 들어갈 때 단계적으로 인센티브가 들어갈 것이다.”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대북경협 방안 수립에 관여했던 관계자의 귀띔이다. 정부는 한국의 70~8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같은 ‘대북 경제협력 종합추진계획’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남북은 지금 흔치 않은 국운 상승의 기회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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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의 ‘대담한 구상’ 유효한가</font>
‘라이스의 대담한 구상’을 기억하십니까?
북핵 문제 해법과 관련해 한국이 ‘중대 제안’ 카드를 갖고 있었다면, 미국은 더 일찍이 ‘대담한 접근’을 구상한 적이 있었다. 미국a은 지난 2002년 10월 북한과의 고위급 회담에서 북핵 완전 포기를 대가로 화력발전소의 제공과 경제제재 해제, 관계 정상화 등 포괄적 지원을 약속했다. 이 구상에는 당시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도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이 제안에 ‘대담한 접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대담한 접근은 북핵 포기를 대가로 북한의 국가 재건을 폭넓게 지원하겠다는 것으로, 이를 입안한 미 정부 고위관계자들은 ‘북한판 마셜플랜’이라고 불렀다. 북한에 큰 이익을 주는 대신 김정일 체제에는 개혁·개방을 압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 바 있다. 구체적인 지원 방안에는 대북 경제제재의 해제와 북한의 아시아개발은행(ADB) 가입 지원 등이 포함돼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미국이 1994년 북핵 포기의 대가로 북한에 제공하기로 합의한 경수로 건설계획을 백지화하고 같은 규모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2개의 화력발전소를 북한에 지어주는 계획이다. 북한에 지어주는 경수로가 핵무기 개발로 전용될 가능성을 우려한 탓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7월12일 발표한 대북 중대 제안은 미국의 이런 우려를 반영해 북한이 핵을 폐기할 경우 경수로 공사를 중단하는 대신 200만kW의 전력을 직접 송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금 궁금한 대목은 미국의 ‘대담한 접근’이 여전히 유효한가라는 점이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는 수순을 밟을 경우 과연 미국은 어떤 대가를 북한에 제공할 것인가. 부시 행정부는 아직까지는 이와 관련해 어떤 암시도 주지 않고 있다. 서울을 방문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한국 정부의 중대 제안에 대해 “아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북핵 문제 해결에 유익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적극적 지지 의사를 밝혔다. 7월13일 오전 한-미 외교장관 공동 기자회견에서다. 그는 “한국의 제안은 북한의 에너지 해결을 위한 좋은 해결책”이라며 “북한의 에너지 수요 충족 문제를 확산 위험 없이 다룰 수 있는 매우 창의적인 구상으로 우리가 처한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이런 호의적 반응이 자신의 대담한 구상과 관련돼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미국은 7월 말에 열릴 6자회담에서 북한의 구체적 반응과 태도를 봐가면서 보상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대담한 접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북한 지도부는 한국의 중대 제안 못지않게 미국이 풀어놓을 보따리에 주목하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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